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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무익하다.” 이 한 마디는 나중에 중국인들의 생활 속에 아주 오래 메아리쳤다. 어쩔 수 없이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누군가 어리석음을 범하면서까지 하찮은 것을 지키려 할 때마다 이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무익하다. 무슨 소용이 있냐는 질의였다._155~156쪽
작은 일은 큰일이 되었지만 큰일들은 원래 작은 일이었다. 좋은 일이 곧 나쁜 일이고 나쁜 일은 또 좋은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자신은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밖에 없었지만 어떻게 해서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는 나쁜 사람이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_214쪽
이 일은 무척이나 이상하다. 똑같이 하늘 끝 낯선 땅에 떨어진 사람들이 서로 만났다고 해서 반드시 사전에 서로 알고 지낸 사이인 것은 아니다. 이제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거나 함께 지내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수하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한 가닥 줄에 매달린 개미들인데 어째서 서로 만나 마작이라도 두지 못한단 말인가? 황토고원에는 서글픈 바람만 부는데 서로를 보듬고 온기를 나눌 수는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해 사회가 대답한다.
“내가 그와 같은 길을 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사실이 내가 그와 위챗으로 소통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임을 증명하진 않는다. 나는 원래 그를 무시했고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니 내가 그를 만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_219~220쪽
춘추시대와 오늘날은 다르다. 경제가 발달되지 못하고 문화도 선진적이지 못한 춘추시대 사람들이 쌀은 쌀이고 물은 물이며 솥은 솥이고 불은 불이라고 생각하면서 각자 분리하여 논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우리는 쌀은 물이고 물은 쌀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솥에 넣으면 죽이 되는 것이다. 천하의 모든 일은 결국 같은 일이다. 하나의 입장이요 줄서기다. 안쪽이 아니면 바깥쪽이고, 왼쪽이 아니면 오른쪽인 것이다._221쪽
춘추시대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처럼 역사와 생활이 부여하는 조건에 아주 깊이 제한을 받았다. 자신의 신념을 말하지 못하고 좋은 신념을 가지고 행동에 옮겼을 때, 그들은 부득이하게 넓은 진흙탕을 넘게 된다. 공자가 위대한 것은 집정의 기회가 없었던 덕분이라 할 수 있다._260~261쪽
그 시대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같은 장엄함, 광막함과 함께 거친 기질이 상존했다. 사람들은 모두 거대한 괴수이거나 거대한 신이었다. 그들의 중상모략과 탐욕, 질투, 분노와 원한, 허영심을 포함한 욕망과 감정들이 하늘처럼 넓고 땅처럼 거대한 일들을 만들어냈다. 『일리아드』와 다르지 않았다. 바다를 건너 싸우는 거대한 전쟁도 누군가 남의 마누라를 빼앗아갔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나는 그 시대가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감히 단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시대가 무척 귀여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는 우리의 유년처럼 오래 기억되고 있고 입에서 입으로 널리 유전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춘추시대는 우리 마음속에서 어지럽고 흐릿한 한 덩어리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 우리의 기억을 제거하여 그 떠들썩하고 장난기로 가득했던 유년을 잊어버리게 한 것처럼 춘추도 흐릿하게만 기억되는 것이다._272~273쪽
이런 일을 일컬어 국경분쟁이라고 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 사건은 역사와 무관했다.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로 요란하고 살벌하지 않은 일에는 역사가들이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역사가들의 붓은 피를 좋아하게 되었다. 어떤 사건의 중요성에 대한 역사가들의 판단이 기본적으로 피를 기준으로 하게 된 것이다. 사마천은 피가 흘러 방패가 떠내려가는 상황을 눈으로 보면서 큰 구슬과 작은 구슬들이 옥쟁반 위를 구르는 것처럼 핍진하게 묘사했다._335~3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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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역사의 벽돌 밑장 빼기
리징쩌가 춘추시대를 독해하는 방식은 어떤 면에서 지극히 세속적이다. 마치 누군가의 비밀을 들춰내서 그가 만인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거나 극도의 허탈감을 주는 방식이다. 가령 「거짓말이 키운 왕」을 보자. 제나라 민왕?王이 주인공이다. 그는 기원전 300년부터 16년간 통치하면서 막강하던 제나라를 말아먹은 왕이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 연나라 장군 악의가 육국 연합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위나라로 도망갔다. 임치 왕궁에 남은 금은보화는 깡그리 약탈당했고 백성도 뿔뿔이 흩어졌다. 망명지에서 멍하게 앉아 있던 왕은 신하 공옥단公玉丹에게 물었다.
“내가 이렇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원인이 무엇인가. 이대로 끝나는 건가. 말 좀 해주게. 고칠 게 있으면 고치겠네.” 그러자 공옥단은 의관을 갖추고 앞으로 나아가 대왕이 망명하시게 된 것은 현명하기 때문이며, 천하가 어리석어 그 현명함을 싫어하기에 연합 공격한 것이 이유라고 답한다. 이 말을 들은 제 민왕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현명함이란 이렇게 힘든 것인가”라고 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왜 공옥단이 그 시점에 굳이 거짓말을 했을까다. 당시 제왕은 이빨 빠진 호랑이에 지나지 않았다. 몇 마디 솔직한 말을 해도 쫓겨나거나 목이 달아날 일은 없었다. 리징쩌는 공옥단의 심리를 파고든다. 제나라 왕이 간절한 태도로 진실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공옥단은 참지 못하고 거짓말을 이어나갔다. 이를 통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공옥단은 무척 즐거웠으리라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그는 자신의 총명함 때문에 즐거웠다. 더 은밀하고 달콤한 즐거움은 왕을 괴롭히는 것,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엉덩이를 다 드러내고 거리에 나가도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 것, 이것이 어리석은 왕들의 현실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이유는 두려워서이기도 하지만 즐겁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게 리징쩌의 해석이다.
공자는 약점이 있어 귀엽다
맹자는 너무 완벽한 것 같다
「순의 울부짖음」을 보자. 순임금의 이야기에서 가장 아득하고 심오한 장면은 “순이 밭에 나가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곤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순임금은 요임금의 선양으로 왕이 된 성군이다. 왜 그는 밭에서 울부짖었을까.
리징쩌는 맹자가 기록한 순의 일대기에 의문을 제기한다. 순이 왕이 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아버지와 동생의 집요한 방해가 있었다. 순을 불에 태워 죽이려 하고 우물에 묻으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순은 간신히 살아났다. 게다가 복수하지 않고 포용함으로써 두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했다. 공자와 맹자는 이것이 순의 선함, 너그러움, 인내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저자의 입장은 다르다. “선은 우리에게 아무런 현세적 이익도 제공하지 못한다. 선은 뭔가를 획득하고 취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포기하고 버리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순의 이야기는 선에 대한 보응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리징쩌는 “그가 고난을 당하고 극도로 연약했을 때, 하늘은 말이 없고 거친 들판도 말이 없었다. 그의 영혼만 흔들리고 있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선을 지키는 사람은 끝내 고독하고 스스로 굳셀 뿐 그에 대한 리워드는 우리의 상상일 뿐이라는 것. 이것이 순임금의 이야기에서 끌어낸 그의 결론이다.
「맹자의 선택 문제」에서 그는 『논어』 읽기와 『맹자』 읽기의 차이점에 대해 말한다. 『논어』는 노인을 상대로 뭔가 상의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거는 아닌 거 같은데요” 하면서 말이다. 반면 『맹자』는 상의할 것이 없다. 그가 곧 진리이자 정의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상의하려 하면 맹자는 탁자를 내리치며 혼낸다.
예컨대 맹자는 가장 이상적인 세제는 십일제什一制라며 열 근의 수확이 있으면 한 근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의를 듣던 송나라 관리가 훌륭하긴 하나 시간이 촉박하니 내년에 다시 얘기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다. 관리 입장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이상적인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맹자는 “그건 닭을 훔치는 자가 훔치는 양을 한 달에 한 마리 줄여 내년에 그만두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옳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면 당장 그만둘 것이지 무엇 때문에 내년을 기다리겠습니까?”라고 벼락처럼 소리를 높였다. 리징쩌는 이 대목에서 “내가 맹자를 진정으로 좋아할 수 없는 건, 생존의 문제를 닭의 문제로 치환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양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십일조를 바치게 했다. 하층 관리들이 칼을 차고 돌아다니며 임의로 “네 수입은 대강 얼마이니 얼마를 내놓아라”라고 했으며 유럽 백성은 가산을 탕진하고도 십일조 세금을 내지 못해 자식들을 팔기도 했다. 물론 맹자는 이런 상황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큰 옳음’과 ‘큰 그름’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NBfUY-NS_s
바람의 저작권
『시경詩經』은 일종의 민간 문학이라고 전해진다. 고대의 노동인민이 집단적으로 창작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중국과 한국이 대체로 비슷하다. 대학에서는 왜 『시경』을 민간 문학이라고 가르쳤던 것일까? 리징쩌의 선생님은 그것이 고대 노동자들에 대한 칭송이고, 그들을 칭송하는 것은 절대로 잘못된 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옳든 그르든 칭송부터 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시경』의 시편들 중에서 왕후장상과 자신들의 조상을 칭송하고 찬미하는 「아雅」와 「송頌」은 묘당의 노래라 할 수 있고 「국풍國風」은 대부분 귀족계층의 무병신음無病呻吟 혹은 유병신음有病呻吟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시경』 안에 어떻게 남녀의 사적인 사랑 이야기만 있을 수 있겠는가. 당시엔 귀족계층만이 읽고 쓸 자유를 누렸고, 백성은 그저 먹고사는 데 바빴을 텐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설득력 있다. 그런데 왜 귀족들은 시를 쓰면서 이름을 남기지 않았던 것일까. 당시는 아직 고대사회라서 대다수라는 집단에 섞여들어가는 것의 장점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서명署名을 하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는 서명이 아무 의미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짧은 글을 한 편 쓰거나 간단한 노래를 부를 때 자신의 이름으로 표시해두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지 못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것이 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문명의 청춘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인세를 받을 곳도 없었기에 저작권 의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진리는 바람과 같다. 시가 바람과 같은 것과 마찬가지다. 긴 머리가 바람에 펄럭인다고 해도 바람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기판 살인 사건’부터 ‘대중목욕탕 유혈 사건’까지
이 책은 여러 차례의 살인 사건을 소개하고 그 배후를 치밀하게 추리하는 글을 여럿 실었다. 대부분 왕과 신하, 왕족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다.
첫 번째 사건은 ‘장기판 살인 사건’이다. 송나라 민공閔公이 대장군 남궁만南宮萬과 장기를 두고 있었다. 둘은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사실 껄끄러운 사이였다. 2년 전 남궁만은 노나라와의 전쟁에 져서 포로가 됐다 풀려난 사실도 있다. 장기 판세는 남궁만 우세였다. 그가 그만 안 해도 될 소리를 해버렸다. 자신이 포로 시절 겪어보니 노나라 왕이 참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이 말이 송 민공의 귀에 꽂혔다. 참 한가한 말이고 경우 없는 소리다. 게다가 상관 앞에서 적의 상관을 칭찬하는 하극상 같은 발언이다. 민공은 이 기분 나쁜 놈에 대한 적개심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그도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미녀들이 시중들고 있는 앞에서 “노나라 왕은 아주 훌륭하지. 그래서 이자가 죽지 않고 포로가 됐던 것이지.” 이 말에 남궁만은 폭발했다. 그는 손을 뻗어 왕의 목을 잡아 단숨에 비틀어버렸다. 일격에 살해한 것이다. 남궁만은 즉시 진陳나라로 도주했다. 진나라는 이 골치 아픈 자에게 술을 잔뜩 먹여서 수레에 묶어 송나라로 되돌려보냈다.
두 번째는 ‘대중목욕탕에서 싹튼 유혈 사건’이다. 제나라 의공懿公은 참으로 경우 없는 호색한이었다. 그는 저잣거리의 얼굴이 예쁜 유부녀를 자기 여자로 삼았다. 더 놀라운 건 아내를 빼앗긴 남편을 자신의 마차를 모는 일에 고용해 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름이 용직庸職인 이 사내는 억울했지만 주어진 직에 적응하며 점차 아픔을 잊어갔다. 그런데 그가 의공의 다른 마차를 모는 병융丙戎이라는 이름의 젊은이를 알게 됐다. 그는 의공이 무덤에서 꺼내 다리를 부러뜨린 과거 싸움 상대의 아들이었다. 둘 다 의공의 원수지만 둘은 별 문제 없이 마차를 몰았다. 문제는 두 사람이 목욕탕에서 만난 것이다. 둘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급기야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 한쪽이 “야, 이 다리 부러진 놈의 자식아”라고 하면 다른 쪽은 “마누라를 빼앗긴 놈 주제에”라고 응수했다. 둘은 주먹다짐을 했고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으며 그 화의 근원을 더듬다 생각이 왕에게 미쳤다. 이후 둘은 칼을 준비해 숨어 있다가 의공이 마차를 타고 죽림 깊은 곳에 산책 갈 때 살해해버렸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오랜 시간 와신상담하며 복수의 칼날을 간 것 같지만, 저자 리징쩌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원인은 바로 목욕탕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춘추오패 중 하나인 진 문공, 전쟁에서도 양보를 한 것으로 유명한 송 양공 등 많은 역사적 사례를 곱씹으면서 그들의 행위에 숨어 있는 인간의 욕망을 읽어낸다. 저자는 춘추시대가 인간이 아직 순수함을 잃지 않았던 때라고 본다. 그런 입장에서 인간의 순수한 욕망과 마주하는 것, 그것이 역사 읽기의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책은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