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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6Ouvz8G05W8
책 속으로
[‘서문’ 중에서]
조선시대 서민의 삶에 대한 문헌 자료를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글을 써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상층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명예나 이해가 걸린 정치적 이념의 문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장황하게 써 두었지만, 그런 것 이외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으므로 서민의 일상생활을 기록해 두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 책에 들어 있는 내용은 유명한 것이 아니다. 저명한 인물이나 역사적인 사건, 또는 중요한 유물이나 주류의 이념 등이 아니라, 당대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쉽게 알 수 없거나 사라진 것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담았다. 그러므로 이 책이 참고 자료로 삼은 것은 조선시대 저명한 인물이 쓴 뛰어난 저술보다는, 서울과 지방에서 주고받은 문서나 죄인들을 문초한 내용을 적어 놓은 살인사건 조사서와 같이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많다.
책 제목을 『조선사 스무고개』라고 한 것은, 이 책에 담은 스무 가지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조선이라는 나라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해서 붙여 본 것이다. 이 책이 조선시대 사람들의 지워진 일상을 복원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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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 역사 복원을 위한 실마리
1983년, 저자는 이화여대 도서관에서 고소설 『설인귀전』을 열람한다. 이는 20세기 초 세책집(도서대여점)에서 유통되던 책인데, 세월이 흘러 종이가 터지면서 책 안쪽에 숨어 있던 배접지가 70여 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설인귀전』에 쓰인 배접지는 바로 대한제국의 군대 문서였다. 군호는 어떻게 전달되었는가, 궁성까지 행진하는 데 동원된 인원과 경비는 얼마인가, 겨울에 내복을 어떻게 지급했는가 등등 군대 내 소소한 일들이 적혀 있는 이 문서는 어쩌다 소설책 배접지로 재활용되었을까? 아직은 궁금증을 해소할 만큼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저자는 “과거의 자료를 제대로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이 문서를 실마리로 삼아 대한제국 군대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조선사 스무고개』에서 다루고 있는 스무 가지 이야기는 곧 역사 복원을 위한 실마리이기도 하다.
- 조선을 찾아가는 스무고개
『조선사 스무고개』에는 유명한 인물이나 사건, 주류의 이념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당대에는 흔했지만 지금은 쉽게 알 수 없거나 사라진 것에 관한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 참고 자료로 삼은 것도 서울과 지방에서 주고받은 문서나 죄인들을 문초한 내용을 적어 놓은 살인사건 조사서와 같이 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많다.
이 책에서 다루는 스무 가지 주제는 ‘암호, 봉수대, 과거, 한양 구경, 뗏목, 얼음, 유리, 청어, 주막, 호랑이’ 등이다. 이를 통해 통해 조선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 서울의 구경거리, 집을 짓기 위해 목재를 나르는 방법, 당대의 사치품, 이동할 때 묵었던 숙소 등 잊혀진 조선의 모습을 더듬어 본다. 고준 담론에 가려 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조금씩 드러난다.
- 바로잡아야 할 조선의 역사
저자는 오랫동안 허균이 지었다고 잘못 알려져 온 내용을 바로잡아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2018)를 쓴 바 있다. 기존 연구의 오류를 답습하지 않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조선사 스무고개』에서도 이어진다. ‘판소리’를 한 가지 예로 들 수 있다. 학교에서는 판소리가 먼저 생겨났고, 『춘향전』이나 『심청전』 같은 소설은 판소리 가사를 옮겨 놓은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저자는 “판소리 「춘향가」나 「심청가」가 소설의 한 대목을 노래로 부르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다. 그리고 판소리 관련한 수많은 학교와 기관, 전문가가 있지만, 판소리의 정의와 역사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지적한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판소리에만 해당되지 않을 터이다. 거대 담론에 가려서 희미해지고 잘못 알려진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 그것이 우리 학계와 사회의 역량이다. 『조선사 스무고개』는 그 역량을 다지는 한걸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