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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과로사 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지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사회> 사회문제
사회과학 > 노동문제
주제어: 과로사/과로자살/과로죽음/산업재해/뇌심혈관질환/업무스트레스/우울증/자살/산재/산재보험/부검/사망신고/상속/긴급복지제도/노동강도/장시간노동/야간노동/초과근로/야근/노동시간/노동환경/산업재해보상보험/근로복지공단/질병판정위원회/유족급여/장의비/워커홀릭/기업문화/유가족/유족/유가족모임/중대재해처벌법
책 소개
과로사와 과로자살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직접 썼다. 과로로 인한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이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남은 이들의 치유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서술한다. 유족 당사자가 쓴 ‘과로’에 관한 논의로서 사건에 맞닥뜨린 이들을 위로하는 한편, 사건 직후부터 산업재해 신청까지 필요한 사항과 절차를 자세히 소개했다. 남겨진 사람들의 황망한 심경과 과로죽음을 인정받기 위한 고군분투의 경험을 사실적으로 증언했고 절차마다 필요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안내했으며 과로죽음을 근절하기 위한 제안도 담겼다.
가족, 동료, 친구를 잃은 이들이 황망한 세상을 견디고 난 후 다른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보태고 이 책을 쓴 이유는 과로사와 과로자살이 개인의 나약함이나 가족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죽음이며 재발을 막기 위해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이는 곧 회복과 정의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세계 최장 시간 노동하는 한국사회에서 과로를 멈춰야 한다는 유가족의 목소리는 과로 권하는 사회에서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찾는 유의미한 시도가 될 것이다.
출판사 서평
애도하고, 치유하고, 도약하다
과로 권하는 사회에서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말하기
다음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극복하고 나아가기를 바라는 연대의 기록
“그만두라고 말하지 못했다”
과로로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토록 절실한 이야기
현대 한국사회가 건강한 삶과 ‘워라밸’을 외친다지만, 지치고 아파도 근면 성실하게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여전히 미덕으로 통한다. ‘열심히 일하다 죽은’ 사건이 연일 보도되는데 ‘일 중독’과 ‘빨리빨리’가 한국인의 경쟁력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이 와중에 과중한 일 때문에 죽음을 맞는 사람은 점점 늘고, 드러나지 않은 무수한 과로사와 과로자살 사건 뒤에는 알지 못했던 세계에 내던져진 유족들이 있다. 갑작스럽게 닥친 가족의 과로죽음은 남은 사람들을 다양한 종류의 고통으로 몰아넣었지만, 이들은 과로 때문에 가족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나아가 더는 이런 죽음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한고비 한고비를 돌파해 왔다.
자조모임을 꾸려 서로 의지하고 도운 유가족들은 이 책에서 자신과 동료들의 사례를 직접 썼다. 모임 내에서 심리 치료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얻은 이야기, 떠올리기 어려웠던 사건 당일부터 산재 신청 과정 등 다양하게 휘몰아치는 감정과 사건들을 재구성했다. 지원을 위해 유가족모임에 참여 중인 법률 전문가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글을 보탰다. 모임에서 만난 유족들은 가족의 과로사, 과로자살 이후 남겨진 사람의 상태가 매우 닮았다는 것을 알았다. 경찰 조사에서의 곤경과 장례 절차, 과로사를 인정하지 않는 회사와의 갈등,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절차와 방법 등에 관해 도움을 얻거나 물어볼 곳이 전혀 없었다는 점까지 공감한 이들은 홀로 힘겨워할 다른 유가족을 돕기 위해 자신들이 겪은 모든 절차와 심경을 책에 담았다.
평온하던 일상에 과로사, 과로자살이라는 암초를 만난 유가족은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허둥지둥하고 나면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거나 가족을 탓하는 주위 사람들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 또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성 재해와 달리 죽음 이후에 업무 관련성을 증명해야 하는 과로사, 과로자살의 특성상 유가족들은 이를 입증해야 하는 기나긴 시련에 놓인다. 그러나 과로사와 과로자살은 개인의 나약함 때문에, 가족이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 아니며 과로 권하는 사회가 빚은 사회적 죽음이다. 그래서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남겨진 이들의 울분을 자세히 밝히고 개선 방향을 제시해 과로죽음 이후 처리해야 하는 절차와 과정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과로사와 과로자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조금이라도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도 이 책에 담겼다. 지은이들은 “다시는 과로죽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비슷한 일을 겪게 될 유가족, 동료, 친구들이 있다면 우리보다는 덜 분노하기를 바라며, 조금 더 존중받기를 바라며 이 책을 내놓는다”라고 밝혔다.
경찰 조사부터 부검, 산재 보상과 소송까지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관한 거의 모든 조언
과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부터 죽음 이후의 절차, 산업재해보상보험 신청과 판정까지 과로사, 과로자살에 관한 현실적 대처를 망라한 이 책은 앞서 이 모든 과정을 겪은 유가족들이 하고 싶은 말과 현재의 심경까지를 포함해 구체적인 조언과 증언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과로의 정의와 과로사, 과로자살의 규모를 다룬 후 과로사와 과로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때 기준이 되는 법률의 해당 부분을 싣고 해설했다. 2장에서는 과로사 혹은 과로자살 소식을 접한 직후 유가족들이 겪은 상황과 마음을 솔직하게 정리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경찰 조사, 부검, 장례를 치르며 기력을 소진하고, 절망과 상실감은 물론 죄책감이나 고인에 대한 원망까지 생겨 혼란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고 사망 신고, 재산 조회, 연금과 보험, 상속, 긴급복지제도 등을 안내했다.
아울러 고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아야 진정으로 고인을 애도할 수 있고 그것이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격려한다. 그래서 3장에서는 산업재해보상보험 신청과 승인 과정을 자세히 다룬다. 가족이 일 때문에 죽었다는 걸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과제 앞에서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좌절하며 고인의 일과 삶을 되짚는 유족의 고군분투가 그려진다. 회사에 대응하는 법, 언론과 여론 상대하기, 노무사나 변호사 선임하기,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만나기 등의 경험을 나누며 산재 신청 방법과 자료 수집, 근로복지공단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사 과정, 산재 승인되었을 때와 불승인되었을 때 각각의 대처를 수록했다.
한 사람의 죽음이 과로 때문이었음을 인정받는 것은 유가족뿐만 아니라 남은 동료들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가 일했던 일터가 한 사람을 파괴할 정도의 문제가 있었다는 말인데 이는 필연적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유가족들은 일터에 남겨진 동료들과도 암담한 마음을 나누기 위해 과로사나 과로자살이 발생한 일터 사례를 직접 찾아 인터뷰했다. 4장에 드러난 게임회사 직원이나 병원 간호사의 과로죽음 사건은 과로의 메커니즘과 폭력적인 기업 시스템, 과로죽음을 양산하는 사회 구조를 재차 확인시킨다. 남겨진 동료들은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직접 행동에 나서는 등 크고 작은 연대로 변화를 강구하고 있었다.
“과로를 멈춰야 한다”는 유가족들의 선명한 주장은 우리 사회가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다. 5장에서는 과로사, 과로자살을 줄이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야간노동을 최소화하며, 기업 문화의 변화와 정부 규제가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함께 목소리 낼 수 있도록 노동자들이 힘을 키우고 과로의 위험성, 노동권을 교육해야 한다는 희망을 담았다.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사라진 유족들에게 긴급한 경제적 지원과 심리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 행정 절차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도 서술했다. 특히 오로지 유가족 개인에게 부여된 과로죽음 입증의 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험에서 도출된 문제 제기다. 소극적인 기관들 사이에서 ‘알아서’ 증거를 찾아다녀야 했던 막막했던 기억은 전반적으로 산업재해자 당사자에게 입증 책임을 무겁게 지우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꼬집는다.
산재를 승인받아도 그렇지 못해도 유가족들에게는 살아남아 잘 치유하는 과정이 남았다. 6장에서는 올바른 끝맺음을 위해 심신을 회복하고자 노력하는 유가족들의 일상과 삶의 노력을 서술했다. 가족의 죽음이라는 갑작스러운 암초를 딛고 당당히 인생을 재설계해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주 값진 변화다. 가족이 없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일상생활을 잘 영위하며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유가족들의 모습은 과로죽음 유가족은 물론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것이다.
“과로해서 죽을 수 있다, 우리가 증인이다”
과로 권하는 사회를 바꾸고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과로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과로사에 대한 정확한 조사나 통계도, 예방 대책도 없다. 의학적 용어가 아니라 정식 사망 원인이 될 수 없는 ‘과로사’의 규모는 뇌출혈, 뇌경색, 심근경색 등 뇌심혈관질환 사망자 중 업무와의 관련성이 인정된, 즉 산업재해로 승인된 숫자로 짐작할 뿐이다. 뇌심혈관질환 사망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것은 2019년에 503명이었다. 업무상 재해로 승인되는 비율이 신청 건수의 절반도 되지 않으며,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직업군, 자영업자와 특수고용노동자 등의 과로사는 포함되지 않으니 이보다 훨씬 많은 과로사가 매년 발생한다는 뜻이다.
과로자살의 경우 파악이 더 어렵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사망 사건이 업무상 재해로 근로복지공단에 신청, 승인된 수치를 통해 추측할 수밖에 없다. 2019년 기준 35건이 업무와 관련 있는 자살 사망으로 인정받았는데, 자살의 산업재해 신청 규모가 절대적으로 작은 상황에서 이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과로의 대표적인 양상이 장시간 노동이며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담은 평가하지 않으니 질적인 측면에서의 과로는 사각지대에 있다. 그래도 ‘과로자살’은 오늘날 ‘과중노동에 의한 자살’의 의미에서 더 나아가 ‘업무로 인한 자살’, ‘업무와 관련된 자살’까지 통칭하게 되었다. 절대적인 장시간 노동이 없었더라도 일하다가, 일 때문에, 일터에서 주는 압박 때문에, 상사에게 받은 모멸감 때문에 발생한 자살은 모두 과로자살이다.
이 책에서는 과로사, 과로자살을 ‘장시간 노동 등 과중한 업무 부담 및 심리적 부담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일하는 사람의 사망 및 자살’로 정의하고, 이때 장시간 노동 등 과중한 업무 부담 및 심리적 부담을 ‘일하는 사람이 건강을 유지할 수 없고, 가족 및 사회생활을 원활히 유지할 수 없는 정도의 업무’로 정의한다. 건강을 해치고 목숨을 잃는 결과를 낳기 전이라도 가족생활을 양보해야 하거나 원하는 만큼의 사회생활, 취미생활, 정치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은 이미 ‘과중한’ 업무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장시간 노동은 계속해서 세계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과로사’라는 용어가 익숙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 일본, 대만뿐이다. 노동자의 건강보다 죽을 때까지 일해서 성과를 내는 일을 더 중시한 결과다. 과로사, 과로자살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쓴 일본에서는 2014년 과로사방지법을 제정했고, 자살을 포함한 정신장애의 업무 관련성을 평가하기 위해 ‘업무에 의한 심리적 부하 평가표’도 마련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과로죽음 문제와 관련해 더 많은 공론화가 이뤄져야 하고 이를 토대로 과로죽음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저자들은 입을 모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 생긴 관심인 ‘재난 참사 피해자의 권리’는 재난 참사 피해자가 권리의 주체임을 강조한다. 피해자를 참사와 관련된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할 주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 사고에서 ‘살아나올 권리’부터 진실, 정의, 안전, 회복까지의 권리를 과로사, 과로자살 유가족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과로사, 과로자살 유가족은 특히 정의의 권리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 재난 참사의 책임자가 간접적이고 폭넓은 데 비해 산업재해인 과로사나 과로자살은 명백한 사고 책임자가 있는 경우가 많고, 이런 구조를 방치한 채 회사를 경영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그러니 피해자 및 가족에게도 안전하지 않은 일터를 그대로 운영한 자들이 ‘사과’하고 그 죽음이 과로사, 과로자살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온전한 회복과 애도가 시작될 수 있다. 책임 있는 자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요구하는 것이 정의와 회복의 권리에서 중추가 된다. 이 책이 과로죽음에 맞닥뜨린 가족, 동료, 친구들의 권리가 진정으로 바로 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은이 소개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과로죽음 유가족들이 산재법 공부, 심리 치료 등을 함께하며 교류하는 자조모임으로 2017년 결성했다. 고인을 애도하고 과로죽음으로 인정받기 위한 활동을 지원하며 과로죽음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고민한다. karo2017@naver.com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03년 출범했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하는 것을 넘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안녕한 일터를 목표로 노동자의 건강권과 인권을 이야기한다. 현장 참여와 연구, 일하는 사람이 주체가 되는 교육, 연대 활동을 실천하며 노동안전보건운동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www.kilsh.or.kr, kilshlabor@gmail.com
저자의 말
남겨진 우리가 과로죽음에 당당히 맞서고 새로운 인생으로 도약한 것은 과로죽음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고 싶어서다. 과로죽음은 개인의 나약함이나 무능력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과로를 양산하는 사회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드러내고, 기업과 정부가 회피한 과로죽음 문제를 많은 사람이 인식해 앞으로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에 긍정적 변화가 생기길 바라서다. 고인을 애도하는 한편 과로죽음과 관련한 여러 활동을 하는 것은 유가족이라는 지위를 넘어 보통의 한 사람으로 삶을 꾸려가는 데에도 큰 의미가 된다.
거듭 말하지만, 가족의 과로죽음은 나의 탓이 아니다. 사회적 죽음이다. 우리의 목소리가 과로죽음을 미처 세상에 알리지 못하고 홀로 남겨진 이들의 회색빛 마음에 가닿아 한구석을 밝히길 바란다.
추천의 글
슬픔을 충분하고 온전하게 누리지 못한 채 유가족이 마주한 현실은 또다른 고통이다. 산재 신청 과정에서 그날의 기억을 여러 번 떠올려야 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회사의 태도에 좌절하기도 한다. 함께했던 직장 동료들이 주는 상처는 무엇보다 아프다. 망가진 현실을 수습하기 위해 혹은 회복을 위해 치러야 하는 과정이 이들을 더 깊은 어둠으로 몰아간다. 하지만 이 책은 유족의 고통을 드러내고 공유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과로죽음을 확인받는 것,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것은 유족과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일까. 누구나 ‘남겨진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죽음이 과로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유족만이 아닌 내 몫이라 고 느껴지는 것은 이것이 우리 사회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 김형렬(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코로나19라는 재난으로 온 나라가 힘겨운 때에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은 우리 사회의 과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일깨우고 있다. 이런 와중에 과로사, 과로자살 유가족들이 피맺힌 체험을 바탕으로 소중한 목소리를 담아 책을 내놓았다는 소식이 그저 반갑고 고맙다. 과로죽음은 분명 과잉노동을 강요하는 일터 현실에서 빚어진 사회적 타살이다. 그런데도 세계에서 가장 장시간 노동하는 대한민국에서 과로죽음을 사전 예방하거나 사후 보상으로 책임지려는 정부 정책, 기업 경영은 찾아보기 어렵다. 과중한 장시간 노동으로 ‘생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풍토와 제도적 사각지대를 바로잡기 위해, 그리고 또다른 피해 가족을 보듬어 돕기 위해 나선 유가족모임의 용기에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일하는 사람들의 과로죽음을 제대로 문제삼고 확실히 근절하기를 소망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의 일독을 추천한다. - 이병훈(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차례
들어가며
제1장 과로사, 과로자살이라는 암초
1. 과로를 어떻게 정의할까
2. 과로죽음은 얼마나 많을까
1) 과로사, 산업재해로서의 뇌심혈관질환
2) 숨겨진 과로자살
3. 과로사, 과로자살의 법률상 판단
1) 뇌심혈관질환의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
2) 자살의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
제2장 과로죽음을 받아들이기
1. 남겨진 우리
1) 너무 긴 악몽_과로사 유가족 이수현
2) 그만두라고 말하지 못했다_ 과로자살 유가족 김지현
3) 슬픔 이후 홀로 떠안은 과제
2. 과로죽음을 인정한다는 것
1) 산재가 뭔데_과로사 유가족 송유진
2) 차라리 모른 척해줘요_과로자살 유가족 김지현
3) 일 때문에 죽었구나_과로자살 유가족 박수정
4)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
3. 죽음 직후의 절차들
1) 부검
2) 경찰 조사
3) 사망신고와 재산 조회
4) 연금
5) 보험
6) 상속
7) 긴급복지제도
제3장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1. 죽음의 이유 말하기
1) 살인적인 노동강도_과로자살 유가족 서주연
2) 상사가 두렵다_과로자살 유가족 김지현
3) 과로죽음 인정의 사회적 의미
2. 과로죽음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
1) 회사에 대응하기
2) 언론과 여론 대하기
3) 법률 전문가와 관계 맺기
4)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만나기
3. 산업재해보상보험 신청과 판정
1) 산재 보상 신청과 자료 수집
① 노동시간 기록 확보하기
② 디지털기록물
③ SNS
④ 포털사이트 계정
⑤ 동료 인터뷰
⑥ 기타
2) 근로복지공단 조사
3)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
4) 산업재해로 승인되었을 때
① 유족급여와 장의비
② 손해배상 청구
5) 불승인되었을 때의 불복 절차
① 심사 청구
② 재심사 청구
③ 행정소송
제4장 일터에 남은 동료들
1. 사람들이 떠난 회사에서
1) 과로로 세 명이 죽다_게임업체 직원 최준규
2) 나도 저렇게 될까?_간호사 조은희
3) 회사의 책임에 대한 생각
2. 남겨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1) 바뀌지 않는다면 벗어나기
2) 나를 긍정적으로 관리하기
3) 서로를 위해 연대하기
4)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제5장 세상에 하고 싶은 말
1. 과로를 멈춰야 한다
1) 장시간 노동은 이제 그만
2) 야간 노동은 최소한으로
3) 죽음으로 내모는 기업 문화 바꾸기
4) 정부가 나서서 과로를 멈춰라
5) 노동자에게 힘이 필요하다
2. 남겨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1) 긴급한 경제적 지원
2) 심리적 지원
3) 과로죽음 입증 책임의 완화
4) 근로복지공단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절차의 배려
5) 과로죽음에 대한 경찰의 인식 개선
제6장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1. 살아남아 잘 끝맺는 법
1) 나를 일상에 매어두었다_과로자살 유가족 서주연
2) 죽을 때 죽더라도_과로사 유가족 장민주
3) 산재 불승인에도 불구하고_과로자살 유가족 박수정
4) 우리 가족의 치유를 위해_과로자살 유가족 김유미
5) 아빠가 없는 자리_과로사 유가족 송유진
6) 이제 내가 대신 할게_과로사 유가족 김민영
2. 우리가 과로죽음에 맞서는 이유
나가며
후기
책 속에서
동생이 젊은 나이에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는데 정황상 교대업무와 장시간 근로에 의한 과로사로 생각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인의 부모님이 끝까지 반대해 산재보험급여 신청 자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힘든지도 몰랐냐며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다, 죽은 아들 앞세워 돈 받는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사례의 부모님은 아직 아들의 죽음이 ‘과로’ 때문에, 그러니까 노동자가 제대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일을 시켜 이익을 취해간 사람들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특수한 사례는 아니다. 과로사를 맞닥뜨리고 산업재해 신청을 고민하는 유가족이 공통으로 마주하는 감정이다. 유가족이 이 죽음이 과로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먼저 받아들여야 이런 감정이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미흡한 제도, 주변의 시선 등 다양한 이유로 가까운 사람의 과로사를 그냥 넘긴다면,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 사회의 과로사 문제가 계속 수면 아래 머문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47쪽
평소 고인의 정신건강 상태가 지극히 정상이었고 별다른 문제 없이 지내다가 특정한 업무 관련 사건 이후 급격한 정신적 이상 상태를 보이며 돌발적으로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면 고인의 유서, 이메일, 일기, 메신저, 휴대폰 메모, 동료의 증언, SNS, 지인과의 대화 기록 등을 통해 특정한 사건으로 급작스럽게 업무상 부담을 느끼거나 매우 높은 업무상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정신과 치료기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업무 과중과 돌발 자살의 인과성을 입증할 자료를 치밀하게 찾도록 한다. 다음으로 평소 고인이 정신질환을 앓아 지속해서 치료받던 중 과중한 업무로 인한 압박, 장시간 근로 등으로 기존의 정신질환이 악화해 정신적 이상 상태에 이르러 자살하게 된 경우가 있다. 이때 고인이 사망 직전 정신과 상담 등을 받았을 확률이 높으므로 과중한 업무 때문에 힘들다는 호소가 상담 내용에 있는지 확인하고, 과중한 노동과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 악화되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는 자료를 찾아야 한다. 만약 평소 앓던 정신질환이 이미 산업재해로 판정되었다면 이를 원인으로 한 자살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78~79쪽
메시지를 보낸 지 얼마 안 되어 남편의 옆집에 사는 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남편이 나오지 않았고 전화도 안 받는다면서 남편 숙소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을 애써 외면하며 비밀번호를 보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로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서 ○○○입니다. 이수현 씨입니까? ○○○ 씨가 방 안에서 사망하신 채로 발견되었으니 가급적 빨리 ○○경찰서로 오시길 바랍니다. 87쪽
내 온 정신은 남편의 죽음을 증명하는 데에만 쏠려 있었다. 장례를 곧바로 치를 것인지 회사와 옥신각신하는 사이 남편의 상사 둘이 찾아왔다. 회사 안에서 업무적 마찰은 없었다고, 회사 내부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업재해 절차에 협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제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남편의 존재가 회사에서 이 정도였구나. 그들은 사과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왜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느냐, 다른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냐며 내게 되물었다.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하기까지 사흘이 걸렸다. 며칠 동안 선택하고 대응해야 할 많은 일들이 나를 짓눌렀다. 남편의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불쌍했다. 100쪽
결국, 우리는 동생의 고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모든 직원이 겪고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자료를 통해 밝혀냈다. 회사는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채 연장근로 월 69시간, 야간근로 29시간을 전제로 포괄임금계약을 맺고, 별도 수당 없이 걸핏하면 하루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 과도한 업무로 밤낮없이 계속되는 야근은 스타트업 정신과 열정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했고,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며 기본적인 노무관리조차 하지 않았다. 대표부터 사원까지 모두 ‘님’으로 호칭하는 평등문화를 강조하면서도 상사의 일방적인 지시를 따라야 했고 책임은 오롯이 실무자가 졌다. 성과 지상주의와 실적 압박은 과열 경쟁을 부추기고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만들었다. 회사는 창립 6년 만에 매출 4000억 원 돌파라는 빠른 성장을 이뤘지만, 가혹한 근무환경에서 직원들이 감내한 고통은 30%가 넘는 퇴사율과 재직자 정신질환 유병률 증가라는 객관적 데이터로 확인됐다. 141쪽
한 사람의 죽음을 과로죽음으로 인정받는 것은 남은 동료들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과로죽음이 인정된다는 것은 그가 일했던 일터가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할 정도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말과 같다. 이를 인정하면서 아무 변화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할 수는 없다. 과로죽음의 인정은 필연적으로 그 일터의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한 사회에서 일 년에 수백 명이 업무상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을 앓고, 나아가 사망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제대로 인식한다면, 필연적으로 과로를 방지하는 제도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유가족 등 남겨진 사람들은 산재 보상 신청과 승인 외에도 과로죽음을 언론과 회사 동료들에게 알리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한다. 150~151쪽
회사에서 그해 과로로 3명이 사망했다. 팀장님을 포함한 2명은 잘 알고 지내던 동료였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회사 안에 일하다 죽은 사람은 이 외에도 꽤 많을 거로 생각한다. 이 게임회사는 본사가 따로 있고 게임별로 자회사가 여럿 있는데, 본사 입장에서는 자회사의 과로죽음에 대해 산재 처리를 반드시 무마시켜야 했다. 과로사에 관한 기사에 언급되지 않으려 애쓰고 사건을 축소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고인들이 지병 때문에 사망했다고 하려는 것 같았다. 4~5개월 동안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아침 10시에 출근해 새벽 1시~2시까지 일했고 주말에도 쉬지 않던 팀장님이 과로사하자 자회사의 중간관리자가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했다. “○○ 팀장의 사망은 과로사가 아닙니다. 그는 일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기가 막혔다. 팀장님이 책임감이 강했고 일을 좋아했던 사람이었음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으로 팀장님의 죽음이 과로사가 아니라는 걸 입증할 수는 없다. 197~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