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늘 좋은날!
지금 당신 마음은 어떠냐고 누군가 물었을때, 선뜻 대답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상태, 그래서 영어에는 낫 베드not bad라는 말이 있다.
나쁘지 않다. 그쪽 사람들은 그 말을 결국 좋다는 쪽으로 해석하지만.
우리 마음은 좀 다른 것 같다. 그대로 번역해서 '나쁘지 않아'라고 말할 때,
우린 '그저 그래. '그냥 뭐 그럭저럭' 그래서 때론 별로 좋지 않아 하고 여길 때가
많다. 사실 우리들 자신도 제 마음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내마음 나도 몰라.' 그래서 제 마음을 정확히 알고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마음은
그야말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태, 이런 우리도 어쩌면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다름없는 장애를 가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비 한 마리가 막 피어난 철쭉꽃 위로 날고 있다. 나비는 어느 나라에서나
절대 자유, 또는 사랑을 상징한다. 억울한 누명을 쓴 죄수가 끝까지
자유를 찾아 탈출을 시도하던 오래전 명화 제목도 '빠삐용' 나비였다.
40년을 기다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된 사내가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척추결핵을 앓아
하체 뼈와 살이 말라붙어 아랫도리를 담요로 둘둘 감싸고 좁디 좁은
단칸방에서 40년을 살아온 지현곤이 그다.
그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동생이 빌려다 준 만화책을 보며,
베껴 그리는 일뿐이었다. 그러다가 자기 혼자서 카툰을 그리게 됐다.
그이에겐 셀 수 없이 많은 점과 짧은 선들을 꼼꼼하게 찍고 그으며 카툰을
그리는 일이야말로 유일하게 살아 있음을 입증하는 자기 존재 증명이었다.
2007년 7월과 8월에 걸쳐 남산에 있는 서울매니메이션센터에서 그이 첫 작품
전시회가 열렸을 때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들마저 찬사와감탄을 아끼지않았다.
그는 여전히 마산 단칸방에 엎드려 있지만 그이 카툰은 뉴욕까지 단숨에
날아갔다. 지난해 뉴욕 아트게이트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게 된것이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고치를 짓고 그 안에서 번데기가 되었다가
결국엔 나비가 된다. 40년을 내벌레처럼 기고, 또 고치 속 번데기처럼
살던 그가 어느새 나비가 되어 날개짓을 하고 있다.
강을 건네주려는 철교를 세우기 위해 기초 공사를 할 때, 강물 바닥
철교 다리 끝은 어떻게 박아 놓을까? 수면에서 물 밑바닥까지 두꺼운
철판을 막아서 집어넣고 공기압력으로 그 안쪽 물을 빼내면 사람이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 둥근 철판 모양이
꼭 커다란 종 같아서 사람들은 그것을 잠수종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소개됐던 영화 〈잠수종과 나비〉에서 주인공
보비는 바로 자기 인생을 물속에 가라앉은 잠수종처럼 여겼다.
그는 잘 나가던 패션잡지 편집장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온몸이 마비되는 감금증후근이란 병에 걸려서
왼쪽 눈 하나밖에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된다.
그야말로 물속에 빠진 커다란 잠수종처럼 꼼짝도 할 수 없게 된것.
하지만 그는 남은 한 쪽 눈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눈을 감빡이는 횟수로 알파벳을 나타내는 독특한 길고 힘겨운 방법으로
그는 자기 생각을 글로 옮긴다.그이 손발이 돼주던 간병인 까뜨린느가
그 깜빡이는 알파벳을 하나하나 받아 적는 방법으로······.
영화는 90년대 세계에서 으뜸가는 패션잡지 엘르 편집장을 지낸 장도미니크
보비란 사람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왼쪽 눈 하나는 아직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그이 절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그이도 하필 왜 나에게 이런 엄청난 시련이 주어졌냐며, 원망도 하고 삶을
완전히 포기할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하나 남은 왼쪽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전엔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과 사물들, 그리고 평범한
일상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 새롭게 발견한다.
그는 이렇게 깜박인다. 내 눈 말고 날 마비시키지 못하는 두 가지가 있다.
"상상력과 기억, 이제까지 내 모든 경험을 기억한다.
그리고 난 뭐든지 누구든지 어디든지 상상할 수 있다."
그는 15개월에 걸쳐 무려 20만 번이나 눈을 깜박여서 결국 책 한 권을 펴냈다.
그 책이 바로 〈잠수종과 나비〉다. 장 도미니크 보비는 1997년
그 책이 출간된 지 열흘 뒤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몸은 비록 잠수종 같았지만 상상력이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그이 영혼은
그야말로 한 마리 나비 같았다. 우리에겐 너무나 사소한 움직임에 불과한
눈 감빡거림, 그 사소한 움직임이 그에게는 세상과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됐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참 신비롭고 놀랄 일이다.
20년을 기다려 날아오른 카투니스 지현곤이나, 초인다운 힘을 발휘해
왼쪽 눈을 20만 번이나 깜빡거려 〈잠수종과 나비〉를 쓴 엘르 편집장을
지낸 장 도미니크 보비 모습을 떠올리면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별로 나쁘지
않지만 썩 좋지도 않은 건조하고 심드렁하기만 한 오늘이. 우리 삶이 훨씬 더
깊이 있고 심오하게 다가온다. 그들과 우리 어느 쪽이 장애가 있는 것일까?
유영모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 눈을뜸이 태어남이요
저녁에 잠듦이 죽음이라고 했다. 그는 저녁에 일식一食 하루 한 끼 먹고,
밤에 일언一言 말씀을 찾고, 새벽에 일좌一座 바로 앉으며,
낮엔 일인一仁 어진 마음을 품고 살았다.
이 4가지 실천을 '하루살이'라 했다.
그는 하루하루 날을 세면서 하루를 살았다.
그에게 새해나 새달은 무의미했다.
하루하루 늘 새날이 있을 뿐이었다.
유영모는 오늘을 '오! 늘'이라고 했다.
'오'는 감탄사요 '늘'은 늘 그렇다는 말로 영원을 뜻한다.
그는 그렇게 영원 속에서 영원을 살지 않고 늘 하루 속에서 영원을 살았다.
날마다 새날! 늘 좋은 날이다. 오늘 우리 삶은 어떠한가?
법정스님 숨결 변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