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온다는데
구월 셋째 토요일이다. 새벽에 일거리가 있어 무료하지 않았다. 약차를 달이면서 추석 때 고향에서 가져온 밤을 깠다. 차례를 지내고 선산 성묘 다녀오던 길에 주워온 밤이다. 밤을 깎는 가위로 갈색 밤을 한 톨 한 톨 껍질을 벗겨 보늬를 깠다. 올해 밤은 작황은 시원찮아도 벌레가 먹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깐 밤은 밥에도 넣어 먹고 그냥 쪄 먹어도 된다. 시간이 좀 걸렸다.
주말 날씨가 오키나와 근해에서 발생한 태풍 타파 전조로 많은 비와 세찬 바람이 예보되었다. 아침밥을 일찍 들고 연신 베란다 창으로 바깥 하늘을 살폈다. 구름이 잔뜩 끼어 운무가 가득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다 그칠 반복했다. 여느 주말은 배낭을 둘러매고 도시락을 챙기기 일쑤인데 그러질 않았다. 지팡이 대신 우산을 들고 현관을 나섰다. 빗줄기는 가늘었고 바람은 약했다.
집 앞에서 210번 버스를 타고 창원중앙역으로 나갔다. 비가 와서 그런지 평소 주말보다 대합실은 덜 붐볐다. 나는 경전선 무궁화호열차 원동까지 표를 끊었다. 순천을 출발해 부전을 지나 울산과 경주를 거쳐 포항으로 하루 한 차례 오가는 열차다. 비음산터널을 빠져 진영으로 향해 가니 하늘은 흐려도 비는 내리질 않았다. 열차는 창원에서 더 내륙인 북쪽으로 올라가는 셈이었다.
한림정역을 지나 낙동강에 걸쳐진 철교를 건너니 삼랑진이었다. 열차는 삼랑진에서 방향을 틀어 낙동강 강변 따라 남쪽으로 향한다. 열차표는 삼랑진 다음 역인 원동까지 끊었으나 삼랑진에서 내렸다. 역사를 빠져나가 양수발전소 안태호 방향으로 걸었다. 난 젊은 날 삼랑진에 근무한 적 있어 그곳 일대 지형지물을 잘 안다. 저 멀리 만어산과 금오산 정상부엔 운무가 걸쳐 있었다.
4대강 사업으로 강변은 자전거 길에 뚫려 여러 차례 오르내린 적 있다. 역전에서 검세 들녘을 지나는 송원마을에서 강변으로 나갔다. 임진왜란 때 치열한 전투지였던 작원관 못 미쳐 쌍다리 전설 현장을 지났다. 강변에 전설에 나오던 처자교와 승교가 나란히 발굴되어 사진만 찍어 놓고 유구는 모래로 덮어 보존했다. 운무가 펼쳐진 멀거나 가까운 낙동강 언저리는 운치가 있었다.
천태산 산세가 뻗친 벼랑으로는 경부선 철로가 놓이고 그 곁에다 데크를 설치해 자전거가 다니도록 했다. 유홍준도 그의 답사기에서 남겼듯 우리나라에서 풍경이 아름다운 강변 가운데 한 곳이다. 상류는 비가 적었는지라 강물은 넘실거리지 않고 잔잔하고 유유히 흘러갔다. 강 건너는 김해 상동이고 무척산에도 운무가 걸쳐져 있었다. 자전거길 따라 강물과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바위 벼랑으로 철길 터널이 지나고 그 아래 영남대로 잔도(棧道)가 드러났다. 좁은 벼랑에 온돌 구들장을 놓듯 세로로 돌기둥을 세워 넓은 돌을 펼쳐 깔았다. 동래에서 양산으로 지나 밀양 대구로 올라 조령을 넘는 영남대로에서 낙동강 강변 작원잔도다. 물금 오봉산 임경대에는 황산잔도도 있다. 잔도구간을 지나니 비가 내려 우산을 펼쳤다. 무성한 물억새와 갈대가 꽃을 피웠다.
가야진사로 갔다. 가야진사는 신라 때 가야와 접경지로 그 시절부터 용신제를 지낸 곳이다. 조선 후대까지 왕실에서 제물을 내려 보내 지방관이 헌관이 되어 봄가을 수신에게 제를 지내 국태민안을 빌던 사당이다. 제물로 쓴 삶지 않은 통돼지를 올려 강에 가라앉힌다고 한다. 돼지를 용에게 바치는 의식이다. 그곳 지명이 용당이고 강물이 휘감아 도는 바위가 김해 상동 용산이다.
용당에서 원리로 나갔다. 원리는 원동 면소재지고 기차역이 있는 데다. 내친김에 물금이나 화명 구포까지 걸어도 되겠으나 비가 부슬부슬 내려 원리도 들어갔다. 도토리묵과 원동막걸리로 요기하고 원동역으로 가 창원으로 가는 열차표를 끊으니 출발 시각이 한참 남았다. 통영 동피랑이나 영도 영선동 흰여울 같은 골목길 벽화를 감상하고 추어탕으로 점심을 들고 창원으로 복귀했다. 19.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