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현재 우리나라 이동전화 가입자가 4500만명을 넘었다. 이동전화는 이제 전 국민의 생필품이 된 것이다. 이동전화 요금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지 오래다. 정부는 이동전화 등 통신요금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방송 등과 결합상품 출시를 유도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소비자에게 파격적인 요금할인을 제시하는 일부 별정통신사업자가 서민들을 울리고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일부 편법·탈법 사업을 벌이고 있는 별정통신사업자 현황과 문제점 및 대안 등을 3회에 걸쳐 진단한다. <편집자주>
#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중국동포 유동연씨(가명·41)는 얼마 전 근처 이동통신 대리점에서 3만원짜리 선불형 이동통신 서비스에 가입했으나 기분이 영 불쾌했다. 10초당 48원으로 일반 이동통신 서비스와 달리 가입비나 기본료, 의무사용기간 등이 없다는 장점 때문에 서비스에 가입했지만 요금이 생각보다 많이 나온 것. 유씨보다 먼저 한국에 온 동료들의 도움으로 요금내역을 알아본 결과 이 서비스를 제공한 업체가 요금을 교묘히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입 당시 10초당 요금이 얼마란 설명만 해 놓고선 실제 과금은 분당 488원으로 한 것이다. 결국 유씨는 10초를 쓰든 1분을 쓰든 똑같이 488원을 낸 셈이 된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는 이미 폐업을 하고 달아난 뒤였다.
인터넷 포털 등에는 이처럼 선불카드나 선불통화권과 관련한 피해를 입었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피해 유형도 다양하다. 유모씨처럼 사업자가 폐업하고 달아난 경우도 있으며 과금을 10초당 20원으로 한다고 해 놓고 실제로는 분당 120원으로 과금체계를 바꿔 10초만 이용해도 1분 요금을 빼가는 사례도 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선불통화권 서비스 이용자 피해보상계획 공고가 떠 있다. 최근 선불통화권 서비스를 중단한 큐원텔레콤에이전시, 테라피정보통신 등 별정통신사업자 2군데의 선불통화권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해 주기 위해서다. 이들은 각각 3억원과 4억5000만원 등 총 7억5000만원어치의 선불통화권을 발행했으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서비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선불통화권을 구입한 소비자만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별정통신사업자란 ‘기간통신사업자의 전기통신회선설비 등을 이용해 기간통신역무를 제공하는 사업자’를 말한다. KT나 SK텔레콤처럼 대규모로 통신망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고도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난 98년 도입한 제도다. 별정통신사업자는 통신설비를 보유하고 재판매사업을 할 수 있는 별정 1호, 통신설비 없이 기간통신사업자처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별정 2호 및 구내에 전기통신설비를 설치해 구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별정 3호 등으로 분류된다.
이 같은 별정통신사업자 가운데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 견실한 사업자들도 많지만 위 사례처럼 소비자를 속이거나 기간통신사업자를 속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사업자도 부지기수다. 방통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는 500여개 별정사업자가 등록돼 있으며 이 가운데 470개 사업자가 자본금 3억원 미만의 영세 사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이 중소업체 위주로 형성되다 보니 별정사업자들의 매출도 정체 상태다. 98년 이후 2004년까지는 별정통신사업자들의 매출이 꾸준한 증가세를 나타냈으나 2004년부터 정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별정통신사업자들이 불법·편법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도 매출 정체에 따른 업체들의 ‘생존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별정통신사업자들이 주로 하던 국제전화시장이나 선불카드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자 이 같은 불법행위가 빈번한 것 같다”며 “최근 등장한 원링스팸을 악용한 접속료 챙기기 등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② 선불통화권 무차별 발행
2008-08-25 19:48:25
별정통신사업자들의 불법, 편법 사업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어 건전한 통신산업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일부 사업자들은 진입과 퇴출이 쉽다는 점을 악용해 다량의 선불통화권을 발행해 수익을 챙긴 뒤 사전 예고 없이 폐업하고 도주하는 바람에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또 일부 사업자들은 유선 통신사업자와 무선 통신사업자 간 상호접속 계약을 교묘히 악용해 수익을 챙기기도 한다. 법망의 취약한 부분을 활용해 ‘단타성’으로 수익을 챙기고 폐업을 한 뒤 새로운 이름으로 유사 별정통신사업을 하는 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일부 업자들은 정부가 다양한 서비스 활성화 차원에서 마련한 지능망 서비스를 악용해 수익을 챙기는 경우도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능망 서비스란 1588, 0505, 060 등 음성부가서비스를 말한다.
■선불통화권 5년간 74억원 피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선불통화권과 관련된 피해는 신고 인원으로 9679명, 신고 금액으로 73억9664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가운데 보증보험 등의 형태로 보상을 받은 금액은 30억8188만원으로 신고한 사람의 절반도 안되는 41.7%만이 구제를 받았다. 방통위(옛 정보통신부)는 이 같은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별정통신사업자들의 선불통화권 발행 요건을 강화해 올해 6월부터는 선불통화권 발행금액과 동일한 금액을 보증보험으로 가입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직도 과거 정부에 등록한 사업자 가운데는 선불통화권 발행금액의 20%만 보증보험으로 가입한 사업자가 대다수여서 소비자 피해가 근절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상태다.
이 같은 문제가 해마다 발생하고 있는 것은 국내 통신시장 환경상 중소 규모의 별정통신사업자들이 대기업의 틈새를 뚫고 뿌리를 내리기가 어렵기 때문. 00XXX 등의 번호로 국제전화 사업을 하는 대기업 계열사들조차 기업 이름이 생소하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을 정도다. 결국 틈새시장 공략에 실패한 별정통신사업자들이 폐업을 하면서 그 피해를 소비자들이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원링스팸, 유령콜 등 행태도 다양
이동통신 분야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왜곡된 형태의 별정통신 사업모델은 원링스팸, 유령콜 등이다. 별정사업자들은 이동전화를 신청한 뒤 이 번호를 15XX 등에 착신전환해서 통신사업자 간 상호접속료(유·무선 통신사업자 간 상대방 설비를 이용한 대가) 차익을 얻는 사업을 하다 적발되기도 한다. 소비자가 원링스팸에 속아 전화를 하면 소비자는 10초당 20원, 분당 120원가량의 전화비를 이동통신사에 전화요금으로 낸다. 그러면 이동통신사는 소비자와 연결된 번호의 유선전화 사업자에 분당 38원을 상호접속료 명목으로 지급한다. 이 돈을 받은 유선사업자는 원링스팸을 유도한 별정통신사업자에 분당 15∼21원가량의 대가를 지급한다. 별정사업자들은 단순히 소비자로부터 통화를 유발했다는 이유만으로 분당 15∼21원의 수익을 얻는 것.
유령콜의 경우 이동통신사가 내놓은 착신전환 서비스, 커플간 무료통화 요금제 등을 악용한 사업모델이다. 별정통신사업자가 2개의 이동전화를 커플요금제 번호로 등록한 뒤 통화료가 무료인 심야시간대에 A전화에서 B전화로 전화를 걸도록 한뒤 B전화를 16XX-XXXX란 서비스로 착신전환 서비스를 신청한다. 이렇게 되면 A와 B전화는 무료통화를 하기 때문에 이동통신사는 소비자로부터 전화요금을 받을 수 없지만 16XX-XXXX로 연결되는 비용은 지급해야 한다. 이 비용을 유선통신사업자와 별정통신사업자가 챙기는 것이다. 한 이동통신사의 경우 이 같은 무료통화 요금제를 통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26억원의 접속료를 유선통신업체 및 별정통신사업자에 지급했다.
이 같은 별정통신사업자들의 불법, 편법 사업이 판을 치자 급기야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주최한 통신업계 최고경영자(CEO)모임에서 080 등을 매개로 한 별정통신사업을 차단해 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③ ‘080 서비스’ 악용 가입자 유치
2008-08-26 17:59:39
“우리는 정부의 통신정책에서 소외됐습니다.”
어느 별정통신사업자의 말이다. 정부의 통신정책이 대기업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상대적으로 중소업체인 별정통신사업자들은 정책적 배려를 받지 못한 채 어두운 곳으로 내몰렸다는 의미다. 별정사업자들이 ‘생존’을 위해 불법과 편법을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은 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한 때문이란 변명이기도 하다. 이들은 최근엔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사업모델을 발굴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네트웍스의 080 번호를 이용한 ‘감’ 서비스다.
■기업간 감정싸움으로 번진 080 서비스
‘감’ 서비스는 ‘착신전용’으로 지정돼 있는 080 번호에 또 다른 전화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만든 신종 서비스다. ‘클로버 서비스’로도 알려진 080 서비스는 원래 관공서나 기업체가 발신자의 전화비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도입했다. 그러나 삼성네트웍스는 080 번호에 교환기를 설치, 착신 기능을 넘어 또 다른 전화로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즉 접속료나 망이용 대가를 지불하는 일반 유·무선통신에 비해 사용료가 저렴한 080 번호를 이용해 이동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을 만든 것이다.
삼성네트웍스의 ‘감’ 서비스에 대해 이동통신업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삼성네트웍스 등의 별정통신사업자가 망 투자 없이 기존 업체들의 망에 무료로 편승, 저렴한 접속료만 내는 상품을 만들어 가입자를 뺏어 가려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동통신업체들은 네트워크 구축 및 운영, 전파사용료 등 정책성 비용, 가입자 모집 및 유지 등 마케팅 비용, 접속료 등의 비용을 투자해 이동전화사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감’ 서비스와 같은 프리라이더가 허용된다면 누가 값비싼 이동통신망에 투자를 하겠느냐는 주장이다.
이 문제는 대기업들의 그룹 차원에서 정리돼 지금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상태다. 그러나 방통위는 여전히 해당 사업자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감’ 서비스를 어떻게 처리할지 답을 찾고 있다.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은 셈이다.
■통신산업 근간 흔드는 080 서비스
더 큰 문제는 소위 ‘제도권’ 밖에서 서비스를 하는 별정통신사업자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별정통신회사의 경우 정부와 대기업들이 ‘합법’인지 ‘위법’인지를 가리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 이 서비스를 다단계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사 설립에 2000만원, 대리점에 가맹할 경우 300만원, 설계사 등록에 30만원 등의 가입비를 받고 있는 것. 소비자들에게는 ‘요금이 기존 이통사보다 저렴하다’고 하면서 별도의 사업자를 모집해 가입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통신업계에서는 “그 요금으로는 도저히 수익을 맞출 수 없기 때문에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가입비를 받는 것 같다”며 “정부가 이 서비스를 위법이라고 규정할 경우 이 사업에 참여한 일반 서민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080을 이용한 별정통신사업은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 도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현재의 080을 이용한 이동전화 서비스 원가는 기존 이동통신사뿐 아니라 MVNO의 원가와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 MVNO는 망 투자 등의 비용 대신 기간통신사업자에 이용 대가를 지급하고 기간통신사업자가 파고들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면서 마케팅 비용을 줄이거나 기존 사업과 연계해 수익을 내는 모델이다. 망에 무료로 올라 타 무차별적으로 가입자를 모집하는 일부 별정사업자들과는 원천적으로 가격경쟁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산업은 기간산업이고 국가적 차원에서 관련 기술개발과 네트워크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 기존 설비를 공짜로 이용하는 편법 서비스가 활개를 친다면 누가 막대한 설비투자를 감수하겠느냐”며 “통신산업 전반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히 수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