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양아파트(672가구) 재건축 현장. 공사 차량은 눈에 띄지 않고 흙먼지만 날리고 있었다.
조합 내부 갈등 등으로 지난해 11월부터 8개월째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는 강남구청이 2005년 “35층 초고층 타워형으로 한강변 재건축의 모델이 될 것”이라는 보도자료를 낼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서울에서 규모가 가장 큰 가락동 가락시영(6600가구) 재건축 단지는 올 11월 말까지 예정된 이주 일정을 최근 중단했다. 조합원간 분쟁으로 사업계획무효확인소송이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소송이 길어지면 4년 간 사업을 못할 수도 있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이 수렁에 빠졌다. 조합원간 내분으로 법적 다툼이 많은데다 사업성이 떨어져 손을 놓은 사업장이 적지 않다. 사업성이 떨어진데는 과거 정부의 잇단 규제와 강남권 주택시장 침체가 한몫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강남권에 새 주택을 공급할 방법이 재건축 외에는 없기 때문에 재건축 중단은 강남권 주택 수급 불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소송과 규제에 발목
2일 업계에 따르면 강남권(강남ㆍ서초ㆍ송파구)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곳은 52개 단지 5만3273가구다. 이중 약 42%인 20개 단지 2만2540가구의 사업이 제자리걸음이다. 11곳 1만5878가구는 소송에 휘말려 있고 나머지는 조합원간 분쟁때문이다.
잠원동 한신5차의 재건축은 조합원간 소송으로 답보상태다.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자 철거를 위해 2006년 11월부터 이주했던 160가구가 최근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잠원ㆍ반포동 일대 13개 단지도 마찬가지다. 소송 등의 이유로 2006년 하반기부터 사업은 한걸음도 진전이 없다.
▲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양아파트(672가구)의 재건축 공사가 조합내분 등으로 8개월째 중단돼 있다.
사실상 조합 문을 닫은 곳도 있다. 강남구 논현동 청학은 1997년 조합설립인가를 받았지만 현재는 조합이 와해된 상태다. 서초동 신동아1차는 2003년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아직 사업추진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했다. 강남권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조합사무실 간판만 달고 있는 단지들이 상당수”라며 “자포자기한 조합들이 많다”고 말했다.
강남권 재건축 ‘빅3’로 꼽히는 대치동 은마, 개포지구, 잠실주공5단지도 2003년 이후 6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개포지구는 4년째 단지별 용적률이 결정되지 않았고, 주공 은마와 잠실주공5단지는 예비안전 진단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J&K부동산투자연구소 권순형 소장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재건축 후 집값 상승 기대감이 꺾이자 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다"며 "조합들이 사업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바닥 없는 하락
재건축 사업이 표류하면서 이들 단지의 가격도 추락하고 있다. 2006년 가을 15억원까지 올랐던 개포주공 1단지 56㎡는 요즘 12억원까지 떨어졌다. 이 단지 49㎡는 올 4월 10억3300만원에서 최근 9억3000만원으로 두달새 1억원이 급락하기도 했다.
2006년 15억원에 달했던 잠실주공 5단지 118㎡도 12억원대에 급매물이 나온다. 서초구 잠원동 한신5차 109㎡도 2년 전에 비해 2억원 가량 하락한 8억3000만원이다.
개포동 A공인 관계자는 “매수자가 없다보니 나온 지 6개월이 넘는 매물이 적지 않다”며 “빨리 처분해야 하는 주인들이 가격을 계속 낮추고 있다”고 전했다.
재건축 아파트의 전매제한 규제도 시세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조합설립 인가가 난 재건축 아파트를 사면 재건축이 끝나 입주 때까지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서초동 C공인 관계자는 “재건축이 될지 사업 자체가 불확실한데 누가 전매제한 부담을 안고 사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