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서기
최 병 창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이면 끝이라는데
지금은
물구나무서기도 쉽지가 않네
똑같아 보이는 세상도 다르게 보이는 세상
사는 일이란 물구나무서기처럼 이따금씩 은밀하게 돌아보는 척도가 될 수
있으니 물구나무도 잘 자라도록 열심히 물을 줘야 하네 익숙한 눈물까지
곁들이면서 한고비 한고비를 대범하게 넘으라며
거꾸로 보이는 세상이 안하무인은 아니었네
마음에 없는 연기(演技)처럼 물구나무에 꽃 순이 트고 잎이 돋아나더니
대출이자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키가 자랐고 살펴보니 씨방도 쿨렁쿨렁
해졌네
물구나무는 알고 있네
절반의 키 재기가 늦가을 갈무리보다 비어있는 팔꿈치가 점점 야위어
가고 그동안 옆구리에 끼고 있던 폭탄이 터질 수도 있었는데 주고받을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허둥대진 말아야 했네
모두가 물구나무 덕이네
오른쪽이나 왼쪽에 있던 물구나무는 불거지거나 기울어져도 쏟아지거나
넘어지질 않으니 환호하는 기립박수가 아니라도 열심히 물을 주어야 하네
거꾸로 서서라도 유순한 물을 주어야 하네
물구나무도 나무니 만치
나도 당신도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그런 나무가 되고 싶네
물구나무서기 같은 그런 나무가.
< 2013. 09. >
토론토 2024. 1. 15. (아침 8시, 영하 15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