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기
책 속으로
사람의 분노란 적시에 해소하지 않으면 홍수처럼 범람할 수 있다. 대우大禹가 치수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길을 내어 물이 잘 흐르게 한 것이고, 그의 아버지가 치수에 실패한 이유는 덮어놓고 제방을 쌓은 결과 둑이 무너진 것이었다. 총명한 사람은 분노를 발산할 줄 안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분노가 사라지면 모두에게 좋다. 왜냐하면 분노에서 나온 결정은 흔히 잘못되기 때문이다._ 36쪽, 〈제1장-복잡한 세상사, 조용히 나왔다 조용히 사라진다〉
풍도의 처세 원칙은 “하늘에 순응하고, 시기에 따르고, 사람을 봐야 한다[順天,應時,因人]”는 것이었다. 아무리 높은 관리도 황제의 일꾼일 뿐이고,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바꿀 수 없는 일은 절대로 강요하지 않고, 부득이할 때 자신을 희생시킬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여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이라야 군주든, 동료든, 아랫사람이든 모두가 안심한다. _ 49쪽, 〈제2장-맡은 배역에 충실해야 한다〉
풍도가 벼슬을 하면서 온갖 지혜를 동원해 ‘넘어지지 않기’를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관리라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담담히 할 일만을 했다. 풍도의 입장에서 보면 관리나 백성이나 단지 일하는 곳이 다를 뿐 어떤 차이도 없었다. 이러한 담담함이 있었기에 그는 관료사회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항상 침몰하지 않았다. 그와 달리 자신을 관리라고 여긴 자는 오히려 한 사람씩 차례로 가라앉고 더는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_ 72쪽, 〈제3장-기회란 만날 수 있어도 구할 수는 없다〉
풍도는 여러 차례 몸을 보전하며 관료 사회에 나갔다가 물러났는데, 줄곧 ‘아량’의 원칙을 받들었다. 아량은 참는 것이며, 마음의 안정이며, 침착함이다[雅量者,忍也,定也,靜也]. 참으면 스스로 편안하고, 마음이 안정되면 자중하고, 침착하면 주동적이 된다. 이런 원칙을 따라 그는 거만하지도 비굴하지도 않게 기개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원망은 털어버렸고 이로부터 분풀이와 거리를 둘 수 있었다. _ 82쪽, 〈제3장-기회란 만날 수 있어도 구할 수는 없다〉
“버릴 수 있어야 얻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똑같이 어떤 것을 얻으면 왕왕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잃어버린 것은 때로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먼저 얻는 것을 더 원하고 무언가 대가를 지불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소홀히 여긴다. 풍도는 줄곧 억지로 돈을 모으려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밥을 굶지는 않았다. 반면 곳곳에서 부정하게 돈을 모은 사람이 종국에 그 돈을 써보지도 못할 운명을 맞이한 것은 이후에 무엇을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풍도는 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지위를 이용해 공짜를 바라지 않았고 명리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이미 얻은 이익을 잃어버린 것 때문에 화를 내거나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_ 183쪽, 〈제7장-안목을 넓히고 멀리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EcQpZsBdOCU
출판사 서평
난폭하고 비정한 상황에서도
비굴함 없이 당당하게 자신을 지켜내는 법!
5대 10국 시대는 당나라가 멸망하고 송나라가 세워질 때까지 약 70년 동안을 의미한다. 이 짧은 시기에 화북 지역을 중심으로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라는 다섯 개 왕조와 기타 지방정권 10국 등이 할거해 중국 역사상 최고 혼란기로 손꼽힌다.
이러한 격변기에 다섯 왕조에서 열한 명의 황제를 보필하면서 그 어떤 험난함 없이 길고 오래 즐거움을 누린 인물이 있다. 30여 년을 고위관리로, 그중 20여 년을 재상으로 지낸 풍도馮道다. 이 책은 냉엄한 시기에 관리로 발탁되어 열한 명의 황제를 섬기기까지 풍도가 걸었던 길을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일화를 활용해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풍도가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방법, 다른 이들과 달리 난세에서도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오래 편안함까지 누린 비밀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한 권력의 칼날 앞에서 말과 감정을 다스리는 법
누구나 품성이 고결하고 리더십이 뛰어난 인물 아래에서 일하기를 원하지만, 그러한 행운은 쉽게 오지 않는다. 적게는 몇 년, 많게는 몇십 년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만나는 대부분의 리더는 어딘가 난폭하거나, 고집이 있거나, 교활하거나, 부족하다. 풍도가 보좌하던 황제들 역시 그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순간 화를 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고 상대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 그들에게는 너무도 쉬웠다. 심지어 풍도는 아버지의 젊은 부인을 간음하고 인육을 먹는 리더 유수광을 이치와 정으로 타일러야 할 때도 있었다. 한번은 유수광이 자신을 황제로 부르게 한 뒤 반대하는 신하는 바로 입을 막고 살을 발라냈다. 이후 누구도 감히 간언하지 못할 때, 풍도가 앞으로 나와 ‘관용의 마음으로 도량을 보여달라’는 말 한마디만 했다. 표정과 억양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감탄사를 쓰지 않으며, 속을 함부로 내보내지 않는 풍도의 태도를 본 유수광은 차마 풍도를 죽이지는 못하고 잠시 감옥에 가두었다가 이내 석방시켰다.
이처럼 풍도가 난폭한 리더 사이에서도 살아남았던 이유는 결코 속을 드러내지 않는 태도 덕분이었다. 그의 태도가 결코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리더들도 그의 의견을 곧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처신으로 풍도는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따를 필요가 없는 리더라면 함부로 쫓지 말라
또한 풍도는 상대의 그릇을 읽을 줄 알았다. 황제의 그릇을 살핀 뒤, 바뀔 여지가 없다면 더는 강요하지 않고 물러남으로써 명을 보전했다. 한번은 중원에 들어와 약탈과 살상을 일삼는 잔혹한 황제 야율덕광이 “천하 백성은 어떻게 구할 수 있겠는가”라고 풍도에게 물었다. 비록 무식했으나 중원의 문화만은 중시하던 야율덕광의 특성을 파악한 풍도는 “지금은 부처도 구할 수 없고 오직 황제만 구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명예욕이 많은 그의 성향을 읽고 ‘부처와 같은 권능을 지닌 이가 바로 당신’이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풍도의 말을 들은 야율덕광은 그 즉시 중원의 약탈과 살상을 금지시켰다. 또한 욕심이 많으나 어리석은 리더인 이종가를 만났을 때, 풍도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담담히 자신이 할 일에만 집중하는 처신의 지혜를 보였다. 이종가가 스스로의 재능을 믿고 등극하자마자 내부를 숙청했으나, 풍도만은 동주로 쫓아내는 것으로 마무리했던 이유다.
이처럼 풍도는 리더의 성향을 파악하고 참모로서의 정도를 지켰기에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한순간의 용기를 과시하지 않고, 일생 동안 더 없이 길게 즐거움을 누리는 분명한 방법을 알려준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무기’를 지닌다
이제 평생 한 직장에서 한 상사만 보필하던 시대는 지났다. 매 순간 새로운 리더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풍도는 다른 참모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무기’를 지녀야 리더의 부름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았다. 그는 그 시대 인물들에게서 청렴함을 찾을 수 없음을 깨달고, 그것을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
이존욱이 양나라와 지구전을 벌이고 있을 때, 다른 장군들은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자신의 상황에 긴장한 나머지 시간이 날 때마다 유흥을 즐겼다. 심지어는 그들은 피난 가던 여성들을 약탈하기도 했다. 한번은 그들이 피난민 여성 가운데 몇몇을 군주의 측근이던 풍도에게 보냈다. 풍도는 그들을 범하기는커녕 자신의 녹봉을 기꺼이 내어 머물 곳을 찾아주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눈앞의 이익보다 자신만의 원칙인 청렴을 내세웠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태도가 풍도의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 계속 다음 리더의 부름을 받을 계기가 되어주었다. 풍도는 평생토록 이 태도를 견지해 30여 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열한 명의 황제를 보좌하며 천하를 누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