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셰익스피어를 아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그 질문한 사람에게 얼굴을 붉혀가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감히 나에게 셰익스피어를 아느냐고, 마치 크게 모욕을 당한 것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열역학 제2법칙을 아십니까?’라고 질문하면 낯색 하나 변하지 않고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태연하게 ‘모른다’는 대답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서슴지 않는 신사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고등학교 물리·화학 교과서 지식이 전부인 나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무식한 신사였다. 저자는 나 같은 독자들을 위해 열역학 법칙을 아주 쉽게 설명한다. 열역학 제1법칙은 우주 안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불변하며, 따라서 창조될 수 없고 단지 그 형태만 바뀔 뿐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한다. 즉 어떤 현상이든 간에 그것은 질서 있는 것에서 무질서한 것으로,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사용가능한 것에서 사용 불가능한 것으로, 차이가 있는 것에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분류된 것에서 혼합된 것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추석 연휴에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서가에서 다시 꺼낸 이유는 아주 소박했다. 최근에 방송된 공영방송의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성악을 그만둔 어느 젊은 합창단원과 60세 이상으로 구성된 실버합창단의 애절한 노래를 들었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화살이 떠올랐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삼라만상과 그들이 만들어 낸 문명도 엔트로피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먹먹함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질서정연한 아름다운 몸과 고운 화음도 시간과 함께 무질서 속으로 소멸한다.
종말론 시리즈에서 살필 수 있듯이, 리프킨의 모든 저서에는 종말론적 흔적이 묻어 있다. 이 책도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는 세계관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기술과 과학을 앞세우며 물질적 성장을 추구하는 산업화 전략을 멈추지 않는다면 인류 문명은 파멸할 수도 있다면서 오늘날의 기계론적 문명관을 비판한다.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이용가능한 자원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한정되어 있고, 따라서 아껴 쓰면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엔트로피 증가를 지연시키자는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환경보존과 과학기술의 상관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물론 저자의 주장에는 과격성이 엿보인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이성과 진보에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기술 발전이나 역사 진보도 엔트로피 법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를 증가시키고 무질서한 상태로 나아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점 때문에 이성과 진보를 신뢰하는 진보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간 생명과 뒤에 올 생명에 대한 리프킨의 무한한 사랑은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