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한 마을, 여객선, 달리는 열차 등은 종종 인간 세상의 축소판으로 은유된다. 이곳에는 여러 계층과 여러 유형의 인간 군상들이 있게 마련이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는 귀족과 상류층은 1등칸에, 서민과 하층민은 맨 아래 3등칸에 승선한다. 우리 영화 ‘설국열차’에서도 끄트머리 칸엔 노동자들이 타고, 맨 앞쪽은 돈과 권력이 있는 자본가들의 세상이다.
포로수용소 역시 인간 세상의 축소판이다. 다 같은 조건에서 같이 자고 같은 식사를 하지만 천차만별이다. 가진 자와 없는 자가 공존하고, 계급이 있고 서열도 있다. 영어(囹圄)의 몸이 돼도 삶은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포로 이야기
영화 ‘제17 포로수용소’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독일의 다뉴브 강변에 위치한 제17 포로수용소가 무대다. 독일군에 체포된 미 공군 부사관 포로들만 수용되는 곳이다.
영화는 자유를 향한 포로들의 의지와 탈출 과정에 초점이 맞춰지는 영화들과는 달리, 미군 포로들 속에 숨어있는 스파이를 색출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영화는 주인공 세프턴(윌리엄 홀든)의 단짝인 쿠키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어느 날 땅굴을 파고 두 명의 포로가 탈출하자, 세프턴은 탈출이 실패할 것이라며 담배 내기를 한다. 그의 예상대로 두 포로는 발각돼 총살당한다. 이를 계기로 동료 포로들은 세프턴을 스파이로 의심한다.
얼마 후 덴버 대위가 체포돼 온다. 그가 독일군의 탄약 수송 열차를 폭파했다는 걸 알아낸 수용소장은 그를 나치 친위대로 압송하려 한다. 동료들은 이번에도 세프턴이 밀고자라며 그에게 뭇매를 가한다. 그 후 세프턴은 감시와 추적 끝에 포로로 위장한 독일인 플라이스가 스파이라는 확증을 잡아 누명을 벗고, 덴버 대위와 함께 탈출에 성공한다.
덴버 대위를 살리기 위해 나선 주인공
영화엔 여러 유형의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그중 주인공 세프턴은 유별나다. 처세에 능한데 좀 밉상이다. 영화 초반, 그는 온갖 요령을 부려가며 지옥 같은 수용소 생활조차 천국처럼 편히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쥐들로 경마 도박장을 벌이고, 증류주를 팔기도 하며, 건너편 막사의 러시아 여성 포로들을 엿볼 수 있는 망원경 사업(?)을 펼쳐 짭짤한 수입을 챙긴다. 그는 자신을 장교 시험에서 떨어뜨린 브루조아에 대한 불평불만도 서슴지 않는다.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인공 세프턴의 캐릭터가 통상적인 영웅주의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영화 속 영웅들은 정의감이 넘치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세프턴은 동료들과 섞이기 싫어하고, 대의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더 중시하는 개인주의자다.
하지만 영화 종반엔 개인주의자로만 남지 않는다. 집단구타 사건 이후, 그는 덴버 대위가 죽을 위기에 처하자 대위를 살리기 위해 나선다. 전과는 다르게 자신의 개인 물품들을 동료들에게 선뜻 내놓아 선심을 쓰기도 하고, 동료에게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심지어 정보를 캐기 위해 감시자인 독일 장교에게 담배와 여자 스타킹을 뇌물로 주려는 시도도 한다. 동료들로부터 왕따 당한 그지만 나치의 스파이가 돼 조국을 배신한 반역자만큼은 되고 싶지 않아서다.
수용소를 웃음으로 채운 연출
주인공 역의 윌리엄 홀든은 개성 강한 연기자이기보다는 조화를 이뤄주는 조연에 어울린다는 통념을 깨고 이 영화에서 주연급 배우로 부상했다. 1954년 아카데미에서 말런 브랜도, 리처드 버튼, 몽고메리 클리프트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영화는 도널드 베번과 에드먼드 트로진스키가 쓴 희곡으로 명감독 빌리 와일더가 연출을 맡았다. ‘사브리나’ ‘선셋대로’ ‘뜨거운 것이 좋아’ ‘아파트 열쇠를 빌려 드립니다’ 등을 연출한 빌리 와일더는 자신의 장기인 유머와 위트를 잘 녹여 자칫 칙칙하고 비극적일 수 있는 포로수용소를 웃음과 서스펜스로 채우면서 훈훈한 한편의 인간 드라마를 보여준다. 좀 과하지만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선보이는 2명의 포로, 정신이 나가 악기를 연주하는 포로, 포로 감시자인 독일 장교까지도 웃음 코드에 일조한다.
영화 속 군가, 자유·통쾌함 배가시켜
영화는 여러 음악을 선보이는데 특히 포로들이 성탄절 파티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 ‘조니가 행진하며 집으로 돌아올 때(When Johnny Came Marching Home)’는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군가로서, 지금도 행진곡으로 널리 쓰인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하고, 수용소에 남은 동료들이 나누는 “결국 그 자식이 해냈어” “무슨 배짱이 생겨 그런 일을 했을까”란 대화 끝에 나오는 같은 곡의 휘파람이 자유와 통쾌함을 전하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