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이 서로 상호 관계를 맺은 다양한 공간에 설치되어 대중과 접근하는 이색적인 전시회, ?<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은 ‘유리구슬 조각’으로 유명한 ‘장-미셸 오토니엘’(1964~)의 개인전으로 최근 10년간의 작품 74점이 6월 16일부터 8월 7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과 야외조각 공원, 덕수궁 정원에서 전시되었다.
서울 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입구/ 이미지 출처: 서울 시립미술관
“ 나는 미술관을 나서서 거리로 나가는 비전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장-미셸 오토니엘-
<장-미셸 오토니엘: 정원과 정원>은 정원을 매개로 관객들과의 교감을 시도하는 전시로, 정원이 선사하는 마법, 환희, 경이와 같은 정서적 경험을 작품에 담아냈고, 작가가 경험한 것처럼 관람객들도 현실의 불안과 상처를 회복하고 세상에 나아갈 수 있도록 내면적 사색의 시간을 제공하고자 하는 전시이다.
루브르 박물관 역에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야행자들의 키오스크’가 유명하다.
1964년 생테티엔에서 태어난 ‘장-미셸 오토니엘’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현대 미술가이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 구겐하임 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과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서 전시하였고, 2000년 파리 지하철 개통 100주년을 기념하여 팔레 루아얄-루브르 박물관역에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야행자들의 키오스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2015년 베르사유 궁전에 <아름다운 춤>을 영구 설치하였으며, 2019년 루브르 박물관의 초청으로 제작된 <루브르의 장미>가 현대 미술작업으로는 이례적으로 영구 소장되어 동시대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덕수궁 연못/황금 연꽃 & 서울시립미술관 야외조각공원/황금 목걸이 &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의 조각
전시 제목인 <정원과 정원>은 복수의 전시 장소를 나타내며, 예술로 인식되는 장소이면서 관람객들 마음에 사유의 정원으로 이어지는 것을 포괄한다. 야외 설치 작업과 연계된 이번 전시의 동선은 덕수궁 내 정원에서 출발하여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야외조각 공원을 거쳐 본관 전시실로 가는 것이 관람하기 좋다. 이동하는 동안 꽃과 물, 불꽃과 영원을 표현한 ‘오토니엘’의 작품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원은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꽃과 그에 관한 신화에 관심을 가졌던 ‘오토니엘’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며 환상의 세계로 이끈 공간으로 그는 이 열망을 서울시립미술관과 가까운 덕수궁에서 전개하였다. 덕수궁 연못에 펼친 황금 연꽃은 마법을 건 것처럼 주변 풍경을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시켜 관람객들에게 사색의 시공간을 제공하며, 미술관 야외조각 공원에서 만나는 목걸이는 마치 소원을 담아 나무에 걸어둔 것 같아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오토니엘이 유리 피라미드 개장 30주년을 기념하며 그린 <루브르의 장미> (왼)
영감을 받았던 루벤스의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의 대리 결혼식>(오)
<루브르의 장미>는 ‘오토니엘’이 2019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개장 3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루브르를 상징하는 꽃으로 장미를 선택하여 캔버스에 백금색을 칠한 후 검정 잉크로 ’루브르의 장미‘를 그렸는데, 이 작품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17C 바로크 시대의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 Peter Paur Rubens>의 <마리 드 메치와 앙리 4세의 대리 결혼식>이란 작품에 나오는 장미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
오토니엘이 루브르의 장미를 변형시켜 만든 <자두꽃>에는 한국적 정서가 숨어있다.
‘오토니엘’이 서울 시립미술관의 전시를 위해 루브르의 장미를 변형시켜 제작한 <자두꽃>은 덕수궁 내 건축물에 사용된 오얏꽃 (자두꽃의 고어) 문양에서 착안했다. <자두꽃>에서는 꽃잎은 붉은색, 꽃가루는 노란색으로 표현하여, 한국적 정서를 이해하면서 생명력. 끈기.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프레셔스 스톤월>은 매일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우리 내면의 염원을 이야기한다.
‘오토니엘’은 인도 여행 당시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짓겠다는 희망으로 벽돌을 쌓아 둔 것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인도 피로자바드(Firozabad)의 유리 공예가들과 협업하여 새로운 형태의 미술작품을 제작했는데, 전통적 방식인 입으로 불어서 만든 유리 벽돌은 조금씩 다른 형상과 빛깔을 가지며 생각지 못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었다. 벽면에 설치되어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는 <프레셔스 스톤월> 연작은 매일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우리 내면의 염원을 이야기하며, 관객을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푸른강/ 2022/청색유리 벽돌
푸른강(부분)/ 2022/청색유리 벽돌
푸른 강 위에 설치된 14개의 거대한 조각이 서로 반사되며 하나의 시적인 우주를 보여준다.
잔잔한 물결이 있는 것 같은 <푸른 강>은 푸른 벽돌이 바닥에 가로 26m 세로 7m로 깔린 환상적인 공간으로, ‘오토니엘’의 작품 중 가장 크다. 인도어로 ‘피로지(Firozi)’라고 불리는 벽돌의 색상은 인도, 유럽에서 널리 사용된 구릿빛 푸른색이다. 푸른색은 하늘과 물을 상징하며 ‘생명’, ‘생존’의 의미를 담고 있다. <푸른 강> 위에는 14개의 거대한 조각이 설치되었는데, 서로의 모습이 반사되어 하나의 시적인 우주를 보여준다.
매듭의 엇갈림이 무한히 반복되는 이 작품은 ‘와일드 노트’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천정에 달려 빛나는 작품들은 무한 변형되는 형태로 거듭나는 매듭 연작으로 이성적이며 우주를 포함한 과학 분야를 아우른다. 이 <와일드 노트 Wild Knot> 연작은 멕시코의 수학자 ‘오빈 아로요’가 협업을 제안해서 2015년부터 함께 했는데, 수학 이론에서 무한함의 개념을 시각적 예술로 표현하는 수학과 예술의 접점을 찾아가는 시도이다. ‘오빈 아로요’의 <와일드 노트>는 매듭의 엇갈림이 무한히 반복되는 형태로, 현실에서 <와일드 노트>를 물리적 형태로 재현할 수 없으나 ‘오토니엘’의 작품에서는 구슬 표면에 상호 반사되는 이미지를 통해 <와일드 노트>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다.
아고라는 조각과 건축의 중간 형태로 건축의 개념에 가깝게 만들어졌다.
2,750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벽돌로 만들어진 <아고라>는 조각과 건축의 중간 형태로 건축의 개념에 가깝게 가고자 한 오토니엘의 열망이 잘 반영된 작품으로 관객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 앉아 쉬거나 대화할 수도 있다. 팬데믹 이후 더 소중해진 만남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어 오토니엘이 평생 추구해온 ‘세상과 경이로운 관계 맺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오라클은 중간중간 돌출된 모양이 구두점으로 연결된 구절을 연상시킨다.
벽돌 모듈을 사용해 중간중간 돌출된 형태를 하고 있는 〈오라클〉은 마치 구두점으로 연결된 구절을 연상시키는 한편 암호화된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관람객은 이처럼 작가가 제시한 〈오라클〉이라는 수수께끼를 풀면서 작가가 미래에 선보일 작업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오토니엘’의 작품들은 아름답지만, 작품 가까이 다가가면 불안과 상처 고통 등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공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각각 생긴 흠집은 여러 개를 연결했을 때는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작품에 귀 기울여 보면 상처로 인해 더 빛나는 상반된 가치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주변을 비추는 구슬처럼 우리 삶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오토니엘의 마법에 걸린 듯 작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미술관을 넘어선 다양한 공간과 대중에 접근한 <정원과 정원>을 통해 팬데믹으로 지친 우리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이미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미술강사 우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