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형 박상희는 공산주의자로 대구 폭동 주범으로, 경찰들이 출동하여 사살시켜 버렸다
박정희가 가장 존경한 고향 형님 황태성은 월북하여 북한 외무성 지냈다
박정희는 전라도 여수순천(여순반란)총책,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검거되어 사형선고 받았다
그린밸트를 만들어 사유 재산을 부정하였고, 구로공단을 땅주인 허락없이 강제로 만들어 버렸다
박정희는, 김일성의 경제개발 정책을 모방하여, 그의 경제개발 5 개년 계획을 성공시켰다.
박정희 시절은, 은행, 전기, 통신 등 모든 기관 산업은 국유화였다.
목욕값, 짜장면 값, 이발 값, 숙박료 등 거의 모든 서민생활의 주체가 되는 것들을 통제하였다.
박정희가 쿠테타에 성공하자, 김일성이 제일 기뻐했다고 한다. 같은 공산주의자니까.
그래서, 김일성은 박정희 형 박상희의 친구, 황태성을 남파시켜서 박정희를 만나보려 했으나, 황태성은 잡혀서 사형 당했다.
박정희는 형님을 존경했던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 형님이 대구에서 미군정의 경찰에게 사살당했던 비극을 안고 산 사람이다.
눈치도 없이 김일성은 혹시나 해서 그 박정희의 형의 친구 황태성을 남파해 교섭을 시도했다.
박정희는 그를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이지 않고 곱게 돌려보낸다면
역시 박정희는 공산주의자였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 이는 권력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 박정희는 왜 그랬을까?
미국의 눈치 때문일 것이다.
권력을 유지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