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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는 형 이야기(욕구편)
형, 얼마전에 명예욕으로 인해 망신 톡톡히 당했다며?
응 위키피디아에 내 글에 대한 소개글을 썼다가 삭제 요청당했어. 게이라고 정체성을 밝힌 사람의 받아들이기 힘들고 사실도 아닌 억지 주장까지 들으며 소개글이 난도질 당했지. 그래 좀 위태로와 보였어. 형도 몇차례 이야기했지만 형은 물욕,권력욕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명예욕구가 아직까지는 죽지 않고 살아있어. 살만하니까 사그라졌던 명예욕이 다시 고개를 치드는 거지. 그리고 위키피디아 기준에서 보면 형 글이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고 광고목적이라고 느낄 수 있었겠지.
나도 인정해. 이번 기회를 통해 역설적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지. 잘못한 경우에 자기 자녀에게는 즉각적인 매를 드신다는 것도 확인했고, 그것도 내가 아주 이해하기 쉽게 나에게 그분이 모욕당한 그대로 내가 받는 방식으로 체벌당해서 교훈적이기까지 했지. 심지어는 소향이 복면가왕에 나가는 것은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이중잣대로 인터넷 매체에 나 자신의 글을 소개하는 것은 괜찮다는 어이없는 오만방자함까지 알게 되었지. 무슨 복면가왕에 나온 소향 나온 것도 못봤으면서 참견은... 소향 가창력 정도 되는 가수가 얼마나 된다고... 그리고 소향은 노래실력을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통해 자신의 다른 CCM을 알려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녀가 사모하는 주님을 영광의 왕으로 고백하려는 숨은 목적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형은 그런식이라면 어쩔수 없이 야곱처럼 얻어 맞아가면서 다듬어 지는 수 밖에 방법이 없어.
얼마전 CBS JOY4U '사랑의 노래 평화의 노래' 최인혁 단장님께서 목사는 설교, 선교사는 선교라는 본연의 사명에 충실해야 하며 다른 것을 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하셨는데, 마찬가지로 내가 소향에게 바라는 것은 가스펠 가수 본연의 모습이지 노래경연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거든.
주님께 바치는 찬송은 거룩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선곡해야 하는데, 자꾸 가스펠 가수가 세상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나중에 회중과 같이 부를 찬양이 그 가수의 친숙해진 대중가요 이미지와 섞여 엉망이 될 수 있어. 대중가수와 가스펠 가수가 구분되듯이 우리가 듣고 좋아할만한 CCM과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제사(예배)에 쓰일 찬송은 엄격히 성별되어져야 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그를 예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예배해야 될지도 규정하셨어. 그리하여 성막인 예배장소는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만들어진 것이었고, 예배의 행위인 희생제사는 ‘규례대로’ 드려지는 것이었어 형은 너무 교조적이야.난 전도 방식을 다변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예배찬양과 듣기 위한 CCM을 굳이 구분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어. 구분 기준을 정하는 것도 까다롭지만 그 구분을 누가 하는지 정하는 지에 대한 합의도 어려울텐데... 듣기 좋은 곡이 부르기 좋은 곡 아닐까? 찬양 사역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피땀흘려 노력했는데 음반시장의 오랜 침체로 활로를 찾으려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목적하에서 자신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봐.
너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보다 주님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어. 그러니까 장구한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은 찬송가와 삶이 어느정도 입증된 찬양사역자의 찬양 중 회중이 따라부르기도 쉽고 은혜가 되는 가사와 음색의 찬양을 하면 돼. 나답과 아비후의 이야기는 아무리 인간이 신실하다할지라도 예배라는 것은 인간 자신의 소원을 따라 드려서는 안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드려야 된다는 것을 의미해. 규정되지 않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여호와께 불경스러운 것이고 그의 영광을 빼앗아가는 것이 되지. 이는 찬양에도 해당되는 말이지.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므로 하나님 입장에서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찬양을 부른다는 것은 신성모독이 될 수 있어. 네가 십계명의 제2계명을 깊게 생각 안해봐서 그래. 신성모독이라... 나보고 인본주의적이라고 하겠지만, 하드록(헤비메탈)은 무리가 있다손 치더라도 트로트와 힙합이 찬양으로 굳이 안될 이유도 모르겠고, 비파 수금 심벌즈,탬버린, 작은 북, 나팔 등과 색소폰 전자기타 드럼과의 차이도 모르겠어.
트로트나 힙합을 회중이 찬양한다고 생각해봐. 나이든 분들에 대한 배려는 차치하고서라도 은혜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악기의 음색(톤)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며, 신앙의 정서에 영향을 끼쳐. 그런 점에서 악기가 탄생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 전자 기타나 드럼이 발명되게 된 동기는 지극히 세속적이야. 사악한 의미에서라기보다는 이런 류의 악기들로 전달되는 보편적인 감정과 정서가 세속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거야. 그러나 오르간과 피아노의 탄생은 교회의 영적 활동과 관련이 되어 있어. 이 악기들은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교회 음악을 표출하는 가장 전형적인 도구로 사용되었고, 많은 성도들이 이 도구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였지. 요즘 유행하는 일부 CCM들은 이미 통속적인 세상 음악과의 경계선마저 허물어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지. 이러한 현상들은 종교개혁의 시작과 끝의 성격으로서 예배 개혁을 강조했던 종교개혁자들의 입장과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고,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야. 형은 너무 이상주의적인 예배를 꿈꾸는 것 같아. 요즘 대형교회 젊은이 예배 한 번 가봐 어떤가. 이번에 한국 집근처 교회에 가니, 잠시 한국에 들린 케냐 선교사분이 그야말로 온유함이 승한채로 로마서 14장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는 주제의 설교를 했어. 케냐 어느 대학에서 소말리 부족민에 의한 총기난사로 몇십명이 죽었어. 게다가 케냐 한국 선교사와 같이 사역하는 동역자가 죽었지. 또 다른 케냐 원주민 목사가 장례식에서 목사 자신도 비록 소말리 부족인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나 자신을 실어날라 병원까지 보낸 사람 역시 소말리 부족인이며 이 모든 것을 주님이 섭리하에 통제하십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생각을 했지.
게다가 거기는 물부족 국가에 이슬람부족들도 꽤 된다고 들었는데 그런 선교사님들 참 대단하다.
케냐 한국 선교사님은 본인이 생활하는 주변을 중심으로 위험하지 않게 씨를 뿌리며, 오래 사역하는 것이 목표라고 겸손하게 말씀하시는데, 말할 수 조차 없는 어려움도 많을텐데 말씀을 전하는 얼굴은 전혀 어려움을 겪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어. 그런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나의 갈 길은 아직 멀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어. 그분 말씀을 곰곰히 새겨 의미를 상고하면 결국 주님을 위해 케냐에서 죽겠다는 뜻이야.
그리고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들은 어땠어?
특히 대학입시는 왜 붙었는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투명해져야 하고 기준도 점수로 계량화되어 학력고사 같이 일원화되어야 된다는 거지. 다들 학력고사 예찬론자들이 되었더군. 자꾸 여러가지 잣대를 들이대 입시에 여러 통로가 생기면 학원에 따라 대학이 결정되는 경우도 생기고 그만큼 사교육도 번성하게 되고 그에 의해 입시결과가 좌지우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야. 중 고등학생 학부형인 친구들의 고민의 깊이가 나름 심각하더군. 우리나라같이 자식교육에 신경쓰는 곳도 없는데, 창의적인 교육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결과의 공정성과 투명성 또한 담보되어야겠지.
형, 자식교육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열정도 어떻게 보면 자기자신이 못한 것에 대한 대리만족이나 명예욕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어. 자식에게 많은 부분 맡기는 것도 미리 자식에게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워줘서 좋을 텐데.. 그러나 저러나 형이 바라는 교육은 뭐야? 사실 내가 정말 바라는 교육은 어릴때 복음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말만큼 쉬운일은 아니지. 여태까지 사학비리등 전적들을 보면 사학부터 많이 변화해야 돼. 그래야 믿지 않는 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어. 그리고 아까 하다만 말인데 특정 욕구로부터 자유하려면 자기가 어떤 욕구가 강하고 약한지는 먼저 알아야 뒷탈을 막을 수 있어. 아, 형 주변에 성공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무너지는 경우들을 보고 하는 말이구나? 응, 그래. 보통 자기가 자꾸 돈을 이야기하면서 남들보고 돈 욕심 많다고 하는 사람들치고 돈 욕심 없는 사람 못 봤고, 권력욕이나 명예욕이나 마찬가지지. 특히 명예욕은 자기의와 결합하여 파급효과도 엄청나고, 자기 자신에게 속기도 쉽다는 점에서 잘 다루어져야 해. 모든 것을 초월한듯 하며,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는 사람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명예욕에 의한 것들이지. 자꾸 대중매체를 타 알리고 싶고, 계몽시키고 싶은데 사람들이 안따라와준다는 초조감 또한 명예욕에 의해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자신이 자꾸 거론하는 욕구는 많이 신경을 쓰고 관심이 많다는 것이며, 본인은 의식하지 않는 다고 해도 그 사람 마음에 있는 바람을 반영하게 되지. 본인의 욕구의 정도를 과소평가하여 착각하게 되면 결국 그 욕구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더라고... 자신의 욕구를 평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욕구가 과도하게 표출하게 되고 결국 욕심으로 변질되어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침해하게 되고 화평이 깨어지고 문제가 곪아 터지게 되면 이미 때는 늦는 경우가 다반사지. 사실 따지고보면 성령충만해야만 그런 욕구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되는 거니까, 결국 주님을 따라야 자기 자신의 본모습을 알게 된다는 말이야. 형, 나는 어느 정도 욕구는 인정하고 대신 그중 핵심적인 일부만을 추려서 오히려 양성적으로 외부에 노출시켜 풀 부분은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형 말대로 과도한 욕심이 되어서는 안되겠지. 그러나저러나 형의 식욕과 게으름의 총화인 배는 언제 줄어들까 궁금하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네. 친구들이 내 식습관을 듣다가 조언하는데 믹스 커피 많이 마시는 것과 탄산음료 마시는 것 부분만 고쳐도 상당부분 개선될거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이제는 걷는 것 보다 뛰는 것 위주로 할테니까 기대해봐.. 흐르는 음악: 천관웅 밀알, 지영 그리스도의 계절, 포스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배경 그림: 밀레 씨뿌리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