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20세‘아스날’이란 프로축구 클럽에 유소년으로 발탁.
21세 부모님 사망.
22세 경기 중에 갈비뼈 골절.
23세 하늘에서 벼락 맞음.
25세 드디어 재기.
26세 결혼.
27세 곧바로 이혼.
28세 형제의 죽음.
29세 보증을 잘못 서서 쫄딱 망함.
30세 폐암 진단 받음.
31세 폐암이 완치됨.
32세 선수 복귀.
33세 계단에서 굴러 두개골 파손.
34세 왼쪽 손목에 총 맞음.
36세 막바지 선수생활 중 인대 절단됨.
38세 은퇴.
39세 코치 생활.
40세 폐암 재발.
44세 폐암 완치.
45세 감독 생활.
46세 식중독으로 고생.
47세 벼락을 또 맞음.
(로또복권 1등 당첨 확률과 같음.)
49세 집에 큰불 화재 발생.
50세 감독직 해고당함.
51세 노숙자 생활 시작.
52세 노숙자 생활 중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인 혐의로 징역 10년 선고.
62세 출소.
63세 조그마한 인쇄소 공장에 취직.
66세 인쇄소 사장이 됨, 큰 돈을 벌어 갑부가 됨.
67세 사회에 재산 헌납.
70세 명예퇴직.
71세 늦깎이 재혼.
73세 박지성이 뛰고 있는 축구의 명문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단주가 됨.
74세 폐암으로 사망.
이런 인생도 있다
지난 초여름 한국을 뒤집어 놓은 사건이 있었다.
케이블·위성 방송 오락채널인 ‘티브이엔’이
야심차게 방영한 “코리아 갓 탤런트” 첫 회에 출연한 “최성봉”이란 젊은이 때문이었다.
“코리아 갓 탤런트”에는 다재다능한 “끼”를 가진 사람들이 연령과 지역을 초월하여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무대에 등장하여 짧은 인터뷰를 하고는 바로 준비한 공연에 돌입한다. 세 명의 심사위원이 “×” 버튼을 누를 때 까지만 시간이 허용된다. 열정은 높이 살만 하지만 준비한 공연을 다 마치기도 전에 심사위원들은 빨간 “×”를 눌러대기에 지역 예선을 합격하는 것만도 버거운 프로그램이다.
그 와중에 앳된 얼굴의 청년이 무대 중앙에 선다.
송윤아가 먼저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나요?”
“예, 막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질문자가 당황하며 다시 물었다.
“지원서에 보면 가족사항이 전혀 없는데요. 왜죠?”
그는 어딘지 어색한 손짓과 불안한 눈빛과 더듬는 말투로 대답했다. “3살 때 고아원에 맡겨진 뒤 구타를 못 이겨 5살 때 고아원을 나와 껌과 박카스를 팔면서 살았습니다.
10년 동안 건물계단과 공용 화장실에서 잠을 자면서 거리생활을 했습니다.”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심사위원이나 관중들은 숙연해 졌다.
앳된 얼굴을 가진 22살의 젊은이가 상상하기 힘든 질곡의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표정들이었다.
그래도 배움의 꿈을 잃지 않고 틈틈이 공부하여 초·중 과정 검정고시를 마치고 드디어 고등학교(대전예고)를 들어갔다고 했다. 그것이 그에게는 학교생활의 전부였다.
초유의 관심 속에 드디어 그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넬라 판타지아”였다. 정식으로 성악을 공부하지도 않은
그의 미성은 순식간에 관중들을 감동의 표정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윽고 노래가 끝이 났을 때 심사위원인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 배우 송윤아, 영화감독 장진의 눈가는 이미 촉촉이 젖어있었다. 그들은 심사평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흘렸다.
가까스로 진정을 하고 눈물범벅이 된 송윤아가 입을 열었다. “그냥 최성봉 씨를 너무 안아주고 싶어요.”
박칼린은 “(그의 마음속에) 악기는 어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레슨을 해주고 싶네요.”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 군에게 물었다. “왜 노래를 하고 싶으세요?”
표정 없는 그가 입을 연다. “하루살이처럼 살다가 처음으로 좋아한 게 노래였어요. 어릴 때 사건이 되게 많았는데요.
어디 팔려가기도 하고 나이트클럽에서 껌을 팔면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춤추는 음악이 아니라 성악 하는 사람이 진지하게 노래하는 모습에 매료되었습니다.”
방송 뒤 최씨의 동영상은 급속히 전파되며 CNN 유튜브는 순식간에 천만명 사람들의 손을 ‘클릭’하게 만들었다.
ABC 방송은 그를 “한국의 수잔 보일, 폴포츠”로 소개했다.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런 평을 쏟아냈다. “진정성이란 이런 게 아닐까? 담담한 표정. 눈물까지도 사치스러워서일까?”
“동영상 보고 정말 감동 먹었음. 저렇게 살아왔는데 세상을 미워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노력하는 모습 자체에서 말이죠” “이 새벽 이 동영상이 나를 엄청 울린다. 저는 안 울고 나를 울리는 나쁜 놈.”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것도 기구하지만
맡겨진 고아원에서 심한 구타를 견디다 못해 5살 때에 도망을 나와 생을 이어갔다는 사실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껌과 박카스를 팔아 연명하고 계단에나 공중화장실에서 잠을 자면서 어린 그는 얼마나 서럽고 두려웠을까?
진정 그는 그의 고백처럼 “하루살이”처럼 살아왔다.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최성봉”은 일어섰다.
상상할 수 없는 극한 고통 속에서 그는 성악에 대한 꿈을 꾸었고 힘을 잃어버리고 허덕이는 이들에게 용기와 도전을 주고 있다.
그의 두 번째 무대에서 심사위원들이 그에게 가장 많이 주문한 것은 “웃어보라!”는 말이었다. 그는 얼굴을 펴는 것으로 웃음을 대신했다. 스페인 속담에 “돌이 많은 시내가 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 있다. 시련은 성숙의 통로이며 기쁨으로 가는 정거장이다. 장한 젊은이의 앞날을 마음껏 축복하고 싶다.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몇 년전에 플래닛에 올린 글을 올려본다.
덥수룩하지만, 깔끔한 잠바 차림의 사나이 현금 출납기 앞에서 그 날 번 돈이라고 말하며 작은 돈이지만 반을 저축한다고 말하고 4만원을 넣고 통장을 보여준다.
통장의 잔액을 보니 사만칠십오원. 전날까지의 잔액이 \75.- 이었다는 것이다. 사나이는 이러한 생활이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고 말하지만, 지금은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생활정보지와 인터넷 구인 정보를 보고 취직을 하려 했지만, 신용불량자라서 채용이 안되고, 취직이 되도 당장 한달 동안 살 돈도 문제다. 저녁에 들어가는 곳은 찜질방. 집이 없어 그날 그날 일용근로자로 번 돈으로 계산을 하고 끼니로 비빕밥을 시켜 몸이 불편한 아들과 같이 먹는다.
똑같은 비빕밥 메뉴에 물리지만 그저 살기위해서 밥을 구겨넣은지 오래다. 한 쪽 다리와 손이 자라지않는 불구의 몸인 14살난 중학교 1학년의 아들은 찜질방 윗층에서 공부를 한다.
또래의 친구들이 찜질방에 오면 좀 챙피함을 느끼지만, 당당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말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밝게 살아간다.
사업에 실패하고 사기를 맞아 생활이 어려워지자 견디지 못해 집을 나간 아내에 원망하지는 않지만, 불구의 아들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일이 없어 마지막 돈으로 아들을 찜질방에 맡기고 자기는 직업소개소에서 밤을 새우는 장면은 일용근로자의 생활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지난 주, KBS1에서 방영한 현장르뽀 “동행”이란 프로그램의 “굿바이 찜질방”이란 제목의 장면이다. 이 프로는 갈수록 심화되는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우리시대 극빈층 1%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밀착 취재한 프로라고 한다. 극빈층 1%라고 하지만, 어떤 장면은 나에게도 공감이 가는 곳이 있기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요즈음.
겉으로 나타나지않는 어려운 이웃들은 없는지…
며칠 전에 본 방송이 지금도 언뜻언뜻 뇌리를 스치고 영상들,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으로 우리 다같이 "동행"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선강/김홍대 님의 "일용직 남자"란 시가 생각난다.
해 저문 어두운 골목길
유령의 집처럼
아가리 벌린체 우두커니 서 있는
불 꺼진 창
터벅터벅 이층 계단을 올라
현관문을 들어서면
싸늘하게 느껴지는 차가움
습관처럼 더듬어 불을 밝히면
옷걸이나마 주렁주렁 매달린 옷가지들
주름 흐트러진 바지 방바닥에 뒹군다.
옷가방 들러맨 채
발끝으로 저만치 밀어내고
전기장판 위로 풀썩 주저앉아
초점 잃은 눈빛으로
슬픔에 저려진 한숨을 섞어
길게 담배연기 품어낸다.
사랑의 대상도 그리움의 이유도
삶의 의미초차 잃어버린 날들
오늘이 내일과 다르지 않을
반복되는 가난과 외로움에 찌들어버린
삶의 종착지는 어디쯤인가?
창틈 사이로 찬바람이 날아든다.
작업복 입을 채로 이불 속을 파고들고
차가운 밤이 깊어가면
또다시 내일은 밝아올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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