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하프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가을 메인시즌에 풀코스를 달릴 계획이 없기 때문에 장거리훈련이나 그걸 대체할만한 대회에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지난번 뻐꾸기와 달리 돈 내고 신청한 대회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부담도 되긴 하지만 실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형편.
6분 페이스로 슬로우조깅을 해봐도 심박수는 167 내외를 가리키고 5분 페이스 전후에선 170을 훌쩍 넘어서다보니 이건 뭐 몸이 이상해진 건 분명하다.
그러던 중 목요일 저녁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여러가지 상황이 또 달라졌다.
공돌이가 무슨 문학하고 상관이 있냐 싶지만 내 생애에 이런일이 일어났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그 여파가 대회전날 꿈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채식주의자와 아메리칸파이가 섞인 형태로 내가 아주 안좋게 되는 내용이 아주 생생하게...
그런데 일어나 씻고 선반에서 수건을 챙기는데 우르르 떨어진다.
그리고 칫솔질을 하고 꽂이에 넣다가 바닥에 툭!
나중엔 물 먹으러 컵을 집다가...
이건 아무래도 아메리칸파이 쪽이다.
This will be the day that I die
2001년 딱 요맘때 나를 아주 유명하게 만든 희대의 사건이 벌어지는데 [성남대로에 지다]라는 수기로 정리가 되었고 내용을 들여다보면 예닐곱개의 원인들 중 단 한가지라도 경계심을 가지고 조심했더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바로 오늘이 그날!
결코, Never, ever 그런일이 일어나선
그렇게 머릿속에 세기고 다짐을 하고 또다른 한편으론 마음을 비우고 나주로 영산강으로~
처음 가보는 나주 종합운동장엔 전국에서 달려온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여기서도 런너들의 세대교체가 확연히 느껴질 만큼 연령과 성별의 구성이 예전관 달라졌다.
날씨 조건은 대회 출발전에 쌀쌀함을 느낄 정도였지만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꾸준히 기온이 올라 25℃ 내외까지 기록한다.
좋은 조건이 아니것만은 분명하고 게다가 코스가 그늘이 없이 직선으로 이어진 '가도~가도' 형태이기에 그 또한 마이너스쪽인데...다시한번 다짐!
하지만 출발총성이 울리고 대열을 따라 그저 가기만 했는데 초반 페이스는 5분 안쪽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매번 급수대에서 물도 마시고 머리에 끼얹기도 하며 이제까지 없었던 지랄(?)을 떤다.
나름 노력을 하고 있는 중.
그리고 나서는 조금씩 밀리는 페이스로 방향을 잡아가는데 그러다보니 반환점에 이르고 또 1시간50분 페이스메이커 무리도 뒤에서 나와 앞서가고...
그렇게 느려지는 아니 늘어지는 과정이 계속된다.
이런바에는 아에 확실하게 위험요소를 없애버리자!
급수대가 나오면 컵을 잡고 걸으며 물을 마시고 머리에 끼얹기를 반복.
그래봐야 기껏 5분 늦어지는데
안전을 확보하는 댓가로 이 정도는 훌륭하지 않나?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늦어지면 편해지지는 않고 되려 몸은 더 편한걸 요구한다는 점을 느낀다.
적당히 타협점이 나오는 게 아니라 늘어지려는 몸을 끌고 가다보면 총량으론 더 힘이 든다는 걸 놓쳐서는 안되겠다.
결승점에서도 스퍼트 이런건 생각지도 못하고 누적되는 피로로 늘어지고 또 늘어지며 피니쉬.
공식기록 1:55:16
오늘 베스트를 했더라면 거기에다 운도 좋고 뭐시기까지 작용했더라면 최대로 나올 수 있는 기록은 47분대, 페이스메이커 무리를 따라 갔더라면 49분대, 어떤 기준을 두고 생각을 해봐도 별로 영양가가 없다.
고생을 좀 했지만 무사히 완주한 걸 최고로 치고 이번 시즌엔 장거리는 잊어버리는 걸로 방향을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