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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회화
전시실 소개
불교회화실은 우리나라 불교회화의 흐름과 특징을 살필 수 있도록 고려와 조선시대의 여러 불화를 선별하여 전시하고 있다. 경전 그림인 사경변상도寫經變相圖와 조선시대에 법당 밖에서 야외 불교의식을 거행할 때 거는 대형불화인 괘불掛佛은 독립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다. 비단이나 마, 면 바탕위에 채색을 사용하는 불교회화는 전시품을 6개월에 한 번씩 모두 교체한다.
괘불, 미디어아트로 만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평소 사찰에서 만날 수 있는 괘불을 매년 봄에서 가을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시가 끝난 다음 빈 공간으로 남겨져 아쉬움을 주었던 괘불대에 높이 12m 폭 6m의 초대형 괘불 미디어아트가 펼쳐집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던 세 점의 괘불을 미디어아트로 재구성하여 찬란한 불교 세계를 표현했습니다. 조선시대 불교회화를 대표하는 괘불의 아름다움과 압도적인 생동감을 새롭게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제 목 내 용
부처의 모임-
영주 부석사 괘불 세속의 길에서 사천왕과 신중神衆, 보살과 부처의 세계로 나아간다. 모든 이들이 함께한 공간에서 초월적이고 영원한 부처의 설법 모임이 시작된다.
꽃비 내리다-
영천 은해사 괘불 아름다운 꽃과 새소리, 즐거움과 신비로움으로 가득한 정토淨土. 그 속에 홀로 자리한 부처와 만나다.
수호의 공간-
구례 화엄사 괘불 사천왕이 수호하는 공간 너머, 석가모니불이 찬란한 가르침을 전한다. 깨달음의 자리에서 부처의 위엄과 마주하다.
* 운영방식
- 매시간 정시와 30분에 상영합니다.
- 대기시간을 포함하여 12분 동안 상영되며, 관람 후 괘불 세부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실제 괘불이 전시되는 기간에는 상영되지 않습니다.
불교회화 전시실 소장품
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 : 모란꽃을 든 아미타불과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인 무리를 그린 아미타극락회도이다. 꽃을 든 부처의 모습은 연꽃을 들어 가르침을 전했다는 석가모니불에서 주로 나타나는 도상으로, 꽃을 든 아미타불은 독특한 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미타불 주변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비롯한 여섯 명의 보살, 열 명의 제자와 사천왕, 천자, 동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불단 뒤쪽에 아미타불을 에워싸고 있는 제자들과 사천왕의 얼굴에 뚜렷한 그림자를 표현한 것은 시대적 경향을 보여준다.
아미타불이 앉아있는 불단에 연꽃과 모란꽃이 꽂힌 청화백자, 향로, 책갑 등의 기물이 놓여 있다. 가로로 길게 확장된 불단과 그 위에 기물을 그려 넣는 표현은 근대기 불화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근대기 대표 화승 고산 축연의 개성있는 도상과 강한 음영이 반영된 그림이다.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 밑그림 : 바다 한가운데에서 솟아오른 암반 위에 관음보살이 편안히 앉아 있다. 관음보살의 배경에는 원형의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있는데, 이는 화면의 중심과 주제를 강조하는 구획 역할도 한다. 관음보살의 신광 주변은 위쪽과 아래쪽 2단으로 나뉜다. 아래쪽에는 파도치는 바다를 배경으로 용왕과 선재동자가 예배하고 있으며, 위쪽에는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아미타삼존과 보살상이 있다.
이 밑그림에서 관음보살의 배경이 하늘과 바다 2단으로 나뉘는 구도, 구름을 탄 화불과 보살·천인 등 권속의 표현, 머리 끝까지 덮은 백의 표현 등 19세기 관음보살도의 특징이 보인다. 또 관음보살의 몸 전체를 두르는 거대한 원형 신광은 <강화 현등사 관음보살도>, <서울 보문사 관음보살도> 등 19-20세기 서울·경기 지역 관음보살도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1 : 파도치는 물결 위로 솟아오른 암반 위에 관음보살이 편안히 앉아 있다. 보살 뒤로 초록색 두광頭光과 금빛 찬란한 신광身光이 드리워져 있다. 관음보살이 앉아 있는 암반 양 뒤쪽에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과 대나무가 그려져 있고,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화면 왼쪽 물결 위로 용왕이 나타나 관음보살에게 예배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선재동자가 공손히 두손을 모으고 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니던 선재동자의 기나긴 구도의 여정 중 한 장면을 담았다. 자신을 찾아온 선재동자를 그윽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고려의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와 달리, 조선시대 관음보살은 주로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2 : 바다 속에서 솟아오른 암반 위에 관음보살이 편안히 앉아 있다. 초록색 둥근 두광과 신광 주변에서 상서로운 구름이 뻗어 나오고 있다. 관음보살은 하얀 옷을 머리 끝부터 드리운 백의관음이다. 보살 뒤쪽 바위에 정병과 대나무가 그려졌고, 화면 앞에는 관음보살에 예배하는 용왕과 선재동자가 배치되었다.
화면 아래쪽 기록으로 1854년 화승 도순(19세기 중반 활동)이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도순은 고창 선운사, 순천 선암사, 순천 송광사, 구례 화엄사 등 전라남·북도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이 그림은 도순이 처음 수화승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예념미타도량참법 : 염불하며 참회하는 의식인 미타참법彌陀懺法의 방법과 절차를 적은 의식집이다. 이 의식은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고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부처를 청하여 죄업을 참회하고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경전은 마지막의 발문을 통해 세조비 정희대왕대비貞熹大王大妃가 1474년 성종비 공혜왕후恭惠王后 한씨韓氏가 죽은 후 그의 명복을 빌고, 돌아가신 여러 선왕과 선왕비를 기리기 위해 지중추부사 성임成任에게 명하여 간행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시주자 명단에는 성종의 모후母后인 인수대비仁粹大妃를 비롯한 왕실 여성들과 종친, 고승의 명단이 기록되어 국가적으로 큰 사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 물과 땅을 떠도는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펼치고 음식을 베푸는 불교 의식인 수륙재水陸齋의 절차를 정리한 책이다. 수륙재 관련 의식집은 그 종류가 8종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주로 약칭을 사용하는데,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는 줄여서 ‘중례문中禮文’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수륙재의 유래와 이를 베푸는 이유를 쓴 「설회인유편設會因由篇」에서부터, 모든 절차를 끝내고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내용의 「보신회향편普伸廻向篇」까지 총 54편의 글이 실려 있다. 또한 수륙재를 개최할 때의 모든 단계의 절차와 게송, 찬문을 순서대로 소개하고 있다. 여러 수륙재 의식집 중에서도 내용이 자세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수륙재 의식의 기본 서적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전라도 및 경상도의 개별 사찰들을 중심으로 수륙재가 크게 성행하면서 다양한 판본이 간행되어, 현재 36종에 이르는 판본이 전해진다. 이 책은 숭정崇禎 9년(1636) 전라도 남원 지리산 감로사甘露寺에서 간행한 것이다.
불화에 봉안한 복장물 : 불화를 그린 후 종교적 의미와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해 납입하는 복장물이다. 이 복장물은 1829년 신겸信謙 등 10명의 화승이 조성한 <중흥사 시왕도·사자도>에 봉안한 것이다.
종이로 납작한 방형 후령통을 만들고 안에는 종이를 말아 색칠한 오보병을 일렬로 넣었다. 오보병 내부에서는 광물, 보석, 씨앗, 곡식, 약재, 향료 등이 발견되었다. 복장물을 넣는 의미와 목록, 의식 절차를 자세히 다룬 경전인『조상경造像經』에 나오는 법식을 충실히 지킨 예로 주목된다.
불화 밑그림 : 화폭에 먹으로 권속의 모습을 빼곡하게 그린 불화 밑그림이다. 완성된 형태의 불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형태의 연습을 위해서 혹은 제자에게 본보기로 그려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화면에 그려진 인물들은 동자상, 옥졸, 천, 판관 등 명부 관련 그림에 등장하는 이들로, 시왕도나 지장보살도, 감로도, 신중도 등을 그리기 위한 습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근대 불화승의 일상적인 작업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지옥을 다스리는 지장보살 밑그림 : <지장보살도>를 제작하려고 그린 밑그림이다. 목탄으로 전체 구성을 그린 후 먹선으로 세부를 그리고, 색을 참조할 수 있도록 각 부분에 한글로 ‘양녹’, ‘옥석’, ‘삼청’, ‘진홍’, ‘장단’ 을 적거나 한문으로 ‘백白’, ‘황黃’ 등을 적었다. 지장보살 주변을 가득 메운 광선과 구름 사이로 흐릿하게 목탄 흔적을 확인할 수 있으며, 보살의 신광 여백에는 입과 턱수염을 연습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초본과 화면 크기, 도상이 같은 작품으로 화승 보경 보현寶鏡普賢(1890~1979)이 출초하고 수사繡師 안제민이 수를 놓은 <지장암 자수지장보살도>(1917)가 있다. 근대기에 제작된 자수 불화의 밑그림이 화승에 의해 조성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산신과 호랑이 : 깊은 산과 골짜기를 배경으로 호랑이를 거느린 산신을 그렸다. 큰 눈과 음영으로 처리된 주름은 산을 호령하는 위엄 있는 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매서운 눈빛의 산신과 대조적으로 호랑이는 민화풍의 해학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산을 다스리는 영물보다는 익살스러운 애완동물처럼 보인다.
이 그림은 한국 근대 불화계를 대표하는 화승 금호 약효錦湖若效가 단독으로 그린 산신도다. 약효는 그림을 그리는 승려가 후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불화에 입문했고, 18세기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 유성有成의 초본草本을 모방하여 수천 장에서 수만 장을 연습했다고 한다. 그 결과 화승이 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여러 화승을 거느리고 불사佛事를 주도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으며 불화를 그려 벌어들인 재화를 마곡사에 시주하기도 했다. 약효가 조성한 불화는 100여 점이 넘게 남아있으며, 현대까지 그의 화맥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인물 밑그림 : 두 인물의 모습을 그린 밑그림이다. 화면 오른쪽 위에 ‘약효가 초를 내다[若效出草] ’ 라고 적혀 있어 화승 금호 약효錦湖若效(?~1928)가 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인물의 윤곽과 옷 주름 부분에는 희미하게 목탄으로 밑그림을 그린 흔적이 남아 있으나, 그 외에는 대부분 목탄 밑그림 없이 가는 붓으로 한번에 그려냈다. 인물의 얼굴은 매우 가는 선으로 능숙하게 표현했고, 거친 붓으로 옷주름을 자유롭게 그렸다. 불화 초본을 제작할 때 바탕천을 위에 덮고 베껴 그릴 수 있도록 선을 또렷하게 표현하는 데에 비해, 이 작품의 필력은 좀더 자유롭다.
삼보를 나타내는 위패 : 삼보패는 부처나 보살의 이름 또는 발원 내용을 적어 불단에 봉안하는 불교의식구이다. 불교에서 숭배하는 대상인 삼보三寶, 즉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의 존명을 적어 모시는 위패이다. 사각형의 대좌 위에 연꽃과 연잎이 솟아올라 펼쳐지고 그 위에 광배형의 위패가 우뚝 섰다. ‘시방삼보자존十方三寶慈尊’이라 적힌 구획을 따라 꽃과 구슬 장식을 늘어뜨린 듯 입체적으로 조각하였다. 뒷면에는 암산으로 둘러싸인 전각과 봉황, 용, 호랑이 등을 조각하여 정토를 표현하고 있다.
십육나한 : 나한은 부처가 열반에 든 뒤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이 세상에 머물며 불법佛法을 수호하도록 위임받은 제자들이다. 궁극의 깨달음을 얻은 존재로, 가사를 입은 수행승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나한도에는 나무와 암석, 폭포로 이루어진 산수를 배경으로 앉아 있는 다섯 나한과 그를 따르는 무리를 그렸다. 상단에 제2, 4, 6, 8, 10존자의 이름이 확인되어, 여러 점으로 구성된 십육나한도 중 한 폭임을 알 수 있다.
이 나한도는 19세기 후반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 활동한 보암 긍법普庵肯法 과 계웅戒雄이 그렸다. 긍법이 대표 화승으로서 불사를 주도하여 조성한 남양주 불암사 <십육나한도>(1897)에서도 유사한 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나한 : 木製羅漢像
극락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 : 극락정토에서 가르침을 전하는 아미타불, 협시인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표현한 삼존도이다. 부처와 보살 사이에는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작게 그려져 있다. 아미타불은 과거에 법장法藏이라는 보살이었는데, 무수한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우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 아미타불의 이름만 불러도 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아미타정토신앙은 사람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아 성행하였고, 이 내용을 담은 불화 또한 많이 제작되었다.
이 삼존도는 1888년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 한규翰奎가 그렸다. 본존 아미타불 뿐만 아니라 보살들도 연꽃 대좌 위에 앉은 모습인데, 이는 조선 19세기경 화면이 가로로 길어지면서 나타난 특징이다. 화면 위쪽은 오색 구름으로 가득 메워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화승 축연이 그린 쌍월당 대선사 초상 : 20세기 초 ‘불화의 명인’으로 불릴 만큼 명성이 높았던 화승 축연竺演이 그린 쌍월당 성활雙月堂性闊의 진영이다. 화면 왼쪽에 드리워진 붉은 족자에 선사를 기리는 찬문이 적혀 있고, 족자의 동그란 축에는 ‘혜산蕙山’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혜산은 축연이 1910년경까지 썼던 당호堂號이다. 일반 문인화가처럼 개인의 이름을 명확하게 그림 안에 남기는 모습은 전통적인 불화 제작 관습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현상이다. 변화하는 근대의 흐름 속에서 창작 주체로서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시작한 승려 장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승려 진영 밑그림 : 앉아 있는 승려의 모습을 그린 밑그림이다. 조선시대 승려들의 초상화인 진영眞影에 나타나는 것과 같이 비스듬하게 오른쪽을 보는 자세를 취했다. 승려는 가사와 장삼을 입고 모자를 썼으며 오른손에 석장, 왼손에 염주를 들었다. 먹선은 가늘고 간결하다. 염주를 쥔 왼손과 어깨의 옷자락, 그림 위쪽 빈 공간 등에 부분부분 스케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그림은 근대의 전통 화가 김은호金殷鎬의 밑그림으로 추정된다. 김은호의 인물화는 사진에 기반한 사실적인 얼굴 표현과 세밀한 북종화의 필선이 특징적이다. 이 그림은 전통적인 조선시대 승려 진영의 표현 방식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특유의 세밀한 인물 표현을 더한 작품이다.
지장보살과 시왕 : 지옥에서 고통받는 일체 중생을 모두 구원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과 그 무리를 함께 그렸다. 중앙의 지장보살은 두건을 쓰고 빛나는 보배 구슬을 들고 있으며 아래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합장해 서 있다. 영혼을 이끄는 사자와 지옥에서 영혼의 죄를 심판하는 시왕十王과 판관 등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이 불화는 19세기를 대표하는 화승 중 한 명인 천여天如 등 4명의 화승이 조성했다. 천여는 18세기 대표 화승인 의겸義謙에 의해 형성된 전라도 지역의 화풍을 충실하게 계승하였다. 1794년 나주에서 태어나 15세에 순천 선암사에서 출가했고, 17~18세에 본격적으로 도일道鎰 아래에서 그림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한다. 그는 불화 뿐만 아니라 불상 개금, 단청 불사에도 뛰어났으며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아 선사禪師로도 명망이 높았다.
제석천 : 제석천은 인드라Indra라는 인도 힌두교의 신으로, 벼락을 신격화하여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다. 인도에서 유래한 제석천 도상은 불교에 수용된 후 수미산 정상에 있는 하늘인 도리천忉利天을 주재하는 신이 되었고, 나라를 수호하고,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림 위쪽에는 손을 모아 합장한 제석천과 양쪽에서 협시하는 보살이 그려져 있으며, 하단에는 팔에 보검을 얹은 위태천이 수호하고 있다. 그림 위쪽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제석천을 둘러싼 도상들이, 아래쪽에 제석천을 수호하는 도상들이 배치된 구도는 천여와 스승 도일道日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 : 이 상은 사찰에 봉안되었던 제석천상 혹은 범천상으로 추정된다. 나무로 깎아 만들었으며 구름문양이 그려진 푸른색의 보관을 쓰고, 하얀 얼굴을 하고 있다. 왼손을 들어 중지와 엄지를 맞대었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렸다.
컴퓨터 단층 촬영(CT) 사진으로 눈으로 볼 수 없는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다. 이 상은 하나의 목재로 만들어졌으며, 두 손만 따로 제작되었다. 손목 부분에 끼워진 손은 떨어지지 않도록 못으로 고정하였다. 또한 머리 부분에는 종이로 추정되는 복장물腹藏物이 남아있다. 여러 겹으로 접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머리와 등, 바닥 부분의 복장공은 별도의 목재로 막고 못과 꺾쇠를 박아서 고정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불교회화실이 위치한
2층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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