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우도면 천진리(연평리) 1922번지. 동천진동과 서천진동 사이 탑이 있는 위쪽 큰 동산 밭 가운데 있다. 맹지인데 연평리 1920번지에서 진입하는 게 가깝다.
경민장이 마을의 행정을 맡던 이전부터 해방되기 전까지는 섬 전체가 연평리였으므로 지금의 충혼묘지가 있는 포젯동산에서 포제단을 차리고 제를 지냈다. 당시에는 비양도(ᄄᆞᆫ비양)가 리 소유였고 거기서 나는 해산물 수입으로 마을 경비나 포제 경비를 충당했었는데 비양동 사람들이 ᄄᆞᆫ비양을 자기네한테 주면 ᄄᆞᆫ비양에서 벌어먹는 대신 포제 비용을 전담하기로 이장과 ᄄᆞᆫ비양 주민들 사이에 계약이 이루어졌었다. 해방이 된 후 계약문서를 분실한 것이 화근이 되어 ᄄᆞᆫ비양은 비양들 주민에게 소유권이 넘어가고 포제는 흐지부지하게 되었다. 그 후 포제는 각 마을로 분산하여 치르게 되었으나 새마을운동의 영향으로 거의 없어지고 영일동과 천진동에서만 지내고 있다.
제상(祭床)은 돌을 나지막히 쌓아 시멘트 몰탈로 마감했다. 북쪽과 동쪽에 2개로 벌이지만 신위는 상단에 酺神之靈과 하단 場神之靈, 境內無祀鬼神(雜神) 3위를 모신다. 酺神에게는 산 희생을 쓰고, 場神에게는 익힌 것을 쓴다. 酺神제에는 제관 8인(초헌, 아헌, 종헌, 집례, 대축, 알자, 전사관, 집사)이 들어서서 전폐례→초헌례→독축→아헌례→종헌례→음복→철변두→망료→분폐→분축의 순서로 진행하고, 場神제에는 2인(전사관, 집사)이 단작으로 지낸다. 하단제가 끝나면 단에 올렸던 제물을 조금씩 뜯어 모으는데 이를 잡식한다고 한다. 이것을 제단 밖에 나가 주위에 뿌리면서 걸명축을 낭송한다. 하위신인 잡신을 대접하는 것이다.
포제단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를 지낼 때에는 임시로 찬막을 치고 제단을 마련한다. 제단을 만들려 했으나 외지인 소유자가 부지를 팔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작성 2026.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