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 진료를 끝낸 명우는 가운을 벗고 창가에 가 섰다, 명우가 있는 크리닉은 3층이다,
아래로 넓은 차도가 보이고 있었다, 도심 중앙 통을 조금 벗어난 강변쪽 이였다, 저 만큼 삼거리에
주유소가 있고 그 옆으로 양복점, 미장원, 한약방, 귀금속점, 서점, 빵집, 찻집 등 그만 그만한 점포와
음식점 은행, 학원들이 있었고 시장 골목도 있었다, 그런 상가 뒤론 주택가가 있었고 멀리 태극기와
새마을 기를 흔들고 있는 관공소도 보이며 더 멀리는 학교까지 보이는- 여늬 도시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도시 영주 시였다,
그도 역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세월동안 도시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변화되어
갔듯이 명우 역시 제자리걸음만 한 것은 아니였다, 명우의 병원 건물은 4층짜리였다,
외벽에다 바르크양식을 가미하여 외관으로 보기엔 병원 같지가 않고 무슨 저택이거나 품격 있는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를 내어 다른 병원과의 이미지를 달리 했는데 내부 구조는 현대식으로 설계를
해서 깔끔한 첨단 시설로 꾸며져 있었다, 처음엔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종합 병원을 계획했으나
부담이 커 독립 크리닉을 냈다, 갈색 나무테를 두른 출입문을 밀고 들어서면 먼저 일층에 외과, 내과,
피부과와 병리 실험실 등이 한쪽 벽면의 휴게실을 두고 양분해서 있었으며 이층은 가운데를 둥글게
비워 휴게실을 조성해두고 빙 둘러 가며 소아과, 산부인과, 치과, 안과 따위를 두었다,
삼 층엔 비뇨기과, 성형외과와 몇 개의 입원실, 그리고 명우의 크리닉 이비인후과가 있었다,
명실 공히 종합 병원 이였다, 사층은 자신의 사택으로 꾸며져 있었다, 작년 봄에 착공하여 오픈 한지
이제 두어 달 되었다, 핀셋 하나로 신화를 이룬 사나이라고도 햇지만...
명우의 회상이 거슬러 올라간다,
십일년 전,
어렵게 명희를 안았다, 모든 구속감을 풀어 버리고 - 나르는 기분으로 그녀를 안을 수 있었다,
운명의 신에 감사하며 그것은 정영 飛翔(비상)이였다, 그해 3월에 결혼했다, 하객들이 많았다,
신부 측도 그러했지만 명우 쪽에서는 동기나 의료계 선후배 외에도 특별 게스트가 있었는데 경찰
수사계의 김 태일 일당들이였다,
“장 선생이 나한테까지 청첩장을 보낼 줄은 몰랐소,”
“왜요?”
“날 미워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두 번 다시 안 보려 할 줄 알았지, ”
“머, 그리 기분 좋은 상대는 아니요, 반장님의 축의금으로 병원이나 지어 볼까하고.”
“ 핫 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소 그래서 두둑히 모아 가지고 왔지. 우리 경찰서 직원들 모두에게 다
거둬갖고 말이요ㅡ 그런데 장 선생, 난 이 축의금을 어디에다 내야 할지 몹시 망설여진다 말이요,
사실 우리로선 명희씨 쪽에다 내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하는데..”
“맘 데로 하시오, 쌈짓돈이 주머니돈이 될 터이니.‘
“주머니돈이 쌈짓돈이라 ..그게 그렇게 되겠구먼 그래 핫하하..”
“...”
“닥터 장!”
“!..”
보니 박 병린 선생 이였다, 부인 송 여사와 함께 기꺼이 와 주었다,
“정말 좋아 보이는 군, 축하 하네”
손을 내 밀었다, 그 손을 잡으며 옆에 있는 김 태일과 인사 시켰다, 태일과 악수하고 수인사를 나눈 뒤,
박 선생이 말했다
“인연이란 오묘한 거야, 전에도 말했지만,, 이 명희가 그곳에 가서 닥터 장을 사로잡을 줄 누가 알았겠나.”
“선배님 덕분 이였어요.;”
“아니야, 그게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의 인연 같은 거 아니겠어, 어느 날 갑자기 시집 간다고
보따리를 사 들고 나간 녀석이, 그 보따리를 닥터 장 한데 가서 풀었으니 말 일세 핫하하...안 그렇소,
김 반장님?”
“그렇군요, 인연이라 ..새삼 그 인연에 대한 소중함이 일깨워 지는군요, 따지고 보면 장 선생과 나와의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거든요. 악연도 소중한 인연이 될 줄이야.”
“그럼요 악연도 인연이지. 전생에 그 어떤 고리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거야,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이 바로 닥터 장과 명희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에.”
“....”
그런 그들이 고마웠다, 하객들의 애정 어린 미소와 진지함이며 의식의 경건함도 좋았다,
명희는 선녀였다, 거의 두달을 앓고 난 그녀는 더욱 성숙한 모습에 그윽한 분위기를 내며.
처제 수희의 반짝이는 미모와는 다른 이지적 우아함을 그득 담고 있었다,
순결한 신부의 모습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의 손을 잡아 쥐며, 새삼 명우는 가늘게 떨었다,
그녀는 평화와 안정 이였다, 명우의 혼란과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오는 전환점 이였다,
ㅁ,,,순회 진료로 신혼여행을
신혼여행을 따로 가지는 않았다, 절차 의식을 치러느라 양가를 며칠 왔다 갔다 한 후,
바로 순회 진료에 들어갔던 것이다, 지역 보건소의 지원을 받아 가며 명우와 명희는 함께 거의 일년
동안을 그렇게 보낸 셈이다, 힘들었지만 명희가 쾌히 따라 주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녀가 더 즐거워하는 듯 했다,
“내 꿈이 여행가 였어요, 명산 명물만이 아니라 우리 선조 들이 남기고 간 방자취를 접해 보는 상쾌감,”
“발자취?”
“응 그게 바로 그들이 뿌리고 간 후손이며 문화 아니겠어요. , 방언, 내가 늘 먹던 음식과는 다른 맛이
있다는 것 , 다른 풍습이 있다는 것, 그 기에서 또 동질의 것을 찾기도 하고 신선하고 재미있지 않아요?”
“흠 그 꿈을 이룬 셈이군 남편 잘 만난 덕분에..”
그러면 그녀는 소리 내어 웃었다.
“멍석 방에 있다하여 아이야 서러워 마라.
저 불타는 기와집을 보아라,
금 은 보화 다 잃고 애 간장을 녹이는구나,
잃을 것이 없으니 다 이 애비 잘 둔 줄 알아라. 아하하하..”
당시의 처지를 빗대서 김삿갓의 방랑시를 붙여 읊었다,, 사실 먹는 거라든지 잠자리가 형편없었다,
오지에서 민박하는 경우엔 한 사람은 남자 방에 한 사람은 여자 방에서 그 집 식구들과 자야 했으며
방이 있어도 내외가 심하거나 낮 가림을 심하게 하는 곳에선 부부라고 하여 한방을 쓸 수도 없었다,
결혼 증명서를 보일 수도 없었으니, 둘 다 낭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명우는 일이나 경험을 쌓는 것도 그랬지만 ,기실 그녀와 온전히 함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여행과 일을 곁들인 그야말로 신혼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었다,
형님의 집이 편편치 못했던 것이다. 개업을 할까 하였으나 출 퇴근을 하며 다녀야 했고,
따로 방을 얻고자 했지만, 형님이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무엇 하러 지출을 하느냐며 방을 내 줄 테니
그곳에서 신접살림을 차리라고 하는 바람에 순회 진료를 결심했고, 그러면 어디서든 둘이 오붓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국땅에 온 듯한 정취를 느끼며 낭만적인 신혼이 될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 어쩌다 한번은 그랬다,- 일에 지쳐 곯아떨어지기 바빴고 별반 쉬는 날도 없었다,
장소를 정하여 진료를 보아주곤 하지만 때론 방문 진료도 해야 했다, 뙤약볕, 험한길을 오르내리며 ..
그녀가 안스러워 보여
“우리 그만 둘까?”
하면 그녀는 말했다
“난 괜찮아요, 명우씨 힘들면 그렇게 해요.”
그녀는 정력적으로 일했다, 숙소가 불편하든 떨어져 자든 그런 것을 불평하지 않았다,
일이 힘들고 고되어도 아침이 되면 늘 씩씩했다, 때론 피곤해 하는 그녀를 놔두지 못하고 종래 욕망을
채우고 났을 때도 아침이면 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기간에 나눈 이들의 대화는 주로 지난 일년동안에 있었던 일 이였는데 그녀는 잠자리에서 가끔 묻곤 했다,
“,,그럼 처음부터 AN이 아닌 내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냉담했죠?”
“헌데, 명희를 보는 순간 솔직히 나도 놀랬어, 김 태일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말이야, 대개 보면
간호원들이 그리 예쁜 편은 아니야 머리는 있지만 인물이나 몸매가 휼륭한 여자는 드물다고 그래서 그
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명희를 보는 순간 그게 아니였어, 그런 선입견을 확 뒤집어 놓았거든 병원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더군 그래서 황송했지,”
“,,?”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의 검은 눈을 짓굳은 웃음으로 쏘아보며
“기를 꺽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러자 그런 명우를 그녀 흘기며
“그래서 한 달이 넘도록 내 이력서에는 관심을 안 가졌나요?”
“관심은 많았지, 하지만 명희도 잘못 온 줄 깨닫고 곧 갈 거라고 여겼어, 그래서 어떠한 관심도 무의미
하다고 생각했던 거지. 사실 하 주영 때문에 나 자신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으니까, 할 말도 없었어,
병원에 실망하거나 나에게 환멸을 느끼고 곧 가 버릴지 모를 일이였으니까, 그런데 한 달이 넘어도 갈
생각을 안 하더군, 비로소 이력서를 봤어 그리고는 박 선배에게 전화를 해 보았던 거야, 깜짝 놀라시더군
형님이 보냈다던 간호원이 그럼 이명희 였냐구..”
“....”
“두 달이 지나면서는 내 자신과 내기를 했어, 명희가 석 달까지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내 여자라는 것을
그건 바로 운명의 신이 나에게 보내 준 마지막 기회라고 말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