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과 민애청은 초창기 많은 인연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다.
그 몇가지를 적어봅니다.
우리가 만들어 지게 된 동인도 87년 대선이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 대선이 끝나고 상당수의 회원이 연청으로 빠져 나간후 회원단합과 전열 정비를 위해 개최한 민애청 총회도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하였던 것 같다
1부는 민애청 총회로 충목이 형이 회장이 되었고, 2부는 김대중 대통령의 강연으로 이어졌다. 그때는 적당한 장소가 없어서 평민당 중앙당사 회의실을 빌려서 개최하였었다. 1부에서는 빈 자리도 조금 보였는데 김대중대통령 강연시간이 되니 바늘 꽂을 공간도 없이 빼곡하였다. 500~600에서 많게는 천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었다. 이것이 88년 1월인가(?)
그리고 그해 2월 김대중대통령 생신날이었다. 민애청 집행부 몇이서 동교동을 찾았다. 집에 들어가니까 벌써 긴 뱀이 늘어지듯이 줄을 지어있었다. 김대중대통령깨 축하 인사차 면담을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우리는 들어 가니까 처다 보지도 않았다. 그런참에 마침 아는 얼굴이 보여서 이야기를 했다. 민애청에서 왔는데 김대중대통령을 볼 수 있냐고, 그리고 마당에 처진 천막에서 요깃거리를 하고 있었더니 다른 사람 다 제쳐놓고 우리를 들어 오란다.
거실로 들어 갔더니 김대중 대통령이 가운데 앉고 우리를 양쪽으로 앉으란다. 그리고 첫 말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 청년들이 왔는데 내가 우선으로 만나야 하지 않느냐 반갑습니다' 그랬던 것 같다.
끝으로 87년 11월 27일 김대중대통령 여의도 유세때 그때는 후보시절, 민애청에서 국내 처음으로 광주민중항쟁 사진을 공개석상 으로 끌어 올렸다. 전 까지만 해도 몰래 숨겨서 돌려가면서 보았던 광주사진을 민애청에서 광주항쟁 사진전을 통해 공개석상으로 끄집어 냈습니다. 그후 여기 저기서 광주 사진전을 하기 시작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사진전을 충목이 형의 강요에 의해 제가 진두진휘하게 되었었지요 그때는 홍대 미대 2학년 짜리들이 함께 고생많이 했지요...
김대중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으니 옛날 생각이 나서 두서없이 몇 자 끄적여 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첫댓글 그런 인연이 있었군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