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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목적지를 향해 (스15)
찬송 : 요게벳의 노래
성경 : 에스라8장1-14절
오늘 아침 주일을 준비하는 날 어제 한 목사님이 추천한 찬양 요게벳의 노래를 함께 불러본다. 아들을 강물에 흘려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아픔과 믿음이 담겨있는 고백이다. ‘어떤 맘이었을까?’로 시작하는 가사는 후렴에 이르러 이런 고백을 올린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인생이란 바로 이런 믿음으로 내려놓음의 자리가 아닐까? 아니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림이 아닐까? 이제 사역도 가정도, 내 삶도 주님께 내어드림을 실천하는 지점에 와 있다. 주님 당신께 이 삶 내어드립니다.
내려놓을 때 정처 없이 강물에 흔들흔들 거리며 내려가는 그리고 울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가슴 아프고 불안하고 두렵지만 하나님께 맡기며 내려놓고 맡겨드림으로 믿음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은 어떤 말씀을 통해 내 삶을 진단하시며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제2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아무래도 1차 포로귀환자들의 숫자보다 훨씬 적은 무리가 귀환했다. 오늘 본문 20절까지에 기록된 숫자를 다 합해보면 2차 포로귀환자들 중 남자의 숫자가 총 1,773명이다.
남자 가장만의 숫자이므로 이들과 함께한 가족들을 포함하면 약 9천 명 정도의 숫자가 2차 귀환자로 돌아왔을 것이다. 특히 오늘 본문 안에 중요한 포인트는 이때의 귀환자들의 핵심이 제사장과 왕족들이 동참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마도 1차 포로귀환자들보다 나름 바벨론에서의 안정된 생활근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어림잡아 140년 정도가 흐른 지금 바벨론에서 태어나 바벨론에서 안정된 생활을 가지고 있었기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그러나 부모로부터 전달된 언약을 붙들고 이들은 위대한 신앙의 여정을 떠난 이들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들의 이름을 기록해 주고 있다. 1절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오늘 이 부분이 묵상의 주제이다. 140년이 지나 안정된 바벨론에서의 삶이 있음에도 성벽도 건설되지 못한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이 매우 불안하고 두렵지만 이들은 언약을 붙들고 이 일에 헌신하여 올라간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140년 동안 이들의 부모세대는 자녀세대 적어도 2대고 많으면 3대 4대가 되었을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이들이 살아야 할 가치, 이들일 돌아가야 할 땅이 예루살렘임을 분명하게 가르쳤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은 이 화려한 땅에 살면서 성공하고 잘 정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가르친 것이다. 그들에게는 세워야 할 하나님의 나라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 땅 바벨론에서 사는 이유를 포로의 팍팍한 삶을 살면서도 이들은 자손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쳤고 그 힘이 오늘 이렇게 모든 안정된 삶을 내려놓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도록 만든 것임을 묵상케 한다.
이제 교회마다 여름 수련회들을 준비하고 있다. 어제도 한 목사님과 만나 7월말에 진행될 여름성경학교에 대해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작은교회가 여름성경학교를 치루는 과정이 매우 힘겨운 시대가 되었지만 꿈을 가지고 일으켜 보자고 도전해야 한다고 함께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왜냐하면 지금 대한민국의 다음세대는 미전도 종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토록 심각한 현실을 만나고 있지만 세상의 화려함과 그리고 세상의 팍팍함에 눌려 교회와 사역자들과 부모세대가 다음세대에게 이루어야 할 하나님 나라를 심어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부분이 오늘 아침 큰 회개로 다가온다. 주님 ...
바벨론에서의 포로된 삶에서 조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언약을 붙들고 140년을 지켜온 이들의 신앙과 오늘 우리의 신앙의 현실이 대비되어 큰 울림과 안타까움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된다.
먼저는 자녀들에게 우리가 세워가야 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바로 심어주어야 한다. 세상에 성공하는 자녀가 꿈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진정한 비전이 되도록 자녀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며 하늘비전을 심어주어야 한다.
아울러 무너져 내리는 다음세대의 신앙교육 현실에 대해 대안들을 찾아내고 작은 교회가 일어설 토대를 만드는 작업에 좀더 적극적인 헌신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주님, 인도하소서.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적 성공이 모든 목표의 끝이 되어버린 현실, 기도하는 이유, 말씀을 배우는 이유조차도 더 세상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오늘의 교회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하게 돌아보면 이 주범이 바로 나이다. 성도들이 주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있게 하기 보다는 성도들이 원하는 자리에 있게 하려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기도하고, 축복한다는 명분으로 열정을 불태웠던 어리석음의 현장이 오버랩되며 올라온다. 주님, 바로 제가 죄인입니다. 아니 오늘도 그런 것을 희망하는 어리석은 죄인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바른 목적지를 알려주는 목사로 이 종이 서게 하소서.
자기도 모르게 세상적 복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이들을 붙들어 바른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더 나아가 바벨론의 자리를 내려놓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그런 헌신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바르게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 서게 하소서. 주님, 이 종을 붙들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