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사람이 그리운 시대이다 義在正我
한 사람의 바른 사람을 찾는다
듣는 귀가 능력이고 행복이다
바른 사람이 옳은 일을 한다 義在正我
작금의 한국 사회를 보아라
바른 사람이 그리운 시대이다
진정한 바른 사람이 그리워진다 義在正我
국회를 보면 정책과 타협은 없고 정쟁과 독주만 있다.
300명의 도둑이 날 뛰고 잇다
의료 분쟁은 의사의 본분인 인술은 간데없고 오직 밥 그릇 싸움 뿐이다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의사 파업 선언에 굴복 하지 말아라
바보 장기려 박사, 이태석 신부의 희생이 그립다
400년전 임란시 이순신을 지켜준 오리 이원익 대감
정정당당한 삶이 그립다
나라나 사회를 지키는 사람은 당당함이 빛이 되었다
시대를 지키는 한 사람의 바른 사람이 그립다
바른 사람이 옳은 일을 한다 義在正我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회장은 후계자로
셋째 이건희를 지목한 것은
“건희는 <듣는 귀>가 있어서!”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능력이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게
인정받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아내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유능한 남편이고,
남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아내가
현명한 아내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강의 시간에 선생님 말을 잘 듣는다.
평화로운 가정,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위한 소통은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보다 상대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듣는 것이 진정한 대화의 능력이다
삶의 기술이다.
하나님이 귀를 두 개 만드시고
입을 하나 만드신 이유도
두 배로 듣고 절 반 만 말하라는 뜻이다.
공자는 말하는 데 3년 걸리지만
듣는 법을 터득한데는 60년 걸린다.
“경청(傾聽)”
경청(傾기울여聽듣다)
몸[身]을 기울여 듣고
마음[心]을 기울여 듣고.
귀를 기울여[傾] 듣는다.
人사람이+頃잠깐, 기울다, 엎어지다, 쓰러지다
청聽은 상대(相對)의 말에 집중(集中)하여 듣는다.
'들을 청(聽)'은 귀이(耳), 임금왕(王), 열십(十), 눈목(目), 한일(一), 마음심(心) 으로
귀이(耳), 임금왕(王)로 귀는 임금의 귀로 잘 듣고
열십(十)과 눈목(目)은 열 개의 눈으로 보듯 하고,
한일(一)과 마음심(心)은 일관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자기말만 할뿐 말에 경청(傾聽)하지 않는다
경청하지 않는 대화(對話)는 다툼으로 이어진다
‘듣는 것’만 잘해도 세상은 아름답다.
프랑스 작가 장자크 상페는 자신의 책 ‘뉴욕 스케치’에서
뉴요커들의 긍정적인 말버릇을 관찰했다.
대화속에서
감탄사(!)를 붙이고,
물음표(?)를 달아준다.
'내 말에 관심을 갖는다'
서로의 삶과 이야기를 격려해주는 말의 효과를 높인다.
이를테면,
누가 “이번에 터키를 다녀왔어요. 너무 좋았어요.
그러자 옆에서
“좋은 곳이죠. 나는 두 번 가봤어요.”
이렇게 말을 받으면 일단 주춤하게 된다.
이럴 때 뉴요커들은 자기 경험을 내세우지 않고
“정말요? 어머, 좋았겠다!”
“일정은 어땠어요?”
말머리를 계속 상대에게 돌려준다.
얼쑤 같은 추임새로
상대를 신나게 해주는,
뉴요커의 말 습관이 좋아 보이는 이유ㅇ디다.
"199대 1의 승리자"
파격적인 진급을 하고
현지에 부임한 李舜臣(이순신)은
당시 경상 좌수사 박홍, 경상 우수영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
그 울타리에 전라 좌수영 절도사로 왔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 조직에서 파격적인 계급장을 달고 내려온
장수를 보고 순순히 인정하고 가만 있었을리는 없는 것이다.
1597년(정유년) 2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한산통제영에서 체포된다.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형장이 열리고 선조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문무백관 / 200명 모두가
"이순신은 역적이오니
죽여야 마땅하옵니다."외친다.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읍조 하며 임금(선조도 속으로는 동조 함)을 압박 하고 있으니
이순신을 발탁해주고 6계급 파격 진급에 힘을 써준 유성룡까지도
"공은 공/ 사는 사라고” 하며
이순신을 죽여 야 한다는 문무백관 들의 의견에 반대를 하지 못한다.
당시 이순신의 누명 상황이 어떠한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이틀이 걸려도 이순신 형 집행을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당시 領議政(영의정) 겸 都體察使(도체찰사) 국가비상사태 직무 총사령관인
梧里 李元翼(오리 이원익)(1547~1634)이 임금의 어명으로 전시 상태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전시상태에서는 임금과 문무 백관들이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 외쳐도
이원익의 승락 없이는 선조 임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원익은 거듭되는 선조의 형 집행 재촉에 청사에 길이 남는
그 유명한 명 대사로 고한다.
“전하께서 전시에 신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 또한 전쟁중에 삼도수군 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 하지 못하옵니다.”
이원익의 이 말에 선조도 체념을 하고 이틀이나 걸린
이순신 "국형장"에서 문무백관 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도체찰사가 그리 말을 하니 이순신이 죄가없는가 보구나.!"
오직 한사람의 곱고 바른 판단과 집념으로 199명의 고집을꺽었다.
드디어 이순신은 사형을 면하게 된다.
당시 문무백관 199명 대 1 이원익 한 사람만이 반대를 하여
이순신을 살려 낸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나라와 백성 만 떠 받든 공복 그가 있으면
온갖 사물이 제 자리를 잡게 되는 소박 하고 비범한
조선의 대표적 청백리 초가집에 살았던
"조선의 명재상 오리 이원익 대감"
세월은 400년이 지나고 시대만 수없이 변했을 뿐 정치는 변한게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알아주는 한사람만 있으면 외롭지 않은것이
대장부의 자존심이요 명예이다.
더구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쟁통에는 더할것이다.
온갖 시기질투와 모함으로 사형 직전까지 간 만고의 충신을 알아 보고
199대 1로 임금의 불신으로 부터 믿어준 탁월한 先見之明 (선견지명)의
굳은 신념이 도탄에 빠진 나라와 백성들의 생명과 조선 사직을 지켜낸
오리 이원익 대감이야 말로 만고에 길이 빛나는 충신이며
나라의 보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사람이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명 이원익이 나라를 구했던것이다.
한 사람.!
올바른 한 사람이 중요하다. 義在正我
생각해 본다면 이순신장군은 행복한 분이셨다.
자신의 목숨을 두려워 하지않고 불의에 뜻을 굽히지 않았던
오리 대감과 같은 분이 시대에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바른 사람이 옳은 일을 하는 것처럼
진심을 알아 주는 사람이 그리운 시절이다
그는 87세로 눈을 감으시면서 모든 자식들을 불러 놓고 !
"나를 위해 부고도 알리지 마라 사후에 어떠한 사당이나
칭송된 일이나 비석도 세우지 마라"
그러기에 오리 정승은 우리에게 잊혀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월이 400년이 지났지만 오늘의 이 시대에 이원익 대감 같은
"정정 당당"했던 淸白吏(청백리)는 어디 에 있는지 묻고 싶다.
지금 시대에 李元翼(이원익) 政丞(정승) 같은 正正 堂堂(정정 당당)했던 분이 계시면 좋겠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