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실의(天主實義)》는 이마두(利瑪竇 Matteo Ricci)가 저술한 것이다. 이마두는 바로 구라파(歐羅巴) 사람인데, 그곳은 중국에서 8만여 리나 떨어져 있어서 개벽한 이래로 통교한 적이 없다. 명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야소회(耶蘇會.예수회) 동료인 양마락(陽瑪諾 Diaz Emmanuel),애유략(艾儒略 Giulio Aleni),필방제(畢方濟 Sambiasi Franciscus),웅삼발(熊三拔 Sabbathin de Ursis),방적아(龐迪我 Didace de Pantoja) 등 몇 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찾아와 3년 만에 비로소 도착하였다. 그 학문은 오로지 천주(天主)를 지존(至尊)으로 삼는데, 천주란 곧 유가의 상제(上帝)와 같지만 공경히 섬기고 두려워하며 믿는 것으로 말하자면 불가(佛家)의 석가(釋迦)와 같다. 천당과 지옥으로 권선징악을 삼고 널리 인도하여 구제하는 것으로 야소(耶蘇.예수)라 하니, 야소는 서방 나라의 세상을 구원하는 자의 칭호이다. 스스로 야소라는 이름을 말한 것은 또한 중고(中古) 때부터이다. 순박한 이들이 점차 물들고 성현(聖賢)이 죽고 떠나자 욕심을 따르는 이는 날로 많아지고 이치를 따르는 이는 날로 적어졌다. 이에 천주가 크게 자비를 베풀어 직접 와서 세상을 구원하고자 정녀(貞女)를 택하여 어미로 삼아서 남녀의 교감 없이 동정녀의 태(胎)를 빌려 여덕아국(如德亞國 Judea.유대국)에서 태어났는데, 이름을 야소라고 하였다. 몸소 가르침을 세워서 서토(西土)에 교화를 널리 편 지 33년 만에 다시 승천(昇天)하여 돌아갔는데, 그 가르침이 마침내 구라파 여러 나라까지 유포되었다. 대개 천하의 대륙이 5개인데 중간에 아세아(亞細亞)가 있고 서쪽에 구라파가 있으니, 지금 중국은 아세아 중 10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유태(猶太)는 또한 아시아 서쪽 나라 중의 하나이다.
야소의 세상에서 1603년이 지난 뒤에 이마두가 중국에 이르렀는데, 그 동료들은 모두 코가 높고 눈이 푸른색이며 네모진 두건에 푸른 옷을 입고 동자(童子)의 몸을 지키어 혼인을 한 적이 없었다. 조정이 벼슬을 주어도 배례(拜禮)하지 않았으며 오직 날마다 대관의 봉록을 지급받고 중국어를 익히고 중국책을 읽었다. 그들이 저술한 책이 수십 종(種)이나 되었는데,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를 관찰하고 역법(曆法)을 계산해 내는 오묘함은 중국에 일찍이 없던 것이다. 저가 머나먼 지역의 외신(外臣)으로서 먼 바다를 건너와 중국의 학사 대부들과 교유하였는데, 학사 대부들이 모두 옷깃을 여미고 높여 받들며 선생이라고 칭하고 감히 맞서지 않았으니, 그 또한 호걸스런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불교의 가르침을 극도로 배척하면서 자신들도 결국은 똑같이 황당무계한 데로 귀결된다는 것을 도리어 깨닫지 못하였다. 그 책에 이르기를, “옛날 서국(西國)의 폐타와랄(閉他臥剌.피타고라스)이라는 자가, 백성들이 거리낌 없이 악(惡)을 행하는 것을 통탄하여 윤회설(輪回說)을 만들어 내었는데, 군자가 단정하기를 ‘그 뜻은 좋지만 그 말은 하자가 없지 않다.’라고 하니, 그 설이 마침내 없어졌다. 그때 이 설이 홀연히 외국으로 누설되었는데 석가가 새로운 문호를 세울 것을 도모하면서 이 윤회설을 계승하였다. 한 명제(漢明帝)가 서방에 가르침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가서 구하게 하였는데, 사신이 중도에 인도(印度)로 잘못 도착하여 그 설을 가져다 중국에 전하였다. 사람들이 더러 전세(前世)의 일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마귀가 사람을 속인 소치이니, 이는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이후에 나타난 일일 뿐이다. 세계 만방의 생사는 고금이 다 같은데 석가 외에는 전생의 일을 한 가지도 기억하는 이가 없다.” 하였다.
중국의 선유(先儒)들도 이런 설을 주장하여 오직 고금이 다르다는 것으로 증거를 삼아서 세상의 꽉 막힌 자들도 오히려 깜짝 놀라 의심스럽게 생각하였는데, 이제 온 세상이 함께 허실을 조사하여 더욱 분명히 드러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인 한나라 명제 이전에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자들 중에는 천당과 지옥을 증명한 이도 없었으니, 그렇다면 어떻게 유독 윤회설만 그르고 천당지옥설은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일 천주가 백성을 불쌍히 여겨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서 간혹 말을 고해 주는 것이 일체 인간이 가르침을 베푸는 것과 같다면, 억만의 백성이 사는 세상에 사랑하고 불쌍히 여길 자가 어찌 한이 있겠는가. 그런데 한 명의 천주가 두루 다니면서 이끌고 깨우치려면 힘들지 않겠는가. 구라파 동쪽으로 구라파의 교훈을 듣지 못한 자에게는 또 어찌하여 천주가 자취를 드러내어 구라파에서 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지 않는가. 그런즉 여러 가지 기적 또한 상투적인 마귀의 술수에 빠진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또 달리 생각건대, 귀신은 음도(陰道)이고 사람은 양도(陽道)여서, 백성의 생활이 극도로 치열해지면 귀신의 자취는 점차 희미해지니, 이치가 그러한 것이다. 하루를 가지고 말하자면 밤은 음이고 낮은 양이니, 때문에 귀신은 밤에 나타나고 사람은 낮에 일한다. 크나큰 천하의 이치로 미루어 보더라도 이와 같다. 애초 사람들이 태어나기 전에 먼저 신(神)의 이치가 있었고, 사람이 태어난 뒤에도 알 수 없는 기괴한 일들이 많았음을 전기(傳記)에서 증험할 수 있는데, 오제(五帝)와 삼왕(三王) 시대에도 그 자취가 오히려 분명하여 속일 수 없다. 선한 자는 복을 받고 방종한 자는 화를 받아서 권면하면 따르고 징계하면 두려워하였으니,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에 보이는 허다한 내용은 분명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아니라 필연적인 응험이 있는 것이다.
지금 세상으로 말하자면 한창 정오의 밝은 세상에 해당하니 귀신의 이치 또한 이미 멀어졌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침내 이리저리 끌어대어 이르기를 “옛날에 상서(祥瑞)를 내리고 재앙을 내린다는 것은 단지 이치로 미루어 말한 것이지 애초 하나도 사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니, 고인이 또한 사실에 근거하여 말하였다는 것을 전혀 모른 것이다. 이는 다음 사례로 증명할 수 있다. 《서경》의 〈금등(金縢)〉은 주공의 글인데, 기도하여 선왕의 신령에게 재주 있는 자신을 선택하여 사역(使役)으로 부리기를 바랐으니, 그렇다면 결코 이런 이치만 있고 이런 응험이 없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갑자기 듣는다면 어찌 매우 의아하고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따져 보면 서양의 교화가 생겨난 연유도 대략 이해할 수 있다. 생각건대, 서양의 풍속도 차츰 투박하게 변해서 그 길흉의 인과응보에 대해 점차 믿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이에 천주경(天主經)의 가르침이 생겨났는데, 처음엔 중국의 《시경》과 《서경》의 말씀 같은 데 불과하였으나 사람들이 오히려 따르지 않을까 염려하였으므로 곧 천당과 지옥의 설을 보익하였다가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다. 그 후의 신령한 기적은 바로 저들이 말한 대로 마귀가 사람을 속인 소치에 불과하다.
대개 중국은 그 실제 자취만을 말하여서 자취가 사라지자 어리석은 백성이 믿지 않게 되었는데, 서국(西國)은 그 허황한 자취를 말하여 자취가 허황될수록 미혹된 자가 더더욱 미혹되니, 그 형세가 그런 것이다. 마귀가 이렇게 하는 까닭 또한 천주교가 이미 인심을 병들게 했기 때문이니, 마치 불법(佛法)이 중국에 들어온 연후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들이 천당과 지옥 및 전생의 일을 기억할 수 있게 된 것과 같다. 저 서양은 무슨 이치든 궁구하지 않은 것이 없고 깊은 이치도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오히려 고착된 관념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니,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