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557〉
■ 종이 이불 (신달자, 1943~)
신열이 아직은 산 증거라는 듯
시멘트 바닥이 그를 떠받쳐 든 채
오한에 떨고 있는 풍경 본다
사실은 끙끙 앓는 바닥을 덮어 주고 있는
누더기 육신
겨울 지하통로에 누워
종이 한 장으로 세상의 바람을 가리고 있는
종이 한 장으로 지나온 세월을 덮고 있는
관심사에 멀어진 의문의 흐릿한 기호 하나
오래전에 난청이 되어버렸지만, 그러나
지하의 바닥에서 밀고 올라오는 독한 바람과는 통하는지
그 소통 안에는 언 귀를 잡아당기며 쩔쩔 흔드는 손이 있는지
종이 한 장의 보온 기억을 되살리느라 발끝을 오므리지만
끌어안기도 전 적막은 압사처럼 그를 누른다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
영혼이 가는 곳으로 느리게 머리를 돌리고 있는 저 사람
버리지 않았는데도 지나가버리는 순간의 온기를 찾아
영혼은 푸른 숲의 고즈넉한 길을 헤매는 것인지
안갯속 낯익은 집 둘레에서 인기척에 갑자기
몸을 웅크리며 먼먼 온기를 목안으로 끌어 오고 있는지
누군가 이름을 부르고 싶은 것인지
죽은 듯 죽지 않은 입을 열었다 오므리고 있다
종이 한 장으로 깊고 깊은 겨울의 중심을 건너는 저 사람.
- 2011년 시집 <종이> (민음사)
*대도시의 기차역이나 지하철역 또는 지하도에는 노숙자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씻지를 않아 꼬질꼬질한 얼굴에 덥수룩한 수염이 제멋대로 자란 채 누더기같은 옷을 입고 아무렇게나 누워서 자고 있는 그들을 보면, 매우 안쓰럽고 불쌍하게 여겨져 무어라도 주고픈 마음이 들게 됩니다. 특히 한겨울인데도 찬 바닥에서 종이박스나 신문지를 깔고 누워있는 분들에게는 이 찬겨울을 무사히 잘 보내야 할텐데… 며 연민의 눈빛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는 건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노숙자들이 점차 증가해서 사람들이 모이는 웬만한 곳에서는 쉽게 눈에 띄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연민보다는 눈살을 먼저 찌푸리게 되고, 투명인간처럼 무심하게 지나치게 되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하겠습니다.
이 詩는 현대인의 이러한 행태와는 달리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자를 유심히 관찰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보내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한겨울 지하통로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종이 한 장에 의지하여 겨울을 견디고 있는 어느 노숙자를, 연민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심사에 멀어진 의문의 흐릿한 기호 하나’로 표현한 것처럼, 지나가는 사람들은 무관심한 채 제 갈 길을 재촉할 뿐 소외된 삶에 대해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않고 서로 유리되어 살아가는 게 현실입니다.
이러한 냉정한 현실 속에서도 시인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그들을 포용하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고 있군요. 순수함을 간직했던 그 예전의 우리들이 그랬듯이.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