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제발트 저자(글) · 이기숙 번역 · 최현식 감수
보누스 · 2024년 03월 27일
가톨릭의 역사와 전통을 집대성한 최고의 책
인류 역사에서 그리스도교의 전통은 서양 문명의 버팀목과 같았다. 2,000년 동안 다져진 가톨릭의 신앙적, 문화적 유산이 서양 문명 안에서 새롭게 꽃피고, 재창조되면서 인류의 양식이 되었다. 이는 어쩌면 ‘가톨릭’이라는 말이 ‘두루 따르는, 모두를 포함한, 보편적인’이란 뜻을 지닌 고대 그리스어 카톨리코스에서 유래했다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편적인 진리로 인류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전 세계 10억이 넘는 인구, 다시 말해 현존 인류의 6분의 1이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아시아권에서 상당한 입지를 지닌 불교와 한국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던 개신교가 각각 전 세계적으로 4억이 채 넘지 않는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이 책은 바로 그 가톨릭이 2000년이라는 엄청난 세월 동안 만들어낸 역사와 전통을 꿰뚫고 있다. 또한 단지 신앙인만을 위한 가톨릭 안내서가 아니라 서양 문명의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추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그리스도교의 보물과 유산이 언제나 우리에게 ‘도전’이라고 말한다. 즉 “편협해진 우리의 현실 감각에 대한 도전이고, 낮은 곳에서 정신세계로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신성의 아름다움이 주는 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의 사유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서양 문명과 인류 문명의 원류를 짚어보는 데 중요한 도전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책
이 책의 저자 페터 제발트는 본래 사제가 되려고 했으나 젊은 시절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실 문제에 몰두하면서 오랫동안 그리스도교와 거리를 두었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 책의 머리말을 자신이 그리스도교 사상에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그는 왜 먼 길을 걸어 되돌아오게 되었을까? 중요한 점은, 그가 항상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천착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리스도교 문화가 “인류의 근원적 지식과 고대의 유산만 전해준 것이 아니라 유례없는 영적 전통”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은 “낮과 밤을 위한 전통이었고, 탄생의 순간부터 영원의 문턱에 이를 때까지 지켜야 할 전통”이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 문화가 인간 삶의 근간을 형성해왔다는 것이다. 근세 이후 이성의 시대를 건너오면서 많은 사람은 종교란 비이성 혹은 반이성적이며 근대문화 발전에 근본적으로 걸림돌이 된다고 믿어왔다. 정말 그런가?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성은 어디에 있을까? (…) 라파엘로는 그의 유명한 프레스코화에서 아테네 학당과 성체 논의를 대비시켰다. 한쪽에는 소크라테스와 피타고라스, 자신이 저술한 『윤리학』을 손에 든 아리스토텔레스가 있고, 맞은편에는 대주교와 예언자와 사도와 교부들이 있다. 그러나 대립의 관점이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이 경쾌하게 공간을 거닐며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자신, 젊은 시절 이성을 근간으로 한 ‘회의론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회의론자에게든 무신론자에게든 신앙인에게든-그 많은 사람 속에는 ‘예수를 경멸하는 이들’ 가운데 ‘사려 깊은 이들’도 포함될 것이다-공통적 화두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이 책은 그 화두를 틀어쥔 모두를 위한 책이다.
인류의 문화 유산에 짙게 남아 있는 그리스도교의 문화 자취들
굳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세상에 어떤 것도 그냥 존재하게 된 것은 없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현재 존재하는 “우리에게 삶의 동력을 공급하는 전원에 접속”하고 싶어한다. 저자는 “유럽 대륙에서 어느 방향으로 어느 만큼의 거리를 가든지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증거물을 만난다. 성당들과 경당들, 순례자의 길들과 풍습들은 유럽이 그리스도교에 맞서 자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통해 세워졌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는 단지 그 전통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삶의 동력을 공급해왔던 걸까? 그렇지 않다. 오늘날 세계는 서양과 동양, 대륙과 대륙이 소통하며 상호 텍스트적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모차르트와 바흐를 좋아하고 뒤러와 미켈란젤로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교에 감화된 문화유산을 누리는 것이다. 달력을 보는 사람도 필연적으로 그리스도 탄생 이후의 날들을 센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보편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유산 속에서 노닐고 있다는 것이다-해마다 젊은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밸런타인데이가 실은 성 발렌티노 주교가 자신의 활동지였던 이탈리아 도시 테르니에서 매년 2월 14일에 수백 명의 약혼한 연인들과 함께 성대한 꽃축제를 벌인 데서 비롯되었으며, 밸런타인데이에 결코 빠질 수 없는 달콤한 초콜릿이 남미의 한 수도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실생활에서 그리스도교의 크고 작은 유산 속에서 노닐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인간의 삶은 가변적이고 찰나적이며 때로 무질서하다. 그리스도교의 유산과 함께 노닌다는 것은 그런 인간 삶에 불변(혹은 영원)성과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시몬느 베유는 “현재에 머물기 위해서는 영원을 탐구해야 한다”라고 했고, 카를 바르트는 “손을 모아 기도하는 것은 세계의 무질서에 대한 저항의 시작”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리스도교의 유산 속에는 십자가의 이름으로 행해진 치욕스런 오류와 범죄의 역사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교의 막대한 유산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재산을 물려줄 숙모 집에서 편히 살면서 그 집을 경멸하는 것과 똑같다”라고 저자는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