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 영화 '탑 건'(1986)과 '배트맨 포에버'(1995) 등으로 낯익은 할리우드 배우 발 킬머가 예순다섯 살,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딸 메르세데스가 1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에서 폐렴으로 고인이 숨을 거뒀다고 미국 언론들에 밝혔다. 딸은 부친이 2014년 후두암 진단을 받았지만 나중에 완쾌했다고 다음날 영국 BBC에 설명했다.
고인은 톰 크루즈와 신경전을 펼치는 전투기 파일럿 아이스맨으로 속편 격인 '탑 건 매버릭'(2022)에도 다시 등장해 관객들을 놀래켰다.
미국 배우 조시 브롤린은 킬머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봐라, 친구야, 난 네가 그리울 거야"라고 적은 뒤 "당신은 똑똑하고 도전적이며 용감하고 창의적으로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모두 태워버려) 남겨놓은 것이 많지도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2021년 그는 자신의 삶과 경력에 좋았던 시절과 나빴던 시절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발'을 칸 국제영화제에서 발표했는데 40년 동안 촬영한 홈 비디오 동영상들, 특히 암 수술 이후 후두로 얘기하는 모습도 담겨 있었다.
1959년 12월 31일 발 에드워드 킬머로 태어난 그는 LA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났다. 부모는 기독교도 과학자였는데 킬머는 여생 내내 부모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했다. 열일곱 살에 벌써 세계 최고의 음악 영재 학교인 뉴욕 줄리어드에 입학한 가장 나이 어린 학생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린 작품은 코미디 영화 '특급 비밀'(Top Secret! 1984)와 '21세기 두뇌게임'(Real Genius 1985)이었다. 그러다 '탑 건'의 매버릭(크루즈)과 앙숙인 아이스맨 역할로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그는 팬터지물 '윌로우'(1988)와 범죄 스릴러 '나를 두 번 죽여라"(Kill Me Again 1989)에 출연했는데 이 때 영국 여배우 조앤 웨일리와 사귀어 1988년 결혼했다. 유족으로 웨일리와의 소생인 두 자녀를 남겼다.
록 그룹 도어즈의 리더 짐 모리슨 사후 20년에 '도어즈'(1991)에서 그를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써 역동적이고 다재다능한 재질을 증명했다. 영화 '툼스톤'(1994)에서는 닥 홀리데이 역을, 영화 '히트'(Heat)에서는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와 함께 연기했는데 상당한 흥행을 기록했다.
그 뒤 '배트맨 포에버'(1995)에서 마이클 키튼으로부터 배트맨 망토를 넘겨받아 역시 흥행에 성공했지만 평단의 반응은 엇갈려 결국 킬머는 다음 배트맨 영화에서 제외됐다. 1997년에 킬머는 레슬리 차터리스 원작 소설들에 근거한 범죄 천재이자 위장의 달인을 연기한 TV 시리즈 '더 세인트' 주인공을 맡았는데 1960년대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 로 발탁하게 만든 캐릭터였다.
또 말론 브란도와 '닥터 모로의 DNA'(The Island of Dr Moreau)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최대 용두사미 작품을 악명이 드높아 감독 존 프랑켄하이머가 킬머야 말로 촬영하는 데 가장 까다로운 상대라며 더 이상 그와 작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히트'의 감독 마이클 만, 배우 조시 가드와 제임스 우즈, 영화 '마인드헌터'(2004)에서 고인과 함께 연기한 윌 켐프, 연예전문 기자 K J 매튜스 등이 추모 열기에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