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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有感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가을이 또 어김없이 왔다.
지난여름은 그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북경 올림픽 열기로 전 국민이 환호하며 지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문이다 뭐다 해서 시끄러웠던 여러 가지 국내외 상황을 뒤로하고, 모두들 TV 앞에 모여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전 국민은 열광했다.
올림픽이 열릴 때쯤 체육회 수장의 교체 등 체육계 대내외적으로 잡음도 많았고 1010 목표는 세웠지만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막상 뚜껑을 여니 정말 우리 선수들 모두가 눈물겹도록 열심히 경기에 임했고 기대 이상의 성과도 얻었다. 물론 스포츠는 메달의 색깔이나 개수에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금 13개, 은 10개, 동 8개로 종합 7위란 결과만 보더라도 기분이 좋은 것만은 사실이다.
특히 대중적인 스타의 시대에 많은 선수들이 메달과는 관계없이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로 떠올랐고 받는 사랑만큼 선행도 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니 기분이 참 좋다.
예전에는 독재국가에서 국민을 호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3S라 하여 스포츠를 정치적 도구의 하나로 이용했으나 요즘의 세대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만 주면 스포츠 선수들이 프로 아마추어를 막론하고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 스타가 된다.
수영 자유형 금메달의 박 태환 선수나 배드민턴의 이 용대 선수, 2위까지 갔으나 다리에 쥐가 나 넘어지면서도 바벨을 놓지 않았던 역도의 이 배영 선수, 세계기록을 5차례 갈아치운 역도의 장 미란 선수, 5연속 한판승의 사나이 유도의 최 민호 선수, 기관지 파열이 될 때가지 혈투를 벌인 권투의 백 종섭 선수 등은 물론, 퍼펙트 골드의 신화를 쓴 야구대표팀, 다시 우생순의 영광을 재현한 여자 핸드볼 팀 등 정말 많은 선수와 팀이 우리를 열광시켰고 감동을 주었다.
올림픽이 끝난 요즘에도 많은 선수들이 TV의 각종 프로그램에 나와 그날의 흥분을 재현하고 있고 방송사에서는 앞 다투어 그들을 초청하고 있다. 다소 과열되게 말이다. 물론 인기 있는 선수들이 방송에 나와 여러 가지 흥밋거리를 제공하고 그를 보는 시청자들도 모두 재미있어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들의 순수하고 순박한 태도에 반하기도 하고 꾸밈없는 모습에 환호한다.
그러나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에서 대외홍보 담당관으로서 양궁을 접했고 또 월드컵 유치활동을 2년 동안 하며 알게 되었던 축구, 그리고 어느 한 기업을 통해 비교적 깊이 관여하였던 핸드볼 등 여러 경기단체에 대한 경험도 많고 또 각종 스포츠를 무척 좋아하는 나로선 매번 올림픽이 끝날 때마다 어떤 회한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회한은 거의 매번 똑같다.
대대적인 환영행사, 메달을 딴 선수들과 실패한 선수들의 명암, 매스컴의 과도한 관심과 선수에 대한 열기, 비난과 찬사 등등 매번 똑같다. 언젠가 여자하키가 좋은 성적을 거두니까 당장 팀을 더 만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협회장이나, 기초종목이면서 취약종목인 육상과 수영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발표 등등도 조금 지나면 이내 시들해져 없어진다. 바로 ‘냄비’인 것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가까운 일본의 예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야구에서 노메달에 그친 일본은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전야구인들이 모여서 앞으로의 대책을 마련, 내년에 있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대비하고, 감독이었던 호시노는 소위 ‘반성리포트’를 쓰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일본은 ‘나가시마 저팬’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고 나서 2006년 제1회 WBC를 준비하였고 ‘사다하루 저팬’이 2006년 WBC에서 우승하고 나서 바로 북경올림픽을 준비했다. 결과가 어쨌든 그들은 아주 깊이 있고 차분하게 차근차근 준비를 오래 한다. 그것도 거국적으로. 협회는 협회대로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팬(국민)들은 팬대로. 오히려 올림픽에서 참패한 호시노 감독을 두둔하고 격려하려는 공감대가 훨씬 강하다. 물론 호시노를 일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난 것보다는 ‘앞으로’를 더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두의 중심에는 절대적인 스포츠 관중의 성원과 관심, 관련단체나 관계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다. 스포츠 과학이면 과학, 스포츠 마케팅이면 마케팅의 노력이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올림픽 야구 금메달의 결과로 연일 프로야구 경기는 만원사례를 이루고 있는데 8강에도 못 든 축구는 K리그 관중이 급감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나마 축구는 그런대로 괜찮다. 다른 구기 종목은 훨씬 더 하다.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 훌륭한 성적을 꾸준히 거두고 있는 핸드볼이나 하키 경기장에는 관중이 거의 없다. 요 며칠 그래도 문제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는(?) 어느 방송에서 올림픽 후에 핸드볼 열기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데 실업대회 개최 장소가 지방 소도시의 작은 체육관에서 열리고 있으니 어떻게 관객들이 찾아갈 수 있겠느냐는 리포트를 보도한 적이 있다. 핸드볼의 열기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일면 맞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다. 팬들이 열의만 있으면 개최 장소에 구애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협회로서도 그런 생각을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관객이 없고 수입이 없으니 큰 도시의 큰 체육관을 대여할 수도 없는 일일게다.
이것은 선수나 팀의 전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소위 비인기 종목(그렇게도 올림픽에서는 열광하는 인기 종목이지만)이니까 초등학교에서 중고교, 중고교에서 대학이나 실업팀이 점점 줄어들어 현재 여자대학 4팀, 남자대학 11팀, 실업여자 6팀, 실업남자 5팀 밖에 없다. 선수도 성인남녀 통틀어 400여명 남짓이다. 그리고 실업팀도 대부분 지자체나 체육회 팀들뿐이다. 그러니 한마디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운동을 하는 셈이고 그러니 세계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마다 신화니 기적이니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그들을 찾아가 핸드볼 경기를 봐야 한다. 마치 프로야구에서 롯데의 골수팬들이 연고지나 지역을 불문코 찾아가서 경기를 보고 응원하는 것처럼.
지금 ‘우생순’의 30대 중,후반 아줌마 주인공들이 막 국가대표가 되었을 때쯤 그러니까 17,8년 전 나는 핸드볼 경기장에 자주 갔었다. 가보면 종별이나 전국규모의 대회가 열리는 핸드볼 경기장에 정말 관객이라곤 나를 비롯한 십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대부분 무료입장객이다. 정말 경기는 TV로 보는 것보다 박진감 넘치고 보는 재미가 쏠쏠 하지만 선수도 그렇고 관객도 그렇고 도무지 신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핸드볼 경기를 보고 나면 꼭 소주를 마셔야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빈곤은 여전하다. 관객이 없으니 재정이 어렵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그나마 선수나 팀도 부족하고 중계도 안 되고 관심이나 호응도 없고 마케팅도 할 수 없고 정말 빈곤의 악순환이다.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다음 협회 집행부가 대기업이란다. 물론 기업의 규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고 관심과 지원이 더 중요하지만 그래도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관중을 흡입할 수 있는 마케팅을 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포츠 마케팅은 중요하다. 또 일본의 예를 들어 그렇지만 일본 축구가 그렇다. 6,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와 일본 대표 팀 간의 야구는 거의 10대 0 수준이었지만 축구는 반대로 10대 0의 우위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보다 1년 먼저 프로축구 'J리그‘를 출범시켰다. 물론 그때까지 우리보다 명확히 우위에 있던 일본야구의 역사는 훨씬 오래 되었지만 축구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만 프로리그에서는 선두를 빼앗기고 말았다.
야구는 미국이 1876년 내셔널 리그를 창설하여 132년이란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일본도 ’일본 야구의 아버지‘라 불리던 요미우리의 쇼리키에 의해 1934년 12월 ’요미우리 자이언트‘가 처음 창단되면서 35년 ’한신 타이거즈‘를 비롯하여 총 7팀이 창단, 1936년 첫 프로리그를 출범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1982년 출범되었으니까 우리보다 46년 전 일이고 벌써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축구만큼은 우리보다 훨씬 뒤처진 아시아의 변방이었던 일본이 우리보다 1년 먼저 1993년에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쳐 프로축구리그인 ’J리그‘를 출범시켰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는 치밀한 마케팅으로 일본프로야구를 능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일본축구가 우리와 대등한 아시아의 맹주로 성장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일본 야구의 아버지라는 쇼리키와 요미우리 자이언트, 일본 축구 ‘J리그’와 우리나라의 ‘K리그’ 출범에 관해 내가 경험한 많은 얘기들이 있지만 이것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글로 남기고 싶다.)
물론 이런 긴 역사를 가진 나라들을 물리치고 우승을 할 만큼 우리의 야구도 많이 발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저변에는 그래도 타 구기종목보다 많은 팬들과 관중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스포츠에서 관객과 마케팅, 경기력과 스포츠 과학은 상관관계가 있고 중요하다. 하긴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스포츠 마케팅에서도 일본의 예를 든다는 것이 어쩌면 적절하지 못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보다 이 분야에서 훨씬 깊고 오래된 경험과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라면 잘 알고 있지만 예전엔 ‘ISL'이란 국제 스포츠 마케팅 전문회사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나는 월드컵 유치를 위해 세계 각국을 다니며 일본과 치열한 유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벅찬 일이었지만 그땐 정말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유치활동을 하던 어느 날 미국의 한 호텔에서 난 ‘ISL'이란 마케팅 회사를 찾아가 보라는 명을 받고 사무실을 찾아 갔다. 그런데 사무실에 온통 일본인들이 앉아 있어서 내가 일본월드컵 유치위원회 사무실로 잘못 찾아간 줄로 착각하고 순간 당황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ISL'은 일본 덴츠와 독일 아디다스가 합작한 세계적인 스포츠 마케팅 회사로 스포츠의 양대 산맥인 IOC와 FIFA의 모든 마케팅을 대행하고 있었다. (ISL을 몇 년 전 없어졌다.) 그래서 당시 FIFA회장이었던 아벨란제 회장을 비롯한 국제축구계 거물들은 모두 암묵적으로 또는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지하고 있었다. 마치 게임에서 심판진은 물론 경기운영진 모두를 같은 편에 둔 상대방과 경기를 하는 양상이었다. 열심히 뛰고 아이디어 내고 활동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즉, 몸과 가슴과 머리는 있었지만 어딘지 그것만으론 부족하고 상황이 주눅 들기에 십상이었다.
그래 한국에 돌아와서 당시로선 정말 생소한 단어인 ‘스포츠 마케팅’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뭘 알아야 면장을 하지’란 생각이 들었고 그래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읽어보고 분석을 해 보았다. 지금 같으면 인터넷 검색창에서 단어 하나만 치면 수십 수백 개의 정보가 뜨지만 그때만 해도 정보 수집을 위해 웹스터 사전, 외국 스포츠 잡지 등을 뒤져 보는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정보 수집처가 도서관이고 청계천 헌책방 등이었다. 그래 항목별로 약 50페이지의 리포트를 만들었는데 물론 그 리포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제출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아주 기초적인 것이지만 그때만 해도 기본 지식을 알고 싶은 욕망과 일본에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속으론 아주 뿌듯했다. 물론 조금 알고 나니까 더 불안하기도 했었고. 결국 2002년 월드컵 유치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지만 상황적으로 보면 정말 최선을 다한 기적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스포츠 마케팅을 얘기 하냐면 결국 스포츠는 관중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관중을 흡입할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선수와 팀뿐만 아니라 관련 단체 및 마케팅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수들은 피나는 노력을 하는데 나머지 부분이 허술하고 또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만 일을 처리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절적인 ‘냄비’가 문제인 것이다.
‘우생순’의 여자 핸드볼을 보더라도 얼마나 선수층이 얇으면 올림픽에 몇 번 씩 출전한 아줌마 부대가 아직도 선수로 뛰고 있을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도 올림픽에서 매번 신화를 쓸 수 있는 이유는 오직 선수의 노력과 오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언한다. 썰렁한 경기장에서 매 번 시합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보다는 다른 걱정을 더 해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오직 올림픽이 살 길이고 돌파구인 것이다.
이번 여자 핸드볼 대표 팀이 훈련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스포츠 과학 팀이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서구 선수들을 상대로 기술적인 면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체력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나도 아주 오래전에 남녀 핸드볼 대표 팀을 이끌고 홍콩에서 열린 국제대회를 간 적이 있었는데 100Kg에 육박하는 서구선수들하고 부딪쳐 넘어지면 ‘마치 바위 덩어리가 몸에 부딪히는 느낌이 든다.’고 여자 선수들이 말한 기억이 난다. 이렇듯 체력의 열세는 분명한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하는 훈련으로 남자 고교 선수들하고 시합을 하기 전에 경기장 달리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 달리기는 시간제한이 없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리는 것이다. 대개는 나이 많은 선수들이 먼저 쓰러지고 젊은 선수들이 오래 달린다. 다 쓰러진 다음 바로 남자 고교 선수들과 전반전을 뛰고 그 다음 달리기를 계속한다. 다 쓰러지면 다시 후반전을 뛰고 후반전이 끝나면 다시 쓰러질 때까지 달리는 훈련이었다. 이런 혹독한 훈련을 하니까 그나마도 올림픽에서 기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왜 꼭 우리 선수들은 아슬아슬하게 이기거나 억울하게(?) 지는 것일까? 왜 꼭 우리는 기적을 이루거나 신화를 쓰는 것일까? 이것은 바로 스포츠에 있어서 우리(관중)들이 책임져야할 몫인 것이다. 격투기 선수들 대부분이 귀가 망가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몸은 멍이 안든 데가 없다. 그야말로 ‘상처뿐인 영광’인 것이다.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지속적인 성원과 관심과 격려를 우리는 해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주 기본적으로 그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직접 찾아가 보고 응원해 줘야 하는 것이다. 꼭 올림픽이나 국제경기가 아니더라도 경기장에 찾아 가야 한다. 물론 협회는 협회대로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과학적이고 치밀한 마케팅을 해야 한다.
그래야 매번 똑같이 되풀이 되는 ‘냄비’가 없어지고 진정한 스포츠 강국으로 생활체육의 강국으로 거듭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열정이 충분히 있다고 확신한다. 4년 후 런던올림픽이 끝나고 우리의 국민성과 연관된 이런 유의 똑같은 푸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날을 기대해 본다.
(앞에서 언급한 ‘냄비’는 결코 우리 자신을 비하하거나 평가 절하하려는 의도에서 언급한 것이 아니다. 한국인인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 사회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냄비’ 현상을 알아야 한다. 아주 최근에 실체도 없는 ‘9월 위기설’ 때문에 시장에서 무려 약 100조원을 날린 예를 우리는 차분하게 되짚어보고 겸허하게 음미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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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만이다. 모두들 즐겁고 알찬 추석을 지내길 바란다.
기훈사장님 새로 시작한 사업은 본 궤도에 올랐는지요.. 언제나 씩씩한 염사장의 모습이 동문들에게 큰 용기를 주네요.. 냄비(?) 난 냄비 좋아해요 ㅎㅎ 농담!
有感이라~ ㅎㅎㅎ 세상 편히 사는데는 無感이 더 좋지 않겠냐? 모처럼 기훈이 글에 댓글 달아주니 기분이 좋구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