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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반짝초단’은 ‘반짝스타’? 신예들의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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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태일의 랭킹칼럼 1편 : 속기가 한국바둑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가? ☜ ○● 배태일의 랭킹칼럼 2편 : 속기에 강한 기사가 장고바둑도 잘두는가? ☜ ○● 배태일의 랭킹칼럼 3편 : '장고바둑'에 강한 기사가 '국제기전'에서도 강하다 ☜ ○● 배태일의 랭킹칼럼 4편 : 청년기사여, 장고바둑을 많이 둬라 ☜ ○● 배태일의 랭킹칼럼 5편 : 왜 장고바둑을 두어야 하나 (최종편) ☜ ※ 배태일박사의 랭킹 칼럼은 사이버오로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들어가는 말 필자는 5월30일에서 6월16일에 걸쳐 사이버오로의 기획/특집으로 “속기와 한국바둑의 국제 경쟁력”이라는 주제로 5회의 칼럼을 연재했다. 주요 내용은 “상대적으로 속기에 강한” 속기형 기사들이 있고, “상대적으로 장고바둑에 강한” 장고형 기사들이 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상대적으로 속기에 강하다”는 것은 장고바둑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강동윤의 경우 2010,11년의 대국을 속기와 장고바둑으로 나누어 점수를 매기면, 속기에서는 이세돌 다음으로 2위인데, 장고바둑에서는 11위이다. 순위 11이면 상위이고, 따라서 강동윤이 장고바둑에도 강한데, 그 자신의 속기 실력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장고 바둑에 약하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장고 바둑에 강한 기사”라는 표현이 번거로우므로 “장고형 기사”라고 부르고 그와 대칭되는 기사들을 “속기형 기사”라고 부르기로 하자. (장고파 기사는 대국할 때에 장고하느라고 주어진 제한시간을 거의 다 쓰는 기사를 일컫고, 속기파 기사는 반대로 빨리빨리 두어서 주어진 제한시간을 많이 남기고 바둑을 끝내는 기사를 일컫는다.) 속기형 기사들은 20대 초반에 랭킹점수가 정점에 이르고 그 이후에는 뚜렷하게 늘지 않고, 이에 대조적으로 장고형 기사들의 랭킹점수는 25세가 지나도 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기사들의 실력 향상과 한국바둑의 국제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속기형 기사들의 분포를 보면, 2000~04년 입단자들 중에서 비율이 높아서 지난 연구에서는 이들의 점수 변화를 자세히 분석한 바 있다. 이번에는 2006년에서 2009년 사이에 입단한 기사들의 점수 변화를 입단 연도별로 분석했는데, 필자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더 발견했다.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2006년 이후에 입단한 신예기사들의 실력이 도대체 늘지 않는다. 이들의 실력은 20세가 채 되기 전에 성장이 멈췄다, 는 사실이다. 이들의 랭킹점수 변화를 보고 있으면 한창 자라야 할 나이의 소년이 마치 성장 호르몬이 부족해 성장을 멈춘 것을 본 것 같은 비애를 느낀다. 이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한국기원과 프로기사들뿐 아니라 바둑도장과 바둑기자들과 아마추어 바둑인을 포함한 바둑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자료 분석 먼저 2006년에 입단한 기사들의 점수 변화를 [그림1]에서 살펴보자. 이 해에 입단한 기사들은 박정환, 김승재, 고주연, 박지연, 윤찬희, 박승화, 조경호, 최기훈인데, 점수가 아주 낮은 조경호, 박지연, 고주연은 이 그림에서 제외하였다. 이 그림에서 보면 박정환의 점수가 많이 늘어 왔는데, 그는 지난 6월 랭킹에서 이세돌을 제치고 1위에 올랐고 국제대회인 후지쓰배에서 우승한 최상위 기사이다. 박정환 이외에, 입단 후에 실력이 는 기사가 김승재인데, 그도 2009년 겨울 이후에는 늘고 있지 않다. 즉 김승재는 만17세 이후에 실력이 늘지 않고 있다. 최기훈의 점수가 늘고 있는 편인데, 그의 점수는 아직 9200점 이하이다. 한상훈은 2006년 12월에 입단하여 프로생활 첫해인 2007년에 한국리그 본선에 뽑혔고, 왕위전 4강, 오스람배 본선, 삼성화재배 본선에 올랐으며, LG배에서는 결승에까지 진출해 “괴물 초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처럼 눈부신 활약 덕분에 많은 기대를 받았는데, 지금까지의 활약상으로 보면 안타깝게도 2007년이 그의 전성기였고, 괴물 초단은 ‘반짝 초단’으로 끝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2006년도 입단자 중에서는 박정환만 예외이고 나머지는 실력이 늘고 있지 않다. 다음으로 2007년 입단자들의 점수 변화를 [그림2]에서 살펴보자. 이 해에 입단한 기사들은 강유택, 김진훈, 이슬아, 이태현, 김윤영, 이원도, 류동완, 이현호, 이춘규, 김현섭이다. 이들 중에서 김진훈, 이슬아, 김윤영은 점수가 낮아서 제외하였고, 이춘규, 김현섭, 류동완은 2007년 12월에 입단하여서 2008년부터 프로 대국을 가졌으므로 2008년 입단자들의 분석에 포함했다. [그림2]에서 강유택만 입단 후에 점수가 늘었는데, 2011년 가을 이후에는 점수가 내려가고 있다. 그는 1991년 11월 생이므로 만20세가 되기 전에 성장이 멈췄다. 요즈음 기풍을 바꾸고 있기 때문에 성적이 나빠졌다는 기사가 있는데, 다시 성적이 좋아지기를 바란다. 어쨌건 강유택 이외에는 실력이 늘고 있는 기사가 없다. 이제 2008년도 입단자들의 점수 변화를 살펴보자. 이 해에 입단한 기사들은 한웅규, 안형준, 김세동, 이호범, 문도원, 안성준, 김미리, 황진형, 강창배, 박시열이다. 이 중에서 문도원과 김미리는 점수가 낮아서 제외하였고, 2007년 12월에 입단한 이춘규, 김현섭, 류동완을 포함했다. 기사들의 숫자가 많으므로 점수에 따라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점수 변화를 그렸다. 류동완은 입단 후 2008년에 매우 좋은 성적을 내서 랭킹점수가 높게 나왔었는데 그 후로 그의 랭킹에 비해 성적이 매우 나빠져서 랭킹위원회의 골치거리였다. 이 때문에 입단 후에 30국 이상을 대국하면 정규점수를 주는 규칙을 개정해서 50국 이상을 두어야 정규점수를 얻게 했다. 한웅규는 입단 다음해에 네 기전(한국바둑리그, 물가정보배, 천원전, 비씨카드배)에서 본선에 올라갈 정도로 활약했고, 높은 랭킹에 진입해서 기대를 많이 받았는데, 반짝 초단으로 끝나고 점수가 내려가고 있는 추세를 보인다. 안형준은 2010년 초에는 랭킹 15위까지 올라갔었는데, 그 후로 점수가 내려가서 반짝 초단이 되었고, 그의 동생 안성준보다 점수가 낮아졌다. 이 그룹에서 제일 낮은 점수에서 시작한 김세동의 점수가 예외적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라면 머지 않아 김세동이 이들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림4]에 2008년 입단자 중에서 점수가 낮은 그룹의 점수 변화를 그렸다. 이춘규와 박시열의 점수는 입단 후에 내려가는 추세이고, 이호범이 입단 후에 점수가 좀 올랐으나 그나마도 2011년 이후에는 늘고 있지 않다. 황진형과 김현섭의 점수가 늘다가 그쳤는데, 이들의 점수는 워낙 낮아서 이야깃거리가 못 된다. 이제 2009년도에 입단한 기사들의 점수 변화를 살펴보자. 이들은 안국현, 김정현, 이형진, 이원영, 김기원, 류민형, 허진, 장건현, 김혜림, 김나현이다. 허진은 9000점 이하인데 늘지 않고, 장건현은 8800점 이하에 머물고 있어서 다음 [그림5]에 포함하지 않았다. 두 여자기사 김혜림과 김나현의 점수도 낮아서 [그림5]에 포함하지 않았다. 안국현은 한국바둑리그의 단골멤버이고 작년에 농심신라면배에도 뽑혀서 많이 알려졌는데, 그의 점수는 별로 늘고 있지 않다. 그가 2011년 2월에 9315점으로 정규점수를 처음 얻었는데, 금년 6월 점수가 9342점으로 겨우 27점이 늘었다. 류민형은 점수가 제일 낮은데 늘지도 않고 있으며, 이형진은 군대에 갔는지 작년 8월 하순 이후로 대국이 없다. 김정현은 점수가 올라가다가 금년 1월 이후로 점수가 내려가고 있다. 김기원은 2011년에 점수가 100여 점 올라갔는데 2012년 들어서 점수가 내려갔다. 이원영만 점수가 늘고 있다. 2010년 이후의 입단자들은 아직 프로생활이 짧아서 그들의 점수 변화를 보고 추세를 논의할 만큼 시간이 경과하지 않았으므로 이들의 점수 변화는 조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설명한 기사들의 점수 변화를 [표1-1, 1-2]에 요약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극히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2006~09년에 입단한 기사들은 입단 후에 점수가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고 있고, 점수가 는 경우에도 입단 후에 잠시 점수가 늘다가 그치고 말았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최근에 입단한 기사들 중에서는 입단 전에 오픈기전의 본선에 오른 기사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 오히려 입단 후에는 본선에 올라가는 율이 낮은 것 같다. 이제 ‘반짝 초단’이란 말에 더해서 “반짝 연구생”이라는 말을 써야 할 지경이 되었다. 왜? 나이를 먹어 입단해서? 왜 그럴까? 입단 병목현상 탓에 입단 나이가 늦어져서 그런가?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이들 중에서 김승재는 14세에 입단했고, 그 외에 15,16세에 입단한 기사들도 있고, 강창배만 빼고는 다 20세 이전에 입단했다. [그림6]에서 2006년에서 2009년 사이에 입단한 몇 기사들의 나이에 따른 점수 변화를 살펴보자. 이들의 만 입단 연령을 살펴보면, 김승재 14세, 강유택 15세, 김진훈 16세, 이호범 16세, 김기원 15세, 안국현 17세, 한웅규는 17세에 입단했다. 이들은 결코 늦은 나이에 입단한 것이 아닌데 만20세 이전에 발전이 그쳤다. 김기원은 아직 20세가 넘지 않았고, 입단 직후에 “내 라이벌은 박정환”이라고 말했지만 지금의 추세로는 20세까지 많이 늘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입단 연령과 실력의 관계를 보기 위해서 1992년 출생 기사들의 점수 변화를 [그림7]에 그렸다. 일찍이 2006년에 입단한 김승재의 점수가 2008년에 입단한 안국현, 2009년에 입단한 이원영, 2010년에 입단한 이지현의 점수와 비슷하다. 현재의 점수로만 따진다면 김승재가 일찍 입단한 이점이 전혀 없다. 이호범은 2008년에 16세의 나이로 입단했는데, 더 늦게 입단한 동료들보다 낮은 점수이고, 2010년에 입단한 박준석과 함께 하위 그룹을 이루고 있다. 이호범 말고도 김진훈이 2007년에 16세에 입단했는데 거의 5년이 지나서 금년 6월에 그가 얻은 점수는 8802점으로 매우 낮다. 김기원은 만15세에 입단했는데 금년 6월 점수가 9144점으로 낮은 편이다. 종합과 결론 이 글에서 발표한 분석의 결과를 종합해 보고 문제점들을 생각해 보자. 첫째, 2006년에서 2009년까지 입단한 기사들은 소수의 예외(박정환, 이원영, 김세동)를 제외하고는 20세 이전에 점수의 성장이 멈췄다. 감수성이 예민할 때에 입단하여 프로기사들과 대국하면 바둑이 빨리 늘 것인데, 입단 병목현상 때문에 나이가 많아질 때까지 고만고만한 원생들과만 대국하다가 늦게 입단하기 때문에 바둑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그것이 유일한 이유일까? 둘째, 그런데 15 또는 16세에 입단한 기사들이 낮은 점수로 시작해서 (별로 늘지도 않아서) 나중에 입단한 또래의 기사들보다 오히려 점수가 낮은 편이다. 왜 그럴까? 실력이 낮은 데도 운이 좋아서 일찍 입단했는데, 입단 후에는 프로 새내기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실력이 별로 늘지 않고 이에 비해 원생으로 남아있는 동료들은 혹독한 훈련을 받아서 실력이 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새로 입단한 기사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야 하고 지금처럼 입단 후에는 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방치하면 안 될 것이다. 또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15,16세에 입단해도 늦은 것이고 13,14세 또는 그 이전에 입단해야 실력이 빨리 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일찍 입단 시킬수록 이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다. 입단 나이가 늦거나 빠르거나 관계 없이,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90년대 출생 기사들이 20세 이전에 실력 상승이 멈추는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에 비해서 80년대 출생 기사들은 속기형 기사라도 20대 초반까지 실력이 늘었고, 장고형 기사들은 25세가 넘어서도 실력이 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90년대 출생자들이 자랄 때 바둑계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인터넷 바둑사이트들이 속속 생기면서 초속기가 범람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 박정환과 나현은 90후 세대 기사들이지만 바둑이 늘고 있지 않느냐고? 항상 예외는 있게 마련이다. 아니면 이세돌이 말한 것처럼 획일적인 바둑교육이 창의성을 말살해서 그런가? 바둑계의 모든 사람들이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글 | 배태일 박사] ○● 필자 소개 랭킹칼럼을 쓰고 있는 배태일 박사는? 필자는 1972년에 매릴랜드 대학교에 도미, 유학해 1977년에 동 대학에서 물리학박사를 취득하였다. 그 후에 NASA(미우주항공국) 산하의 Goddard Space Flight Center에서 연구 활동을 하다가 1978년에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에서 연구 조교수로 연구 활동을 계속했다. 1982년에 Stanford University로 옮겨서 Senior Scientist로 연구 활동을 하다가 작년에 은퇴하였다. 연구 활동 분야는 태양의 활동과 중성자성과 블랙홀 주위에서 발생하는 엑스광선 분야이다. 한국기원의 랭킹 전문위원으로 2009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통계적 랭킹 제도를 창안했고, 2010년 1월부터 3개월에 한번씩 세계랭킹을 계산해서 발표하고 있다. 한국기원 공인 아마5단이고, 미국바둑협회 6단 기력이다. ○● 배태일의 랭킹칼럼 1편 : 속기가 한국바둑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가? ☜ ○● 배태일의 랭킹칼럼 2편 : 속기에 강한 기사가 장고바둑도 잘두는가? ☜ ○● 배태일의 랭킹칼럼 3편 : '장고바둑'에 강한 기사가 '국제기전'에서도 강하다 ☜ ○● 배태일의 랭킹칼럼 4편 : 청년기사여, 장고바둑을 많이 둬라 ☜ ○● 배태일의 랭킹칼럼 5편 : 왜 장고바둑을 두어야 하나 (최종편) ☜ ※ 배태일박사의 랭킹 칼럼은 사이버오로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첫댓글 재미있는 분석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예리하네요. 심정적으로는 위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심각하네요. 프로바둑대회에 나가는 것만으로 훈련이 되는 것 아닌가요? 프로가 교육을 받는다니, 그럼 프로가 아닌것 같은데...
훈련을 안받기 때문이 아니고, 이세돌 사범의 주장이 맞는 것 같아요. 획일적인 교육 같아요. 바둑은 지식만으론 안되죠. 지식을 창조하는 힘, 즉 창의성이 절대적인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창의성이 사라져가는데, 지식의 힘이 한계에 도달하면 당연히 성장은 멈춘다고 봐야죠.
바둑은 주입식 교육으론 발전 불가능한 분야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