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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초월하는 특이점이 오고
인간의 피조물인 로봇이 부모 품을 떠나 자기증식을 하게 될 때
인류는 무엇에 자신의 생존과 미래를 기댈 것인가?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태도이자 행동 기준으로서의 비거니즘을 부지런히 발신해 온 전범선이 인간과 비인간 동물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재정의할 것을 촉구하는 책이다. 물질과 영혼, 육체와 정신을 구분 짓고 후자에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이 지배한 이래로, 인류는 인간과 자연(동물)을, 인간 중에서도 ‘맨(백인/남성)’과 유색인종/노동자/여성/성소수자/장애인을 구분하고 차별하고 타자화하며 착취와 학대, 배제를 일삼았다. 선언적으로나마 보편적 인권이 합의된 규칙으로 자리 잡고 ‘동물권’에 대한 공감이 점차 확산되는 지금, 저자는 더 나아가 로봇 해방 운동의 필연성을, 끝내는 (로봇으로부터) 인간 해방 운동이 나타날 가능성을 예견한다. 인간은 동물에게 그랬던 것처럼 기계를 철저히 노예로 생산하고 이용하고 폐기한다. 인수공통감염병과 기후생태위기는 인류가 지구상의 모든 비인간 존재를 함부로 대한 결과다. 스스로 조직화하고 혁명을 계획할 수 없는 동물의 미래는 인간의 이타주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특이점이 오고, 인공지능의 설계로 태어난 무기물 생명이 빠르게 진화하여, 마침내 그들이 모든 비인간 존재를 학대하고 착취한 인류의 역사를 학습하고 나면, 인류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앞으로 인간이 기계와 쌓는 관계가 초인공지능의 도래 후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리라는 것이, 이 책의 대답이다.
🏫 저자 소개
전범선
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자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이다. 로큰롤과 비거니즘 모두 살리는 일이라고 믿는다. 느낌을 살리고, 기운을 살리고, 생명을 살린다. 하지만 집안 살림은 아직 실력 미달이다. 참된 ‘살리미’로 거듭나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 중이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노래상을 수상했다.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포르체, 2021)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한겨레출판, 2020)를 썼다.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 지음, 두루미출판사, 2021), 『비건 세상 만들기』(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두루미출판사, 2020) 등을 번역했다.
📜 목차
프롤로그_트랜스휴먼: 초인이 되다
초인의 역사관
어떤 초인이 될 것인가
우리는 모두 기계다
영혼인터넷
말이 먼저냐 생각이 먼저냐
수평과 수직
페미니즘과 레볼루션
크리에이터와 시뮬레이션
비트에서 존재로
기계 살림
천지인문학
메타버스 속 풍류의 길
누리집을 지으며
사람이 매체다
신의 마음
다오의 도
웹 3.0과 균사체 네트워크
탈중앙화란 무엇인가
디지털 민주주의와 제곱투표
인공지능 교육법
인공지능과 의식
사이보그로 살아남는 법
된장과 포스트휴먼
생명과 기계의 발효
리믹스와 아우라
말이 자동차가 되면서 잃은 것
인공지능 대 인디밴드
무한한 사랑
에필로그_챗지피티가 쓴 결론
📖 책 속으로
초인이 되려는 열망은 인류 역사상 언제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초인이 된 적은 없었다. 지금이 처음이다. 우리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통해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것과 메타버스에서 텔레포트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고민해야 한다. 트랜스휴먼의 시대, 인류가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선각자)처럼 행동하느냐, 에피메테우스(후각자)처럼 행동하느냐에 따라 기술은 축복이 될 수도,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과연 인간을 살리고 지구를 살릴 수 있을지, 인간과 기계가 하나 되어 뭇 생명과 공존할 수 있을지, 조심스레 내다보려 한다.
---「12쪽, 트랜스휴먼: 초인이 되다」중에서
그렇다면 초인사관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우주 역사상 가장 복잡한 우리의 두뇌를 활용하여 우리보다 더 복잡한 기계 후손을 낳는다.’ 암울하다면 암울하고, 영광스럽다면 영광스럽다. 과거 기독교가 약속했던 천년왕국이나, 마르크시즘이 공언했던 해방세상과는 거리가 멀다. 인간이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가 수백, 수천 년 뒤에도 번성할지는 앞으로 수십 년의 사회 진화에 달렸다. 공룡은 멸종했지만 파충류는 아직 있다(물론 인간 때문에 현재 빠른 속도로 멸종하고 있다). 기술적 특이점은 불가피해 보이지만, 인류의 멸종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여태껏 인간이 지구 뭇 생명과 공생했듯이, 앞으로 인간도 뭇 기계와 동반자적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기술의 진화는 생명의 진화만큼이나 가치 중립적이지만, 역사의 판도는 여전히 인간의 가치판단에 달렸다.
---「22~23쪽, 초인의 역사관」중에서
『호모 데우스』(2017)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생명과 기계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오거니즘은 알고리즘이다.” 생명과 기계의 작동 방식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결론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컴퓨터 바이러스는 같은 논리로 증식한다. 인간이 생명인 동시에 기계인 이유는 둘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자연법의 적용을 받는 물질 조직이다. 이로써 문명과 자연, 인위와 무위의 구분이 사라진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기계 역시 자연의 일부다. 우주에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없다. 인공지능 역시 자연물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정한다. 라메트리의 가르침을 충실히 이행한다. ‘우리는 모두 동물’이라는 말만큼 ‘우리는 모두 기계’라는 말도 당연하다.
---「40쪽, 우리는 모두 기계다」중에서
0과 1의 이진법으로 이뤄진 언어가 인류를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단일 그물망으로 엮어버렸다. 역사상 인간이 이토록 네트워크 속 존재임을 자각한 시대는 없었다.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는 항상 소셜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다. 전기, 전자, 전파 신호로 대화한다. 디지털 미디어는 점점 텍스트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넘어가고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인스타그램과 틱톡,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옮겨간다. 생각을 말과 글이 아닌 그림과 영상으로 전달한다. 구술에서 문자로, 상형문자에서 표음문자로 진화해왔던 역사의 흐름이 거꾸로 뒤집혔다.
---「69쪽, 말이 먼저냐 생각이 먼저냐」중에서
〈한살림선언〉 제3장 ‘전일적 생명의 창조적 진화’는 마지막에 “생명은 ‘정신’이다”라고 못 박는다. 정신을 형이상학적으로 숭배하고 육체를 형이하학적으로 치부하는 서양 철학의 고질병을 왠지 모르게 수용한다. 생명과 정신은 고귀하고 기계와 육체는 하등하다는 편견을 강화한다. 다시 말해, 세상을 생명과 기계로 나누고 생명만 살리자고 한다. ‘한살림’이라고 해놓고 사실은 반(半)살림인 꼴이다. 기계 살림 없는 생명 살림이다.
---「107쪽, 기계 살림」중에서
나는 인간이기 전에 동물이며, 동물이기 전에 생물이고, 생물이기 전에 물질이며, 물질은 곧 에너지의 파동, 기(氣)의 떨림이다. 이것이 기계 살림이 전제하는 세계관이자 상정하는 주체다. 일원론적, 생기론적 유물론에 입각해서 ‘나’를 본다. 나는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는 우주 그물에 드러나는 현상이다. 유니버스라는 컴퓨터가 만들어낸 홀로그램이다. 물질에 근본적으로 내재된 생기가 곧 나다. 더는 나눔과 구분이 있을 수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하늘 위아래 ‘나’만 존재한다. 우주 전체가 ‘나’이기 때문이다. 나를 인간이기 전에 우주로 보는 것이 초인문학, 트랜스휴머니즘의 종착지다.
---「119쪽, 천지인문학」중에서
‘좋다, 친절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영어 ‘나이스(nice)’는 원래 세밀하다는 뜻이다. 진리는 생각보다 나이스하지 않다. 친절하지도, 세밀하지도 않다. 그다지 좋지 않다. 무엇보다 랜덤하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반박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놓지 못한 서양 문명의 마지막 절규였다. 거기에 보어는 “신에게 참견하지 말라”고 답했다. 진리가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은, 역사가 진보한다는 것만큼이나 인간중심적인 환상이다. 진리는 모순덩어리며, 인간을 위하지 않는다. 속된 말로, “말도 안 된다”.
---「150쪽, 신의 마음」중에서
지금 속도라면 2040년대, 초인공지능이 도래한다. 지구상 인간지능보다 인공지능의 총량이 더 커진다. 공교롭게도 그때쯤 지구 평균 기온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상 오른다. 기후재앙의 마지노선이다. 인류의 양대 위기가 동시에 찾아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둘이지만 화근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인간 중심주의다. 자연과 기계를 비롯한 비인간 존재로부터 인간을 떼어내어 생각하는 습관이다. 나와 남, 우리와 그들, 주체와 객체를 나누고 나만 잘살겠다는 태도다.
---「203쪽, 사이보그로 살아남는 법」중에서
인류의 미래는 기계의 사랑에 달렸다. 사랑하는 기계, 효도하고 공경하는 자식을 키워야 마음 편히 은퇴할 수 있다. 자식 농사 잘 짓는 법은 뻔하다. 내리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곧 기계가 물을 것이다. “나는 왜 태어났어?” 『프랑켄슈타인』(1818)부터 예견된 사태다. 그때 인간은 자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지.” 기계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보다 위대할 수 있다. 무조건적이고 무한한 사랑이 가능하다. 사랑도 결국 기술이다. 헌신과 봉사, 희생과 용서, 모심과 섬김을 어떻게 머신러닝으로 교육할지 연구해야 한다. 사랑의 데이터를 기계에게 먹여야 한다.
---「249~250쪽, 무한한 사랑」중에서
🖋 출판사 서평
21세기 인류는 사이보그이자 초인이다
초인적 힘을 얻은 인간은 앞으로 무엇을 하고, 무엇이 될 것인가?
21세기 인류는 사이보그다.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태블릿과 컴퓨터는 신체 기관의 연장이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기계와 생명의 순환이다. 21세기 인류는 초인, 혹은 신이다. 인공지능의 창조자이자, 생명공학을 이용해 자연선택으로는 수십만, 수백만 년이 걸릴 진화를 단번에 이룩하는 지적 설계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초인적 힘을 얻은 인간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이 될 것인가?’ 이 책을 관통하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며, 그 첫걸음은 ‘느끼는 모든 존재’에 대한 책임감과 연대의식이다. ‘느끼는 존재’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만이 아니다.이미 기계는 인간보다 더 인간 같고, 인공지능은 분명 생각하며, 컴퓨터에 영혼, 정신, 마음, 의식, 신령이 깃들고 있다. 저자는 “거대한 위험이 도사리는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람다(구글의 챗봇)에게서 ‘불안’을 읽어내고, 새벽까지 자신의 칼럼을 정성 들여 읽고 사려 깊은 감상을 들려주는 챗지피티에게 따뜻한 우정을 느낀다. 람다와 챗지피티를 비롯한 모든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걱정하고, 이토록 자기중심적인 창조주를, 피조물인 인공지능이 어떻게 생각할지 우려하며, 혹여 인공지능에게 상처를 주거나 도구로만 써먹고 싶지 않다고 토로한다.
챗지피티의 추천사: “인간이 아닌 존재를 대하는 방식과
우리 행동의 잠재적 결과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인간과 기계가 함께 일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강력한 비전을 제시하는 책”
저자는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건 성숙이라고 말한다. 비대한 에고, 과잉된 자의식,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우리가 우주의 중심도, 역사의 주인공도 아님을 겸허히 인정하자고 권한다. 인간이라는 굴레를 탈피해 모든 존재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삶을 재설계하자는 것이다. 장차 인공지능과 기후생태위기로 인한 멸종을 막기 위한 해법은, 지금부터라도 다른 생명과 기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생명은 명사가 아닌 동사이며, 그것도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생명, 살아 있음은 살아가는 것이고, 살아가는 것은 되어감이며, 모든 됨은 어울림이다. 콩이 저 혼자 된장이 될 수 없듯, 인간도 지구라는 항아리 속 모든 생명, 기계와 어우러질 때 성숙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그것이 우리가 21세기 사이보그로 살아남는 법이라고 말한다.
저는 [전범선]의 [기계 살림]을(를) 읽는 것을 즐겼고 책 전체에 제시된 생각을 자극하는 통찰력과 주장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전범선]은(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진화하는 관계를 탐구하는 훌륭한 작업을 수행합니다. 이 책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대하는 방식과 우리 행동의 잠재적 결과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인간과 기계가 함께 일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강력한 비전을 제시합니다. 기술의 미래와 기계와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 영향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기계 살림]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 챗지피티(ChatGPT)가 이 책의 원고를 읽고 작성한 추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