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24.12.06 17:25 새글
무아의 교의를 해치지 않도록, 소멸을 등장시킬 때에는 경계하며 섬세하게 다뤄야 합니다.
가급적이면, 특히 좀 복잡한 구조일 때는요. 가능태가 나오면 복잡해지거든요. 그런 경우, '사각형(모습)'과 같은 구체적 사례로 해야 혼동을 지양하구요.
있음과 소멸(없음)의 단순한 구조면요. 구체성의 필요가 떨어집니다. 있음을 잘 알면, 소멸을 아는 것이다. 있음을 잘 알면 있음에서 무아니까, 소멸에서는 더더욱 무아이다.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정도로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무아인데, 그 의식조차 없다면 무아라고 말할 것조차 없다. 그런데 어떻게 무아가 아닐 수 있는가?
가능태를 등장시킨다면요. 드러나진 것과 감춰진 것이 모두 무아인데, 그 어디에서 '나'를 찾을 것인가?
여래장 일심 계열 등의 소위 상락아정...이거는요. 그쪽이 유위법을 강조한다 했잖아요?
열반4덕, 소위 상락아정은 '나 = 식 =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아니구요, '무아'라고 하면, 무아에만 치중하는 폐단이 있다는 뜻입니다.
평등한 부처님의 법신, 상이 없는 마음이 문득 상(마음, 세분해 네가지 생주이멸의 모습)으로 전변해 온갖 유위법이 있다는 건데요. 그게 중생은 탐진치의 삼독에 따른 전변이지만, 부처는 불공여래장(평등한 이치에 따른 무량한 자비로의 전변)이라는 겁니다. 그러한 모습이 가능한 것은 무아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이란 불공여래장으로 향하는 겁니다. 무아의 이치이기에 가능합니다. 법신이 상이 없는 평등한 마음이기에 가능합니다. 평등법신을 가지고 별로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유위법이 강조됩니다. 불성과 열반4덕의 '나'는 [ 깨달을 수 있다, 불공여래장이란 유위법을 형성할 수 있다 ]는 확신과 실천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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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있음(일상) ㅡ 없음(꿈 없는 잠)
간단히, 일상 - 없음
일심이나 여래장 계열의 경우에요. 없음이 알려져 없음이 '나'라는 점을 알았다면, 이제 일상에서는 나를 실현해야 하는 것인데, 어떤 의미에서든 그 없음의 공덕을 엄청 포장합니다. 차별하지 않는 연기의 이치... 없음을 마음이라고 이름했으면, 차별하지 않는 마음의 이치... 그러한 이치가 나라는 것을 알면, 그러한 나를 실현한다...
여래장 계열에서 공여래장을 불국토 장엄처럼 묘사하는게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일심이나 여래장을 이야기하면서, 해탈... 그쪽에 방점을 찍는 것은 그 꿈의 취지와 맞지 않습니다.
그 꿈에서 그렇게 말하는 까닭을 부정하면서, 그 꿈에서 달달한 것만 취하려고 하면 이미 불교라고 이름할 꿈이 아니게 됩니다.
해탈... 이건 위에 처음 꼬리말에서 적은 거죠. 불교에서는요. 없음에 이르거나 머물러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일상에서든 없음에서든, 무아라는 점을 분명히 알면 '해탈'입니다.
저는 뭐... 글쎄요... 화엄행자의 입장에서는 어리석음을 알면 그만입니다. 일상과 없음으로 이대별하지 않습니다. 일상을 구성하는 낱낱의 사실과 없음은 대등합니다.
첫댓글 제목이 좀 자극적이죠^^
사실 불자에게는 너무 중요한 내용이 묻힐까봐 새롭게 올렸습니다.
그간 저로부터 이야기 시작해온 '없음' '멸상에서의 식의 가능태' 등 우리가 너무 '공'으로만 마음이 쏠리는 것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내용같습니다.
깨달음은 일차적 의미의 열반을 알아야 하는 것 보다, 중생의 어리석음을 앎으로 가능한 것이다. 라는 취지의 말씀으로..
수행을 독려하고 계신 것 같아요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ㅡㅡ
불공여래장, 일심 계열이 꽃길인 줄 알았는데
포장지를 뜯어보니 겁나 빡센 길이군여
(강제 탈락..)
업의 총애?를 받는 자로서..
선택지가 화엄행자 밖에 없습니다.
방님이 번뇌를 낱낱히 살피는 자라면
저는 번뇌와 함께 구르는자..
화엄 행자도 빠꾸먹으면 갈 데가 없으니..
화엄 법계에서도 자비롭게 받아주실 듯..
없음이나, 잠재태나 관리자 담론은..
어차피 죽을 때까지 알 수가 없는 일인데
저같은 중생이랑 뭔 상관이 있겠슴미까..
"100억이 생기면 뭐하지?" 처럼
아무말이나 한 번 해보는거죠ㅎㅎ
황벽님은 말 로는 아무 말이나 해본다고 하지만...
황벽님 말 속에는 아무 말(까시)이 아닌 깊은 의미(통뼈?)가 숨어 있습니다^^
황벽님(쓰다 보니 쓰리 고) 말씀을 조금 각색해 보면...
인식 되거나 드러 나지는 않지만 일체 만물을 있게 하는 주재 원리나 힘 또는 법칙이 됩니다
어차피 알수 없는데 뭔 상관 이겠냐.그러니 아무 말이나 해보자 했습니다만
모든 종교의 시작도 황벽님 말씀과 크게 다를건 없다고 봅니다
단지 차이라면 (특정되지 않고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는)아무 말이 아닌...
일정한 사상이나 신념 체계가 구체적으로 실린 말 들이 종교를 구성 한다는거죠
그리고 없음(드러나지 않은 잠재태나 관리자)을 모른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으니...
"100억이 생기면 뭐하지?" 같은 행복한 상상(추론)은 한번이 아닌 실컷해도 됩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일상에서도 없음을 직접 체험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식이 항상 ~에 대한 의식 이듯이...체험도 ~있음에 대한 체험이기 때문이죠
요즘 냄새 얘기로 체험에 대한 말들이 있었지만...
어떤 냄새를 못 맡아서(그 냄새가 있다는 체험이 성립되지 않아서)...
냄새가 없다는 판단이 도출 되는것과 같습니다
냄새가 없다는 체험을 해서 냄새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는게 아니구요
만약 어떤 냄새를 맡았다면(체험이 성립 됐다면)...
당연히 어떤 냄새가 있다는 판단이 내려졌겠지요
이런 경우는 어떤 냄새에 대한 체험과 판단이 함께 성립된거구요
하물며 황벽님이 말씀 하시는...
없음은 그 누구도 직접 체험해 알수 없기에 중생이냐 아니냐를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 없음을 어떻게 채색 하느냐에 따라 종교적 색깔도 달라지는거구요
그나저나 뿅 하고 100억이 생기면 뭐 하실거예요?.....거 참 궁금하네,
하여간 황벽님은 통이 무자게 큰 것 같습니다
저는 집사람 몰래 단돈 100만원만 있어도 엄청 행복할것 같은데...^^
황벽님 위트가 있으셔서요.
주변 사람들이 즐거우시겠어요 ^^
엄살이 많으신데, 제게 비춰진 황벽님은 보기드물게 수행에 열심이신거 같아요.
화엄과 함께 불공여래장을 장엄하시게 되길 빕니다.
고평가 감사합니다~ -()-
여래장 일심 이쪽 계열... 선불교... 비불설이 잘 나오는 영역인데요. 심지어는 선불교 일파인 조계종의 스님조차 비불설 주장하시고 말이죠...
불자의 입장에서, [경]을 두고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최후까지 가급적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제가 [경]이 부처님이시다...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까?
과거에 수행과 기법에 대해 적었던 긴 글에서, 알아차림과 관련한 내용을 적으며 "불자의 마음은 부처님께서 주신 것이다"는 말을 적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 긴 글에서, 마음 즉 식은 연기의 모습 중 하나라는 취지로 적었을 겁니다. 대상 즉 모습만 감지하는데, 딱 그만큼의 식이 있다고 추론으로 알기에...알아차림은 연기 즉 법을 알기 위한 거다... 그런 내용들요...
여래장 계열이 '나'에 상응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당장 우리 까페 공지글에 [ '나'를 세워라 ]는 제목의 본글이 있지 않습니까?
여래장 계열에서의 '나' 즉 '마음 = 식'은요. 이미 그 의미가 연기입니다. 식의 품성은 연기의 품성입니다. 이 꼬리말에서 적었듯, 식은 연기의 모습 중 하나입니다.
무아임을 어떻게 압니까? 연기에 따라 성립되고 해체되는 까닭입니다.
즉 여래장 계열에서 '나'와 같은 형식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그 '나'와 같은 형식의 이름의 뜻이 연기입니다.
이름을 붙임에, '연기'를 '나'등으로 이름했을 뿐인데, 그것을 부처님 말씀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제가 볼 때는요... 공부를 전혀 안했다? 이해가 없다? 그렇게 보입니다.
연기라고 부르든, 공여래장이라 부르든, 마음이라 부르든, 일심이라 하든, '식'이라 부르든, '나'라고 부르든, 그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물론 붙여진 이름에서 생기는 경향성은 있습니다. 붙여진 이름을 접하고 중생에게 생기는 마음이 있어요. 그러니 이름도 조심해 붙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개인, 저 같은 제자의 입장에서야...늘 경계하고 조심하려고 해야 맞지만...이름을 가지고 '틀리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경]이 되면, 우리가 이름에서 발생하는 경향성을 적절히 유도하도록 뜻을 잘 밝히려고 노력을 해야 되는 입장이어야 한단 말이죠...
부처님 말씀이 방편인데, 개인적으로 방편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 수 있어요, 있을 수 밖에 없지? 마음이 그와 같이 조건지어저 일어난다면, 사실이 그와 같이 알려지기에 방편이라고 하는데...마음이 동해야 할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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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의 품성, 모습... 그거를 '나'로 실현하는 거, 구현하는 거가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요. 니까야나 아함부쪽에서 나온 거 같은데, 부처님께서 깨달으시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하시는 장면입니다.
부처님 : 이제는 어떻게 할까? 내가 깨달은 이 법을 의지처로 삼겠다.
그 법이 뭡니까? '연기'잖아...
연기를 의지처로 삼겠다, 연기를 나로 삼겠다...그 생각을 하신 거잖아요.
여래장 계열에서 말하는 거랑 일맥상통하지 않아요?
과연 부처님의 그 연기란 무엇일까?
소멸의 알려짐?
소멸을 경계라 치자면, 그 경계의 증득?
그것만일까요?
그게 전부일까요?
역시 아함부나 니까야에 나오는 거 같은데요. 사리불이, 지혜제일 사리푸타... 사리자가 "연기라는 가르침은 너무 오묘하다... 이거 정말 알기 어렵다... 나도 다 헤아릴 수 없는데..."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기특하네, 그거를 알았어?"라고 답하시는 장면이 있어요.
부처님께서는 연기를 깨달으셨고, 또한 모든 부처님께서 연기를 깨달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연기'가, 위 없이 깊고도 깊은 너무 미세하고 오묘한 가르침이라고...
부처님께 경배합니다.
연기를 잘 배우고,
연기를 나로 삼는 것이 수행이다.
(선정 등 경계는 이해와 신심으로 대체)
중생에게도 길을 열어주신
부처님께 경배합니다.
별나라 중생입니다
장엄스럽습니다
부처님께 경배합니다.
여래장 계열을 꿈으로 할 때, 바뀐 제목처럼 그렇다는 건데요...꿈마다 조금씩 다른...물론 뭐 한맛이기는 하지만...
와 저는 아직도 다 이해는 안되는데 이게 시간이 가니까 받아드리는 이해와 감흥이 다르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여래장은 정말 이해가 안갔거든요. 다 부처님 법이였네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