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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에 관한 규례
레 25:23-34
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4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25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26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유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으면
27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자기의 소유지로 돌릴 것이니라
28 그러나 자기가 무를 힘이 없으면 그 판 것이 희년에 이르기까지 산 자의 손에 있다가 희년에 이르러 돌아올지니 그것이 곧 그의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29 성벽 있는 성 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 지 만 일 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
30 일 년 안에 무르지 못하면 그 성 안의 가옥은 산 자의 소유로 확정되어 대대로 영구히 그에게 속하고 희년에라도 돌려보내지 아니할 것이니라
31 그러나 성벽이 둘리지 아니한 촌락의 가옥은 나라의 전토와 같이 물러 주기도 할 것이요 희년에 돌려보내기도 할 것이니라
32 레위 족속의 성읍 곧 그들의 소유의 성읍의 가옥은 레위 사람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으나
33 만일 레위 사람이 무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유 성읍의 판 가옥은 희년에 돌려 보낼지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읍의 가옥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받은 그들의 기업이 됨이니라
34 그러나 그들의 성읍 주위에 있는 들판은 그들의 영원한 소유지이니 팔지 못할지니라
레 25:23-34 / [땅을 물러야 한다] 땅을 아주 팔아 넘길 수는 없다. 땅은 본디 내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단지 내 땅에 몸붙여 사는 나그네이다. 24)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가 살고 있는 땅을 사고 팔 때 그 땅의 본주인에게 어느때라도 그 땅을 도로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25) 어떤 사람이 가세가 기울어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땅을 팔았으면 땅을 판 그 사람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 땅을 도로 살 수 있다. 26) 도로 사줄 가장 가까운 친척이 없을 경우, 땅을 판 그 사람이 나중에 그 땅을 도로 살 수 있을 만큼 되면 27) 땅값을 지불하고 도로 찾아올 수 있다. 땅값은 앞으로 돌아올 희년을 헤아려 보아 값을 치러 주면 된다. 그러면 그 땅은 본주인에게 되돌아간다. 28) 도로 살 여력이 없으면 그 땅은 희년이 돌아올 때까지 땅을 산 사람의 소유로 있다가 희년에 본주인에게 되돌아간다. 29) [집에 대한 규정] 어떤 사람이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성안의 집을 팔았다고 하자. 집을 판 날부터 만 1년 동안은 그 집을 도로 살 수 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 그 집을 도로 살 수 있는 권리를 잃게 된다. 30) 따라서 만 1년이 지나면 그 집에 대한 소유권은 집을 산 사람과 그 자손에게 넘어간다. 그러므로 희년이 되어도 그 집은 본주인에게 되돌아가지 않는다. 31) 하지만 성벽으로 둘러 있지 않은 시골 마을의 집은 토지처럼 아무 때든지 본주인이 도로 살 수 있다. 도로 살 능력이 없더라도 희년이 되면 본주인이 그 집을 다시 찾을 권리가 있다. 32) 레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성읍의 집은 설령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할지라도 언제든지 그 집을 도로 살수 있는 권리가 있다. 33) 도로 사들이지 않았을 경우라도 희년이 되면 그 집은 다시 본주인에게로 돌아간다. 레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성읍의 집은 본디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영원히 레위 사람들의 소유인 까닭이다. 34) 레위 사람들이 사는 성읍 주변의 목초지는 사고 팔 수 없다. 그 목초지는 영원토록 레위 사람들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하여 살 수 있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 때의 토지와 가옥에 대한 거래의 규정을 정해 주었습니다.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23-24)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 토지를 영구히 팔 수 없습니다. 이는 그 모든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은 그곳의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토지를 팔아 돈이 생겼을 때, 언제라도 값을 주고 되돌려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토지 무르기입니다.
가난하여 얼마를 팔았으면(25-28) 가난하여 토지를 판 경우, 가까운 친족 중 기업 무를 자가 값을 지불하고 토지를 무를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부유하게 되어 무를 수 있으면 다시 무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처음 팔았을 때에 받은 토지의 값을 전부 주고 되돌려 받는 것이 아니라, 희년을 기준으로 남은 기간에 해당하는 토지의 값만 주면 됩니다. 만약 자신이나 기업을 무를 자가 능력이 없을 경우에는 희년에 이르러서야 되돌려 받을 수 있습니다. 기업 무르기를 ‘고엘 제도’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고엘 제도는 가까운 친족이 그 책임을 대신 지는 의무를 말합니다.
가옥을 팔았으면(29-31) 성벽이 있는 성 안에 가옥을 팔았을 경우에는 일 년 이내에 무를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영구히 산 자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는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제정한 희년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성벽이 없는 마을의 가옥은 무를 수 있고, 희년에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위 족속의 가옥은 언제든지 무를 수 있으며 만약 무르지 못할지라도 희년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레위 족속의 가옥과 들판은(32-34) 본래 레위인이 살고 있는 가옥이나 들판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종사할 수 있도록 각 지파에서 그들에게 나누어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이 판 가옥은 언제라도 무를 수 있으며, 아니면 희년에 다시 되돌려 받게 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 성읍의 들판은 그들의 영원한 소유이기에 팔 수 없습니다.
적용: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모든 것의 소유자이며 그들은 청지기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시간 당신의 모든 것의 소유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공평과 효율, 정의와 생산성은 동시에 지켜야 할 가치입니다. 양자 사이의 적절한 긴장과 균형이 유지 될 때 사회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소외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이런저런 이유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을 돌아보며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 설 교 >
사랑과 나눔의 경제활동
레위기 25:23~34
성경에 부동산 투기를 금지하는 대표적인 말씀 가운데 한 구절이 본문 말씀이다.
토지는 다 하나님의 것이다.(23) 아멘.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찐저(사5:8)하는 말씀과 더블어 부동산 투기를
근절해야하는 분명하고 명확한 말씀이 오늘의 말씀이다.
투기와 투자는 참 구분이 어렵다.
내가 하면 투자고 남이하면 투기이긴 하지만 토지는 분명히 하나님의 것이라 하신다.
토지는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언하시고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라(23)하신다.
이것이 분명한 나의 정체성이다.
이 땅의 주인은 영원하신 지존자 홀로 영광 받으실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이시고
나는 이 땅에 나그네요, 임시로 거주하는 자이다. 아멘.
그러나 어리석은 내 생각에는 내가 이 땅의 주인이요, 주인공이요.
더 많은 땅과 더 큰 집과 부동산을 갖기에 얼마나 수고하고 애쓰고 있는가?
태초부터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만들어 놓으시고 아담과 하와를 그 곳에 살게 하셨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나그네인가? 너무나 분명하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이 땅에 살도록 배려해 주신 그 은혜와 사랑에 그저 감사하고 살아야 하건만....
토지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가 본문에 몇 가지 보인다.
1.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 나는 나그네로 잠시 거하는 자이다.(23) 아멘.
2. 모든 토지는 혹시 팔리게 되더라도 원래 소유주에게 돌아 가도록 해야한다.(24)
파는 것이 파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임대차 계약과 같은 형식이 되는 것이다.
임대 기간이 끝나면 돌려 주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3. 만일 너무 가난해서 땅을 팔았다면 가까운 형제들이나 친족들이 나서서
판 값을 대신 물어 주고 돌려 받아야 한다.(25)
4. 돈을 벌어서 자기 스스로 다시 계약을 무를 형편이 되면 (26)
땅을 판 해 부터 가치를 뺀 나머지 값을 지불하고 원 소유주에게 돌려야 한다.(27)
5. 무를 힘이 전혀 없다면 최장 50년 만에 희년이 돌아오면 원소유주에게 돌려야 한다.(28)
정말 이런 세상이 온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성경적 원리 대로라면 땅을 사고 팔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임대해서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폭리를 취하거나 투기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땅(토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영원히 팔 수 없도록 법으로 정했지만
주택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적용을 하지 않으신다.
주택, 가옥에 대해서는 몇 가지로 구분하신다.
1. 성내에 있는 가옥의 경우(29~30)
2. 성 밖에 있는 가옥의 경우(31)
3. 레위 자손의 가옥의 경우에 (32~34)다르게 말씀하신다.
1. 성내에 있는 가옥의 경우
아마도 텃밭이나 정원이나 토지가 포함되지 않는 도시의 주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1) 팔았으면 매매한 시점부터 만1년 이내에만 다시 무를 수가 있다.(29)
2) 만 1년 안에 무르지 못하면 영영히 소유권이 넘어가고 확정이 된다.(30)
3) 희년이 되어도 돌려 주지 않아도 된다.(30)
2. 성벽 밖에 촌락에 가옥이 있는 경우
토지와 같이 취급을 한다.
1) 언제든지 계약을 다시 무를 수가 있고(31)
2) 희년에는 돌려 보내기도 한다.(31)
3. 레위인의 경우는 예외 규정인 것 처럼 보인다..
레위인은 원래 분배 받은 땅이 없는 지파이다. 하나님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1) 일반인은 성읍의 가옥은 무를 수 없지만 레위인은 예외로 다시 무를 수가 있다.(32)
2) 못 무른 레위인 에게는 성읍 안에 가옥이라도 희년에는 돌려 보내야 한다.(33)
3) 레위인들은 성 주변에 있는 밭이 그들의 영원한 재산이므로 절대 팔아서는 안된다.(34)
토지와 가옥에 대해서 다르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지는 내가 노력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적으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반면 가옥의 경우는 땀과 수고를 통해서 짓고 만들수 있어서 소유를 인정하고 보호해 주시는 것 같다.
정말 이런 하나님의 경제 원리를 따라서 이 세상이 돌아 간다면
지금처럼 무한 경쟁의 시대에 내 몰리지 않고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이 하나님의 경제원리를 이 땅에 어떻게 실현해 나가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땅의 나그네 생활 가운데 함께 더블어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 방법이지 않을까?
하나님은 최고의 복지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셨는데 인간의 욕심이 끝도 없고 한도 없는 탐욕이
이 세상을 하나님 없는 요지경 같은 세상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돌아본다.
하나님 아버지
토지는 하나님의 것 임을 인정합니다.
나는 이 땅의 나그네 임을 고백합니다.
잠시 머물다가 떠날 우거하는 자 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소유는 하나님 당신 것입니다.
재물과 시간과 재능도 당신 것 임을 고백합니다.
나에게 맡겨진 것 최선을 다해서 잘 관리하는
신실한 청지기로서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욕심과 탐심에 눈멀지 않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옵소서.
영원한 당신의 나라에 참 소망을 두고 감사함으로 살게 하옵소서.
사랑과 나눔과 배려의 삶으로 더불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이 땅에서 경험하며 실천하며 살게 하옵소서.
나의 모든 것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공동체를 사랑과 은혜의 말씀으로 세우시는
주님을 따라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육신의 만족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고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루를 시작합니다.
내 안에 세상적 욕망이 가득하고 말씀 앞에서 드러나는 죄악의 행실을 수없이 발견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없는 죄인의 모습, 패역한 삶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거룩하신 주님이 내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고 주 안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연약한 자를 붙드시고 주님을 향한 마음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해설
하나님은 토지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토지를 영영히 팔 수 없음을 말씀하신다.
그래서 나그네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셨지만 토지를 다시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시고 한 사람이 영원히 소유할 수 없음을 선포하신다.
예를 들어 가난 한 자가 자신의 토지를 팔게 되면 가까운 친척이 와서 그것을 다시 사게 하거나 자신이 그것을 다시 살 수 있는 여력이 생기면 희년까지 남은 값을 지불하고 사게 하셨다.
다시 살 수 있는 힘이 없으면 희년까지 산 사람의 소유가 되고 희년 때 되돌려 받게 하셨다.
성벽에 있는 성 안의 집은 상당한 규모의 도시의 가옥을 의미하며 사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살았던 집으로 그것을 팔고 다시 살 수 있는 기간은 1년으로 제한하셨다.
1년이 지나서는 산 사람의 소유로 확정되고 희년에도 다시 소유가 되돌아가지 않게 하셨다.
그러나 성벽이 없는 촌락의 가옥은 땅에 대한 규정과 같이 물려주고 희년에 회복되게 하셨다.
레위인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지만 그들이 거하는 성읍의 집은 그들의 기업이 되게 하셔서 성읍 안의 가옥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다시 되살 수 있었고 희년에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레위인들은 가축을 키우기 위한 최소한의 목초지를 가졌는데 이것은 절대로 사고팔지 못하게 하셨다.
나의 묵상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땅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하셨다.
그러나 원치 않은 상황을 맞아 가난하게 되어 생계가 위협을 받을 때는 땅을 팔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에도 친족이 그것을 대신 무를 수 있도록 하심으로써 공동체 안에서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도록 조치하신다.
또한 희년의 제도를 통해 기업으로 받은 토지는 영원한 개인의 소유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각 분배받은 자손들에게 되돌아가도록 만드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땅의 주인이 아닌 소작농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은혜로 땅에 거주하게 되었음을 가르치시고 경험케 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다.
소유의 개념보다 지혜로운 사용의 개념을 가르치고 계시고 각자의 삶을 위한 모습보다 공동체를 위한 삶의 모습을 가지도록 율법을 통해 제시하고 계신다.
무엇보다 가난한 자가 생겨서 자신에게 주어진 토지를 팔아야 할 경우 친족들이 그것을 대신 무를 수 있게 하셨고 50년이 되는 희년에 다시 돌려받게 하심으로써 생계를 이어가게 하셨다.
또한 레위인들은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가옥을 기업으로 물려받게 하시고 가옥도 희년에는 돌려받게 하심으로써 공평하게 대우하시고 살게 하시는 은혜를 보여주신다.
하나님의 율법에는 서로를 사랑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으며 그들을 보호하시고 바르게 세우시려는 사랑이 스며들어 있다.
개인의 이익과 욕심을 버리게 하시며 공동체를 세우게 하시는 세심함을 발견한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를 통해 죄의 값을 대신 치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하게 하시는 은혜가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율법의 말씀도 그 안에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공동체를 세우게 하시는 가르침을 발견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말씀을 따라 사는 유익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과 이웃을 사랑으로 대하고자 하는 마음을 얻게 된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동등한 것임을 강조하며 이야기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일 4:20)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이웃을 향한 마음은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을 향한 사랑을 베풀 수 있음을 공감한다.
그리고 여전히 나 자신의 이익을 민감하고 이웃의 아픔에 무딘 나의 모습에서 주 앞에 부끄러운 자로 설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마음을 돌이켜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함께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도록 인도하시는 은혜를 깨닫는다.
그 은혜를 따라 오늘도 살아가며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주님 앞에 서는 자들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구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의 말씀 가운데 저의 허물과 사랑 없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말씀을 통해 사랑을 베푸시고 바른 길을 제시하시며 그 길에 동행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온전히 주님만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연약함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다시 주의 은혜에 합당한 삶이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주님이 내 삶의 주인되심이 고백되게 하시고 그 고백을 따라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자 되게 하시고 진리의 공동체를 세워가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날마다 주님과 함께 교제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그 교제의 은혜를 밝히 선포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은혜와 사랑으로 풍성하게 채우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레위기 25:23-34
본문은 ‘희년’과 관련하여 ‘토지 및 가옥의 거래’에 있어 지켜야 할 규례다.
먼저, 토지 거래와 관련된 규례다.(23~28절) 23절에서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라” 한다. 토지 거래에 있어 완전한 소유권 이전을 할 수 없도록 금하신다. 우리는 토지 거래를 할 때 매매하는 순간 소유권이 넘어간다. 한 번 팔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고, 다시 찾고 싶어도 땅을 구입한 사람의 동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토지 매매를 통해 소유권을 이전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금하신다.
토지에 대한 기본 개념이 다르다. 우리는 사유재산권을 인정한다. 값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순간 재산권을 가지게 된다. 누구도 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법은 다르다. 23절에서 하나님이 “토지는 다 내 것”이라 하신다. 토지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땅에 거주하는 ‘거류민’이고, ‘동거하는 자’다.
하지만 재산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땅의 사용 권한을 가지고 있다. 농사하여 수확한 것은 자기 것이다. 그리고 사정이 생겨서 돈이 필요하면 돈을 받고 땅의 사용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임시로 넘길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사용 권한이 넘어갔을 경우 희년이 되면 다시 원상복귀(原狀復歸)한다.
24절에서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하라” 한다. 희년이 되기 전에 다시 땅을 되찾고 싶을 때 돈을 지불하면 땅을 되찾을 수 있다. 이때 임시 땅의 사용권을 가진 사람은 거부할 수 없다. 돈을 돌려받으면 토지 사용 권한을 내어주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25절이다.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무슨 말씀인가? 형제나 가까운 친척이 가난하여 땅을 팔았다면 대신 그 값을 물어주고 땅을 되찾을 수 있게 해 주라고 한다. 이를 ‘고엘 제도’라고 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다. 이 제도는 형제와 친척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하게끔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매우 중요한 제도다.
갈수록 가족과 친척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형제 관계라도 경계가 분명하다. 경제에 있어 선이 그어져 있다. 형제가 빚을 지고 있다고 해서 그 빚을 대신 갚아주지 않는다. 형제가 가난하다고 해서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 명절에 같이 만나서 식사를 하고, 경조사가 있을 때 함께 하는 정도에 그친다. 이런 형제 관계는 하나님이 정하신 ‘고엘 제도’와 거리가 멀다. 하나님의 백성은 ‘고엘 제도’의 정신을 따라야 한다. 형제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고, 같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도울 힘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도울 힘이 있으면 도와야 한다. 이런 관계가 될 때 형제간의 관계가 독독해지고 가까워질 수 있고, 서로가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
‘고엘 제도’의 정신은 예수님에게서 온전히 드러난다. 예수님은 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영생을 되찾기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값을 지불하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피값을 지불하지 않았다면 죄의 빚을 감당할 수 없어 멸망에 이르게 되었을 거다. 우리를 형제처럼 여기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죄의 값을 지불해 주셔서 죄사함 받아 구원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다. 엡2:19절에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였다. 여기서 ‘권속’이란? Family를 말한다. 가족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관계는 어떤가? ‘고엘 제도’의 정신이 살아 있나? 아니면 세상의 흐름을 따라 관계가 멀어지고 있나? 피상적인 관계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경조사가 생겼을 때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해주고, 슬픈 일이 생기면 위로하면서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29~34절은 ‘가옥 거래’와 관련된 규례다. 29,30절이다.
“성벽 있는 성 내의 가옥을 팔았으면 판지 만 일년 안에는 무를 수 있나니 곧 그 기한 안에 무르려니와 일년 안에 무르지 못하면 그 성안의 가옥은 산 자의 소유로 확정되어 대대로 영구히 그에게 속하고 희년에라도 돌려보내지 아니할 것이니라”
‘성벽 안에 있는 가옥’은 ‘토지’와 다르다. ‘토지’는 소유권 이전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성 내에 있는 가옥’은 가능하다. 희년이 되어도 원상복구되지 않는다. 성 안에 있는 가옥은 가나안 정착시 분배된 것이 아니다. 후에 집을 지어 거주하였다.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짓는 사람이 아니라 무역,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동률이 높다. 그러므로 성내에 있는 가옥에 대해서는 소유권 영구 매매가 가능하게 하셨다.
하지만 성안에 있는 가옥이 아닌 촌락에 있는 가옥은 토지와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촌락에 있는 가옥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거주하는 집이기에 토지와 함께 가옥도 소유권 완전 이전을 할 수 없다.
32절에서 레위 족속이 머무는 성읍에 있는 가옥의 경우 소유권 완전 이전을 할 수 없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땅을 분배할 때 레위인들에게는 땅을 분배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이 거주할 수 있는 성읍을 두었다. 레위인을 위한 성읍이 전국에 48개 있었고, 성읍 주변에 레위인들이 가축을 목축할 수 있도록 목초지도 주었다. 레위인들의 가옥은 언제든지 값을 지불하면 계약을 무르고 다시 찾을 수 있다. 희년이 되면 다시 레위인에게로 돌아간다.
가옥에 관련된 규례는 경우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된다. 성내에 있는 가옥은 소유권 완전 이전이 가능하다. 이를 보면 소유권과 관련해서 획일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적용을 달리한다. 백성들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서 규칙을 적용하고 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통치권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백성들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생존의 기본권을 지키려 하신다. 이 원리가 우리 사회에 적용된다면 국민들이 생존의 불안을 느끼지 않고 안도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국민들의 기본 생존권을 보장한다. 가난과 굶주림으로 궁지에 몰리는 경우는 없다. 생존의 위기를 느끼지 않고 안정된 생활을 한다. 우리 사회도 국민들의 생존권이 보장되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