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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중국사 엎치락~ 뒤치락~ "후한(後漢)"의 "외척"과 "환관"!!!
★海東天子☆ 추천 0 조회 762 08.09.22 21:32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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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9.23 11:13

    첫댓글 사실상 후환은 환관과 외척이 다 말아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당시 최고의 출세길은 고자되기 ㄲㄲ

  • 08.09.23 16:44

    디씨의 100억고자랑 같은 맥락이군요.ㅋ

  • 작성자 08.09.23 21:35

    '고자되기'보다는 외척에게 연줄을 대거나, "환관"들에게 뇌물을 바치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이었습니다ㅡㅡ; 당시의 '고자되기'는 '인간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었죠ㅡㅡ;; "환관"들은 아무리 '조정대신'들과 관품이 같아도 상당한 차별대우를 받았습니다ㅡㅡ;;;

  • 08.09.23 21:53

    예외도 있는데 명의 '왕진'입니다. 향시에 합격한 거인출신이지만 스스로 고자가 되어 환관이 되었습니다. 선덕제 이후로 환관도 글을 배웠기 떄문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환관에게 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급속하게 출세하게 됩니다

  • 작성자 08.09.23 22:09

    한나라 때와 명나라 때를 비교하는 것은 좀 그런듯 하네요ㅡㅡ; 명나라의 경우는 "환관"이 되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로 여겨져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거세하여 "환관"에 지원하는 바람에~ "환관"과 "환관 후보생"의 숫자가 수십만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한나라 때는 그 정도로 인기있는 직업이 아니었고~ "환관" 자체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되도록이면 꺼려하는 직업중의 하나였습니다!!!

  • 08.09.23 22:34

    아 그렇군요. 후한시대인줄 모르고 괜히 엉뚱한 말을 적었네요

  • 08.09.23 23:05

    해동천자/저도 명과 한을 좀 햇갈린듯하군요 //ㅂ//)

  • 작성자 08.09.23 23:34

    흔히 중국의 "환관"하면~ 주로 명나라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쉽게 시대구분을 하는 방법은~ 이전 시대일수록 "유교"의 원칙에 철저하다는 것이죠!!! 한나라는 모든 생활이 '예(禮)'에 따라 영위되는 "예교주의 사회"였던데 반해서~ 명나라는 '권력'과 '돈'이 우선하는 사회였습니다^^;; 따라서 "환관"이 되는 것에 대해 한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의 길을 포기할 수가 있는가ㅜㅜ" 라는 의식을 보이는 반면, 명나라 사람들은 "환관이 되면 부귀를 한번에!!! 가자~ 거세하러!!!" 라는 행태를 보이죠ㅠㅠ

  • 08.09.23 16:19

    환관은 후한, 당, 명 때 가장 많이 득세했지만 후한이나 명의 환관들은 당의 환관들보다 힘이 '약간' 약했습니다. 세 나라 환관 다 황제의 권력이 기생하는 존재였지만 후한과 명의 환관은 황제를 바꿀만한 힘은 없었던 것에 비해 당의 환관은 황제를 독살하고 바꾸어 버립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08.09.23 21:21

    당나라의 "환관"들과 후한시대의 "환관"들은 권력을 장악하는데 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후한시대의 경우는 어린 황제가 "외척"들의 전횡에 눌려 있다가, 장성하여 '친정'을 할 무렵이 되면~ "외척"이 득세한 '조정'의 힘보다는 측근인 "환관"의 힘을 빌어 "외척"을 제거했기 때문에 "환관"이 일종의 '공신'으로써 정사에 참여했고, 어디까지나 황제의 종복으로써 '총애'를 매개로 정권을 유지합니다!!! 또 "외척"이 정권을 장악했을 때는 몸을 숙일 뿐이지~ 완전히 '숙청'당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 작성자 08.09.23 22:49

    그러나 당나라의 "환관"들은 아예 황제를 옹립하면서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단순한 '공신' 이상의 힘을 발휘했고, 마음대로 황제를 폐립하거나~ 시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문생천자(門生天子), 정책국로(政策國老)"라는 말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당나라의 "환관"들은 계속해서 정권을 장악했고, 정쟁도 같은 "환관"들이 서로 다른 황자를 옹립하는데서 발생합니다ㅡㅡ; '조정대신'들이 황제와 제휴하여 "환관"들을 제거하려다 번번히 실패하는 것을 봐도 그들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감로의 변"이 있죠ㅡㅡ;;

  • 08.09.23 19:34

    후한은 환관과 외척중 외척이 좀더 강했다고 볼수있겠네요. 마지막은 환관이 잡았지만 말이에요.

  • 작성자 08.09.23 21:12

    그렇게 단정하는 건 좀 어렵습니다^^; "외척"의 경우는~ 대개 1대에 한해서 대권을 장악하지만, "환관"의 경우는~ 2대, 3대에 걸쳐서 위세를 부리죠^^;; "외척"이 좀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건~ "사대부"와 "문벌대족"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은 "외척"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지만, "환관"을 아예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둘 중에서 "외척"을 지지하는 편이었거든요^^;;;

  • 08.09.25 18:13

    강력한 외척을 환관을 키워 잡고 하는 패턴이 반복되다가, 결국은 환관이 잡아먹었죠. 환녕제가 괜히 암군의 대명사로 써먹힌 게 아니니까.

  • 작성자 08.09.25 21:28

    그런 패턴이 반복될 수 밖에 없었던 건~ "후한"의 황제들이 대부분 단명하는 바람에 어린 황제를 옹립한 "태후"와 "외척"이 손쉽게 대권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무제"나 "효명황제(명제)"를 제외하곤 모두 젊은 나이에 승하했죠ㅜㅜ 또 "외척"들의 등쌀이 얼마나 심했던지~ "환제"가 "외척" 양씨를 제거하기 위해 "환관" "당형" 등과 모의했던 장소는 다름아닌 "측간(厠間 ; 화장실)"이었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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