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스커트 입고도, 하이힐 신고도 OK
자동차가 부쩍 여성스러워지고 있다. 여성 운전자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국내외 자동차업체들이 '여성 친화적인 차'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결혼한 직장인 전송지(27·
서울 길동) 씨는 남편과 함께 신혼생활 첫 차를 고르고 있다. 가격이나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이들 부부의 구입조건 1순위는 '여성이 운전하기에도 편한 차'다. 차의 편의성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여성에게 눈높이를 맞춘 차들이 자연스레 친근하게 느껴져서다.
통계청은 26일 작년 기준 여성 운전면허소지자는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전체 면허소지자 10명 중 4명으로, 2000년 이후 10년 만에 2배로 늘었다. 이에 발맞춰 자동차업체들은 신차에 남녀 간의 '차별'이 아닌 '차이'를 반영하는 한편, 여성들이 선호하는 아기자기한 요소들을 차 안에 배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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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다 CR-V. SUV이지만, 앉는 위치가 낮아 치마 입은 여성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 혼다코리아 제공
◆여성 신체적 차이 고려…'여성 전용모델'도 출시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있다면 차에 타는 게 신경 쓰일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운전석 위치가 높은 SUV(스포츠 유틸리티 비클)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지적을 반영, 혼다 CR-V나 지프 컴패스는 지면에서 차 바닥까지의 높이를 최대한 낮게 설계했다. 짧은 치마를 입고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운전할 때 페달을 밟기 불편한 하이힐을 벗어두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GM대우 경차 마티즈 크리에이티브는 하이힐을 차 안에 보관하기 쉽게 별도의 신발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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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M대우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의 신발 수납공간. / GM대우 제공
어두컴컴한 주차장을 배회하기를 꺼리는 여성들을 위해서, 기아차 K7은 키를 들고 차 주변으로 다가서면 조명을 밝혀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차에서 내린 후에도 30초간 조명이 유지되는 에스코트 기능도 있다. 지프 컴패스는 전조등이 켜져 있는 시간을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다.
르노삼성은 신차 개발단계에서 여성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한 기능을 도입했다. 뉴 SM3, 뉴 SM5 등에 적용한 제동보조시스템(BAS)은 다리 힘이 부족한 여성이 급제동 시 페달을 필요한 만큼 세게 밟지 못하는 경우, 이를 파악해 제동력을 순간적으로 높여준다. 뉴 SM7 등에 적용한 '스마트 에어백'은 충돌 시 체구가 작은 여성이나 어린이의 위치에 맞춰 에어백 압력을 조절한다.
일부 차종의 경우 '여성 전용 사양'도 나온다.
기아차는 경차 모닝의 '뷰티 프리미엄' 모델을 내놨다. 내부 인테리어 색상을 여성들이 선호하는 베이지색으로 꾸미고, 화장 거울과 좌석 아래쪽 수납공간 등을 마련했다. GM대우의 '핑크 마티즈'는 여성 운전자들이 주된 타깃이다. 실제로 지난달 출시된 후 팔린 차 10대 중 7대가 여성 운전자 명의로 집계됐다고 GM대우는 밝혔다.
◆기능도 감성도 여성에 맞춘다
미국 포드자동차 마케팅 부서가 지난해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들이 자동차에서 원하는 기능은 ▲자동주차 시스템 ▲주행 중 타이어가 터져도 일정 거리를 달릴 수 있는 런플랫(run-flat) 타이어 ▲빗물을 자동으로 감지해 작동하는 와이퍼 ▲타이어의 공기압이 낮아졌을 때 경고메시지를 보내는 시스템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주행 중 빠른 대처가 어려운 상황이거나, 조작이 까다로울 때 요긴한 기능들이다.
현대차 신형 아반떼는 국산차로는 처음으로 주차 조향 보조 시스템을 적용했다. 후진 평행 주차를 도와주는 기능이다. 차량 주변에 달린 초음파 센서가 주차가 가능한 공간을 파악해 주고, 운전자는 음성 안내에 맞춰 운전대와 브레이크 페달만 조작하면 된다. 폴크스바겐 골프, 티구안 등에도 같은 기능이 적용됐다.
운전 중 태양빛에 피부가 손상되는 것을 꺼리는 여성들을 위해 자외선 차단 유리를 적용하는 차들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 닛산은 전 차종에 이 유리를 채택해 여성들의 민감한 피부를 보호한다. 차량 내부로 유입되는 복사열을 낮춰 내부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소지품이 많은 여성에게 있어 넓은 수납공간은 필수다. SUV인 푸조 3008, 스바루 포레스터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수납공간이 핸드백을 넣을 수 있을 만큼 넓다. 햇빛 가리개를 펼쳐 거울을 볼 때 자동으로 불이 켜지는 기능은 이제 모든 신차에 당연시된다. 주로 조수석 뒤편에 달리는, 쇼핑백을 걸어둘 수 있는 고리도 이제는 신차의 기본사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동차의 감성적인 부분도 눈길을 끈다. 폴크스바겐은 딱정벌레 모양의 뉴 비틀 운전대 옆에 작은 꽃병을 마련했다. 아기자기한 모습이 특징인 이 차는 여성 구매비율이 높아, 여성들의 감성적인 부분을 고려해 이 같은 장식을 채택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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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크스바겐 뉴 비틀의 운전대 옆 꽃병. / 폴크스바겐코리아 제공
르노삼성이 뉴 SM5에 적용한 '퍼퓸 디퓨저(Perfume Diffuser)'는 실내에 은은한 향기를 배출하는 기능이다. 2가지 향수를 내장했으며, 둘 중 하나를 골라 2단계로 분사량을 조절할 수 있다. 고를 수 있는 향수는 6가지다. 국산차로는 처음 적용했다.
◆처음부터 여성만을 위해 만든 차첫 단계부터 여성 위주로 개발된 차도 있다. 볼보는 SUV인 XC60 개발 과정에서 6개월간 여성들로 이뤄진 심층 면접단을 운영, 설계와 각종 편의장치 적용에 이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이 차는 지난해 뉴질랜드 자동차 전문 여성기자들이 투표한 '2009년 여성을 위한 세계의 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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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보 XC60의 내부 모습. 개발단계부터 여성 심층면접단을 구성, 각종 편의장치에 여성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 볼보코리아 제공
닛산의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가 작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선보인 콘셉트카 에센스는 '여성'을 테마로 삼았다. 볼륨감을 강조한 곡선으로 차체를 디자인했으며,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여성용 소품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측면 통풍부에 있는 장식은 일본 여성들이 기모노를 입을 때 사용하는 비녀의 일종인 '간자시'라는 머리핀을 형상화했다.
'여성을 위한 차'라는 콘셉트의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미국 크라이슬러 닷지는 1955년 여성 소비자를 겨냥한 '라 팜므(La Femme·불어로 여성)'라는 차를 내놓았다. 내부 인테리어는 장미꽃 문양으로 장식했고, 뒷좌석에는 우산을 수납했다. 화장품을 보관할 수 있는 패키지까지 제공한 이 차는 큰 관심을 모았지만, 남성 위주로 자동차가 개발되던 당시여서 대중적인 차가 되지는 못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