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에서 양정으로
구월 넷째 화요일이다. 어제가 추분이었다. 태풍이 지나고 나니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여준다. 일교차가 커 아침엔 제법 쌀쌀한 느낌을 받았다. 낮에는 기온이 올라가 저녁에 다시 떨어진다. 일과를 끝내고 급식소에서 이른 저녁을 해결했다. 아직은 날이 어두우려면 시간이 좀 남았기에 산책을 나섰다. 주중 머무는 와실 근처는 자주 다녔고 코스가 단조로워 방향을 좀 멀게 잡았다.
연사 들녘을 지나 연초교를 지났다. 고현 외곽에 규모가 제법 큰 맑은샘병원을 거치니 수월지구 아파트단지가 나왔다. 와야봉이나 약수봉에 올라 주자골로 내려서서 돌아올 때 지난 곳이다. 고현에서 신흥 개발지로 도시가 팽창된 지역이다. 수월지구에서 양정 방향으로 찻길과 들길을 따라 걸었다. 지난 봄날 거제로 건너와 고현의 방향 감각도 모르고 무작정 그 길을 걸었던 적 있다.
봄날에 그곳을 지난 이후 주변의 여기저기 산봉우리를 올랐고 산자락을 누볐다. 이러다 보니 거제의 자연 경관과 지형지물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고현은 구 시가지고 상동과 양정에 신흥 아파트단지가 속속 들어섰다. 예전엔 논밭이던 농경지가 길이 뚫리고 택지로 바뀌어 갔다. 새 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되자 학교들도 들어섰다. 내가 지내는 곳과 생활권이 달라 낯선 풍광이었다.
내가 살다온 창원은 계획도시로 출범해 도시 형태가 처음부터 균형 있게 짜여졌다. 관공서와 업무지구가 붙어 있고 주택지나 상가도 나뉘어졌다. 산업 기반이 되는 기계공단 지역도 있다. 거기 비해 거제는 고현과 옥포의 대규모 조선소의 근로자들과 가족들의 베드타운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조선소 근로자들이 대거 몰리니 자연히 그들을 뒷받침할 요식업이나 다른 상권도 따라 붙었다.
창원은 녹지공간이나 도심 공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 거제는 공원이나 녹지가 적은 편이었다. 물론 멀리 나가지 않아도 산과 바다를 접하기는 하나 아파트단지를 나서면 찻길이라 공원을 만날 수는 없다. 연초교를 건너 수월삼거리로 나가니 찻길에 붙은 인도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보행이 어려웠다. 상가와 아파트단지를 지나니 수양마을이 나왔다. 농촌과 도시가 공존한 지역이었다.
수양천이 흐르는 개울가 논에는 벼들이 이삭이 여물어 고개를 숙여갔다. 태풍이 지날 때 세찬 비바람에 벼가 쓰러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개울 바닥엔 무성한 달뿌리가 꽃을 피웠다. 달뿌리는 갈대와 비슷해 보이나 산간 계곡에 자라는 특성이 있다. 물억새와도 비슷해 보여도 구분은 된다. 이맘때 개울에서 여름내 잎줄기를 불려 꽃을 피우는 고마리도 가을이 이슥해져 감을 알려주었다.
들판을 지난 산기슭이 수월이었다. 아까 수월삼거리를 지났는데 수월마을이 그곳에 있었다. 마을 뒤로 제법 떨어져 뾰족한 산봉우리가 겹쳐 솟아 있었다. 옥포 옥녀봉과 이어진 국사봉인 듯했다. 작은 국사봉과 큰 국사봉인 듯했다. 옥녀봉은 올랐으나 국사봉은 오르지 못했다. 언젠가 틈을 내어 국사봉에도 올라가 봐야겠다. 산기슭을 따라 자연마을이 계속 이어지다 양정지구가 나왔다.
양정지구에도 고층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초등학교도 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계룡산으로는 저녁놀이 붉게 물들어갔다. 옥포로 가는 외곽도로 아주터널이 지나가는 교각 아래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니 상문고등학교가 나왔다. 야간학습을 하는 학생들로 교실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계룡산 산자락이 흘러내린 기슭으로도 높은 아파트가 곳곳에 들어서 있었다.
고개를 넘었더니 개울이 바뀌어 고현천이었다. 고현만으로 흘러드는 연초천과 함께 큰 하천이다. 상문고에서 고현천 따라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 있었다. 날은 저물어 이미 어두워졌다. 산책로 길섶에는 귀뚜라미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짝을 찾으려는 수컷 귀뚜라미가 쉬지 않고 뒷다리를 몸통에 비벼대지 싶다. 많은 비가 온 뒤라 개울에는 맑은 물이 너울너울 흘러 고현만으로 갔다. 19.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