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 가기 전에 들어야 할 납량특집 음악으로 무소르그스키의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을 떠올렸다.
여러 음반을 갖고 있지만 레이보위츠가 1962년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것을
아날로그 프로덕션즈라는 음반회사에서 <오케스트라의 힘>이란 타이틀로
역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과 함께 담아 새로 출시한 화제의 앨범으로 골랐다.
이 앨범이 화제인 이유는 녹음을 어떻게 한 건지 귀가 둔한 내가 듣기에도 소리가 다른 음반들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음이 스피커 밖으로 튀어나올 듯 생생하고 화려해 관현악의 현란함을 즐기기에는 최고가 아닌가 한다.
서양고전음악 애호가들이 매일 습관적으로 듣는 KBS-FM의 오후 2시 프로그램 <명연주 명음반>을 진행하는
수퍼스타 DJ 정만섭이 언젠가 어느 클래식 감상회에 이 음반을 들고 나타나 해설과 함께
직접 턴테이블에 올리기도 했으니 이 LP가 얼마나 특별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레이보위츠는 폴란드 바르샤바 출신의 작곡가 겸 지휘자로 생전에 그렇게 유명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베토벤 교향곡 전집과 이 무소르그스키 지휘반을 대표 유작으로 남긴 것 같다.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귀신들(혹은 지하의 요정들)이 한밤에 민둥산에서 광란의 축제를 벌이다가
동트기 직전의 새벽 종소리가 울리자 모두 사라져 버린다는 내용의 전형적인 표제음악으로,
전반부에서는 괴기하고 야성적인 소란스러움이 이어지다가 후반부에서는 은은한 종소리에 이어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이 전개되는데,
오늘날 연주되는 곡은 무소르그스키의 사후에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편곡한 것이라 한다.
관현악의 박력과 표현의 대담함이 돋보이는 전반부도 좋지만
아침안개가 피어오르는 듯 운치 있는 후반부가 더 매력적이라고 평하는 애호가들이 많다.
작품의 수준이 어떠하냐를 떠나 분방하고 시원스러운 관현악을 들으며
여름날의 한순간을 즐기기에는 적격인 곡이라 생각된다.
작품의 성격으로 보아 이 곡과 비슷한 것으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가 있는데,
한밤중에 해골들이 묘지에서 나와 광란의 춤을 추다가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 버린다는 내용으로,
생상스의 박진감 넘치고 화려하면서도 뭔가 낭만적인 관현악 기법이 대단히 매력적이다.
우리의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가 언젠가 이 곡을 배경으로 경기를 펼쳐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한번 듣기 시작하면 언제 끝났는지 모를 정도로 듣는 재미가 쏠쏠한 명곡이다.
밤만 되면 해골들이 공동묘지에서 정신없이 춤을 춘다는 설정이 섬뜩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공동묘지에 들어오게 된 각자의 사연을 굳이 상상해 본다면
그들의 군무를 연민의 눈으로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행복하게 천수를 누리다 온 이도 물론 있겠지만,
적의 포탄에 병사로 죽은 이도 있을 것이고,
병으로 또는 사고로 죽기도 했을 것이며,
더러는 사기를 당했거나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오기도 했을 것이다.
천수를 누리다 온 이는 덜하겠지만,
저 세상에 대한 어떤 일말의 미련이 남았거나,
자신이 사고로 떠난 후 와이프가 곧바로 낯선 놈에게 재가를 갔다거나,
자기를 죽음으로 몬 사기꾼놈이 자기 돈으로 대형 벤츠를 타며 호사를 누리는 꼴에 분노하는 해골이라면 공동묘지에서의 춤을 통해서나마 스트레스를 좀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위 두 곡의 성격과 관련이 있을 만한 납량특집 곡으로 리스트의 <죽음의 춤>도 들 수 있을 것 같다.
이 곡은 리스트가 유부녀인 마리 다구 부인과 함께 애정 도피 차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피사에서 오르카나라는 화가의 벽화 <죽음의 승리>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숙명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음악으로 묘사한 것이라 한다.
악마적인 힘과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가득 담은 소규모 피아노 협주곡이라 하겠는데,
관현악의 웅장함과 피아노의 현란한 기교를 만끽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피아노 단독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어 세 곡들이 납량특집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것 같진 않다...
무소르그스키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1917.10.17
-글. 정혜님 / 編. 방랑객-
Camille Saint-Saëns - Danse Macabr
Valentina Lisitsa - John Axelrod - Liszt Totentanz for Piano & Orchestra
음악은 지식이 아니라 느낌이다...
인생은 나그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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