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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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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소통광장 <태강지리지>가 말하는 碣石山(갈석산)의 위치는??
라디오 추천 0 조회 296 18.05.01 00:3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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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5.01 17:35

    첫댓글 식민사관 지리를 이리저리 꿰어 맞췄군요.

    본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태강지리지>의 기록 원문은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이 시작된 곳이다`인데, 사마씨의 서진 말기 낙랑군이 원래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서쪽으로 쫓겨나 임시로 설치된 교치의 정황을 설명한 것입니다.

    또한 이어진 `장성이 요하를 끊고`라는 문장은 <통전/변방문/동이하/고구려>의 기록인데 <통전> 원문은 `갈석산은 한 낙랑군 수성현에 있고 장성이 이 산에서 시작한다. 지금 보니 장성이 동족으로 뻗어나가 요수를 끊고 고(구)려(쪽으)로 들어간다`인데 이때의 요수는 지금의 요하가 아니라 춘추전국시대의 요수인 한나라 요서군 비여현을

  • 18.05.01 17:07

    유하는 난수濡水였고 10 세기 초 거란.요국 시기부터 란(水+欒)하로 개칭되어 불렸습니다.

    현재의 중국지도에 산해관이 표시된 곳의 서쪽에는 란하가 흐르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듯이 실제로도 만리장성 동쪽 끝에 설치된 임유.산해관의 서쪽에는 <한서>부터 <명사><청사고>까지 약 2100 여 년 동안 난수.란하가 흘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통전>을 편찬한 두우가 난수의 옛이름 요수를 기록해 놓아 어리석은 많은 이들이 혼동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우가 저 요수 기록 바로 뒷 문장에서 평양성을 설명한 다음 `대요수는 말갈국 서남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요동군) 안시(현)에 이르고 소요수는 요산에서 발원하여...`

  • 18.05.01 17:38

    라고 설명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두우는 요수.대요수.소요수를 정확하게 구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며 안시(현)에 이르는 물길은 <한서/지리지>에 요동군 망평현에 주석된 1250 리 길이의 대요수임이 명백하기 때문에 요서군 비여현을 흐르는 장성이 끊는 옛 요수인 난수와는 별개의 물길인 것입니다. 즉 두우가 <한서/지리지> 요서군 비여현에 주석된 `난수` 명칭을 인용하지 않은 것 뿐입니다.

    따라서 대요수가 지금의 요하인가 또 산해관이 지금의 위치인가의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장성이 동쪽으로 뻗으며 끊는다는 요수는 란하이기 때문에 갈석산이나 낙랑군 수성현 위치는 지금의 요하 부근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 18.05.01 21:33

    국사광복단 <삼태극>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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