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조력 자살을 허용하는 법률 제정을 놓고 격론이 벌어지는 가운데 조력 자살이 합법화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사는 80세 남성이 세상을 떠난 날을 지켜 봤다고 3일(현지시간) 전했다. 일부 독자가 읽기에 불편한 대목이 있을 수 있겠다.
오전 10시다. 2시간 뒤면, 웨인 호킨스는 죽을 것이다.
80세의 그가 50년 이상 해로한 스텔라(78)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한 방갈로 주택에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난 문을 두드렸고 지난 2주 동안 아빠의 곁을 지킨 딸 에밀리(48)와 아들 애슐리(44)를 만났다.
웨인은 뒤로 젖혀지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말기 환자인 그는 너무 약해져 그 집 밖으로 나올 수도 없다. 그의 집에 도착한 지 30분쯤 지났을 때 난 그가 치명적인 약을 먹었을 때 구토를 일으킬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항구토제(anti-nausea)를 세 알 삼키는 것을 봤다.
난 그에게 이날이 마지막이란 것을 확신하느냐고 물었고, 그는 "그렇다. 나는 몇 주 전에 결심했고 그 뒤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그의 가족은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을 찍자고 했고, 내가 촬영했다. 평소처럼 스텔라와 웨인은 손을 꼭 잡았다. 얼마 안 있어 도니 무어 박사가 도착한다. 그는 이 가족을 지난 몇 주 동안 알아왔고,여러 차례 자신이 운영하는 생애 말년 클리닉(end-of-life clinic)에 초대했다. 캘리포니아 법률 아래 그는 (조력 자살 순간을) 지켜보는 의사로서 사망을 확인하게 되는데 다른 의사 한 명도 함께 지켜본다. 무어 박사의 역할은 의사이기도 하며 부분적으로는 카운셀러이기도 하다. 그는 이전에 150명의 조력 자살을 도왔다.
웨인의 침실 선반에는 갈색 유리병이 놓여 있었는데 4주 전에 배달된 다섯 종류의 약, 진정제와 진통제 등이 담겨 있었다. 무어 박사는 약들의 처방전에 보통 아픈 사람에게 내리는 것보다 수백 배 강하며 치명적임을 "보장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고 설명했다. 캘리포니아와 달리, 웨스트민스터에서 제안된 법률안은 한 의사가 환자들에게 어떤 약 처방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웨인이 준비됐다고 신호하자, 무어 박사는 쌉싸래한 맛을 부드럽게 하려고 그 약들을 체리와 파인애플 주스에 섞기 시작한 뒤 그 분홍빛 액체를 웨인에게 건넸다.
그가 치명적인 약들을 먹은 뒤 죽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누구도, 심지어 의사조차 알지 못했다. 무어 박사는 경험으로 볼 때 30분에서 2시간까지 걸릴 수 있지만, 한 사례에서는 17시간이 걸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웨인이 어떻게, 왜 죽는 방법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왜 다른 이들은 같은 경로를 선택하지 않는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커플을 몇 주 전에 처음 만났다. 웨인은 왜 조력 자살을 하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했다. 그것은 세계 의 다른 곳에서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이다.
그는 "몇몇 날들은 그 고통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면서 "난 그저 삽관이나 음식 튜브를 꽂은 채 천천히 고통 속에 죽어가는 것이 어떤 이득도 없다고 본다. 난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웨인은 두 명의 친척이 심장이 좋지 않아 "참담하고 끔찍하게" 죽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했다. "나는 병원이 싫다. 그들은 비참하다. 나는 먼저 거리에서 죽을 것이다."
웨인은 1969년 스텔라를 처음 만나 4년 뒤 결혼했다. 그는 우리에게 일종의 '기획 결혼'이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의 어머니가 스텔라를 계속 저녁 식사에 초대한 뒤 그에게 그녀를 데리고 외출하라는 신호로 동전을 떨어뜨리더라고 했다.
그들은 미국삼나무(redwood) 숲으로 둘러싸인 북부 캘리포니아의 아르카타에서 오랜 세월 살았다. 그곳에서 웨인은 조경 디자이너로 일했고, 스텔라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두 사람은 휴가 때 자녀들과 하이킹과 캠핑을 하며 지냈다.
지금 웨인은 심장병 말기 환자로 거의 죽음의 문턱에 있다. 그는 전립선암, 간 손상, 척추에 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패혈증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는 살 날이 6개월도 남지 않아 캘리포니아의 조력 자살 자격이 됐다. 그의 사망 신청은 두 의사에 의해 승인 받았고 스스로 치명적인 약을 복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연유로 처음 만났을 때 영국의 말기 성인 환자들도 자신처럼 조력 자살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며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라고 초대했다.
그의 말이다. "영국은 자유로워 아주 좋은데 이것은 또 다른 것이다. 사람들은 살 날이 6개월이나 그 미만으로 남아 있는 조건을 충족하면 죽는 때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스텔라도 그의 결정을 지지했다. "나는 그를 50년 넘게 알아왔다. 그는 매우 독립적인 남자다. 그는 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며 항상 상황을 바로잡았다. 그것이 그가 지금 처리하고 있는 일이다. 그의 선택이 이것이라면, 난 분명히 동의하며, 난 그가 걸린 질병 때문에 정말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봐왔다. 난 그에게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웨인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조력 자살 법안이 제시한 자격 요건도 충족시킬 것이다. 이달 안에 하원에 되돌아가 모든 의원들이 말기 성인 환자(생의 말년) 법안의 변경 여부를 논쟁하고 투표에 들어갈 예정이다.
킴 리드비터 노동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인생을 끝내고 싶어 하는 누구라도 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정신적 능력을 검증 받고, 살 날이 6개월 안쪽 밖에 남지 않았으며, 죽고 싶다는 뜻을 증언하고 서명할 수 있는 두 개의 별도 절차를 충족하며, 자격을 갖춘 두 명의 의사가 지켜보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웨스터민스터의 의원들은 지난해 11월 투표했으나 지금도 여전히 격렬하게 분열돼 있다. 만약 끝내 이 법안을 승인하기로 결정하면, 내년 안에는 법으로 공포돼 그 4년 뒤 안에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조력 자살이 도입된 캘리포니아에서도 여전히 견해가 갈려 있다. 미셸과 마이크 카터는 72세 동갑내기인데 43년을 해로했는데 둘 다 암 치료를 받고 있다. 마이크는 전립선암이 림프까지 번졌고, 미셸의 말기 자궁암도 몸 속 곳곳에 파고들었다.
미셸이 내게 건넨 말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날 때 손을 잡았다. 아빠가 눈을 감을 때도 손을 잡았다. 나를 위해 선택할 자유가 내게 있다고 믿는다. 난 연명 치료를 선택했다. 내겐 하나님도 있고 좋은 약도 있다."
미셸의 주치의는 연명 치료 전문가인 빈센트 응우옌 박사인데 미국 주들의 조력 자살 법률이 취약한 이들이 죽는 것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게 하는 "침묵의 강요"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죽는 것 대신, 사람들을 함께 돌보는 프로그램을 해보자. 그들이 사랑받으며, 필요로 하며, 가치있는 존재임을 알게 하자."
그는 그 법이 의사들을 치유하는 사람이 아니라 살인자로 보이게 만들며, 건강보험 시스템의 메시지가 "당신은 죽는 게 낫다. 왜냐하면 돈도 많이 들고 당신의 죽음이 우리에게 싸게 먹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의미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캠페인을 벌이는 몇몇은 조력 자살이 불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든다고 한다. 근육경화증에다 만성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잉그리드 티셔는 내게 말하길 "캘리포니아의 장애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삶을 끝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자살을 예방하는 것보다 자살에 도움을 받을 자격이 됐다고 알리는 격이다. 하나의 문화라고 말하면 이것은 무엇을 얘기하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평론가들은 종종 얘기한다. 일단 조력 자살이 합법이 되면,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법률들에 대한 안전장치가 풀려 "미끄러지듯(slippery slope)" 조금 더 완화된 기준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처음에는 15일의 숙의 기간이 의무화돼 처음 신청하고 두 번째 신청할 때까지 생각할 시간을 갖도록 했다. 이제는 48시간으로 줄어 많은 환자들이 이틀만 대기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에서는 승인 절차가 한 달 정도 주어지면 충분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시) 죽는 날 아침 웨인의 집 밖에서는 외로운 새 한 마리가 큰 소리로 지저귀기 시작했다. 웨인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스텔라에게 "저기 앵무새가 나왔네"라고 말했다. 스텔라는 남편이 한밤중 잠을 깨운다며 앵무새를 싫어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의 의자 곁에서 웨인의 손을 잡은 채였다. 에밀리와 애슐리도 그녀 옆에 있었다.
웨인의 다른 쪽 옆을 지킨 무어 박사는 그가 주저하지 않고 삼킨 분홍색 액체를 건넸다. 웨인은 "굿나잇"이라고 가족에게 말했는데, 우리에게는 미리 죽음을 맞는 순간 농담처럼 말할 것이라고 언질한 일종의 유머였다. 오전 11시 47분이었다.
2분 뒤 웨인은 잠이 온다고 말했다. 무어 박사는 그에게 부드러운 미풍이 살갗을 스치는 광활한 꽃의 바다를 거닐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고 주문했다. 생애의 대부분을 자연 속에서 보낸 남자에게 딱 어울리는 일인 것처럼 보였다.
3분 뒤 웨인은 절대 깨어나지 않을 깊은 잠에 들어갔다. 몇 차례나 눈은 뜨지 않은 채 고개를 들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한 순간, 부드럽게 코를 곯기도 했다.
무어 박사는 가족들에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잠"이라 말하며 에밀리에게 아버지가 다시 깨어나 "먹혔니?"라고 농담을 할 일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확인시켰다. 스텔라는 웃으며 "아 그라면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은 커다란 밴 승합차, 나중에는 캠핑카를 몰아 휴가 때 하이킹과 여러 곳을 돌아다녔던 추억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애슐리는 "나와 아빠는 따로 떨어져 (집) 뒤에 침대를 갖다놓았다"고 말했다. 벽들에는 두 남매의 어릴 적 엄청 큰 핼러윈 호박들 옆에 선 것 등 사진들이 붙여져 있었다.
무어 박사는 여전히 웨인의 손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맥박을 짚었다. 에밀리는 "항상 걷고, 항상 아웃도어였으며, 늘 활동적이었던" 남자 얘기를 했다. 그의 인생 여행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에게 많은 의미를 지녔던 이들에 둘러싸인 채였다.
낮 12시 22분 무어 박사가 "그가 떠난 것 같다. 그는 이제 평온하다"고 말했다. 밖의 앵무새도 어느덧 조용해져 있었다. 스텔라는 자녀들을 얼싸안으며 "더 고통이 없길"이라고 말했다.
나는 밖에 있어서 가족이 마음껏 슬퍼할 여지를 만들어주는 한편, 우리가 방금 목격하고 필름에 담은 것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BBC에서 20년 넘게 의학 윤리를 취재했다. 2006년 나는 스위스 취리히의 한 아파트 밖에 서 있었다. 은퇴한 의사 안느 터너가 (국내에도 이제 아는 사람이 적지 않은) 디그니타스의 도움을 받아 죽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에서 내가 이런 조력 자살을 참관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기사는 그냥 캘리포니아의 한 남성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도 조력 자살 자격을 갖춘 이들이 이런 식으로 죽음을 선택하게 되면 겪을 현실에 대한 애기다.
여러분이 웨스트민스터에서 제의된 새 법안에 대해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상관 없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가족에게 매우 개인적이며 감상적인 시간이다. 각자의 죽음은 강한 인상(imprint)을 남긴다. 웨인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