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식탁> 수양제와 닭갈비
"교만하고 무력을 남용하면 망한다" '계륵의 교훈'
“쓸데없는 전쟁 일으켜 백성 도탄”
수양제의 고구려 침략을 닭갈비에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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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재운 닭갈비는 양배추·양파·대파 등 채소와 가래떡을 곁들여 먹는 맛이 별미인데 취향에 따라 볶아서 먹어도 맛있고 숯불구이로 먹어도 좋다.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동남아와 서양 관광객들도 일부러 찾아와 먹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닭갈비가 이렇게 널리 퍼진 것은 사실 군인 덕분이다. 1960년대 말, 춘천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 일대 선술집에서는 막걸리 안주로 값싼 닭갈비를 구워 먹었는데 이것이 휴가나 외출 나온 병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별미가 됐다. 지금의 닭갈비는 사실 이름만 닭갈비일 뿐이고 실제로는 살집도 푸짐하고 맛있는 닭다리살로 대체해 훨씬 고급스러워졌지만 원래의 닭갈비는 먹자니 먹을 것은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음식이었다. 그래서 주머니가 가벼운 병사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먹을 것은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의 닭갈비, 즉 ‘계륵(鷄肋)’도 유명하다. 유비와의 한중(漢中)전투에서 계속 싸우자니 승산이 없고 후퇴하자니 전략적 요충지인 한중을 포기하는 게 아쉬운 심정을 닭갈비에 비유한 것이다.
조조의 계륵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닭갈비와 관련된 고사가 또 하나 있다. 고구려를 침략했다가 살수에서 을지문덕 장군에게 대패해 결국 나라를 말아먹은 수양제와 관련이 있다.

을지문덕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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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계륵”
수나라 말기에 이밀(李密)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양제가 고구려 침략 원정을 떠나자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그는 고구려를 ‘버리기는 아깝고 먹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계륵’에 비유하면서 쓸데없는 전쟁을 일으켜 백성을 도탄에 빠트렸다고 양제를 비난하며 반란의 명분으로 삼았다.
우리 입장에서는 고구려를 닭갈비에 비유한 것이니 썩 기분 좋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밀이 지적한 고구려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가 아니고 옛 고구려 땅인 만주 일대, 즉 지금의 중국 동북 3성인 요동(遼東)지역이다.
이밀은 서기 582년에 태어나 서른일곱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 수나라 장군으로 조상의 고향이 요동 지역이어서 일부에서는 고구려 출신이라고 얘기한다.
수나라의 정사인 ‘수서(隋書)’ 이밀 열전에는 그를 문무에 걸쳐 재주가 비상할 뿐만 아니라 영웅의 기상을 지녔다고 평가해 놓았다.
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하려고 요동으로 떠났을 때 권신 양소의 아들인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밀은 양현감의 반란군에 합류해 병사를 지휘했다. 반란의 명분으로 양제의 10가지 죄상을 꾸짖는 토수양제격문(討隋煬帝檄文)을 발표했는데 이 문장을 이밀이 썼다고 전해진다.

수양제의 고구려 침공에 대해 잘못된 점 10가지를 상세하게 풀이한 조선 말 역사학자 한치윤의 해동역사(海東繹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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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 군사 저승길로…수양제 비난
조선 말 역사학자 한치윤은 자신이 쓴 ‘해동역사(海東繹史)’에 이 10가지 죄의 내용을 상세하게 풀이했는데 그 일곱 번째 내용이 우리한테는 흥미롭다. 요수(遼水)의 동쪽은 조선 땅으로 고대 중국 주나라에서도 황폐한 곳이어서 영토로 삼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그 돌밭을 차지해 봤자 소용도 없고 닭갈비인 계륵을 씹어봤자 어디에 쓸 것이냐며 꾸짖는 내용이다.
고구려를 닭갈비에 비유한 것은 쓸데없는 전쟁을 일으켰다며 수양제를 비난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주목할 부분은 수나라 때 요동 땅, 그러니까 지금의 중국 동북지역을 고구려 땅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지금 동북공정에서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고 강변해야 하는 이유다.
이밀은 이어 백성이 많고 군사가 강한 것을 믿고 무력을 함부로 남용하는데 이것은 오로지 정복에만 뜻이 있고 장기적인 계책은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무력은 불과 같아서 단속하지 않으면 스스로 불타는 법이라고 경고하면서 그 결과 억만의 군사를 일으켜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고 수양제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땅을 넓히려고 힘쓰는 자는 멸망”
당나라 때 역사가 이연수가 편찬한 6세기 무렵의 중국 북조시대 왕조 역사를 다룬 ‘북사(北史)’도 수양제의 죄를 이렇게 꾸짖었다. “위나라부터 수나라까지 네 나라가 바뀌면서 서로 다투느라 외국을 정벌할 겨를이 없었다. 수나라 말기에 이르러 요동 동쪽 정벌에 나섰는데 하늘의 때가 불리해 공을 이루지 못했다. 수양제가 왕좌에 올라 천하를 차지하겠다며 자주 삼한 땅을 짓밟고자 군대를 동원하니 고구려는 궁지에 몰린 동물처럼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이에 싸워도 이기지 못해 천하가 소란스러워졌으며 결국 흙더미가 무너지듯 자신을 망치고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역사가 이연수는 그러면서 “병법서에 덕을 넓히기를 힘쓰는 자는 창성하고 땅을 넓히려고 힘쓰는 자는 멸망한다고 했다”며 “교만해져 원망을 듣고 분노해 힘을 휘두르니 이렇게 하고서도 망하지 않았다는 말을 예부터 들어보지 못했다(以驕取怨 以怒興師 若此而不亡 自古未聞也)”고 평가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와 위정자들이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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