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가 아니라 ‘부활’
<사순 제5주일 강론>
(2024. 3. 17.)(요한 12,20-3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24-26).”
‘밀알 하나를 땅에 심는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뜻하고, ‘많은 열매’는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뜻합니다.
<구원에 대해서 관심이 없거나 복음을 안 믿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일은 많은 열매를 얻으려고 밀알 하나를 심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밀알을 땅에 심는 일’은 그 밀알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만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고,
밀알은 땅 속에서도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는 밀알에서만 싹이 나오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믿음 없는 사람들의 눈에만 죽음으로 보이는
일이었을 뿐이고, 실제로는 부활로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사도 2,23-24).”
“(다윗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사도 2,31-32).”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에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을 때, 천사들은 그들에게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루카 24,5-6).”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허망하게 돌아가신
그 예수님이 아니라, 그렇게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
또 부활하셔서 늘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뵙고 싶다면 십자가를 바라보면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아니고, 우리는 우리 안에서,
또는 우리 삶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특히 이웃 안에서, 또 이웃과 나누는 사랑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신앙생활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부활, 생명, 구원이 신앙생활의 목적지이고,
십자가는 그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십자가에서 비롯된 신앙이 아니라
부활에서 비롯된 신앙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우리를 살리려고(구원하려고)
당신 자신이 하나의 밀알이 되신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은
분명히 ‘희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살려고(구원받으려고) 스스로 밀알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희생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희생이란 남을 위한 일입니다.
나의 십자가는 내가 살자고 나 자신이 스스로 지는 것이기
때문에 희생이 아니고, 살고 싶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이고 허무한 것들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런 것들을 버리는 일은 희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누구나 해야 하는 노력입니다.
<운동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어서
열심히 운동하는 것을 희생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1코린 9,25).”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2티모 4,7-8).”
바오로 사도처럼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신앙인은 복된 사람입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라는
말씀은,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가지려고 욕심을 부렸던 그것들과 함께
허무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은 “누구든지 내가 주는 구원을
얻으려면”이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입니다.
예수님을 섬긴다는 말은 예수님만을 주님으로 섬긴다는
뜻이고, 예수님만을 주님으로 섬긴다는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만을 진리로 믿고 받아들여서 실천하는
인생을 산다는 뜻입니다.
‘내가 있는 곳’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여기서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그를 영예롭게 해 주실 것이다.”, 즉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고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십자가는 신앙생활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부활, 생명, 구원이 신앙생활의 목적지이고,
십자가는 그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