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인간에게는 다양한 정신질환이 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심각하고 치료가 어려우면서도 정상적인 눈으로는 믿기 힘든 것이 조현병이다. 조현병은 현실에 대한 왜곡된 지각, 비정상적인 정서체험, 사고·동기·행동의 총체적인 손상과 괴리 등을 수반하는 정신장애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TV에서 드라마 주인공이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식욕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손을 TV 쪽으로 내밀어 그 음식을 먹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왜 가능한가? 분명 내 눈을 통해 음식의 이미지는 들어왔는데 말이다. 바로 현실감 때문이다.
우리는 책이나, 그림, 혹은 TV나 영화에서 보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현실감이 망가지면? 결과는 매우 참혹하다. 존재하는 것들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구분이 분열되기 때문이다.
1망상, 환각, 그리고 비조직적인 언어와 행동
환청은 조현병 환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출처:gettyimages>
따라서 조현병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증상이 망상, 환각, 비조직적 언어와 행동이다.1) 망상(delusion)은 명백히 잘못된 믿음인데도 그 믿음을 계속적으로 유지하며 그로 인해 비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유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자신을 특정 유명인 중 한 사람으로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한다든가 아니면 정보기관이나 외계인 등이 자신을 계속 감시하면서 괴롭히고 있다는 믿음으로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분명한 한 가지 공통점은 자신들이 마음에 대한 조절이나 통제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존재하지 않는 물리적 자극이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환각(hallucination)도 조현병의 중요한 증상 중의 하나이다. 주로 환청이 자주 관찰되는데 조현병 환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부분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기 때문이다.
또한 그 목소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달콤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인 경우가 거의 없고, ‘너를 죽일 거야’ ‘그 녀석을 때려라.’ 등 기괴하거나 나쁜 행동을 부추기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조현병 환자가 간혹 매우 급작스런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게다가 조현병 환자는 대화나 말을 할 때 하나의 주제를 유지하면서 그에 맞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며 이 주제 저 주제로 급하게 옮겨 다니기 일쑤이다. 따라서 자신의 글이나 대화에서 모순되거나 황당한 전개가 자주일어나며 의사소통에도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양상은 행동에도 그대로 일어나는데 공공장소에서 성적인 행동을 하거나 점잖은 자리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말투로 이야기하기도하고 깔깔대며 박장대소하기도 한다.
긴장 행동이라고 하는 운동 장애의 예 (출처: http://www.squidoo.com/catatonicschizophrenia)
이외에도 괴성, 기이한 표정 등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는 행동들이 수반되는데 이를 일컬어 비조직적 언어와 행동이라고 한다. 또한 심한 경우 긴장형 간혹 긴장 행동(catatonic behavior)이라고 하는 운동 장애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 증상을 보이는 조현병 환자는왼쪽 사진과 같은 이상한 자세로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곤 한다.
또한 부적증상(negative symptom)을 보이는 조현병 환자도 있는데 이는 정서적으로 매우 무뎌지는 증상을 말하는 것으로, 무감각, 무관심, 무표현 등 오히려 환각과는 반대로 세상의 변화나 자극에 대해 신체적 정서적 반응이 거의 없는 상태를 말한다.
2조현병의 유형과 원인
앞서 언급한 조현병의 다양한 증상들이 모든 조현병 환자들에게서 언제나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조현병에는 편집증형, 긴장형, 비조직형, 미분화형, 그리고 잔여형 등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처음의 세 유형은 여러 증상 중 어느 것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가에 기초한 구분이며 그 셋 중 어느 하나에도 포함되지 않는 사례가 미분화형, 그리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으나 여전히 잔여 증상을 보이는 경우를 잔여형으로 구분한다.
그 증상이 다소 충격적이기 때문에 매우 희귀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1% 내외의 발병률을 보일 정도로 높은 발생확률을 보이고 있으며 남녀 간에도 발생 빈도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따라서 귀신이 씌었다거나 죄악 때문에 걸린 질병으로 보는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접근할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원인이 일반적인 질병들과 같이 매우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조현병의 원인을 완벽히 규명해 내고 있지는 못한다. 사실 이는 매우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가능할 일이다. 다만 현재에는 원인이라고 추정되는 주요 요인들을 몇 가지 언급할 수 있을 정도다. 하나씩 알아보자.
우선 유전적 요인은 존재하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전 연구들에서 친인척 간 조현병의 상관정도가 친인척 관계가 가까울수록(즉 가까운 촌수로 갈수록)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란성 쌍둥이 중 어느 한 쪽에서 조현병이 발견되면 그 나머지 한 사람에게서도 발견될 확률이 48%에 이른다. 또한 양 부모 모두 조현병을 지니고 있으면 자식도 그럴 확률이 46%이다.2)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아니지만 이러한 가족연구 결과들이 소위 ‘미친 피“라든가 ‘정신질환이 잘 걸리는 집안’등과 같은 식으로 곡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감염 혹은 약물남용과 같은 요인이 조현병과 유사한 증상들을 유발하곤 하는데 대부분 뇌의 특정 부위에 파괴적 영향력을 미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요인들과 관련된 환경에 가족들이라면 공통적으로 노출되기가 당연히 더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환각제에 속하는 LSD(lysergic acid diethylamide)나 Phencyclidine(흔히 PCP 혹은 angel dust로 불리는)와 같은 약물을 과다 복용하거나 환경적으로 체내에 다량 들어오게 되면 뇌의 신경시스템 손상이 유발되는데 특히 해마(hippocampus)가 축소되고 대상회(cingulate gyrus)에 걸친 광범위한 퇴화가 발생하면서 조현병적 증상들이 일어나는 경우가 다수 관찰되었다.
해마의 기능은 일반적으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인식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 있으며 대상회는 감정의 조절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조현병 환자들은 정상인들에 비해 뇌의 주요 부위들의 크기 비율이 불균형적이다. 일반적으로 조현병 환자들은 해마의 크기가 평균보다 작고 단순한 운동의 반복과 관련 있는 기저핵(basal ganglia)은 더 비대해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고차적이고 종합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의 활동이 비정상적인 경우가 많다. 태아시기에 감염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러한 불균형적 발달이 일어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이미지 1
그러나 중요한 점은 모든 조현병 환자들이 자신들의 뇌에서 이러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위에서 언급된 뇌 내에서의 비정상이 모든 조현병 환자에서 보이는 현상은 아니며, 또한 조현병이 없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러한 뇌 장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현병의 원인에 대한 명확한 규명은 아직 가능하지 않다.
3조현병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나? 정신병리에 대한 관점의 전환
다른 선진국의 경우 조현병에 대한 약물적 및 행동적 치료가 발달함에 따라 점차 병원의 격리시설에 수용하는 비율이 줄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 20~30년 동안 주로 격리에 치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암을 조기 발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종말이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족 중 한 사람이 암에 걸린 사실을 수치스러워하거나 숨기려고까지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좋은 병원을 찾아다니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한다.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병리도 마찬가지로 접근해야 한다. 행동에 초점을 맞춘 재활, 그리고 약물 요법, 더 나아가 관련된 뇌 영역에 대한 다양한 치료를 통해 뇌 이외의 영역에 대한 질병처럼 뇌에 대한 질병도 중립적인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만 단순한 격리, 그리고 그 격리에서 벗어난 이후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고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치부라고 생각하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질병만큼 나중에 여러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글쓴이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University of Texas -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논문지에 Preference and the specificity of goals (2007), Self-construal and the processing of covariation information in causalreasoning(2007) 등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