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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전 세계의 식량 안보는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 러시아는 흑해 (Black Sea) 연안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항구들을 봉쇄했고,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출은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아프리카 등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은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에 처했고, 국제 곡물 가격은 급등했다. 이에 터키와 국제연합(UN)의 중재 하에 2022년 7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흑해곡물협정(Black Sea Grain Initiative)’이 체결되어 잠시나마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의 길이 열렸으나, 러시아가 2023년 7월 협정 연장을 거부하며 다시 세계 식량 시장에는 암운이 드리우게 됐다.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중단 선언 이후 우크라이나는 식료품 수출 경로 확보를 위해 다각적 조치를 시행했다. 러시아의 끊임없는 드론 및 미사일 공격에도 다뉴브(Danube)강 하류 항구를 통해 선박을 이용한 수출을 계속하고 있으며, 러시아를 제외한 타 국가들과 협정을 맺고 곡물 수출을 위한 새로운 경로를 모색하고 있다. 주변 국가들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일시적인 곡물 수출 금지 조치로 인하여 다소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본고를 통해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의 최근 상황을 점검해 보고 향후 도입이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흑해 곡물협정의 성과
흑해곡물협정은 우크라이나산 곡물 및 기타 식료품 수 백만 톤의 수출이 중단되며 심각한 식량 안보 위협에 처한 다수 국가들의 상황을 타개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22년 7월부터 약 1년간의 흑해곡물협정 시행 기간 우크라이나는 흑해연안의 3대 항구를 통해 전 세계 45개국에 약 3,300만 톤의 농산물을 수출할 수 있었다1). 주요 수출 대상국은 중국, 스페인, 터키였지만 그 외 이집트, 방글라데시, 튀니지, 인도, 리비아 등 기타 식량안보 취약 국가들에도 상당한 물량을 수출할 수 있었다. 해당 기간 한국에도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약 33만 톤이 수출되었다. 그 결과, 2022년 말 국제연합 식량 농업기구(UN FAO, United Nations Food And Agricultural Organization) 식량가격지수(Food Price Index)는 2022년 3월 연고점 대비 23% 이상 하락했다. UN에 따르면 2022년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의 전체 밀 원조량의 50% 이상이 우크라이나산이었다2).
흑해곡물협정은 개전 이후 어려움에 처한 우크라이나의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식료품 업체들은 수출량 급감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우위를 보여온 기존 식료품 시장에서 사업을 이어 나갔는데, 특히 해바라기씨유의 생산과 유럽 및 아시아 시장으로의 수출에서 우위를 유지했다. 그 결과 2022년 해바라기씨유 수출액은 54억 3,000만 달러(한화 약 7조 3,900억 원)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쟁 발발 이전인 2021년 수출량의 78%에 해당하는 액수이다3). 전쟁 발발 이후 유입된 막대한 국제 원조액을 제외하면 농식품 수출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가장 중요한 외화 수입원이며, 우크라이나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버팀목이다.
<그림 1> 흑해곡물협정 기간 우크라이나의 상위 10대 곡물 수출 대상국 (단위: 백만 톤)
자료: United Nations, https://www.un.org/en/black-sea-grain-initiative/data
<그림 2> 흑해곡물협정 기간 우크라이나 항구에서 출항한 곡물 운송선 수 (단위: 척)
자료: United Nations, https://www.un.org/en/black-sea-grain-initiative/data
흑해곡물협정 종료의 원인
2022년 7월 이후 흑해 곡물협정은 세 차례 연장됐다. 2023년 5월 최종적으로 2개월 연장된 흑해 곡물협정은 우크라이나의 남부 지역 탈환작전 개시 직전 승인됐다. 많은 전문가들과 관련 기관들은 협정 기간 중에도 러시아가 고의적으로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했다고 지적했는데, 일부 추정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측의 방해로 인한 우크라이나 식품 수출업체들의 피해 규모는 최소 약 2억 1,000만 달러 (한화 약 2,843억 4,000만 원)에서 최대 약 10억 달러 (한화 약 1조 3,54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4). 흑해곡물협정 최종 연장 기간 중이었던 6월에는 37척, 7월에는 8척의 선박만이 곡물협정을 통한 수출에 이용되었는데, 이는 2022년 가을~2023년 겨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수치이다. 2022년 9~10월에 매월 약 180척의 선박이 출항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흑해곡물협정은 파기 이전부터 이미 정상적으로 운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부 이해 당사자들은 2023년 9월로 예정되어 있었던 블라디미르 푸틴 (Vladimir Vladimirovich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튀르키예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 전까지 푸틴 대통령이 협정 복귀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며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9월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에 실패했다. 정상회담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에 복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밝혔지만, 러시아측은 이에 반발하며 흑해곡물협정 체결 당시 합의했던 약속이 이행되지 않은 것이 연장 거부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5). 그러나 국제법을 위반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주권을 침해한 러시아의 요구사항을 전 세계가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식량을 무기화하여 전 세계의 식량 안보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러시아는 2023년 7월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에 무료로 식량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는데6), 빠른 전쟁 종식과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을 위한 흑해 항구 재개방만이 아프리카 식량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종전의 기미를 찾기 힘든 상황이며, 흑해곡물협정의 재개도 낙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흑해곡물협정이 종료된 바로 다음 날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항만 인프라에 대한 테러를 시작했다. 2023년 9월 중순까지 러시아군이 파괴한 곡물 창고, 사무동, 기타 기반시설 등 우크라이나 항만 시설은 총 105소에 달한다7). 우크라이나 인프라청에 따르면 흑해곡물협정 파기 후 한달간 러시아의 테러행위로 인해 훼손된 곡물은 27만 톤에 이른다8). 러시아는 드론을 이용한 테러를 확대하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공군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9월 한달에만 총 500기의 샤헤드-136 가미카제 (Shahed-136 kamikaze) 드론을 이용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는 러시아가 지난 겨울 6개월 동안 사용한 공격용 드론 수의 절반에 해당한다9). 드론 공격은 대부분 오데사(Odesa), 레니(Reni) 등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 수출항을 표적으로 삼았는데, 이는 우크라이나의 핵심 인프라를 공격하려는 러시아의 더 광범위한 계획의 일부인 것으로 판단된다.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막으려는 러시아는 다수 곡물 수입국들의 어려움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러시아의 공격으로부터 곡물 수출항을 보호하고 곡물 수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보강을 위한 전 세계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새로운 곡물회랑(Grain Corridor)의 필요성
2023년 7월부터 우크라이나는 동맹국들의 지지 여론 부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합의 없이 곡물수출을 재개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8월 10일 우크라이나는 곡물 운송선이 흑해 항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임시 항로(인도주의회랑, humanitarian Corridor)의 개통을 공표했다. 해당 항로를 이용하여 8월 중순 첫 번째 곡물 수출선이 곡물 운송선이 우크라이나 항구를 출발했으며, 9월 중순에는 인도주의회랑을 통해 입항한 첫 외국 선박인10) 리질런트 아프리카(Resilent Africa)호가 초르노모르스크(Chornomorsk)항에서 약 3,000톤가량의 밀을 적재한 뒤 우크라이나 해군의 호위를 받으며 출항했다. 이후 30척 이상의 선박이 인도주의회랑을 이용하여 오데사 및 주변 항구에 기항했는데, 우크라이나 측은 인도주의회랑을 이용하여 운송된 곡물이 총 100만 톤에 달한다고 밝혔다11). 우크라이나는 곡물 이외에 철광석 등 소량이나마 화물 선적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임시 항로인 인도주의회랑이 언제까지 운용될지 정해진 바는 없지만, 러시아와의 합의 없이도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러시아 흑해 함대의 해군 기지와 함정 공격에 성공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지원받은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이용하여 2014년부터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세바스토폴(Sevastopol)에 위치한 러시아군 흑해 함대 본부를 타격했다. 다수의 러시아 전함이 파괴되었고, 이에 러시아군은 흑해 함대 본부 일부를 러시아 영토 내에 위치한 노보로시비르스크(Novosibirsk)로 이전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무역항로와 러시아 해군 간의 거리가 멀어졌고, 항로가 더 안전해졌음을 뜻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최소한 흑해 지역에서는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평가한다12). 특히, 제임스 히피 (James Heappey) 영국 국방부 장관은 러시아의 흑해함대가 ‘기능적으로 패배(functional defeat)’ 했다고 발언했는데13), 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더 많은 무기 지원이 우크라이나의 주권 확보뿐만 아니라 세계식량안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기세를 몰아 흑해 무역 안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크림(Crimea)반도 또한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
대안 경로
우크라이나 우방국들은 곡물 수출을 위한 물류 병목현상 해소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2년 5월 유럽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는 철로, 육로, 내륙수로 등의 대체 운송로를 활용하기 위한 ‘연대의 길(Solidarity Lane)’ 행동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EC에 따르면 2022년 3 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연대의 길을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유지 종자 및 관련 제품의 수출량은 약 5,200만 톤에 달했고, 철광석 원자재, 목재 등을 비롯한 비농산품의 수출량도 4,200만 톤 이상을 기록했다. 연대의 길에 의한 경제적 효과는 약 380억 유로 (한화 약 54조 4,209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림 3> ‘연대의 길(Solidarity Lane)’을 통한 곡물, 유지 종자 및 기타 품목 수출량 (단위: 백만 톤)
자료: European Commission based on the Ukrainian customs registers14)
다만 물류 설비의 문제로 대체 수출 경로의 물류 처리량이 다소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전쟁 발발 이전에는 우크라이나 전체 수출량의 약 70%가 해상으로 운송되었고 철도와 도로 인프라에 대한 이용도는 높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철도 및 도로 인프라가 모든 물동량을 대체하여 소화하기에는 상당히 미흡한 수준인데, 현재 국경 검문소의 통관 처리량이 매우 적다는 점과 우크라이나와 EU간 철로 폭 표준궤가 달라 화물 열차 이동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EU측 물류시설의 화물 수용량이 불충분하는 점은 연대의 길을 포함한 육상 대체 경로의 한계점으로 평가된다15).
EC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세계은행(World Bank), 유럽 투자은행(EIB, European Investment Bank), 유럽 부흥 개발 은행(EBRD, European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등과 같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약 10억 유로 (한화 약 1조 4,321억 3,000만 원) 규모의 지원을 확보하고 물류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16). 연대의 길 행동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이 사업은 물류 인프라의 화물 수용 능력 향상을 목표로 하는데, 2023년 6월에는 우크라이나, EU, 몰도바 국경 간 연결성 개선을 위한 총 9개 프로젝트에 2억 5,000만 유로(한화 약 3,580억 3,250만원)가 투입되었다. 이는 단기적인 육상 운송로의 화물 수용 능력 향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와 EU의 인프라 통합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경제와 세계식량시장의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농업이 국가 정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타 EU 회원국들에서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수입과 관련하여 문제를 제기한 점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육상 수출 경로에 위치한 몇몇 국가들에서 일부 농산물에 대한 시장 왜곡 현상이 보고되었는데, 이에 2023년 4월 해당 국가들은 연대의 길을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을 금지하는 규제를 도입한 바 있다. EC의 중재로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5개 회원국에서 2023년 9월 중순까지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제한 조치가 허용되었는데17), 특히 폴란드의 경우에는 2023년 10월 총선과 관련하여 농민들이 집권당의 주요 지지층이라는 점에서 해당 이슈가 정치 쟁점화되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 폴란드 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잠시 양국 간 관계가 악화되는 듯 보였으나 빠르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으며, 우크라이나의 농산물 수출을 지원하려는 EU의 노력이 퇴색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론
2022년 흑해곡물협정은 전 세계 식량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매우 중대한 조치였으며 우크라이나의 경제 회복에도 크게 기여했다. 러시아의 일방적인 종료 선언으로 협정 이행이 중단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는 세계 각국에 자국산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먼저, 우크라이나는 흑해 곡물 수출입 항구를 수복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공세를 펼쳐 안전한 해상 경로를 확보했다. 향후 동맹국들의 보다 적극적인 무기 지원으로 위협 요인에 대한 완전한 억제가 가능해진다면, 전 세계 식량 안보 확립이라는 궁극적인 목표 달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철도를 포함한 대체 경로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U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육상 경로를 통한 수출량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는 군사력과 인프라를 총 동원하여 전쟁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계 식량 안보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 각주
1) See Ukrainian Grain Association, https://uga.ua/en/results-of-the-grain-corridor-work/
2) See https://www.europolitika.com/a-glance-to-black-sea-grain-initiative-results-of-first-year/
5) See https://www.pravda.com.ua/eng/news/2023/09/4/7418384/,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3-09-04/erdogan-eyes-progess-on-black-sea-grain-from-putin-ahead-of-g20
10) See https://interfax.com.ua/news/general/935756-amp.html, www.bloomberg.com%2Fnews%2Farticles%2F2023-09-19%2Fwheat-extends-drop-with-ukraine-s-black-sea-grain-ships-in-focus
14) See https://eu-solidarity-ukraine.ec.europa.eu/eu-assistance-ukraine/eu-ukraine-solidarity-lanes_en
16) See https://eu-solidarity-ukraine.ec.europa.eu/eu-assistance-ukraine/eu-ukraine-solidarity-lanes_en
17) See https://ec.europa.eu/commission/presscorner/detail/en/ip_23_4497 , https://neighbourhood-enlargement.ec.europa.eu/news/commission-adopts-exceptional-and-temporary-preventive-measures-limited-imports-ukraine-2023-05-02_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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