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이 익어가는 소리가 완연하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산새들의 지저귐, 살갗에 닿는 알싸한 느낌의 가을 바람이 경북 영주의 선비촌을 감싸안는다. 옛날 선비의 하루는 어떠했을까. 19세기 후반 퇴계학자 윤최식(尹最植)은 선비들의 생활지침서인 ‘일용지결’(日用指訣)에서 ‘선비는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어나 의복을 단정히 갖추고 천지로부터 호연지기를 북돋운다. 그리고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드린다. 동 틀 무렵에 독서와 사색을 통해 존심양성(存心養性) 공부를 시작한다’고 적고 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 옆에 착공 7년 만에 조성된 선비촌은 지난달 22일 개촌식을 거쳐 지난 1일부터 일반인에게 숙박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만 8000여 평 부지에 기와집(7채)과 초가(5채) 등 12채 가옥을 비롯해 강학당, 물레방앗간, 대장간, 정자 등 총 40채의 옛 건물을 원형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영주|글·사진 김용습기자 snoopy@
◇ 이리오너라
가을햇살이 절정에 치달은 무렵, 입구에 버티고 있는 황금빛 대형 선비상과 눈인사를 한 뒤 선비촌에 들어서자 넓은 대청 공간이 눈에 띄는 해우당 고택이 반갑게 맞이했다. ㅁ자형으로 배치된 본채와 사랑채 등이 소백산 자락과 어우러져 은은한 묵향을 내뿜는 듯했다. 코스모스, 별개미취, 구절초 등으로 산뜻하게 꾸며진 꽃길이 사방에서 갈 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두암고택, 만죽재 고택, 김상진, 김세진가(家) 등을 두루 관람하는 데 1시간. 가옥 곳곳에 있는 가야금 타는 선비, 활 쏘는 선비, 글 읽는 선비 등 각종 인형과 문방사우 등에서 선비의 일상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선비촌 관리사무소의 이기호 팀장은 “솥단지, 장롱, 사발, 침구류 등 각종 소품만 30억원 어치가 넘는다”고 말했다.
늠름한 기와집들을 지나 장휘덕, 김뢰진, 김규진가의 초가에 이르면 소박한 멋스러움과 서민의 정취가 물씬 느낄 수 있다. 이 곳 선비촌은 오후 6시가 되면 숙박체험을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어둑어둑해지자 옅은 조명이 선비촌 일대를 잔잔하게 품어안았다. 1일 숙박료는 2인 1실 2만원, 4인 1실 5만원선으로 샤워장과 수세식 화장실 등이 설치돼 있다. 비상약품, 세면도구 등은 미리 준비하는게 좋다. 숙소에는 TV가 없다. 하지만 적막한 밤, 오랜만에 가족끼리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울 수 있으니 그리 큰 불편은 아닐 듯싶다. (054) 638-7114
◇ 온 김에 가볼 곳
선비촌에서 돌다리를 살짝 건너면 바로 소수서원이다.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를 비롯해 국보 제111호인 회헌 안향선생 봉정, 백운동 경(敬)자 바위, 취한대, 장서각, 전사청 등이 우리나라 서원의 역사와 기능을 말없이 들려주고 있다. 선비촌 내의 소수박물관 관람도 빼놓을 수 없다. 소백산 국립공원도 지척에 있다. 좀 더 발품을 팔아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과 금성단, 그리고 부석사 등에도 가보자. 특히 선비촌에서 부석사로 가는 931번 지방도로는 주변에 코스모스와 사과밭이 즐비해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 뭘 먹을까
선비촌 내 저자거리에는 순흥묵집과 소고기국밥 등이 있다. 선비촌에서 풍기 IC 가는 길에 있는 풍기인삼갈비집(054-635-2382)은 색다른 고기맛을 선사한다. 주방장인 조춘행 대표가 8년전 개발한 독특한 양념 덕이다. 풍기 인삼과 황기 감초 두충 음양곽 등 각종 약재를 넣어 6시간 달인 물과 배즙 마늘 생강 간장을 3∼4시간 달인 물을 뒤섞고, 여기에 돼지갈비를 24시간 재우면 기막힌 인삼돼지갈비(200g 6000원)가 만들어진다. 부석사를 관광했다면 봉화읍 인근에 있는 용두식당(054-673-3144)에 꼭 가 볼 것. 자연산 송이향이 가득한 전골과 산송이 돌솥밥 등과 맛깔스러운 산나물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