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허기사는 레코딩아트읽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가 뽕짝, 데모테입녹음을 해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렌탈을 하지 않으니, 레코딩아트를 읽어 무엇 합니까?"
허기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마스터링 이라도 못 하시나요?"
"마스터링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믹싱은 못 하시나요?"
"믹싱은 클라이언트가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레코딩아트만 읽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쏘?"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마스터링도 못 한다, 믹싱도 못 한다면, 펀칭이라도 못 하시나요?"
허기사는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음향이론공부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 년인걸……."
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허기사는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낙원상가로 나가서 매장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변씨(卞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기사가 곧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허기사는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10억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10억을 내주었다. 허기사는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기사를 보니 거지였다.
혁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구두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모자에 허름한 잠바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기사가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10억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변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10억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하겠느냐?"
허기사는 10억을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낙원상가로 내려갔다.
낙원상가는 뮤지션, 엔지니어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종로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윈드스크린, 헤드폰, 캐논잭,DAT 테입등 녹음실 소모품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허기사가 윈드스크린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스튜디오가 송녹음할 때 침튀기는 소리가 들어가 녹음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여자엔지니어가 스타킹을 벗어 만들어 녹음을 하고 PC방에가서 헤드폰을 빌려와 녹음을 해야 했다.
얼마 안 가서, 허기사에게 두 배의 값으로 녹음실 소모품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허기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10억으로 온갖 녹음실비품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IDE, SCSI, FIREWIRE 등의 하드디스크를 용산에 건너가서 죄다 사들이면서 말했다.
"몇 해 지나면 나라 안의 녹음실들이 프로툴을 돌리지 못할 것이다."
허기사가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하드디스크값이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허기사는 늙은 전직 엔지니어였던 택시운전사를 만나 말을 물었다.
"서울 밖에 혹시 녹음을 할 만한 빈 스튜디오가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교통짭새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어떤 빈 녹음실에 닿았습지요.
아마 사문(沙門)과 장기(長崎)의 중간쯤 될 겁니다.
부스와 어쿠스틱은 제멋대로 무성하여 소리가 절로 빠지고,
주파수대역이 가지런하여, 기계만 들여놓으면 됫습죠."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그래미상을 누릴 걸세."
라고 말하니, 택시기사가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벤츠 C 콤프레서를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스튜디오에 이르렀다.
허기사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들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땅이 천 리도 못 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부스천장이 높직하고 어쿠스틱이 좋으니 단지 부가옹(富家翁)은 될 수 있겠구나."
"텅 빈 스튜디오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렌탈을 말씀이오?"
택시기사의 말이었다.
"녹음따불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따불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 때, 변산(邊山)에 수십의 어시스턴트엔지니어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상경하여 꿈을 펼쳤으나 양아치같은 메인엔지니어만 만나고,
어씨들도 감히 나가 입봉을 못 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허기사가 어시스턴트엔지지어들의 산채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었다.
"천 명이 천 만원을 기사비로 받아서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일 인당 만 원이지요."
"모두 여자가 있소?"
"없소."
"개인장비가 있소?"
어시스턴트엔지니어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장비가 있고 처자식이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괴롭게 어시스턴트생활을 한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아내를 얻고, 녹음실을 짓고,
기계를 사서 렌탈을 하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그럼 개어씨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요, 돌아다녀도 쪽팔릴까 걱정을 않고 길이 의식이 요족을 누릴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돈이 없어 못할 뿐이지요."
허기사는 웃으며 말했다.
"어시스턴트생활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 할 수 있소.
내일 오디오가이로 나와 보오.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돈을 실은 사과박스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허기사가 어씨연합과 언약하고 내려가자, 어씨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그도 그럴것이 양아치같은 오너와 메인에게 돈을 한두번 뜯겨먹은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튼날, 어씨들이 오디오가이에 나가 보았더니,
과연 허기사가 3000억원의 돈을 싣고 온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허기사 앞에 줄지어 절했다.
"오직 허기사님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너희들, 힘껏 10억도 못 지면서 무슨 어시스턴트를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메인이 되려고 해도, 이름이 엔지니어협회 장부에 없으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1억씩 가지고 가서
여자 하나, 개인아웃보드장비 하나를 거느리고 오너라."
허기사의 말에 어씨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허기사는 몸소 이천 명이 1 년 먹을 양식과 SSL9000K콘솔, 프로툴HD,스튜더 D827,
LEXICON 960L과 마이크, 아웃보드등을 수백개를 준비하고 기다렸다.
어씨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벤츠 C 콤프레서와 스타크래프트 밴과 콘테이너에 싣고 그 빈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첫댓글 녹음실의 현실이 적나라해서.. 가슴아프기도 .. 또한 잼있기도 하네요..뉘신지.. 무슨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3류 음악가에 3류..엔지니어 입니다(누가 시켜주지도 않은.. 입뽕이란.. 그림자도 없는...^^)
허생전 제대로 패러디네요.. 무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ㅋㅋㅋㅋ ^^;;;;
으아~ (김흥국 버전입니다~ ㅋ)
스토리상으로 볼때 Remix전문 기사님이신듯합니다.^0^... 아참 그리고 "[mix:maxx]"님 VSTR 대문 새로 만들어주세요 여유 있으실때요..부탁드립니다.
이거 퍼갈께요~~ ㅋㅋㅋ ^^;;;
아핫.. VSTR 대문..... 영광스럽게 좋지도 않은 곡을 대문으로 달아주셨는데..;; 요즘 곡작업이 손에 잡히지 않는 '후천성창작발기불능'에 다시 빠진것 같습니다.-_-.. 어서 완치해야될텐데요...
ㅋㅋㅋㅋ
페이지를 넘기다보니 여기까지 오게되네요 ㅋ
ㅋㅋㅋㅋ
ㅎㅎㅎ
ㅎ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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