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지혁 인맥지도 만들기
나는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청년이다.
환경적 제약에 굴복해 꿈을 포기하는 자는 아무리 젊어도 노인이요, 꿈을 향한 행보를 멈추지 않는 이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언제나 청년으로 부름 받을 수 있기에 나는 언제나 청년이라 자부할 수 있다.
생물학적 나이 마흔 일곱,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에게 외면당한 천애 고아의 운명을 지고 살아왔기에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을 이겨왔고, 초등학교 수료 이후의 공부는 밑바닥 세상 공부였던 까닭에 세상살이 고난함을 일상으로 지내왔다.
남들에게는 당연한 부모와 친지의 사랑도 내게는 갈망의 대상이었으며, 그들 식탁에 오르내리는 밥 한 그릇, 김치 한 조각도 내게는 육신 노곤한 노동이 아니면 허락되지 않는 성역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존해 왔다.
그러나 나는 타인의 행복을 질시하는 문제아의 이분법적 사고에 물들지 않았음을 자부한다. 청년의 꿈은 클수록 아름답고 작금의 고통은 꿈이 이뤄지는 순간을 빛내기 위한 안배일 뿐이라는 확신으로 승화시켜 왔던 것이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동구 밖 장승만큼 키가 커지면 이 나라의 국군통수권자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하여, 배우지 못한 것은 죄가 아니나 배움을 포기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신념아래 세상과의 키재기를 위해 나 스스로를 단련시켜 왔던 것이다.
청년은 자신의 꿈을 실현할 구체적인 플랜과 함께 시대인에게 선물할 안배를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성공하느냐와 성공한 이후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봉사할 수 있을 것이냐를 설계하지 않는 꿈은 개인의 출세에 국한될 것이며, 시대인에 대한 안배가 없는 성공은 그의 성공에 참여한 시대인들에 대한 봉사를 직무유기 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성공하기 전부터 준비해 온 봉사가 성공한 후에 베푸는 은혜보다 참다운 가치를 갖는다. 내일의 열이 아닌 오늘의 하나를 시대인들을 위한 몫으로 비축하는 이의 봉사가 더 아름답다. 나는 기존의 성공방정식에 근거한 선지자들에게 동시대인들에 대한 봉사내역을 엄중히 묻고 싶다. 그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적 소명을 충실히 이행해 왔다면 더 이상 환경적 제약에 의해 꿈을 살해하는 이가 나타나지 않아야 하고, 피아노 건반 위를 달려야 할 손에 공사장의 막 삽을 잡는 이가 없어야 옳을 것이다.
나 차지혁은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와 어떤 방식으로 시대인에게 봉사할 것인가를 어린 시절부터 명확히 공언하고 그것을 위한 준비에 소홀함 없이 여기까지 달려왔다. 나는 자본의 융단폭격이 아닌 창의적 접근방법의 결집체인 크레비즈(Creative Business)로 성공을 견인하고자 한다.
지구촌 창의 벤처의 효시임을 자임하는 나는 트리피아 부도로 인해 열정적인 청년기가 차압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재기의 행보를 멈추지 않았으며, 미다스칸이라는 회사를 통해 창의마케팅의 신세계를 개척하고자 했었다.
이곳에서 생산한 수 많은 기획과 여기서 비롯될 신세계는 실로 혁명적인 것이었지만 금감원의 태클로 인해 뚜렷한 실적을 내놓지 못하였다. 혹자는 수익모델의 부재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다스칸에서 기획한 많은 아이템들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세계 제일의 컨설팅 회사로부터 극찬을 받을 만큼 경쟁력 있는 것들이었다. 문제는 시대를 앞서나가 수없이 쓰러져야 했던 과거 속에서 미래를 함께 재단할 만한 동지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사업 아이템이자 수익모델이라 할 지라도 차지혁과 같은 시선으로 미래를 재단하지 못한다면 다가올 신천지 개척의 환희에 앞서 수없이 부딪힐 파고의 두려움에 떠는 게 먼저일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21세기의 벤처시대가 열렸건만 인식의 전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기획에 대한 본질보다 환경의 지배를 거부해 온 사람의 상처를 들쑤셔야만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했다는 착각을 범하고 있다. 커다란 프로젝트 일수록 파트너가 필요한 법이거늘 그들은 시대인들이 나에게 붙여 준 ‘몽상가’ 혹은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꼬리표로 인해 자신이 보고 깨달은 것마저도 믿지 못하는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해 늘 차지혁이라는 사내의 리스크만을 계산에 넣고 한번도 손 내밀어 주지 않았음이 나의 아픈 현실인 것이다.
나는 결코 수익모델이 없어 성공을 유보해 온 것이 아니라, 그 수익모델을 함께 실행해야 할 파트너들과의 살 부비는 습관을 기르지 못한 잘못과 실패한 자도 다시 일어서 성공으로 향하는 비상구를 오를 수 있음을 개런티 해 주는 인적 네트워크가 없음으로 인해 성공이 유예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나는 나 스스로 유복한 환경을 선택하여 태어나지 못했고, 유능한 짝궁지기를 만나지 못한 채 감히 아직까지 살아 있다. 게다가 환경분수에 맞지 않는 큰 꿈을 꾸어온 것도,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자도 스스로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꿈을 이루는 날이 있다고 충동질 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들에게 말 뿐이 아닌 행동의 증명을 위해 숱한 고난을 자청해 왔고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의 비상을 꿈꾸며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칭호를 감내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자유 사고의 결정체인 창의 마케팅이라는 신기술을 빼앗기고도 희대의 사기꾼으로 매도 당하는 이중고를 감내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금 그릇에 밥 먹고 옥 대접에 물 마시는 금테자궁을 빌어 태어나 명문가 자제들과의 교류를 쌓는 인생으로 환생할 수 없다고 해서 세상과의 키재기를 포기할 수는 더욱 없다.
학연, 혈연으로 얽힌 인맥지도가 없다면 시대인에 대한 봉사를 지지하는 모든 세력들과의 연대를 통해서라도 성공을 개런티 할 인맥지도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매일같이 전출입신고를 하며 동네 아낙들이 참여하는 반상회를 찾아 다녀서라도 전국 방방곡곡에 차지혁의 인맥지도를 그리고 싶다. 나의 지인들, 그리고 그들의 지인들 전부를 소집해 편견을 뛰어넘을 혁명 엔진을 가동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격문은 이 땅의 한 청년이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부르짖는 피맺힌 절규요,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의 멈추지 않는 함성으로 쓰여지는 것이다. 한 개인의 영달이나 한풀이를 위해 차지혁의 인맥이 되어 달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땅에서 한번 쓰러진 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뜨거운 가슴들을 소집하는 것이며, 창의로 여는 신세계를 선점하기 위해 크레비즈(Creative Business) 혁명을 위한 동지들을 열망하는 것이다. 오늘의 작은 성공에 안주하는 자보다 내일의 큰 희망에 도전하는 자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는 사람들과 학연이 아닌 시절인연을, 혈연이 아닌 시대의 탯줄을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한사코 나의 성공이 이 시대의 희망과 치환되기를 소망해 왔고, 또한 공언해 왔다.
나는 오늘 낮은 자들이 다시 일어서기를 고함치는 표상이 되고, 좌절과 실패의 역사를 가진 이에게 다시 일어나 도전할 것을 부추기는 깃발이 되기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 부어 반드시 이 땅 곳곳에 매장된 희망들을 불러 세울 것이다.
나는 오늘도 자유사고의 발상을 바탕으로 새 시장을 캐내며, 함께 편견의 장애를 넘어설 시절동문 초빙에 부산함을 떨고 있다. 감히 세계 최초로 크레비즈 혁명 패밀리가 되어 주시길 소망하는 것도 우리가 지켜내야 할 희망의 역사를 쓰기 위한 시대적 사명 때문이다.
우리가 발견한 시장은 온전히 우리 것이 되어야 하고 우리가 꿈꾸는 재단의 토양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이 땅에 숨쉬고 있는 모든 꿈들의 이름으로 의지의 집결을 도발하는 것이다.
더 이상 시대인의 꿈을 일가족의 출세에 우선하는 기업가들의 윤허에 매달릴 수 없다. 그들의 허락 없이도 새시장을 개척할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할 힘과 자격을 갖춰야 한다. 크레비즈 혁명 패밀리 재단법인 ‘꿈을 현실로’의 구체화는 서로가 서로를 개런티 해 줄 수 있는 시대동문, 시절인연을 맺은 증표가 될 것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국가와 국민의 이해를 외면한 한 개인의 출세와 그에 호응한 이익집단의 파이 나누기가 아니기에 시절인연의 인맥지도 만들기에 동참해 주실 이들과 1촌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시장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도 무한책임을 감내할 의사가 있다. 환경의 제약을 극복한 깃발이요, 표상이 될 수 있다면 또 그로 인해 이 세상의 아름다운 꿈들이 스스로 자취 감추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편견의 뭇매와 역경의 난타 속에서 견지해 온 나의 고집을 참으로 자랑스럽게 여기며 생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더 잘 살기 위해 내일을 준비한다지만 나는 더 잘 죽기를 고뇌하며 내일을 안배하고자 한다. 스스로의 의사에 따른 선택으로 태어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죽음만큼은 나 스스로의 안배에 따라 지상에서 가장 축복 불러 세울 수 있는 죽음을 맞고 싶은 것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꿈들이 꿈틀대는 소리를 들으며 최후를 맞고 싶다. 그들의 퍼덕이는 심장 박동과 숨소리를 경쾌한 장송곡 삼아 사망하고 싶다. 임종 직전까지 전국을 누비며 찾아간 집집 모두로부터 온전한 손님으로 대접 받는 시대의 자식이기를 희망한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부모로부터 버려진 한을 가진 이의 넋두리라고 치부해도 할말은 없다. 그러나 나의 꿈이 인류 공영을 저해하지 않고, 이 땅의 누군가는 열어야 할 세상이라면 그 질곡의 가시밭길은 당연히 나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하여, 내 죽는 그날까지 이 부족한 청년을 친구 삼고, 아들 삼고, 형제 삼아 주는 살가운 인맥들을 목청 높여 부르고자 한다.
2001년 크레비즈를 이 땅에 뿌리내리고자 했던 미다스칸 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 보내야 했던 나는 이제 23번째 도전을 하고자 한다.
나에 대한 선입견들을 넘어서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출발선에 서기 위해서는 이제 다시 시작하는 나의 행보를 고정관념 없이 바라봐 줄 수 있는 그리고 편견 받지 않고 단 한번만이라도 온전히 승부해 보라며 응원가를 불러 줄 이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 이들이라면 나이와 성별, 학별, 혈연, 지연 등 나를 둘러싼 모든 시대적 편견에서 벗어나 시대의 인연을 맺고자 한다.
나는 아직 이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고, 갚아야 할 빚 또한 많다. 나의 시대적 사명이 끝날 때까지 나는 언제까지나 꿈을 가진 이들의 깃발이며, 함성이고, 시대의 자식이기를 희망하기에, 크레비즈 혁명 프로젝트원이 될 새로운 엘도라도 시장을 개척해 가기 위해 우리시대의 가슴 뜨거운 이들을 크레비즈 혁명 가족의 이름으로 소집해 간다.
세상의 모든 편견과 절망을 딛고 다시 도전하는 나와 나이,
신분, 지역, 학연, 혈연 등의 관계에 따라 모든 관점이
결정되는 오프라인의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연통(緣通)을 가로 막는 어떠한
벽도 존재하지 않는 넷연(Net緣)을 통해 새로운 온라인 공동체
결성에 함께 해줄 사람 거기 누구 없소? 거기 아무도 없소?
♣ 23번째 다시 도전하는 차지혁의 크레비즈 행보를 지지해 주실 분들은 지금 일촌맺기를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고가 자유로운 우리시대 젊은 이들과
1촌 편먹기를 희망해가는
크레비즈 혁명가 차지혁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