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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변죽 울리기[제3구간]
☞ 남락고개-운봉산-천성산-정족산-지경고개 ☜
- 천성산과 도롱뇽/환경과 인간, 대결인가, 공존인가! -
♣ 산행개요 ♣
◆ 산행지 : 낙동정맥 제3구간[남락고개 - 지경고개]
◆ 일시 : 2005. 11. 11.(금)/12.(토)[무박산행]
◆ 날씨 : 맑음
◆ 종주경로 : ☞ 남락고개(150m) → 운봉산(534.4m) → 596.6m → 천성산/원효산(922.2m) → (제2)천성산(812m) → 정족산(700m) → 통도컨트리클럽 → 지경고개(110m) ◀
◆ 산행시간/코스 :
□ 04:04 남락고개/산행시작
□ 04:07 형제목장 입구 좌측 산길
□ 04:15 송전탑 지나 225m
□ 04:18 임도
□ 04:28 송전탑 통과 내리막
□ 04:21 농원입구 알바 후 우회
□ 05:21 임도
□ 05:38 299.4m/삼각점(409)
□ 05:41 철탑
□ 05:50 또 철탑
□ 05:59 437.6m 갈림길
□ 06:23 임도통과 급경사 오르막
□ 06:37 묘터 봉우리
□ 06:40 운봉산(534.4m)/삼각점/7분 휴식
□ 06:52 헬기장/534.6m
□ 07:00 일출
□ 07:15 +자 안부/상수원보호구역 출입금지
□ 07:34 급경사 방화선 끝봉
□ 07:43 신기산성 갈림길
□ 07:46 599.6m/삼각점(양산 438)
□ 07:57 지뢰위험지대 시작
□ 08:29 지뢰지대 끝/부대정문/천성산 군사도로
□ 08:53 능선길과 도로 합류
□ 08:57 도로 좌측 전신주길 오르막
□ 09:03 도로/넓은 공터
□ 09:10 원효암 3거리
□ 09:26원효암 관람 후 3거리 복귀/아침식사
□ 09:50 원효산을 향하여 출발
□ 10:01 부대 갈림길/정상ㆍ화엄벌 방향 우회
□ 10:14 지뢰지대 철조망 우회 후 화엄늪보호지역 안내판/[→천성산2봉 2km]
□ 10:24 억새능선 지나 잡목지대를 지나면서 알바
□ 10:35 억새능선 내리막
□ 10:43 안부 갈림길 좌측 사면길
□ 10:52 임도 좌측길
□ 11:00 암봉 전망대
□ 11:05 (제2)천성산/15분 휴식
□ 11:49 봉우리 지나 3거리 안부
□ 12:00 10분 휴식 후 정족산을 향하여 출발
□ 12:14 임도와 산길을 번갈아 진행
□ 12:25 차단기/통신중계탑
□ 12:30 암자 갈림길
□ 12:33 안적암ㆍ내원사/주남마을 갈림길/주남고개
□ 12:35 3거리/대성암 가는 길 오르막
□ 12:42 산길진입로
□ 12:56 대성암 500m지점과 능선길 합류점(대성재)/옛 헬기장 공터/30분 휴식
□ 13:26 출발
□ 13:59 정족산(700m)/삼각점(양산413)/7분 조망
□ 14:20 임도에서 산길로
□ 14:24 선바위
□ 14:27 무인산불감시카메라/10분 휴식
□ 14:46 추모비
□ 15:03 낙엽길 급경사내리막과 너덜지대 지나 공원묘지 도로
□ 15:25 삼덕공원ㆍ용암사 입구 표지판
□ 15:36 철탑
□ 16:02 통도컨트리클럽
□ 16:25 골프장 정문
□ 16:50 지경고개/통도사 현대기아출고 앞 고갯마루식당
◆ 산행거리 : 약 29km[남락고개-3.1km-299.4m-3km-운봉산-6.7km-원효암갈림길
-3.6km-제2천성산-6.3km-정족산-6.4km-지경고개]
◆ 산행시간 : 12시간 20분(휴식 & 알바 포함)
◆ 형태 : 德七이 합동산행[夷希美 회장, 허공 대장, 정범모 총무, 밤안개, 천사, 하상배, 윤비, 연무흠, 오르고파, 뚜벅이, 김석호, 나푸른솔, 산정무한, 흑기사, 록수, 토끼, 주유천하 : 1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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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과 詩 ♥
산에 빠져서 외롭게 된
그대를 보면
마치 그물에 갇힌 한 마리 고기 같애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를 움켜쥐고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의 그물에 갇힌
그대 외로운 발버둥
아름답게 빛나는 노래
나에게도 아주 잘 보이지
산에 갇히는 것은 좋은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져서
갇히는 것은 더더욱 좋은 일이야
평등의 넉넉한 들판이거나
고즈넉한 산비탈 저 위에서
나를 꼼꼼히 돌아보는 일
좋은 일이야
갇혀서 외로운 것 좋은 이이야
- 이성부, “좋은 일이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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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3구간의 포인트
낙동정맥 변죽 울리기 제3구간은 지난 구간 날머리인 남락고개에서 운봉산-천성산-정족산을 거쳐 지경고개까지 이르는 약 29km의 산줄기이다. 낙동정맥은 몰운대를 떠나 항도 부산의 鎭山 금정산과 계명봉을 솟구쳐놓고, 이제 도회인 부산을 벗어나 천성산과 정족산이라는 명산을 빚어내면서 영남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이번 낙동정맥길은 천성산 종주코스를 중심으로 한다. 낙동정맥이 아니더라도 천성산은 한번 가볼만한 산으로 이 구간의 포인트는 단연 천성산이다.
천성산(千聖山, 922.2m)은 금강산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고, 특히 산정상부에 드넓은 초원과 산지습지가 발달하여 끈끈이주걱 등 희귀식물과 수서곤충이 서식하는 등 생태적 가치가 높은 점을 고려하여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선정된 산이다. 정족산 일대와 천성산 내원사지구는 가지산도립공원의 일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천성산의 화엄늪, 정족산의 무제치늪 등 중고층습원(中高層濕原)은 매우 희귀한 지형으로 자연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 천성산은 한반도 내륙의 산봉 가운데 동해에서 떠오르는 새해 일출을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산이다. 천성산과 한반도 육지해안에서 가장 빨리 일출을 맞을 수 있다는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간절곶에서 직선거리로 23.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천성산은 골산과 육산의 멋을 모두 갖춘 일출 맞이 명산으로 산경표나 대동여지도에는 원적산(圓寂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천성산은 원효(元曉)의 산이다. 천성산의 이름은 원효의 척반구중(擲盤求重, 밥상을 던져 많은 사람을 구함) 설화와 관계가 있다. 이 산에 운효가 창건한 원효암이라는 암자도 있고, 내원사(內院寺)라는 비구니사찰도 있다.
원효가 여러 사암에 흩어져 있는 1천 제자들에게 화엄강론을 펼치기 위하여 한 자리에 모으려고 북을 쳤다고 하는 집북재(集鼓峙)라는 곳도 천성공룡능선 자락에 있다. 천성산을 통과하는 터널의 이름도 원효터널이다. 나는 아직 우리나라의 산 중에 이렇게 원효와 관련이 많은 산을 보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예전에 이 산을 원효산으로 불렀는지도 모른다.
이번 구간의 들머리인 남락고개를 지난 지점에는 농원과 밤나무단지로 우회해야 하는 구간이 있고, 천성산 정상 부위 역시 군부대 통제구역이라 우회를 해야 한다. 날머리 부근인 노상산 인근에 있는 통도컨트리클럽으로 인해 마루금이 사라지고 정맥의 맥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려운 구간으로 짜증나는 구간이기도 하다. 조선일보나 산악문화에서 간행된 정맥지도에는 아예 정통 정맥길인 노상산을 왕창 벗어나 우회하여 지경고개로 가는 것으로 마루금을 그려놓고 있을 정도이고, 선답자의 산행기도 제멋대로 각양각색이다.
2. 환경과 인간
최근 천성산은 천성산 터널을 둘러싼 내원사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과 도롱뇽 소송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경부고속철도가 지나는 천성산 원효터널이 완공되면 길이가 13.27km로 우리나라 최장의 철도터널이 된다. 현재는 전라선 완주의 슬치터널(6,128m)이 최장 터널이다.
자연물인 도롱뇽과 환경단체인 도롱뇽의 친구들이 신청인이 되어 한국철도시설공단을 피신청인으로 하여 울산지방법원에 제기한 공사착공금지가처분사건에서 법원은 2004. 4. 8. 도롱뇽에 대해서는 당사자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신청을 각하하고, 도롱뇽의 친구들에 대해서는 피보전권리로 주장하는 자연방위권 등으로부터 직접적, 구체적인 사법상의 권리가 생긴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신청인의 신청을 기각하였다.
환경단체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은 항고심 진행 중에 2005. 8. 30.부터 11. 30.까지 3개월간 천성산 구간의 환경영향공동조사를 실시하고 공동조사 기간 원효터널 구간 중 외부 공사는 계속하되 터널 발파공사는 중지하기로 하여 현재 환경영향을 조사 중이다. 그 환경영향조사를 둘러싸고 또 왈가왈부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천성산터널공사, 새만금 간척지사업, 사패산터널 등 대규모 국책사업이 완공을 앞두고 좌초됨으로써 수 천 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 과연 환경과 인간은 공존의 타협점을 모색할 수 없는 것일까? 환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지만 환경 역시 인간을 위한 것이고, 환경과 인간을 대결의 장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과연 환경과 인간은 對決할 것인가? 共存할 것인가? 보존과 개발은 영원히 타협할 수 없는 양극인가? 사람도 살고 자연도 살리는 기막힌 방법은 없는 것일까? 미숙한 환경논자들의 오도된 신념과 같이 무조건 보존을 외치거나 개발논자들과 같이 개발과 편의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다. 보존과 개발을 적대의 관념으로 보아서는 아니 되고, 양자는 共生의 개념이 되어야 한다.
도로 하나가 자연환경을 얼마나 파괴하고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는지는 우리들이 많이 가는 지리산 성삼재 도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도로로 지리산 접근이 용이해진 점이 있는 반면에 지리산 주능선과 서북능선을 완전히 갈라놓고 말았다. 우리나라와 같이 산이 많은 나라에서 예전에 길을 낼 때 산줄기를 동강내어 관통도로를 낼 수밖에 없었다. 대간이나 정맥을 종주하다보면 도로로 인해 산줄기가 싹둑싹둑 잘려나간 곳을 많이 볼 수 있고, 종주꾼들은 그 도로를 무단횡단한 경험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과 보존이라는 시대의 화두 내지는 시대정신이 산을 깎고 들어내어 관통도로를 만드는 것을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고, 이제는 그 대안으로 터널을 많이 뚫고 있다. 기존의 잘려나간 산줄기를 잇는 Echo Bridge(생태다리)도 많이 건설되고 있다. 예전의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던 백두대간의 대관령고개는 이제는 대관령터널(1터널에서 7터널까지 있다)이 생기면서 한적한 도로로 바뀌었다.
경부고속철도가 꼭 필요한 상황이 전제된다면 천성산이든 어느 산이든 산을 지나갈 수밖에 없고 터널을 뚫는 것이 불가피한 면이 있지 않을까? 사람 사는 세상에 길은 필요하고 오히려 터널을 잘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시베리아 같은 평원지대라면 터널을 만들 필요가 없으나 산악지대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나라보다 더한 산악지대인 노르웨이를 여행하면서 보니 곳곳에 터널이었다. 그 터널로 자연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터널로 환경을 잘 지켜가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천성산 터널공사를 반대하던 스님은 고요한 산속에 중장비의 굉음이 울려 퍼지고 산을 깎아 대형 佛事를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 반대해본 일이 있는가? 설악산 봉정암에 들어선 엄청난 규모의 숙박시설(하루 1,400명이 이곳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룻밤 1,400명이 먹고, 자고, 싸면서 훼손될 주변 환경을 한번 생각해보았는가? 설악산이나 천성산 똑 같은 환경이 아닌가? 유독 천성산의 도롱뇽만 보호해야 할 환경인가? 천성산의 경우 터널보다 정상의 군부대 시설물이 더 환경을 작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환경파괴가 우려되는 대규모 공사를 함에 있어서는 환경영향평가를 거치는 등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야 함은 당연하고, 이러한 절차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방폐장 설치를 위해 유치예정지의 주민투표라는 절차와 과정을 거침으로써 그 동안 표류하던 국책사업이 전기를 마련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차피 민주주의는 절차이고 과정이 아닌가. 그 과정이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것은 민주주의의 Cost로서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3. 제3구간 들머리 : 남락고개로
2005. 11. 11. 금요일 밤 10시 30분 우리들의 버스가 양재동 서초구민회관 앞을 경유하기로 되어 있어 서둘러 집을 나선다. 대간종주시에 자주 들르던 양재동 서초구민회관 앞으로 가보니 시간이 남아 있어 인근 맥주집에 가서 생맥주나 하고 올까 하고 들어가 보니 비싼 고급집이었다. 이곳에서 나와 보니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의 몸으로 산에 걸신들린 사람처럼 비박을 하며 낙동정맥을 연속 2구간씩 때리고, 한북정맥 지맥인 한강-오두지맥에 한남정맥을 닥치는 대로 주파하고 있는 들꽃님이 격려차 나왔다. 그러나 산이라는 것은 다니면 다닐수록 가야할 산이 더 많이 생기는 법이다.
이번부터는 덕칠이 자체적으로 28인승 우등버스를 임차하여 가는 것이라 무박 우등버스 대절료 80만원을 충당하려면 1인당 5만원씩의 회비를 醵出하는 경우에도 인원이 적어도 17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 3구간 참석인원은 17명이지만 연짱 2구간씩 뛰는 사람들 때문에 다음 달부터는 몇 명이 추가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다. 이번에도 나는 현지에서 하룻밤 묵으며 2구간을 연이어 답파하기로 한 터라 약간 마음이 무겁다.
밤 10시 40분이 되어 도착한 버스에는 영등포에서 탑승한 동료들이 타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준다. 나오기로 하셨던 서고문님이 해외출장으로, 탱크님이 긴급업무로 참석하지 못했으나, 연무흠님과 김석호님이 낙동에 새로이 합류하였다. 오랜만에 28인승 우등버스에 타고 보니 안락한 느낌이 든다. 산정무한님과 옆자리에 앉아 비교적 편하게 잠에 빠져 있다가 눈을 떠보니 2005. 11. 12. 토요일 새벽 3시 경주휴게소이다. 휴게소 건물이 전통 한옥형태로 지어져 있다.
밖은 짙은 안개로 시야를 가리지만 날이 밝으면서 개일 것으로 예상한다. 새벽에 속이 더부룩하여 입맛이 없지만 오늘 장거리 산행을 위하여 우동 한 그릇을 먹어둔다. 다른 사람들은 산행거리가 길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경주빵을 간식으로 구입한다.
4. 남락고개에서 운봉산(雲峰山, 534.4m)으로
♠ [04:04] 남락고개/산행시작
새벽 4시경 버스가 서고 보니 들머리인 남락고개에서 약간 over pass하고 말았다. 다시 버스를 되돌릴 수 없고 각자 산행준비를 마치고 버스에서 내려 도로를 따라 들머리로 돌아간다. 도로를 씽씽 달리는 자동차에 치일라 회장님은 갓길로 붙어가라고 주의를 준다.
그런데 버스가 떠나고 보니 아차 버스 안에 지도와 자료를 그냥 두고 내리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요새는 왜 깜빡깜빡하는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일행으로부터 지도를 받기는 했으나 내 지도에는 포인트와 거리 등을 재어 놓아 참고하기가 좋은 것이었는데 헛일이 되고 말았다. 어차피 되는대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락마을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좌측으로 형제목장입구의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발걸음 소리에 잠을 깬 개새끼들이 짖어대면서 새벽의 고요는 깨지기 시작한다. 풀잎은 이슬을 잔뜩 머금었고 바닥도 축축하게 젖어 있다.
송전탑을 우측으로 끼고 올라선 봉우리가 지도상의 225m봉으로 추정되고 여기서 내려서니 임도와 조우한다. 임도에서 좌측으로 올라간 지점의 우측 산길로 표지기가 달려있고 이곳으로 들어서서 잠시 올라서면 평탄한 길에서 철탑의 다리 사이로 지나가게 된다. 이곳에서 내려서서 다시 임도를 가로질러 진행한다. 이미 산은 수북이 쌓인 낙엽으로 두터운 자연의 옷을 갈아입고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솔숲 속을 선두를 따라 농원출입금지 팻말도 무시하고 중간에 철조망도 넘어 무심코 걸어가는데 어찌 내리막으로 내려서는 게 심상치 않다. 앞서 길을 찾으며 내려가던 허공대장님이 물소리가 들린다고 하면서 "Back!" 하여 원위치하게 되면서 알바의 서곡을 연다. 알바로 선두와 후미가 뒤바뀌다보니 누가 먼저 선두에 서기를 주저하는 상황이 된다. 서로 우왕좌왕 오락가락하게 되고 시끄러워지면서 동네 개들이 전부 깨어나 짖어댄다.
농원입구에서 우측으로 우회해야 할 것을 그냥 지나쳐간 것이 화근이었고, 되돌아와서도 우왕좌왕하다가 일부는 가야할 곳이 아닌 곳으로 갔다가 Return 알바까지 하고 되돌아와서야 제대로 길을 찾아 넓은 임도로 떨어진다. 왔다갔다 온갖 알바를 다한다고는 하지만 Return 알바까지 하는 초유의 기록을 세운다. 초장에 40여분 알바를 하는 바람에 오늘 과연 해떨어지기 전에 산행을 끝마칠 수 있는 것이냐는 농담이 오고간다.
임도에서 들머리를 찾기 위하여 우측으로 내려가는 발품도 팔고 다시 되돌아와 좌측으로 진행하다가 절개지 사면 사이의 들머리로 진입한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흙길이 매우 미끄럽다. 한 봉우리에 올라서서 내려선 후 낙엽길을 따라가는데 길바닥에 삼각점(409 재설 건설부75.10.6)이 박혀있는 것을 본다. 지도상의 299.4m이다. 삼각점을 봉우리나 꼭지점에만 박아 두는 것(埋設)이 아니라 평탄한 곳에 박아둔 것도 볼 수 있고, 신경을 쓰지 않으면 이러한 삼각점은 지나치기 쉽다.
철탑을 두 차례 지나 오른 봉우리는 437.6m 갈림길, 정맥길은 이 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고 우측으로 가면 437.6m봉이다. 이곳에서 잠시 거름보시를 하고 좌측 방향으로 내렸다가 솔숲 오르막을 오른다. 아침 6시가 넘어가면서 슬슬 여명이 밝아오고 잠들었던 산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임도를 통과하여 급경사의 오르막을 올라서면 묘터가 있는 봉우리 능선이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운봉산이 나온다.
♠ [06:40] 운봉산(534.4m)
정상에는 [운봉산 534m]라는 백색 말뚝이 현대중공업의 한 부서에서 세운 것으로 되어 있고, 삼각점도 있다. 콘크리트 표석 옆에는 측량용 깃대가 세워져 있다. 좌측으로 양산시의 사그라지는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산줄기에 가로막힌 운해가 호수처럼 떠 있다. 운봉산이 雲峰山이라면 구름 봉우리라는 뜻인데 이 산 자체는 고도가 534m에 불과하여 높은 산이 아니나, 이곳에서 보는 구름떼의 풍광은 어느 높은 산 못지않다.
운봉산에서 행로를 점검중
선두와 후미 일행이 합류하여 7분간의 휴식을 마치고 눈에 보이는 천성산 방향으로 향한다. 이곳부터는 방화선구간이 시작되고 방화선은 억새로 가득 찬 억새능선이다. 방화선이라면 한북정맥의 가평군계나 화악지맥의 몽/가/북/계를 떠올리게 한다. 한여름 땡볕에 그늘도 없고 바람은 막혀 푹푹 찌는 이런 방화선 구간을 걷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반면에 늦가을에 이런 구간은 하늘거리는 누런 억새와 함께 만추의 운치를 한껏 자아내는 훌륭한 트레킹코스로 전이한다.
세상은 이렇게 다 양면성이 있다. 선과 악,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이 一刀兩斷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인데도 마치 어린 아이처럼 자신의 잣대로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나누어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기를 열망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을 바꾸기를 원치 않는다.
악이 승리할 때 선은 숨는다.
선이 나타날 때에는 악은 숨어서 기다린다.
어느 것도 다른 것을 억압할 수는 없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서로 밀어낼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기쁨이 있더라도 이면에는 불안이 있고,
절망 속에서도 항상 조용한 희망은 있는 것이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에서
운봉산에서 억새능선을 따라 5분쯤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오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534.6m봉으로 보인다. 나풀거리는 억새는 힘이 빠져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을 다하는 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억새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만 비굴하지 않는 꼿꼿함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억새는 시들망정 쓰러지지 않는다. 역시 억새는 억세다!
멀리 천성산을 바라보면서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동쪽에서 붉은 해가 박차고 튀어 오르고 있다. 역시 일출은 언제 어디서 보더라도 황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일출은 환희, 생명, 약동이고 내가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무박산행의 묘미는 산정에서 바로 그 일출을 보는데 있다. 우측의 법기저수지의 모습도 보인다.
억새능선을 따라 내려서다 보면 다시 헬기장을 지나고 ┫자 안부에서 직진한다. 이어지는 ┼자 안부에서 우측의 상수원보호구역 출입금지 안내판을 지나 직진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한다. 급경사의 방화선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데 방화선 끝지점이 아득하게 보인다. 20여분을 그야말로 뺑이치고 헉헉거리며 올라야 하는 마(魔)의 깔딱 오르막이다.
오르막 중간에 밤안개님이 능선길 좌측 숲에서 중호박 만한 벌집을 발견하여 벌집 속에서 늦잠을 자는 벌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 벌집을 채취하여 배낭에 매달고 간다. 나중에 천사님은 그 정도의 벌집은 15만원 정도는 간다고 한다.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 방화선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선 후(지도에는 이곳에 서낭단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서낭단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정맥길은 좌측으로 휘어진다. 이어지는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바로 오르막으로 바뀌고 좌측으로 신기산성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천성산 방향으로 직진한다. 눈에 띠는 표지기에는 ‘그래! 쉼없이 가보자. 시간은 짧고, 산! 갈 곳은 많고’(부산 씨채널ㆍ권)
편안하게 오르막을 오르는데 길 우측에 삼각점이 있다. 삼각점 표시는 [양산438, 1998재설]로 되어 있는데 이곳이 지도상의 599.6m이다(조선일보사의 실전 정맥지도집에는 이곳의 표고가 582m로 되어 있어 차이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서부터는 정맥길이 굴곡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내리쬐는 아침햇살도 그리 따갑지는 않다. 밤안개님이 벌집에서 잠에서 깬 무서운 말벌이 나온다고 하여 벌집을 멀리 내던진다. 돈 15만원이 날아나는 것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벌떼의 공격이 있을까봐 멀리 내뺀다.
5. 원효의 산 천성산(千聖山, 922.2m)
♠ [07:57] 지뢰 위험지대 시작
룰루랄라 낙엽을 밟으며 편한 길을 가는데 599.6m에서 10여분 거리에서 공군부대의 지뢰위험지대 안내판이 시작된다. 일단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니 계속 경고판이 이어지고 직진 끝지점에서 철조망 좌측길로 [←천성산]판때기가 걸려있다. 원형 2중 철조망으로 일반인의 접근을 철저히 막고 있고, ‘지뢰(MINE)’라는 역삼각형의 빨간색 경고판이 철조망에 달려있다. mine이 광산이라는 뜻 이외에도 지뢰라는 뜻도 있다.
이곳은 과거에 지뢰지대였는데 몇 년 전에 지뢰제거작업을 했는데 혹시 유실된 지뢰가 있을까봐 일반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우측에 철조망을 끼고 도는 길이 이어지는데 중간에 마른 계류도 지나고 물길도 건넌다. 물소리가 졸졸 나는 곳도 있다. 정맥길에서는 물길을 건널 수 없는데 것이고, 이 철조망 길은 정맥길을 우회하는 구간이다. 초입의 지뢰지대경고판에서 부대정문까지는 정맥길이 출입통제지역으로 군부대 지뢰지대가 정맥마루금을 끊어놓고 있는 것이다.
30여 분간 지뢰지대 철조망을 돌고 돌아야 지뢰지대에서 벗어나 천성산으로 가는 군사도로로 빠져나올 수 있고, 우측으로 부대정문이 보인다. 이제 도로를 따라 오르막을 오른다. 도로는 중간에 포장하여 덧칠한 구간도 있다. 도로에서 산길로 들어가 능선을 잠시 따르다 다시 도로와 합류한다. 일부는 산길로 들어갔다가 표지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되돌아와 도로를 따라 올라가기도 한다.
산길과 도로 합류점에서 5분쯤 올라가면 정맥마루금을 잇기 위하여 다시 좌측의 산길로 올라가야 한다. 뒤에서 오는 분들이 배고프다고 밥 먹고 가자고 소리를 지르지만 원효암에서 먹자고 하면서 그냥 올라간다. 산길로 접어들면 전신주가 정상의 부대까지 이어지는데 이 전신주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산길에서 벗어나면 다시 도로가 나오고 간이화장실도 있는 넓은 공터의 좌측 오르막으로 오른다. 넓은 공터에서 7분 정도 오르막을 올라서면 원효암으로 가는 3거리가 나온다.
♠ [09:10] 원효암 3거리
바로 좌측의 원효암이 보이므로 이곳으로 가 보기로 한다. 원효암은 3거리에서 1분만 좌측으로 걸어가면 된다. 원효암으로 걸어가는 길에 보는 양산시가지의 모습과 갈래갈래 뻗어가는 산줄기들을 바라보노라니 가슴이 탁 트인다.
원효암은 청기와 지붕에다 단청의 모습이 원효의 숨결이나 고즈넉한 모습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나 호젓한 암자의 기풍을 보여주고 있다. 암자 뒤에 층층이 우뚝 솟은 바위가 눈길을 끈다. 천성산 기슭의 원효암은 신라 선덕여왕 당시 해동의 성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인데 퇴락한 것을 근래에 중창한 것이다.
원효암 뒷 바위
천성산에는 이 원효암 외에 원효가 창건한 절로 내원사가 있다. 원효가 신라 문무왕 당시에 창건한 내원사는 원효대사의 신통술로 목숨을 건진 당나라 태화사의 신도 1,000명을 제자로 삼으면서 수도처로 삼은 절이라고 한다. 천성산(千聖山)이라는 이름도 천명(千)의 성인(聖)이 이곳에서 득도를 한 산(山)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산이 원효와 관련이 많은 산이라 그런지 종래에는 주봉을 원효산으로 불러왔고, 지도에 따라서는 천성산(922m) 봉우리를 원효산으로, 811.5m봉을 천성산으로 표기하고 있는 것도 있다(산악문화 간, 『백두대간&정맥 지도집』등).
자료를 뒤져보니 992m봉은 종래에 1961. 4. 국방부지리연구소의 고시에 따라 원효산으로 표기하여 왔으나, 동국여지승람 등에 천성산(千聖山)으로 고증되어 있고, 원효의 가르침을 받아 1천 성인이 나옴에 따라 생긴 산이름의 유래에 맞추어 1999. 12. 양산시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원효산을 천성산으로 지명변경(국립지리원고시 제2000-119호)을 하면서 구 천성산(811.5m)은 천성산 제2봉 또는 제2천성산으로 명명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조선일보사, 『실전 호남정맥/낙동정맥 종주산행』, 랜덤 도엽 등에는 922.2m봉을 천성산으로, 811.5m봉을 천성산 제2봉, 또는 제2천성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낙동정맥 종주를 하면서 천성산을 올라보니 천성산 지명변경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제1봉, 제2봉 하는 것부터가 1중대, 2중대 하는 식으로 군바리 내지 행정적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것은 그렇다 치고(터널의 1터널, 2터널, 교량의 1교, 2교 하는 것도 그렇다) 원효암 등 이 산이 원효의 그림자가 많이 드리워져 있는 산으로 가히 원효의 산이라 할만하다면 종래대로 원효산으로 계속 불러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에 원효봉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봉우리는 몇 있지만 원효산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주봉인 원효산은 군부대 때문에 일반인의 접근도 제한되어 있고 제2천성산이 실질적인 천성산으로 대접받고 있다. 지명을 바꿀 것은 바꿔야 되지만 졸속 지명변경도 경계해야 한다.
원효암에서 볼만한 것으로 ‘천광(天光)약사여래불’이라는 것이 있다. 종각을 지나 108계단을 올라 원효암 동쪽 산등성이(사자봉)에 있는 천광불을 보러간다. 이 불상은 1991. 7. 20. 저녁 8시경 천둥번개를 동반한 벼락에 의해 조성된 불상이다.
천광약사여래불
天光이란 하늘에서 빛으로 조성되었다는 뜻이다. 이 여래불을 바라보니 과연 사람의 손이 아닌 번갯불로 불상이 바위에 조형되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최근의 일이라 엉터리 구라는 아닐 터이고(당시 통도사 月下 방장스님이 이 일이 있은 후 바로 원효암을 방문하여 이를 확인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명명하였다고 한다) 종교에는 이런 신비스런 일이 종종 등장한다. 이런 것은 논리나 과학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천광불을 보고 돌아오는 길의 원효암 입구에 세워진 돌탑에 누군가가 조그만 제주도 돌하루방을 세워두었는데 이를 애교 정도로 보아준다. 원효암 보살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수통에 식수를 채우고 나오면서 마당 울타리 위에 호박을 깨서 말리는 모습이 한적한 암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원효암 관람을 마치고 다시 3거리로 복귀하여 남아있는 밤안개님, 오르고파님, 정총무님 등 넷이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아마 선두는 천성산으로 올라갔을 것이고 후미도 보이지 않는다. 나와 같이 모두들 점심으로 김밥과 빵 쪼가리 정도를 싸가지고 온 것을 보니 역시 산에 다니면서 부인들의 애호는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산정무한님의 도시락을 보면 부인의 남편에 대한 대접 정도를 알 수 있는데…
대간종주를 할 때만 해도 도시락도 훌륭하게 잘 챙겨주던 집사람이 이제는 알아서 챙겨가든 말든 나 몰라라 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하긴 주말마다 무박이다 뭐다 하면서 허구헌날 산으로만 싸돌아다니는 남편을 좋아할 마누라는 없을 것이다.
25분간의 식사를 마치고 도로를 따라 오르면서 우측으로 펼쳐지는 산세를 본다. 천성산 직전의 분기점에서 용천산(544.6m)-백운산-망월산-문래봉-함박산-구곡산-와우산으로 뻗어가는 41.5km의 ‘용천지맥’이 분기한다고 하는데 첩첩 산그리메 중에 어느 줄기가 용천지맥줄기인지는 확 와 닿지 않는다.
천성산 정상의 군부대로 올라가기 직전에 우측의 정상ㆍ화엄벌 방향으로 우회해야 한다. 좌측으로는 지뢰지대 철조망이 쳐져 있고, 이 철망을 좌측에 끼고 빙 둘러서 올라가면 화엄늪보호지역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곳이 나온다.
♠ [10:14] 천성산 화엄벌
천성산 정상과 비껴난 곳에 있는 화엄벌은 해맞이 장소이고, 이곳에서 0.5km 떨어진 곳에 있는 화엄늪습지는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출입이 제한된다. 이정표에는 이곳에서 천성산2봉까지는 2km로 되어 있다. 흑기사님이 후미대장으로 남아 있다가 우리들 뒤를 따른다. 마라톤 선수이면서 쾌속 질주하는 성미에 후미를 맡고 마음고생이 많을 것이지만 내색을 않고 덕칠이의 후미를 책임지고 있다.
제2천성산 방향으로 사방으로 확트인 억새능선을 따라 걷는 맛은 일품이다. 억새의 꽃은 사그라지고 누런 갈색 일색이지만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만추의 계절에 맞게 허허롭고 쓸쓸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애상에 젖게 만든다. 잠시 상념에 젖다보니 우측으로 내려가야 할 것을 억새능선 한가운데 잘 나있는 길로 그냥 직진 over-pass하여 잡목지대로 들어가고 말았다.
우측에 빤히 보이는 천성산 제2봉과는 간격이 멀어지면서 정맥줄기가 아닌 지능선으로 흐르고 있었다. 선두 일부를 빼고는 중위부대 대부분이 이 길로 가면서 또 알바! 다시 Back!! 잠시만 딴 생각에 몰두하거나 긴장을 풀면 대낮에도 어디서곤 길을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명산에는 곳곳에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표지기가 정맥길 길라잡이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길이 잘못되었음을 안 이상 빨리 복귀하여 제 길을 찾아가야 한다. 잡목지대를 벗어나 원위치하여 억새밭 사면을 거슬러 내려가는데 철모르고 피어난 진달래 무리가 요상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천성산 억새능선과 철모르고 핀 진달래 : 우뚝 솟은 봉우리는 제2천성산
억새능선 내리막을 내려서면 갈림길 안부에서 좌측 사면길로 접어든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못했는데 제2천성산으로 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혹시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했으나 정맥표지기들이 걸려 있어 안심하고 사면길을 따르면서 오르막을 오르니 임도가 나온다. 안부 갈림길에서 직등하여 능선을 따라 좌측으로 가더라도 임도와 만나게 되어 있다.
임도 좌측길로 진행하다가 좌측 산길로 접어들면 전위봉인 암봉 전망대가 나온다. 이 전망대에 서면 확 트인 주봉(원효산)의 모습과 사람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은 제2천성산 봉우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5분 거리에 천성산 제2봉이 있다.
♠ [11:05] (제2)천성산(812m)
천성산 제2봉 암봉 앞에서 선두 일행을 만나 선두를 먼저 보내고 후미를 기다려 함께 가기로 한다. 혼자 사방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조망을 즐긴다. 좌측으로 이어진 골짜기에 내원사도 보인다. 이정표에는 내원사까지 2.3km, 내원사 주차장까지 4.8km로 되어 있다. 비구니선원인 내원사에서 조용히 수도를 하던 지율스님이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
천성산 정상표석이 있는 뒤쪽 바위에는 태극기와 방위각이 함께 새겨진 돌판을 붙여놓았다. 천성산 정상표석의 뒷면에는 ‘양산인의 기상이 여기서 발상되다’는 글이 음각되어 있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표석에 새겨진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와 유사한 표현이다. 발상(發祥)이라고 함은 ‘문명의 발상(發祥)’과 같이 어떤 일이 처음으로 일어나거나 나타남을 의미하는 말인데 기상(氣像)도 발상이 되는가?
(제2)천성산 정상
후미들이 도착하여 함께 사진도 박고 잠시 쉬다가 정족산 방향으로 간다. 내리막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선 봉우리가 지도상 삼각점이 있는 811.5m봉이나 삼각점을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완만한 능선길에서 다시 내리막으로 내려서서 오르막을 오르려는데 먼저 올라섰던 정 총무님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 내려와 안부 갈림길에서 쉬다가 우측 사면길로 정족산 가는 길을 확인하고 그 방향으로 간다. 솔숲이 이어지고 편한 길이다.
솔숲에서 벗어나 임도로 나왔다가 다시 산길로 들어가고 임도와 산길을 번갈아 진행하다가 임도를 따라가다 보면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고 우측으로는 통신중계탑이 있는 곳을 지난다. 산길이라기보다는 넓은 대로를 따라 가다보면 좌측으로는 천성공룡능의 모습이 보이고, 암자들 갈림길을 지나 다시 안적암ㆍ내원사로 가는 길과 주남마을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주남마을로 시멘트도로가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주남고개 또는 안적고개로 불리는 고개같다(안적고개와 주남고개를 달리 표기하는 것도 있다).
대성암 방향으로 오르다 보니 다시 3거리가 나오고 대성암 가는 길 방향으로 시멘트도로를 따라 오르막을 오른다. 시멘트도로는 비포장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포장도로로 바뀌는 것을 반복한다. 도로 중간에 산길로 진입하는 곳에 표지기들이 걸려있어 이곳으로 들어가 능선을 타고 532.5m봉에서 좌측으로 급히 꺾여 대성재로 진행하도록 되어 있으나, 지도를 보니 대성암으로 가는 길을 따라 도로를 따르는 것이 편할 것 같아 도로를 따르다 도로가 길게 원을 그리는 지점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지름길로 가로지르니 바로 대성재이다.
♠ [12:56] 대성재
좌측으로는 대성암으로 가는 길이고, 옛 헬기장 터에는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매점으로 보이는 간이건물에는 아무도 없다. 이곳에서 막걸리나 한잔 했으면 좋으련만. 이정표에는 이곳에서 정족산까지는 40분, 통도사까지는 2시간 30분으로 되어 있어 오후 4이전에는 오늘 구간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우측의 능선입구에서 후미의 도착을 기다려 30여분을 쉬고 정족산을 향하여 출발한다.
솔숲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전망이 좋은 암봉에 이르고 바로 앞에 정족산의 솥발처럼 우뚝 버티어 선 모습이 드러난다. 역시 산은 멀리서 떨어져 보아야 제 모습을 볼 수 있다. 천성산의 공룡능선 등 갈래갈래 뻗은 줄기들의 모습이 꽤 암팡지고 이 산이 예사 산이 아님을 알게 된다. 동쪽으로 울산시가지의 모습과 동해의 푸른 바다도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나타나는 억새평원지대와 사이사이에 있는 늪지대를 보면서 이 동네에 무제치늪 등 고층습원지대가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고원지대가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 특이하고 이러한 특수한 생태환경 때문에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앞에 버티고 있는 정족산은 키작은 소나무가 듬성듬성할 뿐 전체적으로 누런 갈색이다. 정족산에 오르기 직전에 있는 바위 중에는 입을 벌린 듯한 모습의 기묘한 것도 있다.
6. 솥발처럼 견고한 정족산(鼎足山, 700.1m)
♠ [13:59] 정족산(700m)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족산 정상에 오르니 이곳 역시 사방으로 조망이 기가 막힌 곳이다. 삼각점(양산413)이 박혀있고 또 다른 바위에는 제2천성산에서와 같이 태극기가 새겨진 돌판을 붙여놓았다. 정족산의 정족(鼎足), 즉 솥발은 삼각 정립을 말하고 흔들리지 않는 안정성과 견고함을 뜻한다. 낙동정맥은 정족산에서 맥을 낮추어 가라앉았다가 영축산을 불뚝 솟아놓는다.
정족산은 천성산의 명성에 가리어져 잘 드러나지 않는 산이나, 올라와보니 산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 꽤 옹골찬 산임을 알 수 있다. 정족산에서 동쪽(우측)으로 운암산-남암산-문수산-영취산-신선산을 거쳐 태화강으로 맥을 다하는 37.5km의 ‘남암지맥’이 분기하는 점도 눈여겨볼만 하다.
이제 오늘 구간의 종점을 향하여 간다. 정족산에서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산철쭉 숲이 이어진다. 산행시간이 10시간이 넘어가면서 피로할 듯도 하지만 종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안도감 때문에 오히려 힘이 난다. 임도를 건너 다시 산길로 들어가는데 바위가 우뚝 서 있는 선바위를 지나 바위 봉우리에서 다시 조망을 즐긴다. 가야할 방향으로 공원묘지의 모습이 들어온다.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 곳의 공원묘지 전망대에서 마지막 휴식을 취한다. 앞에 우뚝 서 있는 영축산의 모습이 꽤 위압적이다. 내일 새벽에 영축산의 된비알을 오르려면 힘깨나 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원묘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영축산과 통도CC, 공원묘지
공원묘지와 통도컨트리클럽 등 통도사 인근지역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내려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각자 예습해 온대로 각양각색의 의견을 제시한다. 노상산을 지나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아예 우회하여 빠져나가야 한다는 등등. 지도의 마루금줄기도 다르게 되어 있다. 정맥 표지기들도 곳곳에 우왕좌왕 하는 식으로 제멋대로 걸려있다.
무인감시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좌우측으로 내려가는 곳에 전부 표지기들이 걸려있고 좌측 방향으로 표지기들이 더 많이 걸려있어 이곳으로 내려갔다가 Back하여 다시 돌아와 우측의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철쭉의 나뭇가지에 긁히며 내려가니 어떤 추모비석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오르막을 오른다.
그런데 이곳에서 정확하게 정맥 마루금을 이으려면 우측으로 더 뻗어나가 공원묘지 우측 끝으로 내려선 다음 철탑이 있는 봉우리로 올라가 노상산 방향으로 길을 잡은 다음 노상산으로 가기 전에 배수로를 따라 골프장 15번홀 티하우스 앞에서 우측으로 넘어가면 현대가아차 출고장으로 이어지는 날머리가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추모비에서 오르막을 올라 좌측으로 길의 방향을 잡으면서 급경사의 낙엽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니(물론 이쪽으로도 엉터리 표지기들이 많이 걸려있다) 웬 너덜지대가 나오고 공원묘지 옹벽이 나온다. 도저히 밑으로 뛰어내릴 수 없어 우회하여 내려오니 공원묘지 상단 중간에 있는 도로이다. 공원묘지 중앙도로를 따라 관리사무소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보니 참으로 큰 대형 공원묘지다. 울산지역 노동운동의 현실을 반영하듯 열사(烈士)들의 묘도 많다.
7. 날머리 지경고개로 가는 길 : 사라진 마루금
♠ [15:25] 삼덕공원ㆍ용암사 입구 표지판
정족 공원묘지 관리사무소쪽으로 내려온 다음 다시 우측의 공원묘지 끝단 방향으로 간다. 앞에 보이는 철탑이 있는 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삼덕공원과 용암사 입구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공원묘지를 가로질러 들머리입구를 찾는다.
다시 소나무 숲 산길을 10여분 오르니 철탑이 있는 봉우리를 통과한다. 지도상의 342.7m봉 직전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곳에서 내리막으로 내려서면서 묘2기가 있는 곳으로 내려서서 진행하는데 임도가 좌우로 뻗어가고 있다. 역시 사방으로 표지기가 걸려있다. 실하게 보이는 표지기를 따라 좌측으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알바를 한다. 공원묘지와 골프장으로 정맥의 맥이 끊기면서 우왕좌왕하는 해프닝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밤안개님은 열을 받아 나무에 매달려있는 표지기를 내리치는 것으로 분풀이를 한다. 그러나 표지기를 건 정맥꾼의 잘못이 아니라 마루금을 없애버린 공원묘지와 골프장이 원죄이다. 정맥 마루금이 사라진 이런 곳에서는 마루금 잇기가 사실상 의미가 없다.
♠ [16:02] 통도컨트리클럽
다시 우측으로 난 임도를 따라가다가 골프장 중앙도로를 통과하한다. 여유롭게 샷을 날리는 골퍼들의 모습과 정맥마루금을 이어가는 정맥꾼들의 모습이 극과 극으로 대비된다. 이런 곳에서는 빨리 벗어나 주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다. 골프장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클럽하우스를 지나고 계속 내려가다 보니 정문이 나오는데 경비가 다른 길로 가라고 제지를 하는데 우리들의 버스가 마중을 온다.
재빨리 버스에 타고 골프장 안으로 진입하여 패잔병(기사의 표현)들을 싣고 현대기아차출고장 앞 고갯마루식당으로 간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우리가 내려온 방향으로 마루금이 그려진 지도도 있다. 오히려 좌우로 갈린 임도에서 처음대로 그냥 좌측으로 진행하였다면 쉽게 골프장을 빠져나올 수도 있었을 것으로도 생각된다.
♠ [16:50] 지경고개/통도사 현대기아출고 앞 고갯마루식당
이곳에 와보니 어떻게 된 게 이곳 날머리에 표지기들이 잔뜩 걸려있다. 어떻게 신기하게도 이곳으로 길을 잘들 찾아온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저러나 오늘 구간은 처음과 끝을 알바로 장식하였다. 앞으로 갈수록 정맥길이 이런 식으로 잘려가면서 정맥길 잇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도래될 것이다.
고갯마루식당에서는 선두들이 한잔을 하고 있다가 우리를 맞아준다. 대충 씻고 막걸리에 푸짐한 안주로 뒷풀이를 한다. 뒷풀이를 마치고 저녁 6시경 내일 다음 구간을 이어갈 나와 산정무한님, 밤안개님과 오르고파님은 남고 나머지 일행들은 버스에 타고 서울로 올라간다.
8. 다시 낙동정맥을 이어가기 위하여
남은 사람들은 고갯마루식당의 주인아저씨의 밴으로 통도사 인근의 숙소로 가는 길에 내일 들머리를 유심히 보아둔다. 맘씨 좋은 젊은 아저씨 덕분에 들머리를 정확히 숙지할 수 있었는데 제4구간은 지내마을의 지내고개/삼남목장입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현대오일뱅크 주유소 좌측길로 들어서서 35번 국도를 지나 순두부집 사이로 난 도로를 확인하기는 하였으나, 이미 도로와 건물로 마루금이 사라진 동네를 밤중에 기웃거리며 맥을 잇는다고 걸어봐야 무의미한 것이리라.
처음에는 오늘 구간을 마치는대로 통도사 적멸보궁을 탐방할 계획이었으나 이미 날이 어두워졌고, 내일 새벽 5시면 통도사 경내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나 그 시간에는 영축산으로 올라가야 할 시간이므로 통도사 탐방은 접을 수밖에 없다. 3寶 寺刹의 하나인 佛寶사찰인 양산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 경판을 보존하고 있는 장경각이 있는 합천 해인사는 法寶사찰로, 수많은 대승을 배출한 순천 송광사는 僧寶사찰로 유명하다.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적멸이란 열반(Nirvana)의 다른 말이다. ‘적멸보궁’이란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이란 뜻이다. 자장율사는 7세기 중국(당)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부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직접 전수받아 가지고 와 나누어 봉안하면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장 먼저 봉안한 곳이 통도사이다(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영월 법흥사, 오대산 상원사, 정선 정암사를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적멸보궁이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뜻하며 이곳에는 불상이 없다. 부처의 몸이 있으니 따로 상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보통의 절간에 불상이 앉아있어야 할 자리인 수미단에는 빈 방석만이 놓여 있다.
통도사로 먹고사는 마을의 자연관광호텔 사우나를 안내받아 가보니 1인당 사우나 요금은 3,500원이고, 숙박요금은 할인해도 54,000원이라고 해서 너무 비싸 그냥 사우나만 하기로 한다. 식당 주인아저씨도 여자와 함께 잘 것이 아니라면 아무데서나 자라고 한다. 우선 냉온탕 사우나를 시원하게 하고 인근의 백두대간 생맥주체인점에서 맥주와 소주를 마시면서 한국과 스웨덴 축구경기를 본다. 알고 보니 모두들 축구에는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들이다.
처음에는 오르고파님은 내일 배내고개에서 역으로 영축산 방향으로 진행하고, 밤안개님은 배내고개에서 외항재로 진행하기로 하였지만 오르고파님이 밤안개님과 동참하기로 하였고, 나와 산정무한님은 지내고개에서 배내고개, 배내고개에서 외항재까지 30km를 넘는 거리를 한꺼번에 몰아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연짱 장거리산행이지만 이왕 멀리 왔는데 몸 좀 풀고 가기로 한다.
축구경기가 끝난 후 다시 자연관광호텔로 들어가 사우나 손님임을 내세워 원래 사우나 포함 찜질방 요금이 7,000원인 것을 요금을 깎아 찜질방에서 잠을 청한다. 내일 구간을 머리에 그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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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범모 멘트
이 구간은 골프장, 도로등 때문에 우회하면서 알바할 위험성이 큰 구간이므로 수시로 지형도를
보면서 진행하셔야 합니다.
이 구간내에 있는 천성산은 굳이 정맥길이 아니라도, 환경문제로 유명한 산이 아니라도...
산행가치만으로도 꼭 가볼만한 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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