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21명을 살해한 잔인한 살인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그릇된 삶을 살게 된 것은 그가 만난 사람들이 다 그지같은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감방에서도 간수 한명을 또 살해한다. 구타와 욕설 등 너무나 비인간적 대우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살인마도 진실한 사람을 만나니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새로 감방에 들어온 간수와 살인마가 예전 있던 형무소 소장이 그런 진실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만은 이 살인마를 인간으로 대우해주었다. 그는 많이 변화가 되었다. 그러나 결국 감옥에서 풀어주고 자유롭게 시내의 도서관에 드나들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도서관 여직원을 강간한다. 소장은 좌절하고 그는 다른 형무소로 보내진다. 여기서 그는 새로 들어온 간수와 친구가 된다. 간수는 자신을 믿고 간수가 쓰는 방망이를 맡기기고 하고, 자신의 삶을 글로 써보겠다고 종이와 연필을 부탁하니까 형무소 규정에 의하면 안 되는데도 위험을 감수하고 부탁을 들어준다.
그 바람에 주인공은 못된 짓을 하는 간수에게 걸려 죽도록 맞는다. 그래도 그는 누가 연필과 종이를 주었는지 끝까지 불지 않는다. 그가 믿고 대화를 하는 유일한 사람은 이 세상에 신참 간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을 도와준 그 간수가 난처한 입장에 처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결국 그는 자기를 괴롭히는 간수를 죽이고 자신도 사형집행을 기다리게 된다. 또 그 친구 간수는 사표를 내고 형무소를 떠난다.
주인공은 더 이상 그지같은 세상을 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제대로 된 인간을 거의 볼 수 없는 이 세상을 더 이상 살고 싶지않다. 그래서 차라리 도와준 친구까지 난처하게 만들려는 못된 간수를 죽이고 스스로 죽는 길을 재촉한다. 그의 교수형에는 그 친구를 꼭 와달라고 부탁한다. 그를 사람으로 대우해준 유일한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생애는 마감한다.
나는 이 영화가 마치 주인공의 삶을 통해서 우리 모두를 심판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의 실망스런 행동 때문에 많은 범죄자들이 생겨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좀더 훌륭하게 살았어도 많은 범죄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살인마라고 정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가 돌아보자.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느낌이다. 그 메시지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나는 또 다른 면을 생각한다. 주인공인 이 사람도 아무리 그지같은 인간들을 만났다 하더라도 그의 반응이 그렇게 꼭 비판적이고 파괴적인 되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살인한 것은 아무리 그래도 변명할 수 없다. 정당화될 수 없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어도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좀더 내적을 강해져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다 성숙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고 힘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모든 범죄자는 나약한 인간이다라고. 그들은 우리의 더욱 특별한 사랑이 요청된다. 또 이 사랑에는 지혜와 지식이 함께 갖춰진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