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한 유럽 배낭여행 10박 11일
이종원 글/사진
마지막편 이태리( 베네치아-로마- 폼페이-로마-서울)
베네치아 미로찾기 - 산마르코성당- 리도섬- 로마

스피츠에서 갈아타고 또 브룩에서 갈아탔다.
야간열차이기에 문을 굳게 닫고 커튼 치고 배낭을 선반에 쇠줄로 묶고 자물쇠까지 달았다. 악명 높은 이태리 좀도둑을 막기 위해서다. 스위스-베네치아와 비엔나-베네치아 야간열차노선이 좀도둑이 가장 많은 노선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프랑스에서 한번 경험 했잖아.
3열 좌석에 누우니 쿠셋보다 편안하다. 꿈나라...아이 좋아라.
4시경쯤인가 1명, 2명 문을 두드리며 타더니 5시쯤엔 컴파트먼트의 6좌석이 전부 찼다. 아마 베네치아로 출근하는 사람들 인가보다. 이태리 기차에 사람이 많다는 소릴 들었지만 새벽에 이렇게 많을 줄이야...
아무튼 루째른에서 4량에 모두 3명이 탄 것과는 무진장 비교가 된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나라인데도 이렇게 다를수가...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 한 정거장 전인 '메스트레역'에 내렸다. 선반에서 자물쇠를 따고 쇠줄을 푸는데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우릴 쳐다본다. '우리는 도둑놈으로 아니야..' 라고 항변하는 듯한 표정이다. 얼굴이 화끈해서 혼났다.
열차를 갈아타고 끝없는 바다는 바다를 가로질러 종착역인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불리는 베네치아.. 임진왜란때 끌려가 베니스를 주름잡은 개성상인이 떠오르는 도시.. 당대의 화가 루벤스가 이 골목 한 켠에서 그 대상인을 그렸을 텐데...
1. 베네치아
물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도시 베네치아는 로마와 더불어 이태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시다 122개의 작은 섬과 400여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베네치아는 오래 머무를수록 색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도시다. 2월엔 베니스가면축제가 열리고 베니스 비엔날레, 베니스 영화제가 지금 9월에 열린다. 나는 베네치아를 무슨 외국 애로영화에서 본 기억이 나거든.. 그때 배경을 보고..참 가보고 싶었는데....이렇게 오다니..
베네치아 공화국은 중세에서 18세기까지 무역항인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국가이며, 특히 13-16세기에는 국제 정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십자군 원조의 대가로 지중해의 무역 특권을 얻었기 때문이다.

2. 산타루치아 역
아침부터 역에는 인파들로 가득 찼다. 이곳에서 이태리 일주를 하는 동포 여자 2명을 만나 정담을 나누고, 까페에서 토스트와 커피한잔 마셨다. 조금은 피곤이 가신다. 이곳엔 특이하게도 코인라커는 없으며 사람이 직접 맡아준다. 무려 5천원이나 받는다. 변함없이 인포메이션 센타에서 지도한 장 얻었다. 이곳에서 프랑스 유학중인 예쁜 여학생과 동행했다. 서울 집이 서초동이었던가... 어쨌든 이태리어를 좀 하길래 데리고 다녔다. 이국에서 여자 둘을 달고 다니는 그 기쁨을 누가 알랴?
3. 미로여행
베네치아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고, '바토레토'라고하는 수상버스가 있다. 모터 보트는 택시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또하나 뱃사공이 끌어주는 곤돌라..이것은 뭐라고 할까?
그래..인력거라고 하자... 어째튼 육지의 교통수단 구색은 갖추었다. 섬과 섬은 400여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섬 가운데는 대운하가 가로지르고 있어 아드레아해안과 연결이 된다.
베네치아의 가장 큰 기쁨은 조그만 골목을 마냥 걷는 것이다.
차비도 아끼고 도시의 내면을 둘러 볼 수 있어 좋기 때문이다.
두 사람만이 간신히 통과 할 수밖에 없는 좁은 골목을 찾아 성마르꼬 성당을 향해 헤맨다. 그 자체로도 신기한 경험이다. 종로의 피맛골 골목보다 좁은 길을 누비고 다니니 도무지 방향을 모르겠다. 방향감각을 잃은 여행객을 위해 화살표 푯말이 우릴 안내한다.
베니스의 개성상인이 이곳을 누볐다니 가슴이 벅차 오른다.
중세풍의 낡은 건물과 햇빛에 반사된 물 색깔이 좋은 조화를 이룬다.
헤메다 보니 그 유명한 '리알토 다리'가 나온다. 원래 목조다리였으나 화재로 전소되어 지금은 대리석으로 복원되었다.
아침햇살이 비치고 있으며, 대운하를 유유히 흐른다. . 청개천 육교의 노점과 마찬가지로 많은 상인들이 기념품을 팔려고 준비하고 있다. . 물론 스위스보다 물건값이 훨씬 싸다. 특히 축제 때 사용하는 가면은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좀더 들어가면 싸게 팔겠지' 라고 생각했다가 결국은 사지도 못했다.
아이고 아쉬워. 그걸 보면 베니스의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를텐데
다시 미로 찾기를 계속하였다. 야외 오페라극장이 보이고 시장도 보인다. 지중해의 꿈틀거리는 물고기도 그 싱싱함을 은빛으로 보여준다. 생전 보지도 못한 과일들도 보인다. 주인과 흥정하는 모습들... 우리네 시골 장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팔딱거리는 생선을 회쳐서 소주 한 잔 했으며 원이 없겠다.
4. 산 마르꼬 광장

미로 찾기에서 벗어나니 베네치아 제일의 산마르코 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답답한 골목을 벗어나 확 트인 광장을 보니 기분이 상쾌하다.
바다를 향해 날개 달린 사자상이 보인다. 이는 베니스의 상징이란다. 광장엔 수천 마리의 비둘기가 노닐고 두 팔을 펼치면 와서 앉는다. 관광객이 주는 먹이만 받아 먹어서 피둥피둥 살만 쪘다. 광장 둘레엔 노천 까페가 있으며 여기엔 당대 유명한 문인들이 담소를 나눈 곳이라나..
5. 산마르꼬 성당
마르코 복음의 저자인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모시기 위래 세워진 성당이며, 유럽의 어느 성당모습과는 사못 달라 이슬람사원같은 느낌을 받는다. 로마네스크, 비잔틴, 이슬람 양식이 혼재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모자이크 벽화가 많네.
성당 입구 위에 있는 4마리 청동마상이 눈에 띠는데 이것은 기원 4세기경 터어키 것이며 13세기 십자군 원정때 전리품으로 가져온 것을 나폴레옹이 약탈하여 파리 개선문 위에 장식했었다. 그러나 1815년 와데를로전에서 나폴레옹이 패전하는 바람에 다시 되찾아 성당 위에 올라 베니스를 지키고 있다. 정말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청동상이다.
성당 천정엔 구약의 내용을 묘사한 모자이크화가 화려하게 수놓아 있다. 성당을 둘러보는데는 무료지만 제단은 입장료를 받는데 얼마나 호사스럽게 꾸몄는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수 십 캐럿의 다이아, 사파이어 루비등 치장되어 있었다. 여자들이 가면 나오길 싫을걸...
아내도..한숨만 푹푹..
6. 종 탑
성당을 나와 오랜 줄을 서서 종탑에 올랐다.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리세공으로 유명한 '무라노섬', 아름다은 해변을 가지고 있는 '리도섬', 교회, 바다 등등 사방이 확 트인다.
아내보고
"어느 섬에 가고 싶니?"
"저-기 있는섬"
크크- 리도섬이다.
실은 나도 저기 가고 싶었거든... 나체해변이 있는 섬이다. 낄낄..
7. 이태리 화장실
종 탑에서 내려 화장실을 들렀다. 사용료가 무려 7백원 한다. 아마 이번여행에서 화장실 사용료로 만 둘이서 5만원은 들은 것 같다. 정말 아까워... 북경에서도 돈을 받지만 워낙 싸서 허허 웃으면서 던져주었는데 이곳은 한번 배설할 때마다..돈이니 원...
우리네 간이화장실과 비슷했다.
하도 급해 들어가자마자 응가를 하니 ....아뿔사 화장실에 휴지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 이태리 화장실은 휴지를 없나보다. '로마에 왔으니 로마법을 따라야지..'
고민 고민하다가 가이드북 2장을 찢었다.
그런데 나 다음에 들어간 사람이 휴지가 없는 것을 보고 주인에게 무어라고 현지말로 떠드니 주인이 휴지를 갖다준다.
와우... 열 받는다. 이태리화장실도 휴지 준다는 것을 명심하길...
어쨌든 베네치아는 세계적 관광지라 인파들로 가득 차있다. 이태리인들은 가만히 보니가 성격e호 급하고 놀기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사람과 닮은 점이 많다. 인간성도 그렇고 나라 생김세도 그렇고....
8. 탄식의 다리

베네치아 공화국 총독이 머물렀던 두칼레 궁전은 시간 관계상 겉에서 보는 걸로 만족하고, 프레지오니 감옥을 잇는 다리인 '탄식의 다리'를 보았다. 중세에 형을 선고받고 감옥으로 가는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서 마지막으로 바깥세상을 보며 탄식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호색한으로 유명한 돈-환도 이 감옥에 갇혔고, 그가 유일한 탈주자라고 한다.
이 다리를 지나는 곤돌라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산타루치아를 부르는 뱃사공의 선율과 더불어...
9. 곤돌라
베네치아 명물인 곤돌라가 몸매를 날렵한 몸매를 뽐내며 선착장에 서있다. 길이 10미터, 너비 1.2미터이며, 선수와 선미는 금속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뱃사공도 투우사처럼 멋진 옷을 입고 손님과 흥정한다. 값을 물어 보았더니 1인당 5만원을 달랜다. 집사람이 "차라리 제주도가서 잠수함 타겠다." 제주도 갔을 때 5만원이 비싸 잠수함 못 탔거든...
10. 리도 섬
선착장 매표소에서 "Lido 아일랜드 2장" 도저히 못 알아듣는다." Lido..." 아니가 "Rido" 라고 하니까 표를 준다. 대충 알아 듣지... 뒷사람이 막 웃는다.
내가 보기엔 이태리사람은 친절한 국민은 아닌 것 같다.
단지 조상의 빛나는 문화유산 덕분에 먹고 산다고 말하고 싶다.
바토레토에 무진장 사람이 많이 탔다. 마치 우리네 만원 시내버스처럼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든다. 바다에서 바라본 베니스의 모습은 또 다른 맛을 느낀다.
드디어 리도섬에 도착했다. 세계적인 휴양소이며 ,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다. 그것도 바로 지금 9월인 것이다. 얼핏 신문을 보니 톰-크루즈, 소피 마르소가 바로 이 섬에 있다고 하는데...
만났으면 좋으련만..
축제 때는 베네치아 시내에서 유명연예인 찾기 대회도 열린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적 관광지든 뭐든 간에 배가 고파서...원.
바로 슈퍼에 들러 포도, 복숭아, 통닭, 음료수등을 사는데...
아내가 "저기 밥도 팔아... "
"정말?"
반찬가게에서 10분이나 기다려 그 밥을 샀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밥인가. 군침을 머금고 해변으로 달려가 벤치에 자리잡았다.
물론 제일 먼저 밥을 퍼서 입에 넣었지..... 이건 밥이 아니고 쌀이다.
더구나 진한 향내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럼 그렇지..
결국 빵과 과일로 한끼 때웠다.
11. 해변의 여인

해변을 거닐었다. 저 바다가 아드레아해이다. 저 너머가 내전 중인 유고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 하얀 포말, 밀가루 같은 백사장... 갑자기 피곤이 쏟아진다. 그러나 잘 수 없었다. 왜냐하면 상체를 훌렁 벗고 여인들이 백사장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는 엉덩이까지 내밀고 햇빛을 쬐고 있었다.
나..원참..좋구먼.
썬그라스를 끼고 오길 잘했지. 좌우로 눈알을 돌려 모처럼의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았다. 도저히 나 혼자 보기는 아까 왔다.
'사진을 찍어 우리 직원을 보여 줘야지...'
차마 정면을 보고 찍을 수 없어 지나가는 척 하며 옆에서 한 장 박았다. 그러나 나중에 현상해 보니 여인의 발바닥과 하늘만 나왔다. 너무 급해서 포커스를 맞추지 못했나 보다. . 잘 나왔으면 그 사진을 같이 올렸을 텐데....
아내는 쑥스러운지 빨리 나가자고 했다. 나는 도저히 피곤해서 못 간다고 했다.
"배 째라.."
백사장에 앉아 쉬는 척하면서 눈은 쉴새 없이 움직인다. ㅋㅋㅋ
이곳에서 신혼여행객 1쌍을 만났다. 인생 선배로서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해 주었다. 감동을 받았나? 고개를 끄덕거리네... 아마 그 친구들 주례사 두 번 들었을 것이다.
신발이 불편해 아내는 슬리퍼를, 나는 샌달을 샀다. 운동화를 샌달로 바꾸니 날아 갈 것만 같다.
수상버스 바토레토는 아름다운 베니스의 아름다움을 구석구석 집어주었다. 참으로 멋진 장면이 많았지만 난 꾸벅꾸벅 졸았다. 아내가 몇 번을 꼬집었지만 졸린걸 어떻게... 세느강 유람선 탈 때도 졸았는데... 왜 나는 배만 타면 졸릴까?
아마 리도섬에서 여자 보느라 눈알을 너무 돌려서 그런가보다. 한 시간 가량 베니스 구석구석을 돌고 산타루치아역에 도착했다.
11. 로마행 기차에서
바로 짐을 찾고 로마행 특급열차에 몸을 실었다. 원래 밤 늦게까지 이곳에서 머물고 야간열차를 타려고 했는데 도저히 체력의 한계를 느껴 낮 4시 기차를 탄 것이다. 열차엔 사람이 없었다.
다음 정거장인 메스트레까지는 10여분 정도인데 사람이 타기 전까지 통닭을 뜯었다.
허겁지겁...이렇게 먹는 맛이 죽인단 말이야...
역시 메스트레 역에는 많은 사람이 탔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아내 입 주위에 반지르르 기름이 묻어 있는 것을 보고 웃었다.
아내는 나를 보고 "캐찹 닦아.."
같이 탄 사람도 웃었을 것이다. 세 명이 탔는데 이 사람들 로마까지 7시간 동안 포커를 친다. 화장실도 가지를 않네.. 중간에 한 사람 더 탔는데 그 사람도 같이 어울려 친다.
와...질렸다. 7시간을... 밤새 고스톱 치는 우리네 와 어쩜 그리 똑같은가?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를 거쳐 밤 11시쯤 드디어 로마 테르미니역에 도착했다.
12. 민박집
영화 '종착역'의 배경이 바로 이곳 테르미니역이다. 세계각지의 배낭족들로 붐비며, 역 모양이 우리네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흡사하게 생겼다. 플렛홈도 30개는 넘는 것 같았다. 기차에서 내내 잠자리 때문에 걱정했는데.. 내리자마자 왠 한국인이 와서 자기 집에 묵으라고 한다. '강씨네 민박집.' 역에서 3분 거리에 있으면 아침, 저녁 포함하여 1인당 2만원 정도 받는다.
주인아저씨는 조선족인데 인심이 좋아서인지 11시 넘었는데도 밥을 내왔다. 밥, 김치, 고추 등등 얼마 만에 먹어본 밥인가... 정말 맛있다. 그리고 그곳 배낭족과 정보도 나누고,,, 한국소식도 전해 듣고, 그리고 소주 한잔 얻어 마셨다. 캬-- 지구 반대편에서 마시는 소주 한잔. 그리고 된장에 묻힌 고추 한입 물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주인 아저씨가 냉장고에서 과일도 내왔다. 조선족인데 불법이민자란다. 잘 되어 성공하길 바란다.
일곱 번째날
성베드로대성당- 바티칸 미술관-꼬르세거리-포폴로 광장-스페인계단-트레비분수-로마시내 도보
1. 성베드로 성당

로마여행의 최고 백미는 성베드로 대성당과 바티칸박물관이다.
아침 일찍 시내 유람버스인 64번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규모나 아름다움, 감동등 모든 면에서 세계최대의 성당이라 할 수 있다. 우선 광장에서 바라본 성당의 규모에 위축 될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신앙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었으면 저런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었을까?

사실 베드로 성당을 보면서 나의 신앙생활을 돌이켜 보았다. 어쩌면 이곳은 순례자의 입장에서 온 것이지 모른다.
스위스나 네델란드에도 전에는 중세 유적지가 많았는데 종교전쟁 후 거의 파괴되었다. 단지 우상숭배라는 명목하에 수백년된 유적이 전부 파괴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바라 보는 자체만 가지고도 신앙심이 우러난다. 하물며 글을 모르는 당시 사람들에겐 이 성상들이 소중한 의미로 전달해 주었을 것이다.
이곳엔 베드로 성인의 무덤이 있다. 서기 1,000년경 이 무덤 위에 작은 성당이 세워졌으며, 1506년에 증축되었다. 성경말씀대로 반석 위의 교회가 완성된 것이다.
르네상스 건축의 최고 걸작이며, 성당 안의 그림은 대리석으로 만든 모자이크화이다. 광장 가운데는 오벨리스크가 우뚝 자리잡고 있으며 283개의 도리아식 대리석 기둥이 성당을 두르고 있다. 성당 위에는 140명의 성인이 조각되어 자리잡고 있다.
성당 입구에 반바지 입은 사람을 제지한다. 그럴 줄 알고 난 가져왔지. 최고의 걸작품을 접한 사람의 최소한의 예의랄까?
2. 피에타

성당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보인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인파로 가득 차 있다. 죽은 예수를 끌어안은 비통한 성모상을 '피에타'로 부르는데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남겨진 유일한 작품이다. 성당에서 유일하게 방탄유리로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조각을 공부하는 학생이 아무리 애를 써도 미켈란첼로 같은 작품이 나오지 않아 홧김에 조각 끌과 망치로 코를 깨트려 린 것이다.
어쩜 대리석을 저렇게 능수능란하게 다루는지 전율마져 흐른다.
그런데 예수를 끌어안은 성모의 모습이 너무 젊었다. 동정녀의 의미를 살릴려는 의도인가보다. 영화 '예수'에서 성모역의 올리비아 핫세의 모습도 아들 예수보다 젊던데....
3. 작은 성당
곳곳에 기념비와 작은 성당이 있다. 잠시 쉬어갈 겸 앉아서 묵상했다. 베드로 성인의 밀알 같은 희생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헌금함이 있어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려는데 아내가 손을 꼬집는다.
" 지폐 꺼내"
성베드로상은 신자들이 하도 키스를 해서 발가락이 닳아 없어졌다. 아마도 수억 명이 그 발을 만졌을 텐데.. 가장 안쪽에는 성 베드로가 순교한 의자가 있다.
4. 발다키노

총 길이 187m의 성당 정 중앙에 자리잡은 청동기둥이다. 교황님의 제단이 가운데 있다. 높이 29미터의 거대한 황금 옷을 입힌 청동기둥이다.
이는 교황이 신과 인간의 매개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건축가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이 규모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으리라.
발다키노 둘레에는 4명의 거대한 성인상이 있는데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성 헬레나, 예수의 땀을 닦은 수건을 든 성 베로니카, 예수를 찔렀던 창을 든 성 롱기누스, 그리고 예수와 십자가에서 함께 한 성 안드레아 성인이다.
성당 중앙입부에서 발다키노까지 는 세계주요 성당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5. 보물실
수천년동안의 교황청 보물등이 전시된 곳이다. 성작, 성배 등 호화로운 보물들이 가득 차있다. 간혹 신부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6. 바티칸 미술관

성당을 나오니 용맹 무쌍한 스위스 근위병이 성당을 지키고 있다. 아직까지 스위스 사람을 쓴다고 한다. 전통을 지금까지 이어가다니... 미켈란첼로가 디자인한 멋진 옷을 걸치고 부동자세로 서있다.
성당 담벼락을 따라 20여분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 최고의 보물창고인 바티칸 미술관이 나온다. 역대 로마교황이 거주한 바티칸 궁을 18세기 후반 미술관으로 공개한 것이 바티칸 미술관이다. 16세기초 교황은 르네상스 예술가들을 끌어들였고,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 같은 대가도 포함되어있다. 그 후 교황들은 미술품을 꾸준히 수집하였고 세계굴지의 미술품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인류의 문화유산이 한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매표소가 나오는데 우린 거금 2만원을 주고 안내CD를 빌렸다. 작품번호를 누르면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미아라가 가득찬 이집트미술관, 그리고 동물관, 해부학의 완벽한인체인 아폴로상, 수천개의 명화들과 미대입시생이 데셍을 하는 석고상들 (아그립빠만 알고 있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7. 토르소
토르소란 몸통을 뜻하는 이태리어로 이 조각은 몸통만 발견되었다. 미켈란젤로에게 이 조각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시켜달라고 의뢰했으나 그는 "이것 자체로만 완벽하다." 나는 더 이상 손 댈 수 없다"라고 말한 완벽한 몸체다. 그의 '최후의 심판'에서 그리스도의 몸체가 이 토르소의 모델인 것이다. 몸 전체의 우람한 근육....
8. 라오콘상

그리스와 트로이 전쟁때 트로의의 제사장 라오콘은 목마를 성내로 들이지 못하게 한다. 감히 신들의 계획을 눈치챈 인간에계 포세이돈이 뱀을 보내 이들 부자를 죽게한다. 찰라의 고통을 잘 표현해 낸 작품이다.
9. 다이아나
풍요의여신 다이아나는 수백개의 젖가슴을 가지고 있다. 저런 젖을 가지면 아기는 배부를 텐데...
10. 라파엘로방
그 유명한 아테네 학당, 교묘한 원근법으로 그려진 작품.
그밖에 네로의 방의 거대한 욕조의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시간만 여유롭다면 천천히 감상하면 좋으리라.
11. 시스티나 대성당
이는 교황 선출회의가 열리는 장소로 만장일치제도로 인해 의견통일이 될 때까지 선거단을 몇 일을 꼼짝 못하게 해두는 곳이다. 그러나 수 십일을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으리라. 벽과 천장에 세계 최고 걸작이 있기 때문이다.
12. 천지창조
젊은 시절 미켈란첼로가 그린 '천지창조'의 그림이 천장을 수놓고 있다. 준비한 망원경을 가지고 천천히 감상했다. 하느님의 천지창조, 인간창조, 에덴추방, 노아홍수, 술취한 노아의 모습이 순서 대로 보인다. 너무나 아름답다. 저걸 그렸기에 노년엔 허리가 굽어졌다는 일화도 있다.
'인간창조'에서 창조의 신과 인간과의 만남의 표현을 손가락이 서로 닿는 모습으로 표출했다. 정말 감동적이다. 이는 CF에도 많이 나왔다.
화가는 하느님을 인자하고 엄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신의 주변에 그려진 구름은 뇌의 모양을 하고 있어 화가는 '인간은 신의 머리에서 나왔다"라고 생각한 것 같다.
망원경 꼭 지참하길...
13. 최후의 심판
미켈란첼로의 천지창조이래 24년만에 그린 그림. 총 391명이 등장하여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동작을 보여주고 잇다. 단테의 신곡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최후의 날에 인간을 심판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예수의 얼굴은 아폴로에서, 몸은 토르소에서 따왔다. 마리아는 너무 무서워 고개를 돌리고 있고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다. 충격 그 자체다.
14. 천사의 성
서기 135년 황제의 묘를 쓰기 위해 만들었지만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인다. 인포메이션 센타에서 로마시내 지도를 한 장 얻고 시내를 돌아보았다. 노천 식당에서 이태리 피자와 라자니아로 배를 좀 채우고 걷는다. 오늘도 정처없이...
15. 꼬르소 거리와 콘또비 거리
구찌, 루비똥, 발렌티노, 그밖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본산지다. 이태리답게 여자들은 세련되었다. 남자도 마찬가지로 겉멋만 들어서.. 어쨌든 세계 유행의 본산지라 말 할 정도로 젊은이들은 세련되었다. 교통은 우리 나라보다 더 무질서하다. 오토바이가 무자비하게 질주한다. 치한도 안심할 수 없다. 겁이 날 지경이다.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다 스위스에서 만난 여대생을 또 만났다. 너무나 반가 왔다. 유럽에서 2번을 만나다니...하긴 백두산에서 잃어버린 친척을 만났다고 하니...우리 나라도 남대문시장에서 일본인끼리 만날 수 없으리란 법도 없으니 말이다. 한 여학생은 너무 심한 반점이 나있었다.
이 여자들 죽이 맞아 우리네 명동의류매장 같은 곳에 가서 이 옷 저 옷 입어 본다.
"이 옷 너무 예쁘지."
"언니 너무 잘 어울려"
"너무 싸다. 그치"
못 말린다. 나는 한국에서도 아내와 백화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밖에서 20여분 기다리면 부화가 치오른다. 이 짧은 여정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 유적지를 접해야하는데...
보통 유럽여행시 여행파트너가 맘에 안들어 헤어지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마누라니 버리고 갈 수 도 없고,,,,그래 참자.
시계점에 들렀다. 5만원인데 팔찌모양이다. 마누라 시계 고르는데 10분, 시계줄 맞추는데 10분 드디어 폭발했다. 시계방 주인이고 뭐고.. 한국남자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아내는 입이 튀어나와 나와 떨어져서 다닌다. 관광이고 뭐고 다 때려 치우겠다고 한다.
간신히 위로하고..... 그래 옷 많이 봐라....
다시 한 옷가게에 들렀다. 기다리다 지쳐 옷가게에 있는 의자에 앉았는데 옷 2벌을 들고 내게 다가와
" 어느 옷이 예뻐?"
귀찮아서
" 이거-"
했더니 옆에 있던 이태리 여자가 씩 웃는다.
'어쩜 패선 감각이 그렇게도 없니..' 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내는 내가 고른 옷을 샀다. 어쨌든 'SALE'란 딱지만 봐도 겁이 난다.
16. 포폴로 광장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서 약탈해온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수 갈래 길이 만나는 곳이다. 우리네 남대문과 같이 로마로 들어오는 초입길이다. 현란한 조각들로 가득 차있다. 워낙 조각품이 많다 보니 솔직이 지겨울 정도다.
17.스페인계단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곳이 바로 여기다.
그러나 주변에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없었다. 꼬르세 거리까지 가긴 귀찮고 아내는 오드리 햅번과는 너무 달랐기에 먹기를 포기했다.
아내는 " 아이스크림 먹느니 티셔츠 한 장 더 살래..." 아주 옷에 환장 했구만..
원래 17세기 스페인 대사관이 있던 자리다. 각국의 배낭족들이 계단을 차지하고있어 간신히 올랐다. 별 희안한 머리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 강렬하게 키스하는 연인들, 쇠사슬을 가지고 다니는 히피족등 하여튼 젊음이 가득 차 있다.
이곳엔 분수가 하나있는데 유명한 건축가 베르니니가 설계한 것이다. 배 모양을 하고 있다. 이곳 사람은 분수 물을 그냥 받아 마시길래 나도 똑같이 마실려다가 옷이 젖었다. 이것도 기술이 필요하네...
18. 트레비 분수

너무나 청순한 오르리 헵번의 갸날픈 어깨너머로 내던지는 동전.
하나를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되고,
두 개를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 진다나...
한 개만 던졌다.
성난 파도의 바다와 신인 포세이돈의 역동적 모습...한때 전쟁을 나가는 병사에게 이 분수의 물을 떠주면 애인이 변심하지 않는다고 한다. 엄청난 수량과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붉은색 조명과 어우러진 대리석과 물빛이 조화를 이루는 야경은 정말 잊을 수 없다.
19. 로마의 거리
민박집까지 버스도 있지만 로마에 밤거리를 활보했다. 달리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무섭지만 우린 로마의 밤을 만끽하고 싶었다. 중간에 목이 마르면 곳곳이 놓여 있는 분수의 물을 마셨다.
'쉬' 하고 싶으면 맥도날드에 가서 볼 일보고.
걷고 또 쉬고..또 걷고 이렇게 로마의 밤은 깊어간다.
숙소로 돌아가 뻗었다. 내일을 기약하며....
여덟 번째 날
나폴리-폼페이-베네치아 광장
1. 나폴리
아침 일찍 일어나 테르미니역에서 나폴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로마에서 기차로 2시간 반. 피곤해 기차에서 내내 잠만 잤다.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는 열차는 너무나 아름다운 차창 풍경을 보여 주었다. 우리네 동해선을 달리는 해변의 모습이랄까.
나폴리는 '세계 3대 미항'중에 하나라는데..실망이다.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같은 미항인 시드니의 모습과는 구별이 된다. 시드니는 정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였거든.... . 그러나 나폴리는 그런 느낌이 별로..
2. 폼페이시
나폴리 역에서 열차를 갈아타고 폼베이에 도착했다. 생각 같아서는 나폴리, 폼페이, 쏘렌토, 카프리섬(가곡에 나오는 지명)까지 돌고 싶지만 그 놈의 시간 때문에... 노년엔 여유 있게 봐야지...폼페이는 조그만 마을이다. 시골 구멍가게에 들러 빵이랑 콜라를 샀다. 확실히 물가가 싸다. 그런데 조그만 구멍가게도 꼭 영수증을 내준다. 유럽이 모두 그렇다. 노점상도 영수증을 발급한다. 세금 누수가 없으리라.
3. 폼페이 유적지

폼페이는 한때 인구가 2만명에 이르렀던 로마귀족들의 휴양도시다. 완벽한 수도 시설과 잘 포장된 도로 그리고 벽화, 조각, 모자이크등이 완벽하게 꾸며져 있다. 그러던 어느날 (AD 79)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이 도시는 하루 아침에 사라진 잊혀진 도시가 되었다. 1784년 우연히 발견되지 않았으면 아직까지 전설로 남아있으리라.
바둑판처럼 짜여진 도시구조, 길 곳곳이 설치된 수도꼭지, 연극과 시 낭송, 검투사 경기시합장, 야외극장이 그 규모를 말해줄다. 집집마다 현관바닥에 새겨진 '개조심' 이란 글자. 풍부한 프레스코화, 모자이크그림들...어찌 2천년전의 문명이 이렇게 발달되었는지 의문이 간다.
이러한 화려함이 베수비오산의 대화산 폭발로 뒤덮여(6미터) 모든 영화가 한순간에 없어진 것이다.
4. 제분기
베티의 집 근처에서 검은 돌을 우리의 장구처럼 다듬어서 옆으로 세워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 것은 제분기다. 빵을 주식으로 삼았던 것이다. 식량을 일정한 공간내에서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가 비로소 문명을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빵은 문명을 잉태한 최대 공로자다. 빵의 원료인 밀이나 보리는 벼보다 단단하여 가루로 내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로마는 이런 제분기를 확보하여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비로소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원형극장은 1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다. 수 백개의 집들이 복원되었는데 부엌과 아궁이는 우리네 시골의 모습과 비슷했다.
5. 베티의 집

선정적인 그림이 눈길을 끈다. 이곳은 창녀의 집답게 온갖 음화로 가득 찼다. 아내는 몸둘바를 모른다. 입구에 무지무지 큰 남성 성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영국할머니가 얼마나 좋아 하던지..."쏘세지 같다"라고 웃음보를 터뜨린다. 오히려 할아버지가 창피해한다.
6. 그밖에

아폴로신전에는 우뚝 솟은 베수비오 산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다. 글레디에디터의 병영도 보이고, 공중 목욕탕도 있고, 도리아식 기둥이 둘러선 바시리카에는 시정을 논의했을 것이다. 비너스 집에는 '조개껍질 위의 여인'의 모자이크도 보인다.

곳곳이 수도 파이프를 볼 수 있는데 2000년 전에 어찌 이런 것이 만들었는지 믿기지 않는다. 수도관에는 납 성분이 많아 납중독이 되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론 하수로도 있다. 차도와 보도가 분리되어 있고 화산에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사람들의 모형이 보인다. 고통 속에서 아이들을 부둥켜안은 어머니의 모습, 울부짖는 군상들... 말세의 모습이 이런 거구나..
나폴리까지 국철이 통용되지 않아 사철을 이용했다. 나폴리 시내를 관통하며 주변 경관을 보았다. 피자의 원조인 나폴리 피자를 먹어야하는데... 로마행 4시 기차를 놓칠까봐 서둘렀다. 간신히 시간 맞혀 기차를 났다.
승무원에게 로마행이 맞냐고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해안선을 타고 사는 철로가 아니라 무지 돌는 코스다.. 2시간반 거리를 무려 4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덕분에 베수비오산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모든 사치와 욕망을 한순간에 삼킨 베수비오 산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허망한 존재 인지 새삼 느꼈다.
이태리 기차에는 우리네 기차처럼 맥주, 오징어, 땅콩을 파는 구루마 아저씨가 없어 서운했다. 아이고 배고파.
테르미니 역에서 내려 아내와 난 다시 꼬르소 거리를 활보했다. 어제 구입하지 못한 기념품 몇 가지를 구입하고 베네치아 광장에 달려갔다.
7. 베네치아 광장

1885년 이태리 초대 왕인 엠마누엘레 2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조각상은 크기가 12미터나 되면 동으로 도금되어있다. 뒷편의 기념관은 마치 타자기와 닮았다. 현재 이 기념관은 무명용사의 묘지로 쓰이며 기념관 앞의 베네치아 광장은 뭇솔리니가 파시즘을 주창하며 군중을 선동하는 집회를 가졌던 장소다. 눈을 감아보니 군중의 함성이 들려온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주요도로가 사방으로 뻗어 있으며 배낭족의 약속장소이며 로마여행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근처 식당에서 해물피자를 시켜 먹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맛이 일품이다. 한국피자보다 맛있었던 것 같다.
텔르미니역 근처에서 기념 티셔스 몇 장 구입하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억' 하고 달려든 것이다. 얼마나 놀랬는지...간 떨어질 뻔했다. 아내는 놀래서 뒤로 자빠졌다. 누군가 했더니 민박집에서 같이 묵는 학생이다.
이스라엘, 터키, 이집트를 거쳐 이곳에 온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이다. 내일이면 서울로 떠나야 했기에 남은 열쇠고리를 주었다. 어사또의 마패와 같은 구실을 하니 잘 사용하라고 주었다.
젊음이 부러웠다. 내 학창시절엔 이런 배낭여행이 없었다. 그땐 돈이 없었슴. 만약 3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유럽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을 텐데.... 그러나 이 10일간의 여행도 얼마나 소중하고 선택 받았던가? 그저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민박집에서 밥을 먹으며 지금까지 여행을 정리해 보았다. 모두들 부부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에 부러운 시샘을 보낸다. 내일이면 평생 잊지 못할 유럽여행을 마쳐야 된다.
아이고 아쉬어....
아홉 번째날
(콜로세옷-포로로마노-진실의 입-판테온-나보나 광장-귀국)
1. 콜로세옷

오후 2시 비행기니까 12시까지는 마지막 로마를 둘러 볼 수 있으리라. 새벽에 일어나 골로세옷에 갔다. 거기까지는 지하철이 있지만 걷기로 했다. 로마엔 지하철노선이 두 개 밖에 없다. 결코 이 도시가 가난하거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로마의 지하에 유물이 산재해 있어 공사를 하면 미처 발굴하지 못한 고대의 값진 유물들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함부로 건물을 세운다든지 건물을 부수는 것은 허용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건물들이 거의 낡아 보이지만 그걸가지고 생활수준을 논해서는 안된다. 인사동의 한옥마을을 생가하면 된다.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시내를 가로지른다. 전차에는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공원에는 야자수 나무가 즐비하고 가지사이로 거대한 석조물이 나타난다. 우리네 서울운동장 만한 커다란 건물이 딱 버티고 있는 것이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호흡도 가파로와졌다.
심호흡을 하고 2천년 전의 최고 최대의 문화유산을 접했다.
기원전 72년 황제의 명으로 짓기 시작해 기원전 80년 아들대에서야 완공된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인 것이다. 완공기념식에 5000마리의 야수를 죽이는 백일간의 대 혈투가 밤낮으로 벌어졌다고 한다. 전체 수용인원은 약 9만명에 이르는데 문이 사방으로 분산되어 있어 경기장에 드나들기 쉽게 설계되었다.
'글레디에디터' 영화에서 보듯이 네로시대 이후 폭정과 대 화재로 인한 로마시민의 불만을 풀어주기 위해 경기장에서 검투사끼리의 대결이나 인간과 맹수의 혈투등 피비린내가 나는 경기가 이루어 졌다고 한다. 더욱이 경기장 전체에 물을 채워 모의 해전을 벌이기도 했다. 요사이도 이곳에서 수 만명을 대상으로 야외 오페라 공연도 열린다.
9시부터 개장을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동안 건물 외관을 둘러보았다. 나이키를 신은 젊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무슨 옷을 갈아입는데 자세히 보니 로마병사와 장군복장이다. 기념촬영을 같이 하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다. 주로 동양인들이 사진을 찍는다. 경복궁에도 한복에 화관을 쓰고 촬영하는 사람을 종종 본 것 같다.
거금 1만원을 내고 콜로세오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타난 전경...

와... 규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잠실운동장을 보았을 때의 충격이랄까? 이러한 거대한 석조물이 오늘날까지 지탱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검투사들이 명예를 위해 싸웠던 그곳....
단지 아쉬운 점은 콜로세오 둘레에 도로가 나 있어 자동차가 다닌다는 것이다. 매년 자동차 매연 때문에 문화재 손상이 크다고 한다. 지금도 벽 한쪽을 보수하고 있었다. 자동차 통행을 막아야한다. 콜로세오가 로마의 유적지가 아니라 인류의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2. 포로 로마노
콜로세오 앞엔 포로로마노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은 고대 로마제국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단순히 정치뿐 아니라 종교의 중심지이자 시민들의 대화의 장이며, 번화한 상점가이기도 했던 곳이다. 봄페이에서 고대 건물을 원 없이 보았기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캄피톨리오 광장 언덕 뒷편에 오르면 포로 로마노가 한눈에 들어온다. 돈 아끼려면 이곳에 올라 내려다보면 포로 로마노의 전경이 보인다.
포로로마노 옆에는 개선문이 있는데 파리의 개선문은 이것을 본 땄다고 한다.
그럼 개선문의 원조.
3. 마차경기장

개선문을 지나 개천가 근처에 이르렀다. 도저히 지도에는 나오는데 마차경기장을 찾을 수 없었다. 주변엔 예쁜 여인이 강아지와 놀고 있다. 그 여인에게 " 마차경기장이 어디예요?" 그 여자가 막 웃는다." 여기예요" 단지 황량한 들판뿐이었다. 둔덕에 올라가 보니 확연히 경기장의 윤곽을 볼 수 있었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벤허의 마차경기가 이곳에서 열렸다는데...벤허 영화의 '옥의 티'는 고대 로마시대 배경인데 빨간 폭스바겐이 스쳤다고 하는데... 나는 못 보다.
4. 진실의 입

기원전 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고대 로마의 하수관 뚜껑이었다고 한다. 산타마리아 성당 입구에 있는 것으로 로마의 휴일 때문에 오늘날에도 인파로 가득 찬다. 정작 성당에 들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거짓말쟁이가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리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5. 로물루스와 레무스
우리의 조상은 곰인데 로마의 조상은 늑대다. 팔라티노 언덕은 로마 건국의 언덕인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강물로 떠내려가는 것을 늑대가 구해줘 동굴에서 키웠고 이 두사람은 후에 팔라티노 언덕에 마을을 건설하였는데 이것이 로마의 시초라고 한다.'로마' 이름도 로물루스의 이름에서 나왔다. 베네치아 광장 왼쪽에 이 조각을 볼 수 있다.
6. 판테온

고대 로마시대 건축물 중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것이 바로 판테온이다. 이 건물은 기원전 27년에 각 행성의 신들에게 바쳐진 것이며 우리네 첨성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 판테온의 돔의 높이가 무려 43.3미터로 성베드로 성당과 피렌체의 두오모보다 커서 세계 최대의 석조 건축물이라 불린다. 거대한 둥근 천장 중앙에 구멍으로부터 일정한 시간에 햇빛이 비추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이 구멍으로 비가 새어 들어오지 않는 것은 내부의 대류현상을 염두 해 둔 과학적인 설계덕분이다.
이 거대한 석조물은 기둥이 없이 반원형 지붕을 이용해서 6센티 두께의 벽만으로 지탱하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건축물이다.
현재 대화가 라파엘로 무덤과 이태리 최초 왕인 엠마누엘레 2세의 무덤이 있는 납골당 구실을 한다. 참배하는 이태리 사람으로 가득찼다. 광장에는 노천 까페가 즐비하다. 그러나 커피 마실 시간조차 없었다.
7. 나보나 광장
로마에는 분수가 많다. 도시 외곽의 수원지에서 로마시내까지 순수한 자연낙차를 이용하여 물을 운반했는데, 그 수도관을 아직까지도 쓰고 있다고 한다. 어쨌든 로마분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수를 꼽으라면 당연히 이 나보나 광장의 분수이다. 세 개의 분수가 있는데 이중 베르니니 작품인 4대가의 샘이라는 '파우미 분수'이다.
8. 로마여 안녕
버스표 파는 곳도 없어 버스 타고 운전사에게 돈을 주었더니 받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무임승차를 했는데 기분이 묘해서 테르미니역 한 정거장 전에 내렸다. 그랬더니 검표원이 버스에 타 검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로마의 무임승차 벌금은 3만원이고 여권을 제시받고 대사관에 통보 된다고 하니 얼마나 쪽팔린 일인가? 등골이 오싹했다.
마지막으로 고풍스런 로마시내를 거닐고 민박집에 들러 짐을 찾고 공항행 기차에 올랐다. 마지막 유로패스를 사용한 것이다. 로마를 떠난다. 아니 유럽을 떠나는 것이다. 언제 다시 이 곳에 올까?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한 개만 던졌으니 다시 오리라 확신한다.
다빈치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이름을 이렇게 붙인 것은 그가 르네상스시절 모형비행기를 제작했기에 이곳을 그렇게 부른다.
방콕까지 10시간을 갈려면 자리가 편해야 한다. 꼬리부분에 2좌석이 앉는 자리를 티켓팅 했다. 그거 설명 하는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공항면세점에서 아이쇼핑하고 기내에 올랐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로마시가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안녕. 로마여 안녕
기내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거친 빵과 콜라에서 벗어나 근사한 정찬을 접했다. 돌아갈 때도 역시 스튜어디스가 귀찮을 정도로 괴롭혔다. 배 터지게 먹었다. 이해해 주셔...
우리 유럽에서 거지 생활 했거든...
방콕에서 양주와 담배를 구입했다. 여기서 베네치아에서 만난 여자들을 또 보았다. 그들은 그날 베네치아 민박집에서 현금과 한국에 가져갈 선물 등을 도둑 맞았다고 한다.
쯧쯧.. 다음 여행부터는 해외여행보험 꼭 가입하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국제화재에 보험 가입하라는 말과 함께...한국에 가까이 갈수록 직업병이 도짐.
태국을 들리고 잠시 홍콩을 거쳤다. 이곳에 확 내려 버릴까?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다. 공항에 부모님과 나의 사랑하는 딸 정수가 나왔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그러나 정수는 못 본체 한다. 열흘동안 부모를 보지 못했기에 아기가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본가에 6일 처가집에 5일동안 있었던 정수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다음 여행엔 정수도 데려가야지... 2-3일 지나니까 정상으로 돌아왔다.
마치는 말
비록 짧은 여정이지만 유럽문화를 접한 것에 그저 만족한다.
단지 시간에 제약을 받아 피상적으로 유적지를 탐방하는데 그쳤다.
그리스, 로마신화와 성경 그리고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를 한 번 읽고 간다면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게 있어서 미술책에 나와 있는 그림과 조각품을 접하는데도 힘에 부쳤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15년후 우리 딸 정수가 유럽 순례의 길을 나섰을 때 부모가 느꼈던 감동을 같이 나누기 위해서다. 시간을 초월한 부녀의 만남... 생각만 해도 얼마나 멋있는 일이던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영국과 스페인 독일을 돌아보고 싶다. 곧 그 꿈이 실현되리라 기대 한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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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야 이 글을 보게 됩니다.
이탈리아 본토를 가봐야 할텐데, 2년전 베니스만 며칠 들렀다 왔네요.
섬도 구경하고 싶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