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까지는 비행기로 다섯 시간쯤 걸렸다.
1년 전쯤 종로에서 두 달간 배웠던 스페인어 책을 펼쳐놓고, 기억에서 멀어져간 스페인어 기초회화를 암기하며, 그러다가 가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그도 지루해지면 가이드북을 꺼내 보고타에서 우리가 묵어야할 숙소를 체크해가며 다섯 시간을 보냈다. 다섯 시간은 제법 지루했다. 그만큼 나는 들떠 있었다. 남아메리카라니!
드디어 보고타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은 너무나 간단했고, 공항 시설은 열악해서, 이민국을 빠져 나가자 작은 환전소가 몇 개, 인포메이션 부스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올드 타운이 위치해있는 센트로에 가는 미니버스는 공항을 나와 길을 건너 타라는 안내를 받긴 했지만, 마땅한 버스 정류장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아 남편과 나는 한참을 버벅여야 했다. 그냥 손을 들어 버스를 세우면 된다는걸 몰랐기에 무거운 배낭을 맨채, 한참을 서있었다.
보고타의 길은 calle(street의 뜻, 발음은 까예)와 carrera(avenue의 뜻, 발음은 까레라)로 되어 있고, 주소에도 까예와 까레라가 씌여있다. 건물 곳곳에도 까예와 까레라가 씌여있어, 우리는 올드 타운과 가까운 까레라에 도착하면 내리려고 열심히 창밖 풍경만 주시했다.
버스 운전기사에게 물었으면 편했을텐데, 남미에 도착한 첫날인데다 스페인어에 미숙했고, 조금은 긴장해 있었던 탓에 입을 굳게 다물고 말았다.
결국 버스를 탄지 두 시간후, 센트로를 한참 벗어난걸 깨닫고는 변두리에 위치한 듯한 작은 동네에서 버스를 내려야 했다. 보고타에는 노란색 소형 택시들이 많았다. 좁은 골목길을 달리는 노란색 마티즈 택시는 꽤나 귀엽고 인상적이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는 인상좋아 보이는 노인의 운전사에게 가이드북에 실린 숙소 주소를 내밀었다. 그러나 운전사는 깨알같은 글씨를 읽지 못했나보다. 결국 우리를 엉뚱한 곳에 내려주고 말았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탓에 우리는 택시에서 내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영어를 할 줄 아는지 물어야했다. 결국 한 여인이 영어를 할 줄 알아서, 그녀가 우리의 숙소 주소를 택시 운전사에게 말해주었다. 그렇게 헤매고 헤매서 도착한 올드 타운에 위치한 숙소 Hotel Aragon.
택시비는 무려 30000페소가 나왔다 (1000페소 = 약 500원). 보고타 엘도라도 공항에서 올드타운까지 바로 택시를 탔으면 16000페소 인데, 조금 아껴보겠다고 미니버스를 탔다가 낭패를 본 것이다.
호텔 아라곤에 짐을 풀고, 시원한 것이나 마시자 하고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보고타는 이미 제법 어두워져 있었다.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외국 여행자들이 간간히 보였다. 웨이트리스가 메뉴를 주고 갔는데, 온통 스페인어이다. 맥주를 마시고 싶은데, 맥주를 스페인어로 무엇이라 하는지 나의 얇은 스페인어 회화책에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웨이트리스도 영어를 전혀 못해서 도움이 안된다.
그때 옆 테이블의 동양 남자가 익숙한 모국어로 말해주었다. "맥주는 cervesa (세르베싸)예요." 라고. 콜롬비아에서 만난 한국 남자라니, 얼마나 반갑던지!
그는 콜롬비아에만 몇 달째 체류중이라고 했다. 콜롬비아가 왜그리 좋은지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남미 다른곳과 사람들이 달라요. 정말 친절하죠. 보셔서 알겠지만 여자들도 이쁘구요. 콜롬비아, 최고죠."
보고타의 밤은 깊어가고, 맥주는 긴장을 녹여주었다. 위장은 시원해졌고, 볼은 발그레해졌다.
나는 콜롬비아에 있는 것이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잠이 잘 올 것 같지 않았다.
첫댓글난 언제나 첫 날,의 여행기를 읽는 게 좋아요. 조금은 먹먹하고 낯설고 헤매지만- 그 끝에, 숙소에 무사히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와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그 첫 모금 혹은 첫 술에 온 몸이 녹아들면서, 저 밑에서부터 두근두근. 콩닥콩닥. 심장 뛰는 소리. 첫 날의 여행기 읽으면 같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지금 이 공간이- 그렇게 느껴져요^^
첫댓글 난 언제나 첫 날,의 여행기를 읽는 게 좋아요. 조금은 먹먹하고 낯설고 헤매지만- 그 끝에, 숙소에 무사히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와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그 첫 모금 혹은 첫 술에 온 몸이 녹아들면서, 저 밑에서부터 두근두근. 콩닥콩닥. 심장 뛰는 소리. 첫 날의 여행기 읽으면 같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지금 이 공간이- 그렇게 느껴져요^^
이번엔 콜롬비아, 멋있네요
bogota 에 가시고 그유명한 황금 박물관을 안다녀 오셨으니 필히 다시한번 가셔야 할듯 하네요~~시내에 있는데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곳이기두 하구여~~ colombia인들 한국인 들에겐 무척 친절하죠?~~왠지 자꾸만 정이 가는 나라에요~~~~
간만에 들어온 정현씨 카페네요. 남미가고싶어 글을 읽고있어여.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