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영화의 장르를 나누다 보면 서양의 장르를 쫓게 마련인데 우리의 공포영화만큼은
그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있어 서양 공포 영화의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다. 우선 나름의 특색을 살펴보면 우리 공포영화의 대부분은
'원한'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명이 난다는 맘이 한이라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의 피를 몽땅 빨아서
말려 죽이리라는 맘이 원한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귀신은 이성을
잃는 법이 없다. 즉, 자신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이는 어떠한 피해도
입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금은 무섭더라도 자신은 안전하리라는
믿음을 갖고 영화를 볼 수 있다. 또한 우리 공포영화는 다분히 과거
지향적이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전설'(여곡성, 감독 이혁수, 1986)과
같은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했더라도
어릴 적에 받은 성적 충격 때문에 고생하는(화녀, 감독 김기영, 1971)
등 과거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듯 유교적인 사고에 머물러서
비판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공포영화에 여고괴담(감독
박기형, 1998)과 같은 영화가 나왔다는 것은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
공포영화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중 가장 흔한 것이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다. 언제나 머리를 풀어헤치고 '히히히' 웃으며 다가오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서양 귀신과는 달리 입가에 흐르는 피를 제외하고는
우리의 얼굴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얀 소복의 여인이
주연이라면 조연은 바로 퇴마사로 등장하는 스님일 것이다. 다른 나라의
퇴마사가 현란한 액션과 무서운 주문을 사용하는 반면 우리의 스님은
그저 '나무아미타불'을 되뇌일 뿐이긴 하지만. 그리고 등장하는 것이
장의사이다. 이상한 얼굴을 하고 나와 우리의 공포를 배가시킨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산적이다. 언제나 산적은 등장해서 여인을 괴롭히고
귀신이 되어 나타난 여인의 제물이 된다. 만약 영화가 대가집을 배경으로
한다면 유모와 계집종을 빼어 놓을 수가 없다. 이들은 귀신이 나타나는
원인이 되는 사건에 일조한다. 그리고 서양의 늑대인간에 대적할 수
있는 구미호도 빼어 놓을 수 없는 훌륭한 인물이다.
이런 우리 공포영화에 거장이
있을까? 한동안 우리 공포영화는 굉장히 천대를 받아왔다. 잘 만들어
관객을 공포에 떨지 못하게 하면 웃음거리만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을까.
요근래 다시 부활하고 있기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포영화가
우리 영화계에 있어선 B급 장르였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공포영화가 메이저였던 70, 80년대 이후 대부분의
감독들이 에로의 길을 걷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포영화가 메이저였던
때를 시점으로 몇몇의 거장을 모시고 있다.
우선은
신상옥 감독을 들 수 있다. 신상옥 감독은 주로 과거를 배경으로 한
<백사부인>, <사녀>, <천년호>, <이조괴담>
등을 만들었고 그 시대 여성들의 삶의 고통과 억압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였다. 두 번째로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 김기영을 들 수 있다.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은 완전한 공포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안에 무엇인가에 대한 공포가 언제나 잠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포영화의
거장이라 칭할 만하다. 쥐를 잡아 입 속에 집어넣던 하녀(<하녀>),
목만 잘려 나간 뒤 삶은 의지라고 외치는 대학생(<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대를 잇기 위해서 시체의 몸과 자신을 대롱으로 연결하여
아이를 얻으려는 과부(<이어도>), 자신이 죽인 사람을 기계에
갈아 닭의 모이로 주는 장면(<화녀>), 쥐에게 갉아 먹히는 아기에
대한 환상(<육식동물>)까지 그의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무엇인가에
미친 듯이 열광하고 이로 인해 자기 자신까지 잃어버리는 공포스러운
모습을 보여 준다. 김기영 감독은 이런 일련의 영화들을 통해서 성적
욕망과 그 억압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 자본이라는 거대한 가치로
인해 자신의 권위가 흔들리는 가장의 모습을 좀더 급진적이고 감각적인
방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했다. 위의 두 감독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감독들이나 지금부터 소개하는 두 감독은 조금은 생소한
감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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