멱서리 김유정에게
-김유정 작가님은 1908년 태어나 1937년 세상을 떠났지요. 그 분 나이 만 스물 아홉..
그 나이 그 대로, 이 글을 쓰는 저는 40대로 .. 친구처럼 그렇게 쓰는 편지임. 오해없기를 바랍니다.
유정!
난 지금 <심청>을 부리면 종로를 걷고 있네. 좀 취했지. 봄이니까. 자네가 봄과 봄 사이에 점을 찍어 놓아 내 맘이
종달이 꽁지처럼 토옥토옥 하니까. 올 봄 술 먹을 땐 맥주잔에 소주를 부어 먹기로 했거든. 취하니까 심청이 나는군.
이유야 다르지만 그때의 자네처럼 말이야.
‘매캐한 방구석에서 혼자 볶을만치 볶다가 열벙거지가
벌컥 오르면 종로로 뛰어나오는 것이’ 자네였지. 자넨 ‘눈에 띄는 것마다 모두 구역이 날 지경’ 이라지만
거지가 그토록 자네 비위를 상하게 했는가. 문화생활의 장애물이라 다 몰아다 한강에 띄우든 하라고.
뭐, 벌레들을 치워주지 않으면 한걸음도 나갈 수 없다고.
‘얼굴은 노란게 말라빠진 노루가죽이 되고 화로전에
눈녹듯 개개풀린 눈매를 보니 필연 신병이 있는 대다가
얼마 굶기까지 하였으리라. 금시로 운명하는 듯 싶었다.
거기다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거지는 시러죽은
고양이처럼 큰놈의 무릎위로 기어 오르며 울 기운조차
없는지 입만 벙긋벙긋 그리고 낮을 째푸리며 투정을
부린다. 꼴을 봐한즉 아마 시골에서 올라온지도 불과
며칠 못되는 모양이다.’
유정!
자네 심청도 고약도하네. 하지만 그 심청 내 왜 모르겠나. 일제강점기란 거대한 벽 앞에 생활고와 병고를 껴안고
방황하는 톨스토이인 자네. 거리에 널려있는 거지들, 그 깍쟁이들이 곧 자네 모습이라서 더 그들이 미웠을 테지.
유정!
코다리찌게에 말걸리 한 잔 더 했음 좋겠네. 내일 일찍 일터로 가야한다고 도망쳐 온 몸이지만, 그래서 아쉽고 내 생활에 심술도 나지만 오는 오월 십사일 문학기행반에서 자네 고향으로 문학기행을 간다네.
지난 주일 어린이대공원 식물원 분재실에서 명자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는데, 오늘 명자 학우가 새내기 대표로 함께해 기뻤다네.
유정!
벌써 종각역이네. 잘 있게. 또 씀세.
-화양동에서 서울점순이 창순이가
첫댓글 ‘얼굴은 노란게 말라빠진 노루가죽이 되고 화로전에 눈녹듯 개개풀린 눈매를 보니 필연 신병이 있는 대다가 얼마 굶기까지 하였으리라. 금시로 운명하는 듯 싶었다. 거기다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거지는 시러죽은 고양이처럼 큰놈의 무릎위로 기어 오르며 울 기운조차 없는지 입만 벙긋벙긋 그리고 낮을 째푸리며 투정을 부린다. 꼴을 봐한즉 아마 시골에서 올라온지도 불과 며칠 못되는 모양이다.’
유정! 난 지금 <심청>을 부리면 종로를 걷고 있네. 좀 취했지. 봄이니까. 자네가 봄과 봄 사이에 점을 찍어 놓아 내 맘이 종달이 꽁지처럼 토옥토옥 하니까. 올 봄 술 먹을 땐 맥주잔에 소주를 부어 먹기로 했거든. 취하니까 심청이 나는군. 이유야 다르지만 그때의 자네처럼 말이야.
유정은 존경하는 작가이자, 그의 소설이 맺어준 친구이다.